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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시리즈 : 예술가들의 파리 [4]

메리 메콜리프 저 | 최애리 역 | 현암사 | 202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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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320267 / 640쪽 14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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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프루스트, 퀴리와 친구들 1900-1918 2권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바로 현대 미술 하면 첫 번째로 떠오르는 이름, 피카소가 1900년 파리를 방문한 것이다. 자신의 그림 한 점이 만국박람회에 걸린 것을 기뻐하던 이 열아홉의 풋내기 청년은, 그럼에도 이미 당시 자화상에 ‘나, 왕’이라고 쓸 만큼 자신감에 차 있었고, 이 주문은 곧 현실이 된다. 1권에서 새로운 예술을 꿈꾸며 전통주의자들과 싸운 예술가들은 20세기가 시작될 무렵에는 각자 나름대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있었다. 2권은 이들이 다진 토양 위에 현대적 예술이 만개하는 과정을 그린다. 이사도라 덩컨, 스트라빈스키, 샤갈, 장 콕토 같은 이들을 비롯해 많은 예술가들이 이 ‘빛의 도시’로 이끌리듯 찾아온다. 파리에는 영감을 주는 미술관들과 예술적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동료들, 그리고 돈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던 싸구려 목조 공동주택 ‘바토 라부아르(세탁선)’로 모여들었다. 피카소를 필두로 막스 자코브, 모리스 드 블라맹크, 키스 반 동겐, 모딜리아니 등 많은 이들이 이곳에서 각자의 예술을 개척하게 되고 이곳은 영광의 이름으로 남게 된다. 그러나 40여 년간 지속된 평화는 최초의 세계대전으로 깨지고 만다. 모든 것이 전시 체제에 돌입하여, 조르주 브라크, 장 르누아르, 기욤 아폴리네르는 직접 전선으로 나갔고, 디자이너 폴 푸아레는 군복을 만들고, 과학자인 마리 퀴리는 부상병들을 위해 이동식 엑스레이 팀을 꾸렸다. 당연히 예술이라는 것은 만들어지기도 팔리기도 어려운 시기였다. 굴복하지 않는 예술가들의 분투 예술가 중에는 초기부터 인정받고 성공을 거두는 이들도 있지만, 뛰어난 능력에도 기성 권력에 부딪쳐 험난한 시기를 보낸 이들도 많다. 1권은 그야말로 인상파 화가들이 ‘살롱전’으로 대표되는 기성 화단과 치르는 기나긴 전투라 할 수 있다. 거듭되는 낙선에도 꾸준히 살롱에 출품했던 마네 같은 이가 있는가 하면 모네와 모리조, 르누아르, 시슬레 등의 화가들은 인상파 전시회 등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로댕조차 서른다섯에 이르러서야 살롱전에 입선했고, 2년 뒤에 출품한 <청동시대>는 너무나 뛰어난 나머지 ‘모델에 직접 석고를 입혀 본을 떴다’는 소문이 돌면서 미술계에 파문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러한 논란은 결과적으로 그의 명성에 득이 되었다.(1권 122쪽) 모리스 라벨과 같은 작곡가는 그 뛰어난 능력에도 불구하고 콩세르바투아르에서 두 번이나 퇴학을 당했으며, 계속된 도전에도 로마대상 경연에서 결국 탈락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탈락했을 때 그는 이미 <물의 희롱>, <현악 4중주> 등의 곡으로 평판을 얻고 있었기에 이 사건은 스캔들로 비화되기까지 한다. (2권 184쪽) 르코르뷔지에나 만 레이처럼 처음에는 그림 쪽에 야망이 있었지만,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 이들도 있었다. 르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 일하면서도 진정으로는 화가가 되길 원했었다. 그러나 운명의 장난처럼 1차 대전의 정전협정이 조인된 날은 하필 그가 전시회를 열기로 한 날이었고, 이 때문에 그의 전시회는 연기되고 만다. 어쩌면 그가 미술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현대 건축은 한 발 빨리 변화했을지도 모른다. 가장 위대한 작품들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이 시리즈의 가장 큰 재미는 역시 위대한 예술가들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자유의 여신상이나 에펠탑처럼 한 권 전체에 걸쳐 완성되어 가는 대작을 보는 것도 즐겁고, 피카소의 <인생>이나 조이스의 『율리시스』 같은 잘 알려진 작품들의 뒷이야기를 듣는 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자유의 여신상 같은 대형 프로젝트에는 대개 거대한 이상과 가치가 담기기 마련이다. 알려져 있다시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을 축하하는 프랑스인의 우정의 선물이었지만, 이는 동시에 혁명과 반동 사이에서 부침을 거듭해온 프랑스 국민들에게 ‘자유’라는 이정표를 세우는 행위였다. 이 여신상의 외관은 바르톨디의 것이었지만, 내부 구조는 에펠이 담당하여 거대한 외형을 떠받칠 철탑을 고안했다.