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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서신 연구 사도 바울의 생애와 사상

원제 : The Apostle Paul: His Life, Thought, and Letters

스탠리 E. 포터 저 | 임재승, 조명훈 역 | 새물결플러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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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291291 / 76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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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스탠리 E. 포터
저자 : 스탠리 E. 포터
스탠리 E. 포터는 미국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에서 석사학위(M.A.)를, 영국 셰필드 대학교(Sheffield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 온타리오주 해밀턴에 있는 맥매스터 신학교(McMaster Divinity College)의 총장 겸 학장으로 섬기면서 신약학 교수와 기독교 세계관의 Roy A. Hope 의장도 겸임하고 있다. 그리스어, 고대 파피루스 사본 연구, 해석학 등 신약학의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로 손꼽히는 유명 신약학자로, 지금까지 John, His Gospel, and Jesus, Fundamentals of New Testament Greek, Hermeneutics: An Introduction to Interpretive Theory, Fundamentals of New Testament Textual Criticism을 비롯한 28권의 저서와 3백 편이 넘는 학술 논문을 저술하고 90여 권의 책을 편집했다.

역자 : 임재승
연세대학교(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미국 고든-콘웰 신학교(Th.M., 신약학)를 졸업했다. 현재 캐나다 맥매스터 신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과정 중이며, 이글스필드한인교회에서 아동부 담당 교육 목사로 섬기고 있다.

역자 : 조명훈
고신대학교(B.A.), 고려신학대학원(M.Div.), 미국 칼빈 신학교(Th.M., 신약학)를 졸업했다. 캐나다 맥매스터 신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과정을 이수했으며, 현재는 미국에 있는 휴스턴한빛장로교회에서 전임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임재승, 조명훈
임재승, 조명훈
임재승은 연세대학교(B.A.)와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미국 고든-콘웰 신학교(Th.M., 신약학)를 졸업했다. 현재 캐나다 맥매스터 신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과정 중이며, 이글스필드한인교회에서 아동부 담당 교육 목사로 섬기고 있다.
조명훈은 고신대학교(B.A.), 고려신학대학원(M.Div.), 미국 칼빈 신학교(Th.M., 신약학)를 졸업했다. 캐나다 맥매스터 신학교에서 신약학 박사 과정을 이수했으며, 현재는 미국에 있는 휴스턴한빛장로교회에서 전임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책 속에서

다메섹 도상에서의 바울의 경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언자들인 이사야나 예레미야의 부르심과 유사한 일련의 사건을 포함하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이 개인들을 지명하시고 그분이 의도한 목적 을 이루기 위해 그들을 부르신다. 이 예언자들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들은 선포해야 할 특정한 메시지를 받았다. 바울이 회심할 당시에 그의 전체 메시지를 깨달았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갈라디아서 1:15-16(회심과 양립할 수 있는 회고적인 견해)을 기록할 당시에는 자신의 부르심의 필수적인 부분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는 것임을 이해했다는 점이다. 실제적인 육체적 징후에 관해서는 시각과 소리가 그의 부르심에 관여했다. 바울은 그의 편지에서 예수를 보았다고 언급한다(고전 15:8; 갈 1:16). 바울이 이때 자신이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의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믿었다는 것은 그가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다는 것뿐만 아니라, 사도행전의 세 본문에(행 9:4-6; 22:7-8; 26:14-18) 기록된 것과 같이 그가 음성을 들었다는 개념에도 신빙성을 더한다. 그러나 이 목소리의 내용에 대한 언급은 바울 서신의 언급에 기초한 누가의 삽입일 가능성이 있다(갈 1:15-16의 경우와 같이). 바울에 관해 말하자면, 그는 이 나타남을 예수 그리스도의 실제적이고 유효한 계시로 다루는데, 이는 그의 선교 사역에 권위를 부여한다.
_제1장 “인간 바울” 중에서

대부분의 논의에서 학자들은 바울이 “율법”(no,moj)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할 때 특별히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는 한 구약 율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 같다(혹은 적어도 논의를 위해 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내가 보기에 이것은 몇 가지 측면에서 분명히 잘못되었다. 첫 번째로 한 단어의 가능한 의미 중 하나의 특정한 의미를 해당 단어가 활용된 전체 영역을 지칭하는 것으로 잘못 사용했다. 두 번째로 사전적 의미 개념을 혼동하여 사전적 항목의 중심 의미를 파악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바울이 율법을 말할 때 그가 의미한 것이 구약 율법이라는 추정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추정되기보다는 증명되어야 한다. 율법 개념에 관한 바울의 사상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의 어려움은—이는 전반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잘못된 언어 분석으로 인해 생긴 것이다—현대 언어학 원리를 용어 분석에 적용함으로써 어느 정도 개선되어왔다(비록 이런 언어학적 접근은 신약학계에서 사실상 무시되고 있지만 말이다).
_제4장 “바울의 사상과 저작의 핵심 주제” 중에서

