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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위한 인문학 집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노은주, 임형남 저 | 인물과사상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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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9065486 / 284쪽 15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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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가족을 품다 전남 구례에 지은 집은 부부와 아이와 외할머니, 즉 3대가 사는 전통적인 가족을 위한 집이다. 약한 경사가 있는 땅의 조건을 이용한 수직으로 반 층씩 물린 4층의 집으로 만들어 가장 현관에 가깝고 땅과 가까운 곳에 할머니의 공간을 만들고 반 층 올라간 집의 중간에 가족의 공통 공간인 거실과 식당과 주방을 만들었다. 반 층 위에 부부의 방과 아이의 방이 있고, 다시 반 층 오르면 남편의 공간이자 취미를 위한 공간이 있다. 강원도 원주에 지은 집은 부부의 취향이 확연하게 달라 단순하고 약간은 서양식 아름다움을 추구한 남편채와 한식 공간을 지향하는 부인채를 따로 만들었다. 이 집은 주말부부로 살던 남편이 은퇴하며 먼저 머물게 된 집이다. 부부가 한 대지 안의 다른 채에서 각자 자기 일을 한다는 것, 즉 가족 간의 일정한 거리와 각자의 영역 확보가 이 집의 가장 큰 줄거리였다. 경북 포항에 지은 집은 아버지가 썼던 창고를 고쳐서 만든 집이다. 60평 중 1/3인 20평을 복층으로 만들어 1층은 주방과 식당과 거실로 꾸미고 2층은 가족실과 욕실과 침실로 구성했다. 이 창고를 고칠 당시 주위에서 그 돈이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데 왜 창고를 고치냐고 했다고 한다. 집주인은 “그게 우리한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이들은 집을 의미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다며, 아버지가 썼던 창고를 다시 고쳐서 쓰겠다고 결심했다. 이들에게는 집이 ‘의미 있는 공간’이라는 게 중요했다. 이들처럼 집의 보이지 않는 가치를 한 번 생각해보고, 집을 내 몸에 맞추고, 나의 현재에 맞추면 어떨까? 바람을 막아주고 비를 막아주고 가족이 즐겁게 살면 되는 것이 집인데, 점점 집을 통해 자신을 과신하게 되니 집이 비대해질 수밖에 없다. 집이란 우리의 생활이 담기는 곳이고 그러므로 편안해야 한다. 집은 우리가 앉거나 누워서 쉬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는 곳이어야 한다. 집에는 생활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진지한 자세와 생각이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그런 집은 거칠고 순박하지만 마음을 흔들어대는 감동을 준다. 그런 일상이 만들어내는 집은 위대한 건축이고 그것이 그대로 문화이며 인문학이기도 하다. 또 일상과 정신의 힘이고 그 힘이 들어 있는 집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이다. 그렇게 손때와 추억이 묻어 있고, 가족의 삶을 담아내는 집에는 행복의 향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사람을 품다 경남 하동의 십리벚꽃길이 내려다보이는 ‘적이재’는 지리산 한가운데에 산과 산이 마주 대하고 있는 사이로 섬진강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유장하게 흐르는 중간에 있다. ‘고요히 머무르며 우러른다’는 의미의 적이재는 어린 시절 살았던 시골 농촌마을의 마루가 있고, 텃밭과 넓은 마당이 있는 집을 떠올리게 한다. 옛집이 품고 있는 온기는 직접적으로 보거나 만나지는 않더라도 오랜 시간 집에서 사람들이 살며 부대끼며 닳아온 삶의 흔적을 경험하고 그것에 교감하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 된다. 