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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숙모

이병룡 저 | 고요아침 | 2020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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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487245 / 168쪽 123 x 1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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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이병룡
저자 : 이병룡
서울 출생. 한국작가회의 회원, 숨은 시인의 사회, 아름다운 도반 문학회 동인. 2005년 자유문예 신인문학상, 2006년 복숭아문학상 수상. 여러 작가와 엮은 시집으로 『앵무새가 사는 바다』, 『꼭지』 등이 있고, 『뒤셀도르프에서 만난 첼리스트』는 홀로 엮는 첫 시집이다.

책 속에서



과꽃



슬픔의 깊이만큼 씨앗을 뿌렸다
과꽃이 결백하게 올라왔다

한해살이다
짧은 호흡 덕분에 슬픔을 아꼈다

섬진강에 투신하는 과꽃을 보고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스티커를 본다

신장 삽니다
신장 팝니다
누구의 신장이 누구의 슬픔을 걸러줄까

동네사진관에 내걸린 아무개네의 가족사진처럼
어색하게 웃다가 들키고 꽃봉오리 터지듯 실핏줄 터져나가고,

섬진강 건너온 과꽃으로 한해를 연명한다
모두 한해살이다



외숙모



손짓 하나로 사랑을 하고
자식을 낳고 마른 젖을 물린
무채색 수화가
밀도 높은 내 말을 여지없이 관통한다

한때 투쟁을 부르짖고 세레나데를 불렀던
내 입은
외숙모 앞에만 서면 며칠씩 입술이 부르텄다

내 말을 사발에 담아 말 무덤에 묻고
긴 혀를 앞세워 문경새재를 넘는다
말의 굿판에 빠졌던 잇몸이 들썩거린다
거역할 수 없는 봄이
아물지 않은 말을 터트리고
말 무덤에 핀 야생초에는 혀의 통점이 돋는다

새의 부리에 혀의 끝을 맞추어 본다
외숙모의 수화가 문경새재를 넘어가도
내 말은 저 고개를 영영 넘지 못할 것이다
컴컴한 혀 안에서 제 이빨을 부딪치며
눈앞에 어른거리는 수화를 흘끔거릴 것이다

입안에 열꽃이 번지고
입술이 갈라질 때마다 새의 비명이 새어나온다

외숙모가
손짓 하나로 새들만 실컷 울게 놔두고 있다



배냇적 슬픔



등 뒤에 따라붙던 슬픔이 언젠가부터 앞서 걷는다
슬픔을 피하느라 발을 헛딛는 날이 많아졌다
눅눅한 방에 불을 환하게 켜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어디서 왔을까
슬픔의 세포에 반도체를 꽂는다
슬픔이 흘러가는 위치가 확연히 드러난다
베어버렸다고 믿었던 배냇적 슬픔의 궤적을 본다

파키스탄에서 봉사활동을 한
어느 산부인과 의사가 겪은 이야기가 떠오른다
‘사산아인 줄 알았던 아이가 자궁 안에서 내 손을 꼭 잡았다.’

배냇적 슬픔이 손을 내민 것이다

배냇적 슬픔은 비가 내리는 각도 안에서 자란다

비 내리는 각도를 벗어난 가장자리의 슬픔이 처연히 앉아있다

오늘 아침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하늘에서 뿌리는 수많은 빗방울 중에서
첫 번째 내리는 빗방울을 맞으러 나온 사람들이 새벽부터 웅성거린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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