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신정일의 신 택리지-경상

신정일 저 | 쌤앤파커스 | 2020년 06월

북트리

정가
$39.60
판매가
$21.78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44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ISBN : 9791165341824 / 552쪽 148 x 218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7,010
  • 14,400
  • 24,300
  • 21,600

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문화사학자 신정일의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경상 편 출간!

대한민국 도보답사의 선구자 신정일이 전국 방방곡곡을 직접 걸으며 완성한 도보답사기 《신정일의 신新 택리지》 시리즈의 일곱 번째 책 ‘경상’ 편이 출간되었다. 땅이 넓고 아름다운 경상도는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와 삼백의 고장 상주에서 한 자씩 따서 이름 지었다. 《택리지》에 “경상좌도는 벼슬한 집이 많고 경상우도는 부유한 집이 많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재와 문화의 보고 경상도는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정치와 경제의 한 축이다. 낙동강 발원지부터, 안동, 의성, 동해의 끝 울릉도와 독도, 지리산과 섬진강을 지나 부산 마산, 진해까지 경상도 곳곳에 숨은 재미있는 지리, 역사, 사람 이야기가 펼쳐진다.

출판사 리뷰

아름다운 영남에서 풍류에 취하다 - 안동의 영호루는 밀양의 영남루, 진주의 촉석루, 남원의 광한루와 함께 한수 이남의 대표적인 누각으로 일컬어졌다. - 영천은 대구, 포항, 경주, 의성 등과의 거리가 대략 80리 안팎이라서 조랑말을 타고 여행하던 조선시대에는 하룻길 여정이었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해거름 녘에 도착하는 영천은 그런 연유로 객줏집과 주막집이 유독 많았다. - 근현대에 접어들면서 울릉도가 개척된 데는 한때 한반도 동남쪽의 여러 섬들을 개척하는 벼슬을 맡았던 김옥균의 역할이 컸다. - 옛날에 독도는 삼봉도, 가지도, 우산도 등으로도 불렸다. 울릉도가 개척될 때 입주한 주민들이 처음에는 돌섬이라고 했다가 다시 독섬으로 변했고, 독섬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독도가 되었다고 한다. - 통일신라의 신문왕은 신라가 한반도 동쪽에 치우쳐 있어 새로 정복한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을 통치하기 힘들어지자 달구벌로 천도할 계획을 세웠으나 귀족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 금정산성 아래에서 이름난 술이 금정산성막걸리다. 조선 숙종 때 금정산성을 짓는 데 차출되어온 부역꾼이 5만 명이나 되었는데, 그들이 낮참으로 마셨던 술이 금정산성막걸리의 유래다. - 성종 2년(1471)에 출간된 신숙주의 《해동제국기》에도 부산포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당시의 ‘부’ 자는 지금의 ‘가마 부釜’가 아니고 ‘넉넉할 부富’를 써서 ‘부산富山’이었다. - 흔히 ‘뼈대 있는’ 고장을 말할 때면 ‘좌안동, 우함양’이라고 한다. 좌안동이라고 부르는 낙동강의 동쪽 안동은 훌륭한 유학자를 많이 배출할 땅이고, 낙동강 서쪽인 함양에서는 빼어난 인물들이 태어난다는 설이다. 저자 신정일은 30년 넘게 우리 땅 곳곳을 답사한 전문가로 각 지역 문화유적은 물론 400곳 이상의 산을 오르고,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으며,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다. 부산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로 조성되었고, 그 외에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의 개발에 참여하였다. 이렇듯 두 발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걸어온 신정일을 김용택 시인은 “현대판 김정호”라 했고, 도종환 전 문화관광부장관은 “길 위의 시인”이라고 했다. 김정호가 그랬듯 산천 곳곳에서 건져 올린 생생한 이야기를 담은 《신정일의 신 택리지》 시리즈는 우리 시대 대표적인 국토 인문서로 독자들에게 이 땅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저자 소개

