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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았다 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의 징용공을 위한 변론

가와카미 시로, 김창호, 아오키 유카 외 저 | 한승동 역 | 메디치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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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061938 / 368쪽 145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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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17개 이슈로 보는 ‘징용공’ 재판과 한일 청구권협정,
일본 변호사들이 일본 정부의 억지 주장과 오류를 낱낱이 밝힌다!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일제 강점기 당시 일본 기업이 조선인을 강제 동원해 가혹한 노동을 시킨 이른바 ‘징용공’ 사건에 대해 가해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일본 정부는 이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이미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 정부와 대법원을 비난하고,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등 보복 조치를 가하고 있다. 이에 6명의 일본 변호사들은 징용공 재판과 한일 청구권협정 관련 이슈 17개를 중심으로 일본 정부의 억지 주장과 오류를 논리적으로 반박한다. 대중을 대상으로 징용공 재판 관련 이슈를 알기 쉽게 풀어낸 최초의 책으로서, 강제 동원 문제는 국가 간의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밝힌다.

 

뉴스 링크

https://news.v.daum.net/v/20200527152502078

 

출판사 리뷰

한일 양국의 법원 판결문, 협정문 등 객관적 자료를 통해 한일 청구권협정의 내용과 그 효력, 일본의 자의적인 입장 변화를 살펴봄으로써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유효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실질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 ‘징용공 사건’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한일 청구권협정을 살펴야 한다. 현재 한일 간의 논쟁은 기본적으로 협정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체결 과정과 내용, 한일 양국의 해석 변천사를 밀도 있게 분석한다.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 양국은 이승만 정부 때부터 수차례 회담을 열었지만, 외부적 요인과 양국의 입장 차로 인해 파행되거나 지연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경제개발 자금이 필요했던 박정희 정부의 적극적인 태도로 한일회담에 탄력이 붙었고,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함께 한일 청구권협정이 체결됐다. 분명 청구권협정에는 ‘완전하고도 최종적인 해결’이나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는 것으로 한다’는 구절이 있다. 일본 정부는 이를 근거로 한국 정부 및 국민은 더 이상 일본에게 식민지배 피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청구권협정을 맺으면서 한국에게 제공한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 주장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힌다. 일본은 회담 내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한 적이 없으며, 5억 달러 또한 피해 보상 명목으로 제공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법리적으로 한국이 일본에게 책임을 물을 권리가 소멸했다고 해석하더라도 이는 국가가 자국민을 대신해 상대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 ‘외교보호권’이 소멸됐다는 사실을 의미할 뿐,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한일 양국의 법원 판결문, 협정문 등의 객관적 자료를 통해 밝힌다. 심지어 일본 정부도 2000년 무렵까지만 해도 이와 같이 해석했으나, 이후 자국에 불리한 재판 결과가 잇따르자 돌연 말을 바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 권리가 소멸됐다고 주장한 사실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며 일본 측의 주장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오류투성이인지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일방적으로 일본 정부만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경제협력자금을 얻기 위해 졸속으로 협정을 맺고, 피해자들의 구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한국 정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한다. 즉 피해자들의 인권을 구제하지 못한 측면에서는 한일 양국 모두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자들은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문을 비롯해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협정’, 즉 한일 청구권협정문과 한국 민관공동위원회의 의견, 청구권 존재 여부의 근거가 되는 카이로선언, 포츠담선언,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발췌문 등 방대한 자료를 책에 수록했다. 단순히 논쟁의 핵심 내용만 정리해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관련 자료를 총망라해 독자들이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공한다. 또한 저자들은 한일 양국 정부의 책임 소재를 넘어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인 해결 방안도 모색한다. 나치 독일의 만행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독일 정부와 기업이 인도적 목적으로 자금을 모아 보상한 ‘기억·책임·미래’ 기금의 사례, 일본에서 니시마쓰건설이 기금을 창설해 중국인 강제 연행 문제를 해결한 사례 등을 제시하면서 징용공 문제도 이러한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피해자들이 점점 고령화되고 현실적으로 소송을 통한 해결을 보기 어려운 상황에서 저자들은 이러한 접근이야말로 실질적인 구제 방안이며, 이로써 피해자와 기업이 상호 이해를 통해 진심으로 화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일 양국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적인 일본 변호사들이 일본 내부에서 제기한 주장이라는 의의,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이 갖는 의미를 조명하고 강제 동원 문제는 정치적 이슈가 아니라 보편적 인권의 문제임을 밝혀 저자 6명은 모두 일본 변호사이며, 그들이 직접 자국 정부의 잘못을 비판했다는 데 이 책의 의의가 있다. 징용공 재판을 둘러싼 논쟁은 근본적으로 한일 청구권협정 조항을 양국 정부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두 나라 모두 자국에 유리하게 해석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지금처럼 한일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자국 정부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들은 “한국 대법원 판결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방안을 냉철하게 생각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집필 의의를 밝힌다. 이는 양심적인 변호사들이 침묵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 정부의 주장이 억지와 모순투성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또한 이 책은 70년이 넘는 세월 전에 저질러진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지금까지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의 가장 큰 의의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저자들은 징용공 문제가 국가 대항전으로 비치길 바라지 않는다.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아베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고 있긴 하지만 이는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피해자들의 상처받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제 동원 문제는 국가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보편적 인권의 문제이며, 두 나라에서 이런 인식이 공유될 때 비로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 소개

