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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37479 / 158쪽 128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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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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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숙, 김경란, 김근아, 김은주, 박경란, 박선영, 박혜란,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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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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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칼리
- 15,750
- 16,650
- 10,800
- 10,800
- [시리즈] 문학과지성 시인선 [650]
출판사 리뷰
자발적으로 도피에 실패한 니힐리스트 천성이 허무주의자인 허연은 초기 시에서 세상에 대한 복수감을 가감 없이 드러내곤 했다. 괴팍하고 불친절한 칼잡이처럼 ‘세상의 옆구리를 한번 찌르는 심정’으로 썼던 시절, 그의 시는 차마 발 딛을 수 없는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를 희구했다. 미학으로의 강한 열망과 더불어 죽음으로서의 자유를 꿈꿨던 젊은 그의 시 「무반주無伴奏」가 이번 시집에서 같은 제목의 연작으로 등장했지만 전혀 다른 톤으로 풀려나오는 지점에서 그의 변모된 태도를 알아볼 수 있다. 에릭 사티는 사람이었다 에릭 사티는 돈을 벌고 싶어했다 에릭 사티는 알코올 중독자였다 에릭 사티는 은행엘 가지 않았다 에릭 사티는 죽었다 자유는 죽음처럼 죽음은 자유처럼 에릭 사티는 사막엘 가고 있었다 모래바람으로 가고 있었다 ? 「無伴奏」 부분(『불온한 검은 피』, 세계사, 1995) 행복하냐고 물을 때마다 바닥에 침을 뱉는 골 깊은 얼굴들 재개봉관에서 나와 수줍은 밥집에 모여 백반을 먹고 밤이 오면 금이 간 보안등 아래 어깨 없는 아이들이 그림자놀이를 한다 [……] 자정이 되면 다행스럽게 그날의 신神이 태어나고 종주먹을 쥔 아이들은 한 손에 빵을 들고 코피를 닦는다 이곳에서 희망은 목발을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 「무반주」 부분 이제 허연의 세계는 모래바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무감한 일상, 폭력과 어둠 속에서도 매일 신이 태어나 목발 짚은 희망으로 되돌아온다. 이렇게 그의 시가 점차 단단해지고 빛을 더하게 된 이유가 꾸준한 공부와 독서에서 온 자기 확신에서 비롯했다고 시인은 밝히기도 하였다. 그간 고전을 넓고 깊게 탐독하여 이와 관련한 다수의 에세이를 집필해온 허연이기에 독자들에게도 낯선 사실이 아닐 터다. 스승에게 시를 배우지도 않았고 타인의 텍스트를 모사하지도 않았던, 단지 외삼촌의 서가에 꽂힌 영시집들을 읽어가며 작은 파장으로 큰 물결을 만드는 시의 언어에 빠져들어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가했던 허연. 시를 앓고, 시로 성장해온 그가 다섯번째 시집에 이르러 보여주는 자기 세계는 어떤 완성을 향해 부단히 가고 있다. 냉소하고 식었다 해도, 끝내 노래로 기억될 ‘어느 사랑의 역사’ 돌진하는 건 재미없는 게임이야. 잘 생각해. 너는 중독되면 안 돼. 중독되면 누가 더 오래 살까? 이런 거 걱정해야 하잖아. [……] 그러니까 다시는 가슴 덜컹하지 말기. 이별의 종류는 너무나 많으니까. 또 생길 거니까. 너무 많은 길을 가리키고 서 있는 표지판과 너무 많은 방향으로 날아오르는 새들과 너무 많은 바다로 가는 배들과 너무 많은 돌멩이들 사랑해. 그렇지만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리기. ?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부분 세속 도시의 냉소주의자 허연이지만 불타본 자만이 식을 수 있고(「이별은 선한 의식이다」), 날아오른 자만이 떨어질 수 있음(「트램펄린」)을 알고 있기에 이번 시집에서도 사랑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시인으로 우뚝 선다. 매 순간 최대 속도로 달음박질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만, 그래서 불타는 자동차에서는 내려야 하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나비가 되어줄 사랑을 또다시 해내고야 만다. 가장 충실하게 사랑을 겪어낸 자만이 할 수 있는 그의 이야기는, 읽는 이를 노래로 이끌어 부지불식간 시에 온전히 녹아들도록 한다. 언제나 눈치 보지 않는 솔직한 이야기로 우리를 만나는 허연이 그의 깊은 사랑과 무한한 깨달음으로 당신을 만날 채비를 마쳤다. 장맛비처럼 쏟아질 시인의 노래가 이제 여기에 왔다. - ■ 본문에서 트램펄린에 날 던지면서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쉽다 날아오르는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 「트램펄린」 부분 어린 시절. 큰물이 쓸려 간 아침, 교각 밑에 살던 거지 소녀가 떠내려갔을까 봐 숨도 안 쉬고 달려갔던 교각 마음 졸이며 달려갔던, 그 슬픈 음화가 생각났다. 병에 걸린 걸까. 엉겨붙은 눈꼽에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고양이들이 짝짓기를 한다. 세상에 다시 오지 않을 거니까 적어도 그것만은 알고 있으니까 공룡뼈 같은 교각 아래서 고양이들은 생을 불태운다. 교각 밑을 걷다 보면 모든 것이 이상하게 음화淫?로 바뀐다 녹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린 교각에는 설익은 유서들이 있고 누군가의 투항이 있고 어린 나이에 생을 마친 친구들과 그을린 맹세들이 있다. 스프레이로 쓴 억지스러운 구호 몇 개가 중년의 날 위협하고 이따금씩 덜컹대는 상판에서는 콘크리트 가루가 축복처럼 쏟아졌다. 트랙처럼 뻗어 있는 한강 다리 밑에 숨겨놓은 그 비밀스러운 음화를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음화였음을. ? 「교각 음화」 전문 중심을 잃는다는 것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회전목마가 꿈과 꿈이 아닌 것을 모두 싣고 진공으로 사라진다는 것 중심이 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가장 막막한 일이다 어지러운 병에 걸리고서야 중심이 뭔지 알았다 중심이 흔들리니 시도 혼도 다 흔들리고 그리움도 원망도 다 흔들리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까지 가는 것도 어렵다 그동안 내게도 중심이 있어서 시소처럼 살았지만 튕겨 나가지 않았었구나 중심을 무시했었다 귀하지 않았고 거추장스러웠다 중심이 없어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겠다 중심이 있어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 ? 「중심에 관해」 전문
지은이의 말
소식은 없었다
밤에 생긴 상처는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
도망치지 못했다
2020년 6월
■ 뒤표지 글
비가 자주 내렸다.