문화사학자이자 도보여행가.
사단법인 ‘우리 땅 걷기’ 이사장으로 우리나라에 걷기 열풍을 가져온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 사업을 펼쳤다.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길 위의 인문학’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한국 10대 강 도보답사를 기획하여 금강·한강·낙동강·섬진강·영산강 5대 강과 압록강·두만강·대동강 기슭을 걸었고, 우리나라 옛길인 영남대로·삼남대로·관동대로 등을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곳의 산을 올랐다. 
부산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 바닷길을 걸은 후 문화체육관광부에 최장거리 도보답사 길을 제안하여 ‘해파랑길’이라는 이름으로 개발되었다. 2010년 9월에는 관광의 날을 맞아 소백산자락길, 변산마실길, 전주 천년고도 옛길 등을 만든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독학으로 문학·고전·역사·철학 등을 섭렵한 독서광이기도 한 그는 수십여 년간 우리 땅 구석구석을 걸어온 이력과 방대한 독서량을 무기로 《길 위에서 배운 것들》, 《길에서 만나는 인문학》, 《홀로 서서 길게 통곡하니》,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 33》, 《섬진강 따라 걷기》, 《대동여지도로 사라진 옛 고을을 가다》(전3권), 《낙동강》, 《영남대로》, 《삼남대로》, 《관동대로》 등 60여 권의 책을 펴냈다. 

책 속에서

《삼국사기》를 보면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서와는 다른 이름을 가진 나라가 여럿 나온다. 그중에 오늘날 경상북도 지방에 있었다고 생각되는 나라는 다음과 같다. 경주시와 월성군에 있던 사로국斯盧國, 월성군 안강읍에 있던 비지국比只國, 대구시 또는 영일군 홍해에 있던 다벌국多伐國, 영월군 기계면 또는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에 있던 초팔국草八國, 영천군에 있던 골벌국骨伐國, 경상군 압량면에 있던 압독국押督國, 청도군 이서면에 있던 이서국伊西國, 의성군에 있던 조문국召文國, 금릉군 개령면에 있던 감문국甘文國, 상주군에 있던 사벌국沙伐國 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본래 대가야국이다. 신라의 진흥왕이 그것을 멸망시키고 그 땅을 대가야군으로 하였고, 경덕왕이 지금의 이름으로 고쳤다”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가야를 멸망시킨 신라는 국운을 천년 동안 누렸다. 그 도읍지가 예로부터 ‘동방에서 아침 햇빛이 맨 먼저 닿는 땅’이라고 알려진 경주다.
- 36p, 잊히고 만 역사, 가야

도둑, 거지, 뱀이 없고, 바람, 향나무, 미인, 물, 돌이 많다고 하여 삼무오다三無五多의 섬으로 불리는 울릉도에는 특히 바람 부는 날이 많다. 한 해에 바람이 잠잠한 날은 70일쯤밖에 안 되고 평균 풍속이 초속 4.5미터에 이르며 폭풍이 이는 날이 179일이나 된다. 그래서 울릉도에는 풍향에 따라 바람을 가리키는 낱말이 풍부하다. 곧 동풍은 동새라 하고, 서풍은 청풍·하늘바람·갈바람이라 부르며, 남풍은 들바람·맛바람, 북풍은 북새·샛바람·북청이라 한다. 그 밖에 동남풍은 울진·들진, 북동풍은 정새, 남서풍은 댕갈바람·처지날·댕갈·댕갈청풍이라 하고, 북서풍은 북청바람 또는 북청이라고 부른다. (…)
작은모시개 북동쪽에 있는 내수전內水田마을은 고종 21년(1234)에 제주도 대정에 사는 김내수金來壽가 이곳에 와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에서 안용복 기념관까지 가는 길이 우산국 시대의 옛길로 울릉도의 속살을 보고 걷는 길이다. 가다가 언뜻언뜻 보이는 섬이 댓섬이라고 불리는 죽도다. 와달리 동쪽 바다 가운데에 있는 이 섬은 사면이 절벽으로 되었고, 위가 평평해서 농사 짓기에 알맞은 섬이다. 주로 수박 농사와 소를 먹여서 생활하는데 교통이 매우 불편해서 절벽에 사닥다리를 놓고 생활했다.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은 육지에서 송아지를 사 가지고 배에 싣고 와서 배를 섬 아래에 정박한 뒤에 송아지를 등에 업고 사닥다리로 올라가 키웠다. 다 키운 후에 그 소를 잡아서 고기를 짊어지고 다시 사닥다리로 내려와서 배에 싣고 육지에 내다 팔아서 곡식을 구해 먹고 살았다. 만일 식량이나 물이 떨어지거나 혹은 병이 들게 되면 봉화를 올려서 나리리의 섬목과 연락을 취하며 살았다.
- 150p, 돌섬, 독섬, 독도

