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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시리즈 : 창비시선 [454]

백무산 저 | 창비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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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424428 / 132쪽 125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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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1955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974년 현대중공업에 입사하여 노동자로 일하다가, 1984년 『민중시 1』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만국의 노동자여』, 『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 『인간의 시간』, 『길은 광야의 것이다』, 『초심』, 『길 밖의 길』, 『거대한 일상』, 『그 모든 가장자리』 등이 있다. 이산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오장환문학상, 임화문학예술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머리말

[시인의 말]

열번째 시집이다. 여전히 나는 첫 시집을 내던 그곳과 다름없는 공간에 머물러 있다. 나 자신이 하나의 관측소인 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있는 곳은 변방이다. 거의 모든 것의 변방이다. 변방은 얼마간 야생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세상의 찌꺼기가 훨씬 더 많이 모여드는 곳이다. 그래서 시가 나에게 찾아온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억압된 현실을 마주해서 찌꺼기들을 재료로 무슨 연금술이라도 부려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빛나는 무엇이 아니라, 금을 똥으로 만드는 뒤집힌 연금술이기도 했다.
그제는 오래간만에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마을에 가보았다. 공단에 둘러싸인 바닷가다. 볕에 그을린 젊은 노동자 하나가 화물선에서 막 내려서고 있었다. 봄볕 가득한 바다에는 외항선 몇척이 떠 있었다.

2020년 3월
백무산


 

책 속에서

죄 없는 자들일수록 더 많이 참회하고
적게 먹는 자들이 더 많이 감사하고
타락하지 않은 자들이 더 많이 뉘우치고
힘들여 사는 자들일수록 고행의 순례길을 떠나고
적게 살생한 자들이 더 많이 속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했다
     ―「히말라야에서」 부분


인간이 제 손으로 똥 푸는 일이 없어지고
자기가 싸놓고 제 것이 아닌 양
혐오하고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고상한 습성을
동물과 유일하게 구별되는 습성을
우리는 인간성이라고 부른다
     ―「인간 형성」 부분


굶주리는 사람이 건강 단식을 어떻게 이해하나
없는 사람이 무소유를 어떻게 이해하나

(…)

무소유는 가진 뒤의 자유다
무소유는 소유라는 단어가 있은 뒤 조합된 낱말이다
다 내려놓은 사람의 무소유는 이미 그 낱말이 아니다

가진 것이 넉넉해야 무소유를 맘껏 가질 수 있다
     ―「무무소유」 부분


우리 살아온 날들 그래도 꽤 괜찮았어
맞아 그땐 분명히 그랬어
그땐 이처럼 버려지진 않았으니까
그땐 이처럼 쓰레기는 아니었으니까
     ―「그때가 좋았지」 부분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정지의 힘」 전문


현관문을 나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올 필요 없답니다 민주화가 되었답니다
민주화되었으니 흔들지 말랍니다
민주 정부 되었으니 전화하지 말랍니다
민주화되었으니 개소리하지 말랍니다

이렇게 한심한 시절의 아침에 겨울비 온다
어깨에 머리에 찬비 내린다 배가 고파온다
이제 나도 저기 젖은 겨울나무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
     ―「겨울비」 부분


세상은 어차피 일정하게 넘치게 되어 있어 반드시 박멸해야만 하는 비율이 존재하게 되어 있어 일정한 증오가 일정한 마녀가 일정한 빨갱이가 필요해 그들이 마녀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빨갱이라서가 아니라 그만큼의 증오 그만큼의 방역 그만큼의 인종 청소 없이 정상이 유지될 수 없기에

일정한 질서를 위해 일정한 비율로 증오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불륜이 필요해 암 덩어리가 필요해 일정한 비율의 버러지가 필요해 그게 없으면 정의가 어디서 나오나 누군가 돌을 던져야 정의가 불타오르지 다수의 개돼지가 있어야 나라가 제대로 서지
     ―「버러지 만들기」 부분

 

목차

제1부
외상 장부
회령
통일이 가로막아
이유
눈이 부셔
사막의 소년 병사
히말라야에서
늑대를 기다리는 시간
기억의 주형
축의 시간
인간 형성
오 프로
교차 신호등
인월장에서

제2부
잘 가셨는지요
무무소유
조문
세워진 길
그때가 좋았지
수의
과잉 풍경
소를 끌고
겨울비
무게
그들 등쌀에
모과
차가운 신발
변명
정지의 힘

제3부
평범한 일상
길
공유지
몸의 명상
버러지 만들기
봄날에 꽃을 들고
사람의 말
감각의 기억
재앙의 환대
카운트다운
나에게 이르는 길
내가 어디까지인지
미각 권력
밥이 끓는 동안

제4부
새의 운명
사랑 혹은 불가능
풀의 바다
안락사
시계
드론
광장이 사라졌다
지구평면설
교환가치
리바이어던
누구였을까
외계인
도마
설산의 바람

해설|고영직
시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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