바울이 자신의 서신들을 모두 모았다는 내 주장을 옹호하는 데 있어 앞에서 언급한 모든 이론으로부터 다수의 합의점이 있다. 바울과 가까운 인물 또는 그의 편지에 관심이 있었던 개인들의 참여가 있었다는 점, 파편 가설에 의지하는 이론들이 굳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과 바울의 서신들이 편집되기 이전에 모여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 한 장소에서 편지들을 모았을 가능성과 그 결과 전승 과정 초기부터 바울 서신 모음집의 수가 제한되었다는 점, 그리고 바울 서신 모음집을 뒷받침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사본으로서 P46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P46에 관한 많은 논쟁이 있지만, 한때 이것이 데살로니가후서와 빌레몬서, 심지어 목회 서신까지도 포함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할 만한 훌륭한 증거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증거는 테르툴리아누스의 진술에 근거해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키온에 관한 내용, 사본의 구조 및 재구성된 길이 그리고 바울 편지 모음집 사본에 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포함한다.
_제6장 “위작성과 바울 정경의 형성” 중에서

지금까지 그렇게 심각하게 고려되지 않았던 또 다른 설명은 데살로니가후서가 공동 저작 혹은 대필자의 역할로 인해 표준적인 바울 서신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의하면 데살로니가후서(혹은 데살로니가전서)는 디모데(그는 여섯 개의 다른 바울 서신의 서두 인사에서 언급된다) 혹은 실루아노(실라)에 의해 저술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으로서 바울의 직접 저작을 가로막은 명백한 상황인 생계의 필요, 어려운 신체적 상황, 또는 다른 헌신 등을 제외하고, 동역자 혹은 심지어 무명의 서기를 연관시키는 확실한 정황을 재구성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함께 보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나 두 사람 모두가 혹은 또 다른 사람이 연관되어 있더라도, 바울의 이름은 데살로니가후서 1:1과 3:17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데살로니가 공동체에서의 바울의 위치가 그 공동체를 세운 사도였으며, 그가 그곳에 적극적으로 개입되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는 첫 번째 편지에서 그랬듯이 그가 그곳의 교회에 관심을 두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는 두 번째 편지도 바울의 것이라고 부를 수 있는 보증이 된다. 이런 해결책은 이 편지들의 분명한 유사성과 어조의 변화를 포함하여 여러 문제를 풀어준다.
_제8장 “데살로니가전후서” 중에서

결론적으로 로마 교회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포함한 혼합 공동체였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이는 로마서 주석자들의 대다수가 지지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만일 누군가가 한쪽이 다른 한쪽을 능가하는 교회였다고 추측하는 모험을 한다면, 그때는 아마도 유대인보다는 이방인이 교회 안에 더 많았다는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바울이 로마서 15:1에서 확인해주는 것에 따르면, 이방인들이 지배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위의 증거에 기초한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는 유대인들이 로마의 교회로 돌아온 이후 그동안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되찾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확실한 분쟁이 아니더라도 두 그룹 간의 역할과 관계에 대한 일종의 긴장을 유발했을 것이다(14:1-15:13을 보라).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특권을 가진 위치에 있으며, 최소한 현재 행사하고 있는 것보다는 더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믿었을 것이다(2:17-24). 그리고 이방인들은 유대인들, 다시 말해 교회 내에서 이제는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존중받을 필요가 있었던 무리들의 특징적인 관습들을 경시했을 수 있다(3:1; 14:13-23). 이것이 아마도 바울이 편지를 써야 했던 교회의 상황이었을 것이다.
_제10장 “로마서” 중에서

만약 목회 서신의 저자가 바울이었다면, 몇 가지 난제가 해결된다. 첫째, 목회 서신에 등장하는 대적자들이 골로새서와 같은 다른 바울 서신에서 발견되는 자들과 같아진다. 따라서 2세기나 심지어 그 이후의 어느 때 기록되었다고 가설적 시나리오를 추측할 필요가 없다. 바울 저작권은 목회 서신을 소설이 아닌 진짜 서신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길이가 긴 개인적인 단락들은 그것들이 진짜 일련의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 어렵다. 그렇지 않다면 디모데전서 1:20에 있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에 대한 언급을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다. 만약 사도행전 28:31 이전의 제안이 목회 서신을 사도행전 연대기로 통합하는 데 방해가 된다면(혹할 만한 장점이 있음에도 대부분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바울이 로마 감옥으로부터 풀려난 시기는 62년경 어느 시점이어야 한다. 디모데전서는 마게도냐에서 기록되어 에베소로 전해졌을 것인데, 이는 빌립보에 있는 교회와 바울을 향한 그들의 원조(딤전 1:3)에 비춰볼 때 이해할 만한 대목이다. 비록 바울이 먼저 스페인으로 가고 그다음에 마게도냐로 가는 것이 가능하지만 말이다.
_제12장 “목회 서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중에서

목차

약어
서문
제1부 바울 전승
제1장 인간 바울
제2장 바울의 사역 연대기와 그의 투옥
제3장 바울 사상의 배경
제4장 바울의 사상과 저작의 핵심 주제
제5장 바울의 편지 양식
제6장 위작성과 바울 정경의 형성
제2부 바울 서신
제7장 갈라디아서
제8장 데살로니가전후서
제9장 고린도전후서
제10장 로마서
제11장 옥중 서신: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에베소서
제12장 목회 서신: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결론
인명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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