추풍령은 현재 경부선 열차와 경부 고속도로가 나란히 줄지어 달리고 고속 전철까지 지나가는 나라의 중요한 길목이 되었지만,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험준한 고개였다. 또한 그 이름 때문에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는 금기시되는 고개 중 하나였다. 관원이 이 고개를 넘으면 파직되고 과거를 보러 가는 선비는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 하여 넘지 않았다. 대신 직지사 앞에서 영동군 황간으로 넘어가는 눌의산 남쪽에 있는 괘방령掛榜嶺으로 돌아갔는데, 이 고개를 넘으면 과거에 급제한다는 속설이 있기도 했다. ‘괘방’이란 말 그대로 ‘방을 써서 붙인다’ 또는 ‘방을 써서 걸었다’는 뜻이므로 과거에 합격하여 이름을 게시한다는 뜻도 되었고 승진한다는 의미도 지녔다.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 서쪽의 황악산에서 흐르는 직지사천과 김천시 대덕면 대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감천이 김천시에서 합류하며 동쪽으로 낙동강에 흘러든다. 감천에 인접한 고을이 지례, 금산, 개령인데 선산과 함께 감천 물을 관개하는 이로움을 누렸다.
- 387, 추풍령 너머 김천

마음 가득 안기는 절 영산암에서 소나무가 우거진 산길을 한참을 걸어가 고갯마루를 넘어서면 아담한 그림 같은 절 개목사가 나타난다. 개목사開目寺는 신라시대에 의상이 창건했는데 이에 얽힌 설화가 재미있다. 의상이 출가하여 천등산 정상 근처 큰 바위 밑에서 수도를 했는데 하늘에서 큰 등불을 비춰 주어 99일 만에 도를 깨치게 되었다. 의상은 지금의 터에 99칸의 절을 창건하고 ‘하늘의 등으로 불을 밝혔다’는 뜻으로 천등사라이름을 지었다. 고려 말에는 정몽주鄭夢周가 이 절에서 공부했다. 조선 초 맹사성孟思誠이 안동 부사로 부임한 뒤 주수하면서 맹인이 많은 안동에서 더 이상 맹인이 생기지 않도록 절의 이름을 개목사로 고쳐 지었다. 이후부터 안동에는 장님이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77p, 정몽주가 공부한 절 개목사

금성단 바로 근처에 어린 시절 어른들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라고 놀리던 말의 진원지가 된 청다리가 있다. 이곳 소수서원紹修書院에서 공부하던 유생이 인근 마을 처녀와 바람이 나서 자식을 낳게 되면 모월 모시에 청다리 아래 가져다 놓았고 아이가 울고 있어서 데리고 왔다고 한 뒤 다시 자기 집에서 키웠다고 한다. 아이를 자기 아이라고도 못 하고 키우는 아비의 한이 서린 청다리는 이제 옛날의 청다리가 아니다. 소수서원은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있다. 중종 연간에 풍기 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인 안향安珦을 추모하여 세운 최초의 서원이다.
- 370, 소수서원 유생은 다리 밑에서 아이를 주어 기르고

 

목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