(1권 178쪽) 한편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또 한번의 만국박람회에 무언가 ‘진짜 볼만한 것’을 내놓자는 제안에서 시작된 에펠탑은 원래 ‘에펠’탑이 아니었다. 애초에 철탑 아이디어를 냈던 것은 에펠의 조수들이었는데, 에펠 본인은 처음엔 이 계획에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당시 박람회 행정위원장이 이 제안에 크게 흥분하자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재고하여 특허권을 사들였다.(1권 244쪽) 피카소의 청색시대 걸작으로 평가되는 <인생>은 충격적인 개인사와 그에 얽힌 복합적 감정이 담겨 있는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나체의 한 남자와 여자가 나온다. 남자는 피카소와 함께 바르셀로나에서 파리로 온 친구 카사헤마스이고, 여자는 그가 사랑했던 여자 제르멘이다. 카사헤마스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제르멘으로 인해 절망에 빠진 나머지, 여러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그녀를 쏘고 뒤이어 자기 자신에게도 방아쇠를 당긴다. 다행히 제르멘은 살아났고, 이후 피카소의 애인이 된다. <인생>에 엑스레이를 쬐어 보면 카사헤마스의 그림 밑에 원래 피카소 자신을 그렸다고 한다. 이 그림의 의미는 피카소 자신조차 확실히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2권 146쪽) 책을 좋아하는 여행자라면 프랑스를 여행할 때 꼭 들르는 곳이 아마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일 것이다. 이곳은 이후 파리에 거주하던 영미 계통 작가들의 삶을 크게 바꾸었고,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의 운명도 바꾸었다. 미국 잡지에 연재되던 이 작품은 ‘외설물’ 혐의로 고발되어 게재 중단의 위기에 처한다. 출판업자를 구하지 못하여 좌절한 조이스에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가 출간을 제안한다. 출판 경험도 자본도 없었던 이 용감한 여성 덕분에 조이스는 『율리시스』를 끝까지 써 내려갈 수 있었다.(3권 160쪽) 편견을 부수며 전진한 굳센 여성들 급격한 변화의 시기, 전위적인 시기였다고는 해도 선구적인 이들이 길을 트기는 녹록지 않았고, 여성들에게는 이 길에 ‘여성’에 대한 제약이 더해져 더욱 험했다. 그러나 앞서 나간 여성들은 어떤 편견과 부당한 대우에도 굴하지 않았다. 시리즈 전체에 걸쳐 위풍당당함을 보여준 대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햄릿 같은 남자 배역도 마다하지 않았고, 조각에도 열정을 보였으며, 만국박람회 때 선보인 열기구를 타보는 모험을 한 뒤,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내기도 했다.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누가 뭐라고 하든 하고야 마는 성미였던 것이다. 상류 부르주아 가문에서 태어난 베르트 모리조는 일찍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의 부모는 그런 그녀에게 미술 선생을 구해주었다. 상류 계층의 여성이 ‘교양으로’ 그림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한 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욕구가 아마추어리즘을 넘어서기 시작하자 그녀의 부모는 난감해했다. 모리조는 자신의 성별 때문에 동료 화가들과 함께 어울리기 어려웠음에도 자신만의 비전과 테크닉을 개발했다. 결혼 증명서와 사망 증명서에 그녀는 ‘무직’으로 기록되었으나, 그녀가 그린 뛰어난 작품들은 현재 세계 유수의 미술관들에 다른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걸려 있다. (1권 30쪽) 마리 퀴리에게도 학업과 연구는 쉽지 않았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이었는데, 당시 바르샤바 대학교는 아예 여학생을 받지 않았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장장 5년 동안 가정교사로 일한 끝에 그녀는 파리로 유학을 갈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남편 피에르 퀴리와 함께 생활고와 임신과 출산 등 온갖 어려움에도 연구를 계속하여 방사능을 발견했다. 그러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는 마리의 기여도를 의도적으로 무시하여 노벨 물리학상에서 그녀를 배제하려 했다. 다행히 이런 시도를 미리 안 피에르가 손을 씀으로써 마리는 의당 받아야 할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녀를 향한 학계의 차별은 계속 이어진다.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죽은 후에 피에르의 소르본 교수 자리를 마리에게 정식으로 주지 않고, 교수직은 공석으로 두되 ‘마리가 피에르를 대신하여 강의와 연구를 수행하는 것’을 제안한 것이다. 끝없는 차별에도 두 개의 노벨상을 탄 그녀는 선구자들은 인생의 아늑한 구석에 정착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저자 소개

