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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70284772 / 64쪽 188 x 2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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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이차돈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어야만 했을까요?
- 통일신라 시대 헌덕왕 때(818년) 세워진 백률사 석당기에는 이차돈이 죽을 때의 상황이 그림으로 새겨져 있다. 이차돈의 머리는 땅바닥에 떨어져 있고, 머리가 잘린 목 쪽에서 무언가 기둥처럼 솟아나오고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차돈이 죽자 목에서 하얀 피가 솟아나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리고 땅이 흔들렸다고 한다. 정말 그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역사스페셜 작가들이 쓴 이야기 한국사〉 열다섯 번째 이야기, 그 비밀 속으로 들어가 보자.
출판사 리뷰
통일신라의 기틀을 마련한 이차돈 순교 '이차돈 순교'는 그때 신라 왕실 사정이 어떠했는지를 눈여겨보면, 쉽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신라는 법흥왕(재위 514~540년) 때에 와서야 비로소 왕이 제 힘을 쓸 수 있었다. 법흥왕은 즉위 초부터 왕의 힘을 다지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때마다 귀족들이 반대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되곤 했다. 신라는 법흥왕이 왕에 오르기 전까지도 왕의 간섭을 안 받고 스스로 자기 땅을 다스리던 6부 연맹 체제였다. 왕은 귀족들 눈치를 보며 나라를 다스려야 했고, 그러다 보니 다른 나라를 상대할 때도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이차돈은 이런 왕의 고민을 해결하려고 스스로 순교의 길을 걸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차돈이 죽고 난 뒤부터 신라에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법흥왕은 마침내 귀족들을 누르고 왕으로서 제대로 된 힘을 펼친다. 불교를 나라 종교로 받아들여 불교라는 하나의 종교 아래 온 백성이 마음을 모아 왕의 뜻을 받들었다. 이로써 신라는 통일신라 시대로 가는 밑바탕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렵고 따분한 역사, 억지로 안 외워도 머릿속에 쏙쏙 《이차돈과 법흥왕》은 이런 역사 사실을 단편 판타지 소설처럼 풀어놓아 초등학생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구성한 점이 돋보인다. 이야기는 쉽게 읽히면서도, 억지로 안 외워도 머릿속에 두고두고 남게 하는 힘이 있다. 우리 초등학생들이 이 역사 꾸러미를 꾸준히 읽다 보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선사 시대부터 대한제국까지의 역사를 줄줄 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야기 줄거리
뚱뚱하고 행동이 느린 병수는 종종 아이들한테서 놀림을 받았다. 햇살이 따사로운 봄날 오후. 운동회가 열리는 운동장에서 병수를 찾는 윤호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다. 그때 낡은 비석 뒤에서 코를 훌쩍이는 병수 소리가 들린다. 윤호는 병수를 다독거려 얼른 운동회에 가자고 한다. 그때 갑자기 비석이 흔들렸다. 윤호가 비석 먼지를 털어 내자 꽃송이들이 드러나더니,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갑자기 땅이 흔들렸다. 칠흑같이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몰린 곳은 바로 궁궐이었다. 이차돈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약혼녀 아리수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윽고 밤이 되자, 법흥왕 침실엔 아리수가 숨어들어 법흥왕을 죽이려 했다. 하지만 법흥왕은 꿈쩍도 안 했다. “칼을 거두어라. 나 또한 이차돈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도 슬퍼하고 있으니…….”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를 기리는 제사 나정제가 있던 날, 이차돈은 아리수와 함께 신궁에 기도를 드리러 갔다. “손목에 찬 것이 무엇이냐?” 한 귀족이 이차돈의 염주를 보고 트집을 잡았다. 이차돈은 불교 신자라고 당당히 말했다. 신궁은 금세 떠들썩해졌다. 하지만 법흥왕은 나도 불교 신자니 나부터 처벌하라며 이차돈을 두둔했다.
왕의 비서가 된 이차돈은 법흥왕의 고민을 깊이 알고 있었다. 무엇 하나 왕의 뜻대로 되는 게 없었다. 귀족이 평민을 죽여도 처벌할 수도 없는 신세였다. 그런 법흥왕한테 이차돈은 한 가지 묘책을 제안했다. 바로 자신을 죽이고, 왕권을 강화해 나라는 굳건히 세워 달라는 것. 이때부터 이차돈은 귀족들의 눈에 나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이차돈은 채벌꾼들을 데리고 신라의 성지나 다름없는 천경림에 절을 지었다. 왕의 명령이라고 하면서. 하지만 귀족들 손에 끌려 법흥왕한테 온 이차돈은 모두 내가 꾸민 짓이라며 법흥왕의 처벌을 기다렸다. 법흥왕은 눈물을 머금고 이차돈의 목을 베게 한다. 귀족들을 누르고 왕권을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정신을 차린 윤호와 병수는 동시에 비석을 보았다. 비석을 먼지가 시커멓게 덮인 원래 그대로였다. 경기에 나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병수는 자신 있게 일어서서 운동장으로 뛰었다. 출발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윤호와 병수는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책 속에 나오는 역사 이모저모!
이차돈과 법흥왕의 흔적
- 백률사 석당기: 통일신라 시대 헌덕왕(818년) 때 세운 비석. 경주 동천동 소금강산에 있는 신라 시대의 절 백륜사에서 나왔다. 이차돈 순교 상황이 글과 그림에 담겨 있다.
- 월성: 반달처럼 생겼다고 해서 반월성이라고도 하는 신라 시대의 성.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이차돈은 이 반월성 한 곳에서 순교했을 것이다.
- 나정: 경주시 외곽 소나무 숲에 자리 잡고 있는 신라 시대의 우물. 시조 박혁거세 탄생 설화가 전해진다. 신라는 이곳에 신궁을 짓고, 시조를 기리는 제사를 지냈다.
- 이차돈 초상화: 이차돈의 성은 박씨. 이름은 염촉 또는 이차돈, 거차돈이었다. 흔히 승려라고 생각하지만, 이차돈은 왕족 출신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영일 냉수리비: 포항 영일군 냉수리 옥수수 밭에서 나온 비석. 비문에는 이 지역에서 일어난 재산 분쟁을 해결하려고 지증왕과 육부 귀족들이 회의한 내용이 나와 있다. 이 비 안에는 ‘七王’이라는 글자가 있는데, 일곱 왕이라는 뜻으로 육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나타낸 것이다. 지증왕을 뺀 다른 육부의 대표를 왕이라고 한 것은 어떤 뜻이 있을까? 6세기 초까지만 해도 신라 왕의 권력은 귀족과 비슷했다.
- 흥륜사: 신라 처음 사찰로 알려졌다. 이차돈이 천경림에 이 절을 지으려다 목숨을 잃자, 법흥왕이 재건하여 진흥왕 때에 완성했다. 오늘날 경주시 사정동에 있는 흥륜사는 최근에 복원한 것이다.
꽃비가 내리는 비석
법흥왕의 눈물
청년 개혁가 이차돈
귀족의 나라, 신라
왕과 맺은 비밀 약속
기적이 일어나다
우린 할 수 있어!
이차돈 순교가 신라 사회에 끼친 영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