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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291451 / 76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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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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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산
- 13,500
- 16,200
- 15,120
- 30,600
출판사 리뷰
본문 중에서 고대 세계의 여러 민족 중 이스라엘이 유일신을 믿었던 것은(최소한 포로기 이후에는 그렇다)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포로기 이전의 수많은 문서는 이스라엘이 항상 엄격하게 유일신을 섬기지는 않았음을 입증해준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존재론적으로 유일신을 믿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신숭배(monolatry)를 실천한 셈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이 계속 다신주의와 우상숭배에 맞서 싸운 것을 보면 이스라엘인들의 다수는 포로기 이전 기간 내내 다른 종교들을 수용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십계명 중 첫 계명이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출 20:3)인 것은 이스라엘이 야웨가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_제1장 “제2성전기 이전의 이스라엘” 중에서 신명기 역사는 이스라엘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에 유배된 모습으로 마친다. 유배의 쓴잔은 이스라엘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정말로 창조주 하나님이실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을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수많은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언약은 돌이킬 수 없이 폐기되었을까? 바빌로니아 유배는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충격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전통과 풍습 그리고 제도들에 눈을 돌려 그들에게 닥친 일들의 의미를 모색해나갔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재건할 기회가 왔을 때 그들은 준비되어 있었다. 고토에 복귀한 그들은 낡은 폐허 위에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놓았는데, 이 과정을 우리는 회복 혹은 재건이라고 부른다. _제2장 “회복” 중에서 신화와 마찬가지로 묵시문학은 구체적 인간 정황에 적용 가능한 기본적 패턴을 담고 있다. 선과 악의 대치, 신들 간의 전쟁, 신적 왕위와 주권, 질서를 찾기 위한 혼돈과의 투쟁, 우주의 갱신, 그리고 태고적 우주질서로의 회귀 등이 묵시문학의 기본 주제들이다. 비록 각각의 묵시문학이 저마다 구체적 정황 속에서 저술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의 모호성과 그 패턴의 원시적 특성은 그것을 신비롭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많은 유사한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적용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을 익히고 자신의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사건과 인물들을 보다 큰 우주적 드라마의 일부로 해석하도록 설득당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세계를 더듬어 인생의 “지도”를 그려내고,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며, 자신의 궁극적 신원과 구원을 확신하게 된다. 백번 양보해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와 같은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깨닫게 된다. _제4장 “묵시사상” 중에서 「솔로몬의 시편」은 기원전 1세기의 일부 유대인들이 하스몬 왕가의 통치와 로마인들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지만, 그들의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토라를 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료 유대인들 가운데 있는 악인들이 로마인들의 손에 고통당하는 것은 정당한 심판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거룩한 도성과 성전이 폼페이우스에게 짓밟혔다는 사실에 애통해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성스러운 전통에서 위로를 얻었다. 또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세계를 하나님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시온 전승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들에게 다윗의 자손 메시아의 도래는 이스라엘에 주신 신성한 약속의 성취이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의 멸망을 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다윗 당시의 영광을 회복하는 날을 꿈꾸며 기다렸다. _제7장 “로마인의 등장” 중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유대교 전체를 망라하는 단 하나의 정통 유대교 혹은 그런 종교를 강제할 수 있는 어떤 중앙집권적 권력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는 당시 1세기 세계에 속한 전형적 유대인이었고, 우리가 연구해온 제사장 종교, 묵시사상,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로마 정복자들 등등의 내용은 모두 그 세계의 일부였다. 