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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원제 : Neujahr

율리 체(Juli Zeh) 저 | 이기숙 역 | 그러나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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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8120634 / 216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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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슈피겔 종합 1위, 16개월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소설!

란사로테 섬의 새해 아침. 헤닝은 자전거를 타고 페메스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려 한다. 장비는 형편없고 자전거는 무겁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바람과 오르막길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그는 자신이 살아온 날을 하나하나 떠올린다. 사실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게 최상이다. 건강한 두 아이가 있고 괜찮은 직장도 있다. 아내 테레자와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가족의 표본이 되어 부부가 가사를 공평하게 분담한다. 그러나 헤닝은 삶이 고달프다. 끝없이 과도한 요구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 어느 역할에서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딸이 태어난 뒤부터 헤닝은 불안 증세와 공황 발작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 증상은 악령처럼 주기적으로 그를 찾아온다.

헤닝은 결국 완전히 탈진한 상태로 고갯길에 도착한다. 그 순간 기억이 벼락처럼 내리치며 옛일이 생각난다. 어렸을 적에 그는 페메스에 온 적이 있다. 그 당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너무나 끔찍해 지금까지 마음속에 억압하고, 존재의 깊은 곳 어딘가에 가두었던 사건이다. 이제 그 기억들이 되살아나면서 헤닝은 깨닫는다. 오래전 벌어졌던 그 사건이 지금까지 그를 쫓아다녔다는 것을.

출판사 리뷰

촘촘히 짜인 스토리와 놀라운 흡입력으로 단숨에 읽히는 소설 ! '새해'는 독일 작가 율리 체의 12번째 소설로, 독일에서 2018년 9월에 출간된 이후 현재까지 줄곧 슈피겔 베스트셀러 목록에 자리하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 아주 평범하고 여느 단란한 가족인 것처럼 보이지만, 주인공 헤닝의 일상은 버겁기만 하다. 자기만의 시간은 턱 없이 부족하고, 아이들은 까탈스러운 데다, 육아를 이유로 아내와 함께 각자 반일만 근무하기로 해 월급은 반 토막 났지만, 일의 양이 줄어든 건 아니다. 여동생 루나는 안정된 직장도 없이, 돈이 떨어지면 헤닝 네를 찾아와 며칠씩 지내다 간다. 그런 일상을 벗어나고 싶었던 헤닝은 크리스마스 및 새해를 맞아 카라니아 제도의 란자로테 섬으로 휴가를 떠나기로 한다. 왜 하필 란사로테 섬이었을까? 막상 도착해 보니 날씨는 좋지 않고, 아내 테레사는 끊임없이 불평 불만이다. 그리고, 두려워하는 공황 발작도 다시 나타난다. 몇 년 전부터 알 수 없는 이유로 불안장애에 시달린 것이다. 1월1일, 헤닝은 가족에 대한 의무에서 잠시 벗어나기로 하고, 자전거 대여점에서 낡은 자전거를 빌려 타고 산 정상으로 향한다. 그리고 가까스로 산 정상에 올랐을 때, 그곳에서 모든 두려움의 근원을 마주치게 된다. 그에게, 란사로테 섬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이제까지 주로 사회적 문제를 다룬 소설을 써 온 작가가 트라우마를 주제로 스릴러적 요소를 가미해 쓴 작품으로, 가벼운 호흡의 문장과 탁월한 심리 묘사로 어린 시절이 어떻게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결정짓는지 관찰한다.