  • 저자 : 메리 메콜리프
저자 : 메리 매콜리프
메릴랜드 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과 스미소니언 연구소에서 강의했고, 《파리 노트Paris Notes》에 정기적으로 기고해왔다. 예술사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으며 프랑스를 두루 여행한 끝에 첫 책 『파리를 발견하다Paris Discovered』(2006)를 펴냈다. 이후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구가한 파리를 그린 ‘예술가들의 파리’ 3부작, 『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절 Dawn of the Belle Epoque』(2011)과 『새로운 세기의 예술가들Twilight of the Belle Epoque』(2014), 『파리는 언제나 축제 When Paris Sizzled』(2016)를 차례로 출간했다. 이 시리즈는 파리로 모여든 예술가들의 이야기를 통해, 19세기 말 이 ‘빛의 도시’가 세계 문화예술의 수도로 떠오르는 과정과 20세기 들어 제1차 세계대전 전까지 전성기를 맞은 모습,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다시 한번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매콜리프의 다른 책으로는 『왕관들의 격돌Clash of Crowns』(2012)과 『벼랑 끝의 파리 Paris on the Brink』(2018)가 있다. 현재 뉴욕에서 살며 책을 쓰고 있다.

역자 : 최애리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했고, 중세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공역),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 슐람미스 샤하르의 『제4신분, 중세 여성의 역사』, 프랑수아 줄리앙의 『무미 예찬』,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생폴리앵에 지다』, 『타인의 목』, 『안개의 항구』,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 조지 허버트의 『합창』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여성 인물 탐구 시리즈인 『길 밖에서』, 『길을 찾아』가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최애리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불어불문학을 공부했고, 중세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옮긴 책으로 오스카 와일드의 『오스카 와일드, 아홉 가지 이야기』, 버지니아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피에르 그리말의 『그리스 로마 신화 사전』(공역), 크레티앵 드 트루아의 『그라알 이야기』, 슐람미스 샤하르의 『제4신분, 중세 여성의 역사』, 프랑수아 줄리앙의 『무미 예찬』, 자크 르 고프의 『연옥의 탄생』,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와 벤치의 사나이』, 『생폴리앵에 지다』, 『타인의 목』, 『안개의 항구』, 앙리 보스코의 『이아생트』, 조지 허버트의 『합창』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 여성 인물 탐구 시리즈인 『길 밖에서』, 『길을 찾아』가 있다.

책 속에서

1900년 10월 중순, 파블로 피카소는 바르셀로나를 떠나 파리의 붐비는 새 철도역인 오르세역에 도착했다. 며칠 후 만 열아홉 살이 되는 그는 의기충천해 있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의 스페인관에 그의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파리에 입장하는 얼마나 근사한 방식인가! 이 여행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안 직후에 그린 자화상에 그는 들뜬 심정으로 휘갈겨 썼다. “나, 왕”이라고.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을 그렇게 썼다. 그리고 그것은 놀랄 만큼 정확한 말이 될 터였다. (15쪽)