1958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났고, 1996년 도쿄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일본변호사연합회 헌법문제대책본부 사무국장, 같은 단체 내의 인권옹호위원회 부위원장과 일한변호사회 전후처리문제공동행동특별부회 회장을 지냈다. 그 외에도 다수의 중국인 전쟁 피해자들의 소송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와카야마에서 태어났으며, 2008년 도쿄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2015년부터 3년 동안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ZAK)’ 이사를 지냈다. 재일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헤이트스피치’ 문제를 중심으로 일본의 인권 문제를 국제사회에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1981년 기후현에서 태어났고, 2014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2019년 8월 ‘평화의 소녀상’을 전시했다가 중단된 ‘표현의 부자유전· 그 후’ 실행위원회 변호인단으로 활동해 2개월 만에 전시회가 재개될 수 있게 도왔다.
1953년에 태어났다. 1992년 변호사 일을 시작했고, 현재 후쿠오카현 변호사회 소속이다. 관부 재판, 우키시마마루 소송, 광주 1,000인 소송, 중국인 강제 연행 후쿠오카 소송 등 전후 보상 재판에서 원고 측 변호사로 활동했다.
도쿄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일본변호사연합회의 인권옹호위원회에 소속된 일한변호사회 전후처리문제공동행동특별부회 특별위촉위원, 재일한국인법조포럼 회원,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 회원, 재일법률가협회 회원이다.
1968년 교토에서 태어났고, 2000년 도쿄에서 변호사 일을 시작했다. 한일회담 외교문서 전면 공개 청구 소송 변호인단으로 활동했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전후 보상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역자 소개

1957년 경남 창원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다녔다. 《한겨레신문》 창간 기자로 합류해 국제부장과 문화부 선임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지은 책으로 《대한민국 걷어차기》, 《지금 동아시아를 읽는다》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 《책임에 대하여》, 《종전의 설계자들》, 《들어라 와다쓰미의 소리를》, 《인간 폭력의 기원》, 《다시, 일본을 생각한다》, 《재일조선인》, 《나의 서양음악 순례》, 《속담 인류학》, 《멜트다운》, 《희생의 시스템, 후쿠시마 오키나와》 등이 있다.

책 속에서


한국 대법원 판결은 헌법의 근본이념을 이유로 삼고 있다. 그리고 한국 헌법과 일본 헌법의 이념은 결코 대립하지 않는다. 일본 헌법은 1945년에 일본이 포츠담선언을 수락함으로써 대일본제국 헌법의 구제도가 부정된 바탕 위에 제정된 것이고, 포츠담선언 8조에는 “카이로선언의 조항은 준수돼야 한다”고 기재돼 있으며, 카이로선언에는 “조선 인민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고, 즉시 조선을 자유 독립시킨다”는 구절이 기재돼 있다. 그렇다면 일본 헌법 전문의 “자국의 일에만 전념하면서 타국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전 세계의 국민이 다 같이 공포와 결핍에서 벗어나 평화 속에서 생존할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등의 문언은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반성하고,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않음으로써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한국 헌법 전문에도 독립을 유지함으로써 국제 평화에 공헌하겠다는 이념이 제시돼 있다. 그리고 두 헌법 모두 헌법을 통해 지켜낼 최고의 가치는 개인의 존엄(=인권)이라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28쪽)