창밖 사철나무에는 직박구리가 아침마다 와서 울다 갔고, 기쁨과 슬픔은 나도 모르게 자리를 바꾸어 앉았다. 멀리서 무개화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신생아처럼 누워 아주 긴 음악을 듣고 있었다.
제외된 자들의 눈부심을 알았다
절창은 제외된 자들의 몫이라 생각했다
트램펄린에 날 던지면서 말한다
“말해줘 가능하다면 내가 세상을 고르고 싶어”
생각이 있으면 말해주리라 믿었지만
트램펄린은 그냥
나를 떨어뜨리고
미워하지도 않으면서 나를 떨어뜨리고
그러면 내 처지도 최선을 다해 떨어지고
세상에서 트램펄린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아쉽다
날아오르는 몇 초가 달콤했기 때문에
- 「트램펄린」 부분
어린 시절.
큰물이 쓸려 간 아침,
교각 밑에 살던 거지 소녀가 떠내려갔을까 봐
숨도 안 쉬고 달려갔던 교각
마음 졸이며 달려갔던,
그 슬픈 음화가 생각났다.
병에 걸린 걸까.
엉겨붙은 눈꼽에
눈도 제대로 못 뜨는 고양이들이
짝짓기를 한다.
세상에 다시 오지 않을 거니까
적어도 그것만은 알고 있으니까
공룡뼈 같은 교각 아래서
고양이들은 생을 불태운다.
교각 밑을 걷다 보면
모든 것이 이상하게 음화淫?로 바뀐다
녹물이 눈물처럼 흘러내린 교각에는
설익은 유서들이 있고
누군가의 투항이 있고
어린 나이에 생을 마친 친구들과
그을린 맹세들이 있다.
스프레이로 쓴 억지스러운 구호 몇 개가
중년의 날 위협하고
이따금씩 덜컹대는 상판에서는
콘크리트 가루가 축복처럼 쏟아졌다.
트랙처럼 뻗어 있는 한강 다리 밑에 숨겨놓은
그 비밀스러운 음화를 지울 수가 없다.
내가 음화였음을.
- 「교각 음화」 전문
중심을 잃는다는 것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회전목마가
꿈과 꿈이 아닌 것을 모두 싣고
진공으로 사라진다는 것
중심이 날 떠날 수도 있다는 것
살면서
가장 막막한 일이다
어지러운 병에 걸리고서야
중심이 뭔지 알았다
중심이 흔들리니
시도 혼도 다 흔들리고
그리움도 원망도 다 흔들리고
새벽에 일어나
냉장고까지 가는 것도 어렵다
그동안 내게도 중심이 있어서
시소처럼 살았지만
튕겨 나가지 않았었구나
중심을 무시했었다
귀하지 않았고 거추장스러웠다
중심이 없어야 한없이 날아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이제 알겠다
중심이 있어
날아오르고, 흐르고, 떠날 수 있었던 거구나
- 「중심에 관해」 전문
시인의 말
1부
트램펄린/세상의 액면/어떤 거리/십일월/만원 지하철의 나비/슬픈 버릇/상수동/이장/그해 대설주의보/교각 음화/해변/기억은 나도 모르는 곳에서 바쁘고/구내식당/무반주/새벽 1시/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우리의 생애가 발각되지 않기를/시월/초봄/빵 가게가 있는 풍경/전철역 삽화/북해/바닷가 풍습/열대
2부
어느 사랑의 역사/24시 해장국/두려운 방/누구도 그가 아니니까/강물에만 눈물이 난다/트랙/애인에게는 비밀로 하겠지만/역전 스타벅스/절창/발인/80년대/경원선 부고/소년 記/당신의 빗살무늬/내 뒷모습/죽은 소나무/눈의 사상/용궁설렁탕/이별의 서/환멸의 도서관/세상의 액면 2/산새/산 31번지
3부
이별은 선한 의식이다/생은 가엾다/흡혈 소년/눈물이란 무엇인가 2/무방비 도시/무반주 4/무반주 3/나일강변/시어들/추억, 진경산수/해협/지옥에 관하여/21세기/침대의 시/상하이 올드 데이즈/시립 화장장/계시/패배/강변 비가/하얀 당신/독/중심에 관해/남겨진 방
발문 이곳에선 모든 미래가 푸른빛으로 행진하길 - 박형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