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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교육사상

임마누엘 칸트 저 | 정찬익 역 | 배영사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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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9948047 / 223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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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마구(馬具) 제작자인 요한 게오르크 칸트(Johann Georg Kant)와 아나 레기나(Anna Regina)의 넷째 아이로 1724년 4월 22일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에서 출생했다. 청소년 시절 콜레기움 프리데리키아눔(Collegium Fridericianum) 학교에 다니면서 고전 작가들과 라틴어에 치중했다. 목사이자 신학교수인 프란츠 알베르트 슐츠(Franz Albert Schulz)의 영향이 컸다.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 입학해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배웠으며, 마르틴 크누첸(Martin Knutzen) 교수와 친교를 맺고 그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1746년 첫 논문 <생명력의 참다운 평가에 관한 사고>를 썼다. 그 후로 10년간 쾨니히스베르크 내 여러 가정에서 가정교사를 하면서 학문 연구에 매진했다. 1755년 불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형이상학적 인식에 대한 첫째 원리>라는 논문으로 쾨니히스베르크대학의 사강사(Privatdozent)가 되었다. 1756년 공개토론을 거치면서 <물리학 단자론>을 라틴어로 작성했다. 1764년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서 시예술 교수 제의가 왔으나 적임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거절했다. 이듬해에는 쾨니히스베르크 성(城) 도서관의 정식 직원이 되어 고정 수입으로 생활의 안정을 찾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1770년 형이상학과 논리학 담당 교수로 쾨니히스베르크대학에 정교수로 취임했다. 교수 취임 논문은 <감각계와 가지계의 형식과 원리>였다. 교수 취임 시부터 10년간 구상하고 작성한 ≪순수이성비판≫을 1781년에 출판했으나, 반응이 별로 없자 해설판으로 소책자 ≪모든 미래의 형이상학에 대한 서설≫(1783)을 출판했다. 1785년 ≪도덕형이상학의 정초≫를 출판하고 1786년 대학 총장이 되었다. 1787년 비로소 개인 소유 주택을 구입했고 1788년 두 번째로 총장이 되었으며 그해 ≪실천이성비판≫을 출간하고 2년 뒤 ≪판단력 비판≫을 출판했다.
말년의 저술들은 다음과 같다. ≪단지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1793), ≪공법론≫(1793), ≪영원한 평화를 위해≫(1795), ≪도덕형이상학≫(1797), ≪실용적 견지에서 저술한 인간학≫(1798). 73세 되던 해인 1797년 교수직을 사임한 뒤에도 노화로 쇠약해지는 신체를 이끌고 여전히 연구에 전념했다. 1800년부터 그의 제자들과 추종자들이 강의록들과 미발표 원고들을 정리해서 출간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1803년 10월, 쇠약한 몸을 가누지 못하고 병석에 눕고 말았다. 약 4개월 이상을 병석에서 앓다가 1804년 2월 12일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목차

역자의 머리말

제1장 서론
제2장 자연적 교육
제3장 교수(도야)
제4장 정신의 계발
제5장 도덕적 도야
제6장 실천적 교육

<부록>
1. 칸트의 교육에 관한 연구
2. 칸트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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