만일 예수가 우리 눈에 어느 정도 기이하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그가 속한 세계가 우리의 세계와 판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간격을 메꾸기 위해 우리는 그의 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_제9장 “유대인 예수” 중에서 로마인들이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사건은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로니아 유배에나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유대인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기원후 70년 이전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영토와 성전 건물, 그곳에서 제의를 행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는 외적 장치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원후 70년에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70년 이전에 다양한 유대인 집단이 영토와 성전, 그리고 제의 없이도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토라의 중요성이라는 유대교의 근본 성격에 기초해, 기록된 토라와 그 해석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고유한 세계관에 따라 유대교를 재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쟁 이후의 율법교사들은 랍비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바리새인들의 교훈과 습속으로부터 특별히 영향을 받았다. _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 중에서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의 유일신주의와 상치되는 예수의 신성을 주장하면서부터라는 것이 과거의 정설이었지만, 그간 드러난 사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제임스 던(J. D. G. Dunn)은 두 종교의 결별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논점도 한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초기의 갈등 요인은 예수의 신성 문제가 아닌 토라와 성전에 대한 이해 차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유대교에서부터 명확히 분리된 별개의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제2성전기 유대교 내부의 분파로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므로 기독교의 유대교적 뿌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기독교와 유대교 양자를 다 오해하게 될 것이다. _제11장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적 이해의 유대교 근원” 중에서
고대 세계의 여러 민족 중 이스라엘이 유일신을 믿었던 것은(최소한 포로기 이후에는 그렇다) 매우 특이한 현상이다. 포로기 이전의 수많은 문서는 이스라엘이 항상 엄격하게 유일신을 섬기지는 않았음을 입증해준다. 굳이 말하자면 그들은 존재론적으로 유일신을 믿은 것이 아니라 다른 신들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한 하나님을 섬기는 일신숭배(monolatry)를 실천한 셈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언자들이 계속 다신주의와 우상숭배에 맞서 싸운 것을 보면 이스라엘인들의 다수는 포로기 이전 기간 내내 다른 종교들을 수용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십계명 중 첫 계명이 “내 앞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출 20:3)인 것은 이스라엘이 야웨가 아닌 다른 신들을 섬길 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_제1장 “제2성전기 이전의 이스라엘” 중에서
신명기 역사는 이스라엘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외국에 유배된 모습으로 마친다. 유배의 쓴잔은 이스라엘의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정말로 창조주 하나님이실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을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주신 수많은 약속은 이제 어떻게 될까? 하나님의 언약은 돌이킬 수 없이 폐기되었을까? 바빌로니아 유배는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바꿔놓는 충격적 경험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신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남아 있는 전통과 풍습 그리고 제도들에 눈을 돌려 그들에게 닥친 일들의 의미를 모색해나갔다. 마침내 이스라엘이 고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재건할 기회가 왔을 때 그들은 준비되어 있었다. 고토에 복귀한 그들은 낡은 폐허 위에 새로운 사회의 기초를 놓았는데, 이 과정을 우리는 회복 혹은 재건이라고 부른다.
_제2장 “회복” 중에서
신화와 마찬가지로 묵시문학은 구체적 인간 정황에 적용 가능한 기본적 패턴을 담고 있다. 선과 악의 대치, 신들 간의 전쟁, 신적 왕위와 주권, 질서를 찾기 위한 혼돈과의 투쟁, 우주의 갱신, 그리고 태고적 우주질서로의 회귀 등이 묵시문학의 기본 주제들이다. 비록 각각의 묵시문학이 저마다 구체적 정황 속에서 저술되었다고 해도,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의 모호성과 그 패턴의 원시적 특성은 그것을 신비롭게 만드는 동시에 다른 많은 유사한 상황에도 적용할 수 있게 한다. 이런 적용의 과정을 통해 독자들은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방식을 익히고 자신의 세계에서 맞닥뜨리는 사건과 인물들을 보다 큰 우주적 드라마의 일부로 해석하도록 설득당한다. 이를 통해 독자는 자신의 세계를 더듬어 인생의 “지도”를 그려내고, 선인과 악인을 분별하며, 자신의 궁극적 신원과 구원을 확신하게 된다. 백번 양보해 그렇게 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그와 같은 목표에 도달할 방법을 깨닫게 된다.