집주인은 오랫동안 도시의 거의 같은 형식의 아파트에서 별다르게 신경 쓰는 일 없이 편하게 살아왔는데, 집을 짓기로 마음먹은 후 어린 시절 살았던 전형적인 시골의 옛집을 그리게 되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이하던 밥 짓는 연기처럼, 어머니가 끓이는 된장국 냄새처럼, 가족들이 아랫목에 발을 맞대고 하릴없이 떠드는 말의 온기처럼, 삶의 온도는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집의 외관은 우리나라 민가 혹은 한옥을 모티브로 하게 되었고, 가장 일반적인 경골목구조 형식을 택했다. 산을 좋아한다는 부부가 집을 짓고 싶다고 찾아왔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야 많지만, 삶의 공간을 산과 바로 붙여놓고 살겠다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들의 생활은 아주 단순하고 검박한데, 그들이 집을 짓겠다는 땅은 화려했다. 땅은 소백산이 뻗어내린 중간에 있었는데, 고개를 하나 넘으면 부석사가 있는 곳이었다. 앞과 뒤로 산들이 겹겹이 둘러쳐 있었고, 그 안에 화려한 꽃술처럼 솟아 있는 땅이었다. 집에 들어갈 내용은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단순한 일과였고, 나머지의 생활은 자연으로 가득 차 있었다. 드넓은 바둑판에 두 점의 바둑돌을 앉힌 것처럼 집을 놓았다. 집을 다 짓고 그 모습을 보니 시골집처럼 편안했고, 산이 집을 꼭 안아주어서 더욱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단순한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집주인도 좋다고 했다. 높고도 깊은 산속에 욕심을 버리고 들어가 살고 싶은 주인을 닮은 집이었다. 집도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듯 사람도 자신의 삶이 담긴 공간에서 살아야 한다. 거기에서 편안함과 평온함이 오는 것이다. 자연을 품다 경기도 과천시 문원동의 ‘프라즈나의 집’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숲속으로 들어가는 배처럼 보인다. 중정에 있는 오래된 감나무는 이 집의 중심이며, 몇 개로 나뉜 집의 덩어리들을 모으는 역할을 한다. 과학으로 알 수 없는 우주의 무작위성을 깨닫는 지혜가 ‘프라즈나’다. 프라즈나는 지혜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이며, 이 단어를 한문으로 음역한 것이 ‘반야’라는 말이다. 그런데 프라즈나가 의미하는 지혜란 현명하다는 의미가 더 확장되어, 모든 것을 막힘없이 두루두루 알면서도 경계가 없는 이를테면 가장 이상적인 지혜를 의미한다. 건축 또한 여러 가지 생활과 생각을 관통하는 길을 만드는 일이다. 그 안에는 가족이 담기고 가족의 생각이 담긴다. 생각은 방이나 마루나 마당 등의 공간으로 환원된다. 충남 아산시 동정리에 있는 ‘선의 집(casa linea)’은 수평으로 길게 뻗어나간 집과 원래부터 자리 잡고 있던 수직의 소나무가 어우러지며 대지에 처음 그렸던 선의 의지를 확인시켜준다. 이곳은 염치저수지를 빙 둘러 집들이 들어서고 있다. 산이 적당한 거리로 물러서 있으며 저수지의 수량도 아주 넉넉하다. 그리고 남쪽은 훤하게 열려 있다. 대지와 물 사이에는 4미터 정도 높이 차이가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내려다보니 염치저수지와의 사이에 논이 있었다. 그 논에는 물이 찰랑거리고 있었다. 땅의 가운데서 보면 막힘없이 물이 쭉 펼쳐지고, 시야에서 물이 끝나는 부분 양쪽으로 산이 보이고 하늘이 열리고 있었다. 아주 편안한 땅이었고, 거칠 것도 없는 땅이었다. 집주인은 자신의 생활을 설명했고 자신의 기호를 설명했다. 앞에 있는 염치저수지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땅의 끄트머리에 가로로 긴 선을 긋고 그 선에 여러 가지 기능의 공간들을 앉혔다. 집을 도로와 물과 평행하고 길게 펼치고, 부엌과 거실과 가족의 침실, 주인이 머물며 음악을 들을 별채를 차례로 연결했다. 그리고 각 공간의 사이마다 마당을 끼워 넣었다. 땅의 흐름을 그대로 반영해 살짝 꺾인 집을 도로에서 볼 때, 자칫 장벽같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도록 중간중간 바람이 들락거리고 시선이 들락거릴 수 있는 구멍을 뚫어주었다. 집은 여러 개의 마당을 품으며, 실제보다 길어 보였다. 강원도 속초 도문동에 있는 집은 원래 있던 집의 모양과 닮고, 집을 에워싸고 있는 산들과도 비슷한 모양으로 완성되었다. 