저자 소개

1974년 독일 본에서 태어나 파사우와 라이프치히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6년에 단편 소설로 등단한 한편, 참여적 지식인으로서 유엔에 근무하고 여러 신문에 정치적 색채가 강한 글을 게재해 왔다. 법조인의 길을 걸으면서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는데, 2001년에 첫 장편 소설 『독수리와 천사』를 발표하자마자 독일어권 문학계의 신예로 급부상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을 소재로 현대 전쟁의 묵시록적 이미지를 강렬하게 부각한 이 작품은 서른여 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독일 서적상, 에른스트 톨러 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 2007년에 추리 소설 형식의 작품 『형사 실프와 평행 우주의 인생들』을 발표해 주목받았으며, 2009년에는 소설 『어떤 소송』을 출간했다.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체제에 맞서는 한 여인의 법정 투쟁을 그린 이 작품은 국가가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오늘날 현실을 날카롭게 드러냈다는 평을 받았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시도하며 지적 담론을 생성하는 율리 체의 작품은 독일 문단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이언스 픽션, 추리 소설, 범죄 소설 등 여러 장르의 형식을 빌려 현실을 진단하는 그녀의 글쓰기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소설 『유희 충동』(2004)과 『잠수 한계 시간』(2012), 『어떤 소송』(2013), 아동서 『사람들의 나라』(2008), 에세이집 『자유에 대한 공격』(2009) 등이 있으며, 2013년 토마스 만 상을 받았다. 현재 브란덴부르크 주의 바르네비츠에서 법조인으로 일하며 꾸준히 집필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역자 소개

연세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뒤셀도르프대학에서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독일의 인문사회과학서와 예술서 그리고 소설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는 《율리아와 동네 기사단》 《알렉산더》 《별을 타는 아이》 《소비사회 탈출기》 《나의 인생》 《인간과 공간》 《공간적 전회》 《푸르트벵글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p. 14그가 아는 한, 인간의 기억은 보통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 돼서야 시작된다. 언젠가 그는 출판사에서 인간의 기억을 다룬 책을 편집한 적이 있다. 거기엔 어릴 적 기억이 사실은 사진이나 남한테서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성되는 경우가 많다고 적혀 있었다. 심지어 성인에게 조작된 과거 사진을 보여주면 기억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하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p. 17 “그것도 한때야.” 테레자가 가장 좋아하는 말 중 하나다. 헤닝은 이렇게 되받는다. “그것도 뻔한 말이야.” 둘 다 맞는 말이라는 게 슬프다.
p. 26 오늘은 페메스에 오르기 좋은 날이다. 간밤이 엉망진창으로 지나갔어도 푹 쉰 기분이다. 1월 1일. 도전하기에 안성맞춤인 날. 헤닝은 곧 새해에 대고 마음속 말을 다 풀어낼 것이다. 작년 한 해는 그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물론 만사가 꽤 순조롭기는 했다. 누가 중병에 걸리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다. 하지만 헤닝은 늘 파국이 임박했다는 느낌 속에서 살았다. ‘그것’은 어느새 밤은 물론이고 환한 대낮에도 엄습한다. 공격을 받는 중간에도 그는 다음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씨름한다. 그것 말고도 일과 아이들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그의 삶은 도피와 같다. 아무것도 끝까지 완성할 수 없고, 그 무엇도 제대로 할 시간이 없다.
p. 28-29 ‘한다’라는 단어는 테레자에게 중요한 말이다. ‘뭔가를 한다’는 건 그녀가 생각하기에 성공한 인생에 속한다. “우리도 뭔가를 좀 해야지.” 이 말은 뭐든지 다 의미할 수 있다. 봄맞이 대청소, 휴가 계획 짜기, 친구들을 저녁에 초대하기, 식구끼리 어디를 방문하기, 재정 계획 세우기처럼 함께 뭔가를 도모하는 일이다. 그러나 ‘한다’라는 단어는 헤닝의 귀엔 대부분 위협으로 들린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굴러간다’라는 단어다. 결국 인생에서는 언제 어디서나 뭔가가 잘 굴러가는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모든 게 잘 굴러간다면 굳이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p. 38-39
1월 1일, 1월 1일.
‘그것’이 나타날 때 생각을 통제하려는 건 거의 최악의 방법이다. 마음 훈련이 뭔가 쓸모가 있는지조차도 헤닝은 잘 모른다. 엉뚱한 생각을 피해보려 할 때마다 그는 늘 쫓기는 노루처럼 자신의 머릿속을 질주한다. 근본적으로는 모든 게 ‘그것’을 소환할 수 있다. 어머니 욕실도 그중 하나다. 욕실은 헤닝과 루나 때문에 어머니가 느끼는 절망적인 무력감을 상징하는 곳이다. 그들은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어머니의 고통에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헤닝과 루나가 그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이었다. ‘그것’이 눈을 뜬다.