모집, 관 알선, 징용은 모두 전시 강제 동원을 위한 제도다. 모집과 관 알선은 사실상 거부할 수 없는 물리적 강제력이 많이 발동됐다. 동원 과정에서 속이거나, 위협하고, 납치하는 등 본인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노동 현장에 조선인을 동원·연행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징용은 거부하면 형벌을 부과하는 ‘법적 강제’였다. 한편 징용에 의한 동원 과정에서도 물리적 강제가 발동됐다. 모집→ 관 알선→ 징용 순으로 일본 정부가 동원에 공식적으로 관여하는 정도가 늘어났다. 노동력의 공급이 점점 고갈되는 한편으로 동원의 수요는 확대됐기 때문에 행정적인 체제를 갖춰 노동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84~85쪽)

일본 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을 통해 일본이 한국에 대해 경제협력을 하는 것으로, 한일 간의 청구권을 실질적으로는 상호 포기하고 ‘완전하고 또 최종적으로 해결’해 당초 목표를 이루었다”고 자국민에게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무상 3억 달러는 한국에 대한 배상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반대로 한국 정부는 “무상 3억 달러의 경제원조는 실질적인 배상이다”라고 선전하면서 자국 국민의 이해를 얻으려 했다.
한일 청구권 문제는 이처럼 한일 양국의 정치적인 역학에 의해 타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일 청구권협정의 의의에 대한 양국의 서로 다른 설명에서 보듯 한일회담에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배 책임에 관한 반성의 말을 듣지 못했고, 식민지배·전쟁으로 인한 손해와 피해 청산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뒤로 미룸으로써 장래에 풀어야 할 과제를 남긴 꼴이 됐다. (100쪽)

이처럼 한국의 경제 부흥을 위해 일본에서 제공된 경제협력 지원금이 사용됐고, 위에 소개된 법률에서는 이 지원금으로 민간인의 대일 청구권 보상을 할 것이라는 취지의 규정이 존재했다. 그러나 다음에 설명하는 바와 같이 이 자금이 그대로 징용공 보상에 충분히 사용되진 않았다. 이것은 경제 개발을 위해 징용공을 비롯한 식민지배와 전쟁의 피해자들을 희생시킨, 당시 박정희 정부의 실정임은 분명하지만 일본 정부가 한일회담에 따른 청구권협정 체결의 결말이 이러하리라는 것을 상정하고 정치적 타결을 이루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107~108쪽)

일본 정부는 원폭 피폭자 등 일본인들로부터 보상을 요구받을 때에는 “조약으로 포기한 것은 외교보호권일 뿐 피해자들은 상대국의 국내 절차(재판)에 따라 청구할 수 있다. 따라서 일본 국가에는 보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외국인 피해자들로부터 배상 청구를 받을 때에는 “조약으로 일본 국내 절차(재판)에 따라 청구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을 바꾼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권을 침해당한 피해자들을 배반하는 ‘손바닥 뒤집기’가 아니겠는가. (113쪽)

한국 정부는 당초에는 청구권협정으로 개인의 권리가 소멸한다는 견해였지만, 일본 정부의 해석에 맞춰 외교보호권만이 포기된 것이라는 견해로 바뀌었고, 나아가 강제 동원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다시 견해를 수정했다. 이는 피해자에게 무관심했던 입장에서, 서서히 피해자의 목소리에 반응해 그들을 보호하는 입장으로 바뀌어 온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122~123쪽)