집터에 있던 옛집은 약 100년 전 설악산 울산바위 근처 암자에 있던 요사채를 옮겨와 지은 것이라고 한다. 옛집의 내외장을 조금 손보고 변형된 곳을 원형으로 복원하자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고 나서 새 집을 지었다. 집을 두 채로 나누어 모두 남향으로 햇빛이 잘 드는 집이 되도록 하고, 일자로 길게 방들과 부엌을 배치한 안채와 거실 겸 음악실, 다락을 겸한 사랑채를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의 땅에 세 채의 집이 산봉우리처럼 땅 위에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이야기를 품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2016년 수상자로 선정된 칠레 건축가 알레한드로 아라베나는 가장 필수적인 설비를 넣은 집을 절반 규모로 짓고 나머지는 주민들이 살면서 확장할 수 있도록 구상하고 설계했다. 그는 ‘반쪽짜리 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낡은 집을 고치고 늘리는 요령을 터득한 주민들이 열심히 일한다면 나머지 반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그는 공공건축 프로젝트 그룹인 ‘엘레멘탈’을 이끌며 2010년 대지진과 쓰나미 피해를 당한 칠레의 도시 재건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칠레 이키케의 킨타 몬로이에 30년 된 낡은 슬럼가의 100여 가구를 재개발하면서, 약 1,520평의 부지에 가구당 7,500달러라는 저예산으로 건축면적 약 10평의 살 만한 집을 제공해야 했다. 그는 정부가 주도했다가 실패한 다른 사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지역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지 않고 거주지를 지키면서 중산층 수준의 삶을 이루어가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2004년 입주 후 2년여 만에 집의 가치는 2만 달러 수준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그는 “건축은 그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집을 짓는 일과 집을 설계한다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계속하는 이유는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는 일이기 때문이다. 건축의 재료는 궁극적으로 희망이다. 건축가를 찾는 모든 사람은 꿈꾸어온 집을 짓겠다는 희망을 가득 담고 온다. 건축가는 그 희망을 집이라는 구체적인 형상으로 옮긴다. 몇 년 전 대한적십자사에서 다문화가정을 돕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는데, 힘을 보탤 수 없느냐고 해서 잠시 도와준 적이 있다. 전국에 있는 다문화가정 중에서도 도움이 시급한 집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한 집에 배정된 예산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 예산으로 환자를 돌보고 집도 개선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강원도 철원에서 만난 필리핀인 부인은 한국에 시집 온 지 15년이 되었고 방 2칸과 부엌이 딸린 아주 낡은 집에서 두 아들과 시아버지, 몸이 불편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일주일 남짓한 짧은 시간에 부족한 예산으로 과연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질 사이도 없이, 미처 알지 못했던 큰 자원이 가동되었다. 그것은 대한적십자사라는 조직이 갖고 있던 힘이었는데, 청소년적십자 학생들 한 무리와 철원 대한적십자사 회원들이 개미처럼 모여서 순식간에 마당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건축 관련업을 하는 회원들이 자원해 집 안팎을 수리해주었다. 그렇게 동화에서 요정이 마술봉을 휘두르듯 일은 진행되었다. 공사가 끝나고 모두 넓은 마당에 즐겁게 모여 있던 오후, 큰 그늘을 드리운 마당의 나뭇가지마다 희망이라는 열매가 가득 피어 있었다.

