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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432500 / 262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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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마농 레스코≫는 1731년 암스테르담에서 출간되었다. 이 소설은 앞서 말한 ≪어떤 귀족의 회고록≫의 마지막 7권으로 구성된 것이지만 그 자체는 독립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저자는 ‘독자에의 머리말’ 가운데 이 두 작품 사이에는 아무런 필연적인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굳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거니와 지극히 단순한 내용의 이야기요, 또한 단순한 구성과 필치로 그려진 이야기이다. 나이 어린 두 젊은이―데 그류는 열 일곱, 마농은 열 다섯―가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만난다.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두 사람은 숙명과 같은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은 서로가 다른 것으로서 비극의 씨는 이 순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데 그류를 인도하는 것은 사랑이고, 마농을 인도하는 것은 사치와 향락의 취미이다. 전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오직 사랑에 이끌리는 데 그류와, 향락에 이끌리는 마농과의 비극적인 대조를 보게 될 것이다. 데 그류에게 이와 같은 마농의 허영을 만족시킬 만한 재물이 있는 동안 마농은 그와 더불어 즐거이 쾌락을 나누지만, 일단 데 그류의 돈이 마르게 되면 마농은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마농은 여러 차례 그를 버리며 속인다. 악의도 회한(悔恨)도 없이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마치 본래의 직능을 수행하기나 하는 것처럼……. 데 그류는 한결같이 마농의 뒤를 따르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집을 버리고, 신학교에서 빠져나오고, 생 라자르 감옥을 탈출하고 살인까지도 감행한다. 마농 없이 살 수 없는 그요, 오직 하나의 욕망에 사로잡힌 그다. 즉, 마농을 소유하려는 욕망에…… 그리하여 그 목적을 위하여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도박. 협잡. 기만…… 이렇듯 그는 타락에서 타락으로―회한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떨어지며, 마농은 불행에서 불행으로 떨어져, 마침내는 창녀들과 더불어 아메리카의 루이지애나로 유형가는 몸이 된다.
이 머나먼 하늘 아래 자그마한 오막살이에서 그들은 마침내 행복과 평화를 찾을 수 있으려니 기대한다. 그러나 운명은 다시금 데 그류로 하여금 마농을 탐내는 촌장의 조카와 결투케 하고, 마농과 더불어 사막으로 피신케 한다. 그곳에서 마농은 죽음을 맞게 되고 그들의 오랜, 그리고 파란 많은 사랑의 역정도 끝난다.
일반적으로 이 소설은 ≪마농 레스코≫라고 불려진다. 이 제목으로 출간된 일까지도 있었다. 이 외에도 ≪마농 레스코와 슈발리에 데 그류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불려지기도 했는데, 결국 가장 정확한 것으로 확정되기는 ≪슈발리에 데 그류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이다. 실상 두 주인공의 이름의 순서는 무시할 수 없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는 저자의 의도가 암시되어 있는 것으로, 마농보다는 데 그류의 이야기에 중점을 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농이라는 인물은 수많은 해설자들의 관심의 초점이 되어 왔다. ‘놀라운 스핑크스’라고 위세는 말하였고, 한편 셍트 뵈브는 ‘이해할 수 없는 여인’이라고 말했다. 오늘날에 있어서도 앙드레 데리브와 같은 비평가는 ‘헤아릴 수 없는 여인’이라고 말하고, 이는 프레보에 의해서 문학 안에 형상화된 이른바 ‘베이비 우먼(petite femme)’의 전형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방탕과는 성격이 다른 어린 마음의 경박함, 논리와 모랄의 일반적인 법칙에서 벗어나는 아기자기한 들뜬 행동, 그러기에 그의 미를 찬양하고 깊은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그의 불행에 동정을 아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 그의 순결을 변호하기까지도 한다.
그러나 데 그류의 애인으로서 그녀는 진정 그를 사랑했던 것일까? 최초의 흐뭇한 사랑이 파경에 이른 후, 시련과 역경의 고달픔 속에서 진정 사랑하였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것은 독자들이 판단할 문제이다. 그러나 그가 영원한 사랑을 받아 왔다는 것, 이 사실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마농의 인물이 문학에 있어 아무리 새로운 전형이라 할지라도 그를 오직 데 그류의 정열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은 정당한 일이며, 이 작품의 참다운 드라마와 가치는 데 그류의 정열의 비극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는 사랑의 화신이다. 처음으로 마농을 본 순간부터 루이지애나의 모래 속에 그녀를 묻는 최후의 순간까지 그의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이따금 스스로의 사랑에 수치를 느끼기는 하지만 끝내 부인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마술에 걸렸다고나 할까, 숙명적이고 신비로운 사랑의 제물로 바쳐진다. 매혹에 넘치는 부화(浮華)한 마농 앞에 순수하고 마음 약한 열정의 데 그류는 마치 어린 손에 쥐어진 장난감이나 다름없다. 잊어버리려 할 때 다시 사로잡으며, 사로잡힌 순간 그의 양심의 호소는 다시 짓밟히게 되어 끝내는 살인과 파렴치한 행동으로 몰아 세워진다. 그렇다고 데 그류의 명석한 의식이 마비된 것은 아니요, 스스로 현혹에 빠진 것을 명백히 알고 있다. “이치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이 나의 의무이다. 그러나 내 뜻대로 행동할 수 있는 일일까?” 이렇게 말하는 데 그류는 실상 오레스트나 페드르와 같은 라신(Racine)적인 비극을 소설 안에 재현하고 있다.
굳이 이 작품의 줄거리를 요약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거니와 지극히 단순한 내용의 이야기요, 또한 단순한 구성과 필치로 그려진 이야기이다. 나이 어린 두 젊은이―데 그류는 열 일곱, 마농은 열 다섯―가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만난다.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두 사람은 숙명과 같은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그들의 감정은 서로가 다른 것으로서 비극의 씨는 이 순간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데 그류를 인도하는 것은 사랑이고, 마농을 인도하는 것은 사치와 향락의 취미이다. 전 작품을 통해 우리는 오직 사랑에 이끌리는 데 그류와, 향락에 이끌리는 마농과의 비극적인 대조를 보게 될 것이다. 데 그류에게 이와 같은 마농의 허영을 만족시킬 만한 재물이 있는 동안 마농은 그와 더불어 즐거이 쾌락을 나누지만, 일단 데 그류의 돈이 마르게 되면 마농은 다른 곳으로 날아간다. 마농은 여러 차례 그를 버리며 속인다. 악의도 회한(悔恨)도 없이 스스로의 본능에 따라, 마치 본래의 직능을 수행하기나 하는 것처럼……. 데 그류는 한결같이 마농의 뒤를 따르며 물불을 가리지 않는데....
- 해설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