한국 대법원 판결은 70년이 넘는 세월 전에 저질러진 강제 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인권 침해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방치되어 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또한 원고 및 그와 같은 피해를 당한 강제 동원 피해자 모두를 구제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양국 정부는 비록 이번 소송의 당사자는 아니지만 이 판결이 양국 정부의 책임도 추궁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한일 양국 정부는 이번 판결에 따라 신속하게 원고 및 강제 동원 피해자 전체를 정치적으로 구제하기 위한 대응 작업을 일본 기업과 협력해 시작해야 한다.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을 두고 오로지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만 있다. 그러나 조직적으로 동원과 강제 노동 계획을 입안하고 실행한 주체가 일본 정부인 만큼 일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일본 정부다. 이런 사실을 완전히 무시한 채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태도는 자신의 책임 소재를 은폐하는 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정부도 한일회담에서 애매한 형태로 정치적 결론을 맺고 그 후에 피해자들을 방치하는 등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므로 마찬가지로 일본 정부 및 기업과 협력해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140쪽)

강제 동원 문제의 해결을 시도할 때 유의해야 할 것은, 이 문제의 본질이 ‘어떻게 피해자를 구제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인권의 문제라는 점이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피해자들의 의향을 충분히 존중할 필요가 있다. 또 이 문제는 사회적 문제이기도 하다. 강제 동원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 사회의 인권 보장 수준이 높아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이는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사회적으로 허용할 수 있는 수준의 해결이 요구된다. 국가 간에 어떤 합의를 하더라도 그것이 피해자들 의향을 따르지 않고,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해결이라 할 수 없다. (143쪽)

그러면 무엇이 실현돼야 정말 이 문제가 해결됐다고 할 수 있을까.
첫째, 일본 정부와 기업이 강제 동원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가해 행위와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것이다. 둘째로 강제 동원 피해자 개인에게 배상 내지 보상을 해야 하고, 셋째로 재발 방지를 위해 강제 동원 문제의 역사적 사실과 그 교훈을 다음 세대에게 계승할 필요가 있다. (146쪽)

이러한 일련의 한국 비난 발언에서는 한 가지 특징이 보이는데, 바로 일본 정부와 언론이 보인 피해자의 인권에 대한 무관심과 식민지배에 대한 반성의 결여다. 일본 정부와 언론 그 어느 쪽도 피해자가 된 이래 75년 만에, 일본에서 소송을 제기한 지 25년 만에 고난을 견뎌내고 승소 판결을 받은 원고들에게 한마디 위로나 사죄의 말을 하지 않았고, 피해 사실에 대한 보도도 거의 없었다. 오로지 부정확한 사실 인식을 토대로 감정적인 비난의 언사만 쏟아냈을 뿐이다. (198쪽)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싸움이 문제의 원점에서 점점 멀어져 외교게임이나 무역전쟁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피해자들의 고난이야말로 이 문제의 원점이며, 침해당한 그들의 인권 회복이 이 문제의 본질이라는 점을 다시 강조한다. (202쪽)

목차

옮긴이 해제
한국어판 출판에 부쳐
서문
이 책의 개요

제1장: 70년 동안의 기다림- 한국의 징용공 재판 판결
Q1. 판결의 개요
Q2. 판결이 인정한 노동 실태
Q3.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 일본의 경우
- 칼럼 1. 한국과 일본에서의 정보 공개 청구
Q4. 판결에 이르기까지의 경과 - 한국의 경우
- 칼럼 2. 한국의 대법관은 어떻게 선임되는가

제2장: 우리는 강제 징용 노동자였다- 징용공 재판의 배경 사정
Q5. 강제 동원의 규모와 배경
Q6. 다양한 형태의 강제 동원
- 칼럼 3. ‘토지’에 대한 차별과 ‘사람’에 대한 차별

제3장: 정치적으로 타협된 인권- 한일 청구권협정의 내용과 해석
Q7. 협정의 내용
Q8. 협정 체결 과정
Q9. 경제협력 지원
Q10. 일본 쪽 해석의 변천
Q11. 한국 쪽 해석의 변천
Q12. 2018년 대법원 판결의 위치
Q13. 청구권협정이 정한 분쟁 해결 방법
Q14. 해외 참고사례
Q15. 판결의 집행
Q16. 강제 동원 문제에 대한 앞으로의 대응
Q17. 기금을 통한 해결
- 칼럼 4. 독일 ‘기억·책임·미래’ 기금과 일본 ‘니시마쓰 기금’

제4장: 완전하지도, 끝나지도 않은 문제- 징용공 재판의 총정리
한국 대법원 판결과 한일 양국의 한일 청구권 해석 변천

부록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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