저자 소개

  • 저자 : 노은주, 임형남
저자 : 노은주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홍익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고,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등이 있다.

저자 : 임형남
건축은 땅이 꾸는 꿈이고, 사람들의 삶에서 길어 올리는 이야기다. 임형남·노은주 부부는 땅과 사람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둘 사이를 중재해 건축으로 빚어내는 것이 건축가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이들은 홍익대학교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함께 가온건축을 운영하고 있다. ‘가온’이란 순우리말로 가운데·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家穩)’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가장 편안하고, 인간답고, 자연과 어우러진 집을 궁리하기 위해 이들은 틈만 나면 옛집을 찾아가고, 골목을 거닐고, 도시를 산책한다. 그 여정에서 집이 지어지고, 글과 그림이 모여 책으로 엮인다.
홍익대학교와 중앙대학교 등에서 강의를 했고, 2011년 ‘금산주택’으로 공간디자인대상을, 2012년 한국건축가협회 아천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내가 살고 싶은 작은 집』, 『생각을 담은 집 한옥』, 『그들은 그 집에서 무슨 꿈을 꾸었을까』, 『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사람을 살리는 집』, 『작은 집 큰 생각』, 『나무처럼 자라는 집』, 『이야기로 집을 짓다』, 『서울 풍경 화첩』, 『집주인과 건축가의 행복한 만남』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이 집 역시 한창 뛰어놀 나이의 아이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주택을 마련하기로 한 전형적인 4인 가족을 위한 집이다. 조용하지만 무척 결단력이 있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아빠와 늘 웃는 얼굴을 한 명랑한 성격의 착한 엄마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에너지가 넘치는 두 아이가 살 집이었다. 핵가족이라 부르는 두 세대가 사는 집이며, 엄마·아빠·딸·아들 네 식구가 사는 집. 무언가 가장 표준의 집을 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화수분처럼 집의 재산을 늘려줄 것이라고 기댈 언덕으로 여겨왔던 아파트에서 가족이 구상하고 가족이 정주하는 집을 짓는다는 것은 좀 달라야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행복의 향기가 있다」(본문 27쪽)

내부는 단절된 듯 통한다. 1층에는 거실과 손님방, 주방이 있으며 한 단 아래 바닥 높이에 변화를 준 거실이 있다. 2층으로 올라갈 때 사용하는 보이는 계단과 숨겨진 계단 두 개가 있는데, 다락으로 이어지는 계단은 가장 오랜 시간 집에 머무는 아내를 위해 만든 작은 다실 겸 공부방 뒤에 숨겨놓았다. 그 계단을 오르면 2층 아들 방으로 통하는 다락방이 나오고, 아들 방을 통하면 집은 다시 부부의 방과 욕실 등 집의 주요 공간으로 이어진다. 네덜란드 판화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스허르(Maurits Cornelis Escher)의 계단 그림처럼 숨겨지면서도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복잡하지만 안도감을 준다. 단절과 연결이 공존하는 이 집에서 독립적이면서도 끊임없이 만날 수 있는 동선을 통해 가족들의 유대가 더 깊어지도록 했다. 「가족의 삶을 담아내다」(본문 56쪽)

그 길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집을 한 채 지었다. 한철 벚꽃도 아름답지만 둘러싼 산의 연봉(連峯)이 시원하고 아름다운 이 집의 이름은 적이재(寂而齋)다. 적이재라는 이름은 『화엄경』에서 따온 것인데 ‘고요히 머무르며 우러른다’라는 뜻이다. 집의 이름처럼 정년을 맞이한 가장이 서울 살림을 거두고 부인의 고향인 하동으로 내려가서 고요히 머물게 된 집이다. 집터는 지리산 한가운데에 산과 산이 마주 대하고 있는 사이로 섬진강으로 들어가는 물길이 유장하게 흐르는 한중간이다. 집주인은 노모를 모시고 사는 60대 부부이고 자녀들은 분가를 해서 종종 찾아온다. 부인의 고향인 동네라 처가 일가와 친구들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있어 낯선 곳에서 은퇴 이후를 준비하는 경우와는 달리 새로 집을 짓는 데 사뭇 여유가 있었다. 「부대끼며 살아온 흔적이 있다」(본문 95~96쪽)

르코르뷔지에의 작은 집은 8~9월 여름 두 달을 무더위 속에서 보내는 1951~1952년 사이에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나무가 우거진 절벽에 지어졌다. 최소 크기의 공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조립식 오두막으로 가로 3.66미터, 세로 3.66미터, 높이 2.66미터 규모이니 4평(13.4제곱미터) 남짓 된다. 공교롭게도 이 크기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가 지었던 월든 호숫가의 집 크기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한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최소 면적이라고 규정하는 규모이기도 하다. 이 집은 르코르뷔지에가 자기 자신을 위해 지은 유일한 집으로, 마침 친구가 근처에서 레스토랑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부엌을 아예 설계하지 않았고, 먹고 자고 기도하기 위해 지어진 수도사의 거주 공간에서 영감을 얻었다.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본문 128~130쪽)