_제4장 “묵시사상” 중에서
「솔로몬의 시편」은 기원전 1세기의 일부 유대인들이 하스몬 왕가의 통치와 로마인들의 도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겼지만, 그들의 제사장들과 통치자들이 토라를 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동료 유대인들 가운데 있는 악인들이 로마인들의 손에 고통당하는 것은 정당한 심판이라고 받아들이면서도 거룩한 도성과 성전이 폼페이우스에게 짓밟혔다는 사실에 애통해했다. 이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성스러운 전통에서 위로를 얻었다. 또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세계를 하나님과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해하는 시온 전승에서 희망을 찾았다. 그들에게 다윗의 자손 메시아의 도래는 이스라엘에 주신 신성한 약속의 성취이자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들을 박해하는 자들의 멸망을 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다윗 당시의 영광을 회복하는 날을 꿈꾸며 기다렸다.
_제7장 “로마인의 등장” 중에서
예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혈통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으며 자기 민족의 성스러운 전통에 깊이 경도된 사람이었다. 예수가 동시대의 다른 유대인들과 빚었던 갈등은 “예수 대 유대교”의 구도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갈등은 제2성전기 유대교 내에서 한 유대인이 동시대인들과 때로 의견이 일치하고 때로 불일치하는 상호작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런 갈등이 예수를 동시대 유대인들과 구분하는 차이점이라기보다 오히려 그를 유대인답게 하는 양자 간의 유사성이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제2성전기 유대교는 그 신조와 행습에서 매우 다양한 형태를 지녔다. 유대교 전체를 망라하는 단 하나의 정통 유대교 혹은 그런 종교를 강제할 수 있는 어떤 중앙집권적 권력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예수는 당시 1세기 세계에 속한 전형적 유대인이었고, 우리가 연구해온 제사장 종교, 묵시사상,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로마 정복자들 등등의 내용은 모두 그 세계의 일부였다. 만일 예수가 우리 눈에 어느 정도 기이하게 보인다면 그 이유는 그가 속한 세계가 우리의 세계와 판이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간격을 메꾸기 위해 우리는 그의 세계로 들어가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써야 한다
_제9장 “유대인 예수” 중에서
로마인들이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성전을 파괴한 사건은 기원전 6세기의 바빌로니아 유배에나 비견할 수 있는 것으로서 유대인 역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기원후 70년 이전의 유대인들은 자신의 영토와 성전 건물, 그곳에서 제의를 행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이라는 외적 장치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기원후 70년에 그들은 이 모든 것을 잃었다. 그러나 그들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70년 이전에 다양한 유대인 집단이 영토와 성전, 그리고 제의 없이도 유대인으로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들은 토라의 중요성이라는 유대교의 근본 성격에 기초해, 기록된 토라와 그 해석을 중심으로 유대교를 재편하는 데 성공했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고유한 세계관에 따라 유대교를 재정립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전쟁 이후의
율법교사들은 랍비라는 호칭으로 불렸는데, 바리새인들의 교훈과 습속으로부터 특별히 영향을 받았다.
_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 중에서
기독교가 유대교로부터 분리된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유대교의 유일신주의와 상치되는 예수의 신성을 주장하면서부터라는 것이 과거의 정설이었지만, 그간 드러난 사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제임스 던(J. D. G. Dunn)은 두 종교의 결별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논점도 한 가지가 아니라고 말한다. 사도행전의 기록에 따르면 초기의 갈등 요인은 예수의 신성 문제가 아닌 토라와 성전에 대한 이해 차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독교는 유대교에서부터 명확히 분리된 별개의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기독교가 제2성전기 유대교 내부의 분파로서 시작되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므로 기독교의 유대교적 뿌리를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 사실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기독교와 유대교 양자를 다 오해하게 될 것이다.
_제11장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적 이해의 유대교 근원” 중에서
서문 약어 서론 제1장 제2성전기 이전의 이스라엘 제2장 회복 제3장 헬레니즘, 유대교, 마카비 가문 제4장 묵시사상 제5장 쿰란과 사해사본 제6장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산헤드린 제7장 로마인의 등장 제8장 로마의 통치 제9장 유대인 예수 제10장 이스라엘의 반란 제11장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적 이해의 유대교 근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