짧은 인사말을 하겠다고 일어선 카사헤마스가 갑자기 호주머니에서 피스톨을 꺼내 제르멘에게 겨누었다. 그녀는 재빨리 식탁 밑으로 뛰어들어 팔라레스의 등 뒤에 숨었다. 카사헤마스는 “이건 당신 몫!”이라고 외치며 총을 발사했고, 팔라레스가 그의 팔을 쳐내기는 했지만 제르멘은 바닥에 쓰러져 움직임이 없었다. 이어 자기가 그녀를 죽였다고 생각한 카사헤마스는 “이건 내 몫!”이라고 외치며 자신의 머리에 총을 쏘았다.
섬뜩한 일이었다. 제르멘은 목숨을 건지려고 죽은 척했는지, 아니면 총성에 놀라 기절했는지 모르지만, 다친 데 없이 무사했다. 하지만 카사헤마스는 인근 비샤 병원으로 옮겨져 그날 밤늦게 죽었다. 친구들이 슬퍼하며 그를 몽마르트르 묘지에 묻어주었다.
피카소는 사건 현장에 있지 않았지만, 큰 충격을 받고 망연자실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그는 카사헤마스의 비극적인 환영에 사로잡히게 된다. (68쪽)

프루스트는 일찍부터 적극적으로 드레퓌스를 지지하느라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야 했지만, 역시 그다운 방식으로 아버지와 화해했고, 레옹 도데를 위시한 극렬한 드레퓌스 반대자들과도 우정을 유지해나갔다. (……)
하지만 프루스트는 사교적 성공을 거두면서도 내심 회의에 시달렸다. 그 성공적인 만찬회를 개최한 직후인 6월 10일에 그는 서른 살이 되었다는 사실에 낙심했다. 건강도 불확실하고 이렇다 할 경력도 없이 여전히 부모의 집에 살면서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부모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오늘 나는 서른 살이 되었는데, 아직 아무것도 성취한 게 없어!” 라고 그는 학창 시절의 한 친구에게 말했다. (85쪽)

이사도라는 엄선된 관객들을 위해 공연하는 한편 파리 소녀들을 가르쳤는데, 지망자가 얼마나 많았던지 세 반으로 나눠야만 했다. 그런 활동들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렇게 해야 집세를 낼 수 있었다. 그녀에게 힘을 주는 것은 춤의 근본원리를 발견하겠다는 목표였다. 그녀는 진리가 기술보다 먼저임을 강조했다. “삶이 뿌리이고 예술은 꽃이다”라고 그녀는 말했다. 이는 10년 후 모스크바에서 나타나게 될 메소드 연기와도 다소 비슷한 것으로, 그녀는 고전발레의 인위성을 거부하고 정서적 관념들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동작들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그녀는 무용의 역사를 바꾸어놓을 발견을 하려는 참이었다. (86쪽)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나 다시 떠오른 카사헤마스의 영상은 그해 봄에 그린 〈인생〉이라는 피카소 청색 시대의 걸작으로 승화되었다. 이 그림에서는 괴로워하는 카사헤마스가 벗은 채로 서 있고, 제르멘 역시 벗은 채로 애달프게 그에게 기대어 있다. 그리고 긴 옷을 걸친 무표정한 여인이 아기를 안고 서 그들을 마주 보고 있다.
〈인생〉은 끝없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림이 나타내는 것은 성스러운 사랑과 속된 사랑의 대비인가? 인생의 과정인가? 아니면 그저 인간의 비참을 인정하는 것인가? 아무도 알 수 없다. 아마 창작자 자신도 여러 가지 상충하는 생각들을 품고 있었을 것이다. 엑스레이 조사는 피카소가 그 남자의 자리에 자신을 그렸다가 카사헤마스로 바꾸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46쪽)

또다시 로마대상에 낙방한 것이었다. 이제 서른 살, 로마대상 경연에 참가할 수 있는 연령 제한에 도달한 터라 설령 또다시 굴욕을 맛볼 용의가 있다 하더라도 더 이상은 시도할 수조차 없었 다. 이번에는 아예 예선 탈락이었으니, 심사 위원들이 모리스 라벨에게는 결선에 고려할 만한 기술적 숙련이 부족하다고 판정한 탓이었다.
이처럼 어이없는 판정이 그대로 넘어갈 리 없었고, 라벨 사건 은 음악평론가들 사이에 싸움을 붙였을 뿐 아니라 신문의 머리기사로 다루어지게 되었다. (184쪽)