p.43-44 그날 이후 ‘그것’은 아무 때나 제멋대로 찾아왔다. 고통은 횡격막이 화끈거리는 증상과 함께 시작된다. 무대 공포증과 비행공포증이 뒤섞인 느낌이다. 심장이 사정없이 날뛰다가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한다. 몸과 마음이 통제 불능에 빠진다. 가끔 ‘그것’이 한밤중에 그를 깨울 때가 있다. 헤닝은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 당장 화장실로 달려가 소리를 지르든가 머리를 벽에 대고 찧고 싶지만, 식구들을 깨우지 않으려고 이내 그만둔다. 그 대신 현관과 거실과 부엌을 돌아다닌다. 심장이 진정될 때까지. ‘그것’이 움켜쥔 손을 풀고 반 시간가량 마음의 안정을 선물할 때까지. 그러면 또다시 살아남았다는 비루한 행복감이 몰려온다.
p. 65-66자식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도 어머니는 혼자 분노를 터뜨렸다. 음식을 식탁에 올려놓고 부엌에서 이걸 만드느라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를 이야기했다. 빨래를 하면서는 저녁 시간을 세탁과 다림질로 보내야 한다고 푸념했다. 헤닝과 루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살았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엉망으로 어질러놓은 집을 청소하고, 학교에서 일으킨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갔다. 자식들을 돌보느라 친구도 만나지 못했고, 남자도, 파티도, 여행도, 문화생활도, 독서와 영화관과 극장도, 흥미진진한 대화도, 더 나은 직장도 포기했다. 어머니는 자식들 때문에 자신과 어울리지도 않고 마음에도 들지 않는 인생을 강제로 살고 있다고 날마다 불평했다. 그러니 너희는 최소한 더 일을 만들어 나를 힘들게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헤닝은 맏이로서 집안일을 도와 어머니의 짐을 덜어주고, 루나는 말 잘 듣고 얌전하게 지내라고 했다. 이제 자신은 힘에 부쳐서 모든 걸 혼자 할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은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신세타령을 한 뒤 마지막에는 헤닝과 루나를 품에 안고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너희는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야. 그거 알지? 너희는 대박이야!”

p. 211 헤닝은 집에서 나와 마흔두 개의 계단을 걸어 홈 오피스로 올라간다. 이제 그는 안다. 자신은 트라우마에 시달린 거다. 혹독하게 시달린 거다. 정신과 의사라면 누구나 확인해줄 거다. 그는30년간 지하 물탱크 위에서 살았다. 동굴 위에서 살았다. 사람이 빠질 수 있는 그 구멍을 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첫 번째 층계참에서 그는 생각한다. 이젠 모든 게 달라질 거라고. 매듭이 확 풀렸다. 어둠 속으로 빛이 들어왔다. 괴물이 짐을 싸서 나갔다. ‘그것’은 헤닝에게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다. 헤닝은 더할 수 없이 행복하다. 이젠 자유로워질 거다. 아이들을 사랑할 거고 자신의 일을 할 거다. 좋은 날도 있고 궂은 날도 있을 거다. 이젠 감기와 돈 걱정과 아내와의 다툼 같은 아주 평범한 일로만 괴로워할 거다. 때론 하룻밤 잠 못 이룰 때도 있겠지만, 큰 문제는 아닐 거다. ‘그것’은 곧 추억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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