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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친일파

호사카 유지 저 | 봄이아트북스 | 2020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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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494854 / 336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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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반한·혐한을 주도하고 있는 일본 극우파의 주장 대부분을 고스란히 차용하고 있는 한국 내 ‘신친일파’ 정면 비판한 책이다. 《신친일파》를 저술한 호사카 유지는 일본계 한국인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호사카 유지는 일본의 심장인 도쿄에서 나고 자라 도쿄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와 한일 관계 연구를 시작했고, 한국 생활 15년이 지난 2003년에 귀화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이처럼 독특한 이력을 가진 호사카 유지가 《신친일파》를 저술한 까닭은 매우 명확하다. 한일 관계 연구를 30년 넘게 지속해온 학자로서 호사카 유지는 ‘가해자인 일본이 역사 앞에 진실해지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의 화해나 공동 번영은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출판사 리뷰

일본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 독도 문제 등 구체적인 근거 제시와 함께 《반일 종족주의》의 왜곡과 오류 지적! 《신친일파》를 저술한 호사카 유지는 일본계 한국인이다. 더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자면 호사카 유지는 일본의 심장인 도쿄에서 나고 자라 도쿄대학을 졸업했다. 하지만 서른이 넘은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와 한일 관계 연구를 시작했고, 한국 생활 15년이 지난 2003년에 귀화해 대한민국 국민이 되었다. 이처럼 독특한 이력을 가진 호사카 유지가 《신친일파》를 저술한 까닭은 매우 명확하다. 한일 관계 연구를 30년 넘게 지속해온 학자로서 호사카 유지는 ‘가해자인 일본이 역사 앞에 진실해지지 않는 한, 한국과 일본의 화해나 공동 번영은 불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런데 이영훈 등이 공동 집필한 책 《반일 종족주의》에는 너무나 많은 왜곡과 오류가 드러나 있으며, 역사적 진실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본 우파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부분이 매우 많았다. 일본에 대한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에 호사카 유지는 《신친일파》를 통해 《반일 종족주의》의 ‘노예근성’으로 가득 찬 잘못된 주장과 왜곡, 오류를 바로잡으며, 정치적 논리를 떠나 역사적 진실을 부각하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신친일파》는 강제징용 문제, 일본군 ‘위안부’ 문제, 독도 문제 등이 중심을 이룬다. 그 일부를 들여다보면 다음과 같다. 1. 강제징용 관련 여기에서 이영훈은 ‘미불금이나 미수금의 문제가 재판의 본질’이라는 큰 거짓말을 했다. 원고가 받지 못했다고 하는 통장이나 미불금, 미수금이 이번 재판의 쟁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영훈은 그것을 알면서 쟁점을 흐리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강제 징용자 판결에 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적당하게 자기주장을 쓴 셈이다. 이영훈은 한국에 거짓말 문화가 있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거짓말 문화를 조성하고 있는지 모른다. 우선 이번 재판은 임금을 받지 못했다는 소위 미불금, 미수금의 문제가 아니다. 미불금, 미수금의 지급 문제는 1965년 청구권 협정에서 모두 끝난 문제이므로, 2018년 10월의 판결로 한국 대법원은 미수금이나 미불금을 문제 삼지 않았다. 원고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이영훈의 판결에 대한 이해는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다. 혹은 알면서도 독자를 속였을 가능성이 있다. (‘판결이 거짓이라고 우기는 이영훈’ 중에서) 2. 일본군 ‘위안부’ 관련 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가 일본군 ‘위안부’ 제도로 발전되었다는 논리는 하타 이쿠히코秦郁彦가 제공했고, 조선 여성들이 가부장적인 아버지에 의해 기생집으로 팔려 ‘위안부’가 되었다는 것은 일본의 대표적인 우파 논객인 니시오카 쓰토무西岡力의 주장이다. 그리고 강제연행이나 취업 사기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책임은 모집업자들에게 있다는 논리는 일본의 우파 논객들의 전유물이다. 결과적으로 일본의 우파 논객들이 즐겨 사용하는 논리가 새삼스럽게 한국에서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 속에 다시 등장한 셈이다. (‘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생겼을까’ 중에서) 3. 독도 관련 이영훈은 칙령 제41호에 나온 석도는 독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관음도라고 우긴다. 일본의 주장과 똑같다. 이영훈은 그 이유로 울릉도에 속하는 “사람이 사는 섬”이 관음도와 죽도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주장은 큰 착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음도에는 사람이 살지 않았다. 최근에는 울릉도 본도와 관음도에 다리가 놓여 섬을 관리하는 사람이 사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2010년까지 관음도에는 역사적으로 사람이 살지 않았다. 그리고 1900년 칙령 제41호가 반포되었을 때만 해도 관음도에는 ‘도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있었다. 만약 관음도가 석도라면, 석도의 또 다른 이름인 도항을 쓰지 않고 칙령 제41호에서는 왜 ‘석도’라 썼을까. 그 이유를 뒤집어보면 석도는 결코 관음도나 도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석도石島는 1882년에 이름을 상실하고 이후 울릉도 사람들이 돌섬이라고 부른 독도를 한자 이름으로 부른 명칭이다. (‘석도가 독도다’ 중에서)

