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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빛 스커트 우상의 거부와 인간 주체성의 옹호

박유하 저 | 도화 | 2020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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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0526081 / 352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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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박유하
저자 : 박유하
1989년 '동그라미와 공의 융합' <동서문학> 등단
2010년 장편 <하얀손 그림자> 출간
2020년 장편 <블랙홀> 출간
2020년 소설집 <노을빛 스커트> 출간

머리말


작가의 말
나는 늘 기존의 질서에 비중을 두고 눈앞의 현실에 급급해하는 상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만난을 무릅쓰고 문학의 길을 줄기차게 걷지 못했다. 문학이 천재가 전 인생을 걸어도 성취의 보장이 없는 분야라는 인식도 없이 내면의 소리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했으며, 기존의 틀을 뒤집지 못하고 순응했다. 늦게 작품집을 내는 변명을 열심히 해 본들 무슨 소용인가. 문학에 깊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낮은 성적표를 공개하는 마음 춥기만 하다.

책 속에서

스커트의 선홍색 노을빛에 눈이 부셨다. 아랫단에서 엉덩이까지는 노을빛이고, 그 위는 검청빛에 먹혀드는 티어드 스커트(층층이 주름이 잡힌 사다리꼴 스커트)였다. 제일 아래는 꿈결처럼 고운 주황색이었다. 주황색은 점점 진해져 능소화의 붉은색으로 변했다가 진홍이 되고, 진홍은 불길처럼 타올라 검붉은 핏빛을 띄우고 있었다. 그리고 검청빛에 먹혀드는, 저녁노을이 어둠에 잠길 때까지의 과정이 재현된 스커트였다. 나는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스커트로 환생한 천상의 스커트를 보며 망연자실 서 있었다. 점점 더 붉어져서 어둠에 잠기는 하늘…. 숨이 컥 막혀왔다.(「노을빛 스커트」)

분홍나비처럼 날아간 핸드폰은 개천에 머리를 박고 가라앉았다. 개천은 잘 익은 흑미 막걸리처럼 뽀글뽀글 괴어올랐다. 뽀글거리는 거품에 석양빛이 비치어 색채의 파편을 퍼뜨렸다. 빛과 색의 난반사, 사방에서 튀어 오른 빛의 파편들이 나비처럼 팔랑팔랑 날아올랐다. 하양, 빨강, 노랑, 파랑, 보라, 검정, 연두, 초록, 주황, 파랑 나비들이 살랑살랑 춤추며 떠올랐다. 몽롱한 꿈속에서 수천 수억의 나비들이 잡힐 듯 말 듯 춤을 추었다.(「나비, 나비」)

점점 잦아드는 소리로 읊조리는 숙희의 눈에 방울방울 눈물이 맺혔다. 나는 보았다. 그녀의 눈물방울에는 어두운 창밖에 시선을 주고 있는 남편과 친구들의 얼굴, 분해서 떨고 있는 내 얼굴이 비쳐져 있었다. 비치는 것, 갑자기 푸른 글씨가 얼비치는 종이와 이윤우라는 이름이 떠오르더니 결혼식장에서 숙희의 옆에 서 있던 남자의 이름에 겹쳐졌다. 숨이 딸깍 멎는 것 같았다. 그래서 숙희가 오늘 내내 기가 펄펄 살아있었단 말인가.(「두꺼비집」)

여자가 엎어 놓은 푸른 나팔꽃 같은 자세로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나팔꽃, 조용한 눈, 그를 한없이 허우적이게 했던 심연, 그에겐 언제나 심연이 문제였다. 심연이 나를 거울처럼 비추었다. 심연 속에서 나는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가슴이 뒤집힐 것 같았다. 힘껏 돌을 던지자. 심연도, 나도 깨지겠지. 나는 내 고통과 남루함을 그녀에게 집어 던졌다.(「심연深淵」)

“넌 왜 그리 최고의 여자라는 남편의 말에 홀려 살았니? 그는 왜 그리 최고로 받드는 나를 좋아했던 것일까. 나는 또 왜 그가 나를 최고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을까. 지구의 밥인 주제에… 홀리지 않으면 어찌 살겠니? 홀려서라도 살아야하는 거 아니냐?”( 「오, 카프리」)

울타리 안에서 여자가 말했다.
“부숴야 해요.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어요.”
무슨 뜻인지, 그는 종잡을 수 없었다. 좀 전에 자신을 부수겠다고 하더니 이번엔 누구를 부수겠다는 것인지, 열두 시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를 보며 그는 내일 밤 열시에 여기로 나올 수 있느냐고 물었고 긍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어떤 책임도 없는 말에는 무한 자유가 부여되어 있었다.(「갈 수 없는 나라」)

당신은 공원 벤치에 길게 누워 잠들어 있다. 나는 당신을 내려다보며 우뚝 서 있다. 나도 자살이라는 걸 하면 길게 누워 편히 쉴 수 있을 텐데, 한 번이라도 누워보고 싶은 치명적인 열망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린다. 누울 수 있는 부드러운 몸을 지닌 당신, 부드럽기 때문에 자유로운 당신을 부러워하며 우두커니 서 있는 나, 하필 당신은 이런 나를 사모했고, 합일을 시도하다 실패했다. 여름날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가로수 그늘」)

언제나 나를 가로막는 것은 우주보다 크고, 이 세상 무엇보다도 명약관화明若觀火하며, 강철보다 탄탄한 ‘나’라는 존재였다. ‘나’는 나와 찰싹 접착된 나이므로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나를 이기지도 건너뛰지도 무시하지도 못한다. 그러니까 내가 나의 적이고 원수였다. 아마도 나는 면도날 같은 억세 우거진 죽음의 다리를 줄줄이 선혈을 흘리며 건너게 될 것이다. (「보다 큰 집」)

성운은 서서히 돌아 원반을 이루고, 원반은 뭉크의 시계처럼 흘러내려 블랙홀로 빨려들었다. 별이 무더기로 죽은 것이다. 블랙홀이 별무리를 한입에 먹어 치웠다.
“어떻게 저럴 수 있어요? 아빠!”
“별들은 블랙홀의 매력에 빠져든 거야. 그 매혹에 빨려들 수밖에 없는 거야. 블랙홀은 다른 우주일 수도, 우주로 가는 통로 일 수도 있단다. 다른 세계란 매혹 덩어리 아니겠니?”
우주처럼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들에게 나는 말했다.
“우주는 별을 낳고, 별은 아빠 엄마를 낳았다. 그런데… 우주는 별을 먹고, 별은 사람을 먹는단다. 넌, 누굴 믿고 살 수 있겠니?”(「환幻」)

목차

작가의 말

노을빛 스커트
나비, 나비!
두꺼비집
심연深淵
오, 카프리!
갈 수 없는 나라
가로수 그늘
보다 큰 집
환幻

해설 / 김성달
인간다움에의 옹호와 우상에의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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