특히 당황스러웠던 것은 지휘자가 스트라빈스키를 경험 없는 애송이로 퉁명스레 묵살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자서전에서 스트라빈스키는 “내 작품을 지휘해준” 가브리엘 피에르네의 “대가 다운 솜씨”를 치하했지만, 당시에는 악보에 명시한 자신의 지시들이 엄밀히 지켜지지 않는 것을 불만스러워했다. 사실상 피에르네는 오케스트라 전체가 보는 앞에서 그의 지시를 간단히 무시해 버린 일도 있었다. 스트라빈스키는 여러 군데 ‘논 크레셴도[커지지 않게]’를 써두었고 이를 “적절한 주의”라고 보았는데, 피에르네는 짜증스럽게 “이보게 젊은이, 크레셴도를 원치 않는다면 아무 말도 쓰지 않으면 되네”라고 했던 것이다. (325쪽)

논쟁은 주로 여성을 아카데미에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을 놓고 벌어졌다. 한 회원은 분개하여 “여성은 프랑스 학술원에 들어올 수 없다”라고 말했고, 언론은 마리 퀴리 가 이 시대의 여성상에 대한 위협이라고 강조하며 아카데미에 여성을 받아들이는 위험에 대해 대서특필했다. 적들의 분노를 한층 부채질한 것은, 마리 퀴리가 연구를 위해 남편과 아이를 버리는 대신 힘겨운 장애물들에도 불구하고 가정과 학문을 병행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결국 그녀는 브랑리에게 졌다. 단 한 표 차였다. (339쪽)

피카소와 후안 그리스는 스페인 국민이라 비전투원이었지만, 그래도 전쟁 중에 예술가로서의 삶을 계속하겠다는 입장은 그들 또래에서 드문 예외에 속했다. 피카소는 갈등 동안 중립을 지켰고 브라크와 드랭을 역까지 배웅해주기도 했으나, 그들이 전투에 참가하려는 열정에는 반감을 느꼈다. 나중에 그는 두 사람 중 어느 쪽도 다시 만나지 못했다고 말했는데, 사실로서는 부정확하지 만 은유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예전 같지 않았으니까. (441쪽)

초가을이 되자 이렌과 에브 자매는 파리의 어머니에게로 돌아갔고, 이렌은 어머니가 전선의 부상병들에게 엑스레이를 나르는 새로운 모험을 돕고자 간호사 과정에 등록했다. 그것은 좋은 아이디어였다. 엑스레이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장비를 일반 차량에 장착하여(자동차엔진 을 발전기에 연결하면 필요한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기동력 있 는 엑스레이 팀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곧 부상자 후원회나 프랑스 부인회 같은 기관들과 몇몇 개인들의 자금 지원을 받아, 마리 퀴리는 스무 대의 ‘작은 퀴리’를 갖게 되었다. 나아가 200개소의 방사선과 거점을 만들고 간호사들을 방사선 기술자로 훈련하기 위한 학교도 열었다. (449쪽)



목차

감사의 말 6
파리 지도 11
서문 12

제1장 피카소, 왕의 등장 │1900│ 15
제2장 센강 변의 보헤미아 │1900│ 37
제3장 여왕의 죽음 │1901│ 66
제4장 꿈과 현실 │1902│ 93
제5장 도착과 출발 │1903│ 119
제6장 인연과 악연 │1904│ 139
제7장 야수들 │1905│ 168
제8장 라벨의 왈츠 │1906│ 195
제9장 변화의 바람 │1907│ 225
제10장 끝나지 않은 사업 │1908│ 253
제11장 비롱관의 로댕 │1909│ 282
제12장 센강의 범람 │1910│ 315
제13장 천국과 지옥 사이 │1911│ 337
제14장 벼랑 끝에서 춤추기 │1912│ 367
제15장 불꽃놀이 │1913│ 398
제16장 사랑하는 조국 프랑스 │1914│ 429
제17장 끝나지 않는 전쟁 │1914-1915│ 458
제18장 “통과시키지 않겠다!” │1916│ 486
제19장 암울한 시절 │1917│ 514
제20장 피날레 │1918│ 537

주 563
참고문헌 602
찾아보기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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