저자 소개

자타가 공인하는 독보적인 독도 연구가이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공학부를 졸업했다. 학생 시절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알게 되면서 1988년 한일관계 연구를 위해 서울에 왔다. 이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조선, 만주, 대만에 관한 일본의 동화정책을 연구했다. 1998년부터 세종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고 있다. 이 무렵 본격적으로 독도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해 현재는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도 맡고 있다. 웹사이트 ‘독도와 동아시아(www.dokdoandeastasia.com)를 운영하며, 2015년에는 일본계 인사로는 최초로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로 임명되었다.
2003년 한국에 온 지 15년 만에 한국인으로 귀화했고, 이듬해에는 재한 일본계 인사로는 처음으로 보신각 타종을 했다. 독도 연구의 공적을 인정받아 2005년 ‘외교통상부 장관 표창’을, 2013년 ‘대한민국 홍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주요 저서로 《독도・다케시마의 일한사》, 《대한민국 독도 교과서》, 《대한민국 독도》, 《우리역사 독도》,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일본을 움직인 여인들》 등이 있다. 이 외에도 독도 영유권에 관한 많은 논문을 작성했는데, 그중에서도 ‘러스크 서한’을 다룬 논문은 세계적인 SSCISocial Science Citation Index 논문으로 인정되기도 했다. 2016년에는 미국의 인물대사전 ‘Who′s Who in the World’에 이름이 게재되기도 했다. 

책 속에서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제1부 강제징용 문제에서 드러난 ‘노예근성’
제1장 조선인들이 강제연행된 일본 탄광의 실상
죄수를 광부로 사용한 일본 탄광
일본 탄광에서의 노무관리 실태
미이케탄광 폭동 사건과 다수의 도주자
미이케탄광으로 연행된 조선인 노동자
제2장 강제징용의 진실은 무엇인가
조선인 강제연행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계보
강제연행을 자발적인 선택으로 왜곡하는 이우연
‘관 알선’이라는 강제연행
조선인들의 도주는 노무 동원이 자발적이었다는 증거?
『특고월보』가 증명한 조선인 노무자 혹사와 학대
조선인들이 저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한 차별 구조
탄광에서의 작업상 민족차별을 부정할 수 있는가
임금 차별은 없었는가
가족 송금과 조선인 탄광부의 임금 수준
애당초 청구할 게 별로 없었다?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을 인정했다

제2부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최전선 성노예 제도
제1장 위안부 관련 문서의 중요 부분을 은폐하는 사람들
미군의 ‘위안부’ 심문 보고서 원문의 중요 부분을 은폐해도 되는가
동남아 위안소와 조선인 위안부들
제2장 그릇된 ‘위안부’ 논리를 해부하다
조선의 기생제와 공창제로부터 일본군 ‘위안부’ 제도가 생겼을까
일본군 ‘위안부’의 본격적 동원의 계기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 공창제와 ‘위안부’
일본군 ‘위안부’ 동원 시스템
감금 상태에 놓인 일본군 ‘위안부’
공녀와 공창제 그리고 ‘위안부
호주제 가족 윤리와 성문화가 위안부 제도로 연결되었을까
원래 매춘부였던 여성들을 전쟁터로 보냈을까
해방 후 한국의 위안부
기지촌 여성과 일본군 ‘위안부’
제3장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옥주가 알려주는 ‘성노예’의 실태
방패사단 ‘위안부’였던 문옥주에 대한 왜곡
위험 지역에서 탈출한 문옥주
군속으로 근무한다는 감언에 속아 버마로
최전선 아카브에서의 ‘위안부’ 생활
조선으로의 귀국을 중지한 문옥주
랑군회관으로 돌아간 문옥주
군법회의
해방 후의 문옥주
이영훈이 왜곡·은폐하는 문옥주의 진심
일본군 ‘위안부’ 제도는 일본의 전쟁범죄
제4장 『반일 종족주의』의 ‘위안부’ 관련 주장 비판
잘못 쓴 위안부 인원수
일본군 ‘위안부’의 총수 문제
요시다 세이지에 대해
과연 성노예였던가?
해방 후 위안부 문제는 40여 년 동안 없었을까
정대협을 공격하는 주익종

제3부 일제강점은 원천적으로 범법 행위였다
제1장 독도에 대한 거짓 주장들
독도에 대한 무지
『세종실록지리지』에 나오는 우산도는 독도
조선고지도와 안용복 사건
신경준과 조선의 독도 인식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관한 황당무계한 거짓말
석도가 독도다
일본의 독도 편입과 울도군수 보고서
독도가 한국의 고유영토인 증거
러스크 서한과 독도
이승만 라인과 현재의 독도
이영훈의 독도 인식의 잘못
제2장 일제강점이 원천적으로 무효인 이유
문재인 정부는 위안부 합의를 파기하지 않았다
먼저 위안부 합의를 깬 자는 쪽은 일본이다
일제강점은 원천적으로 범법 행위였다

맺음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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