집 지을 땅 주변으로 목책이 둘러 있었고 대지의 꼭짓점에는 말로 들었던 감나무가 거룩한 표정으로 잔 나무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대지 주변을 빙 돌아보았다. 바로 붙은 언덕에는 참나무가 잔뜩 모여 있었고, 조금 오르니 석물을 제대로 갖춘 묘가 능선의 콧잔등 위에 올라타 있었다. 보아하니 청계산에서 흘러나온 산의 한 줄기였고, 그 줄기는 어떤 문중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듯했다. 나는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며 비탈길을 옆으로 걸으며 내려왔다. 늘 그렇듯 땅을 그리고, 그 안에 생활의 공간을 부어넣었다. 이 집을 이루는 가장 중요한 내용은 ‘성찰’이었다. 부인은 차를 공부하고 차를 마시고, 남편은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불교를 공부하고 좌선을 한다. 가장 먼저 차를 마시는 공간을 집의 전면에 두었고 좌선을 위한 공간을 집의 가장 깊숙한 곳에 넣었다. 「이상적인 지혜에 이르다」(본문 164~165쪽)

보통 집을 짓는다는 것은 건축주와 건축가와 땅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양보하며 서로 자기주장을 하는 일이다. 삼자의 의견을 조합하고 통합해 조화롭게 집을 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주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 일과 같다. 그런데 오래된 집을 고치는 것은 땅과 건축주와 건축가 이외에, 집이라는 또 다른 자아가 끼어들어오는 일이며 그 방정식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이럴 때 건축가의 역할은 그 사이에서 이야기를 듣고 말을 전달하며 종합해 서로 의가 상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결과물을 끄집어내는 일이다. 어쨌거나 도문동 옛집은 성주신들이나 주인이나 얼마나 만족했는지 알 수 없지만, 말끔해지고 다시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청 시렁과 안방 시렁 위에 성주신이 거할 항아리를 한 개씩 올려놓았다.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다」(본문 187~189쪽)

배정된 사업비를 쪼개서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 집을 고쳐주는 일이 우리가 할 일이었다. 창고를 개조해서 만들어 춥고 어두운 집이 일단 문제였지만, 그 옆에 낙후된 축사가 오염된 채 방치되어 있는 등 주변 환경 개선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은 방법이 없어 보였다. 먼저 난방을 위해 설치한 연탄보일러가 제대로 된 환기창도 없이 집 안에 들어와 있어 안전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했다. 단열을 보강해 열손실을 줄이고, 지붕도 개량하기로 하는 등 내부 공간의 개선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무엇보다 수세식 화장실이 없어 어린 두 아들이 불편해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서 그것만은 꼭 해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 「집은 희망으로 짓는다」(본문 248쪽)

한옥에는 좌식 생활을 하던 우리 조상들, 멀리 갈 것도 없이 30여 년 전 우리의 삶이 담겼다. 방에 앉아서 밥을 먹고, 밥상을 물리면 그 자리에서 앉은뱅이책상을 놓고 공부하고, 벽장에서 이불을 꺼내 깔고 자고, 비가 오면 문을 열어 처마에서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를 들었다. 지붕에 가려진 태양의 빛은 흙 마당을 통해 반사되어 천장에 어른거리며 방을 환하게 해주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식탁에 앉아서 밥을 먹어야 하고,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아야 하고, 침대에 누워서 잠을 자야 한다. 그런 가구들은 주거 공간에서 훨씬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 우리가 지금의 입식 생활을 가지고 한옥으로 들어가면, 앉아 있는 공간은 쪼뼛해지고 답답해지고 마루는 조명 없이는 컴컴해진다.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담아내다」(본문 264~265쪽)

목차

책머리에

제1장 가족을 품은 집

행복의 향기가 있다
산을 즐기고 물을 즐기다
아이들이 마당에서 뛰어놀다
즐거운 작당을 꾸미다

손때와 추억이 묻어 있다
살아보고 싶은 집에서 사는 것
집도 나이가 든다
아내의 뜰과 남편의 마당

가족의 삶을 담아내다
완전하지 않은 가족 이야기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
변화하는 가족과 집의 풍경

삶의 여백을 즐기다
우리는 왜 불안해하는가?
권위를 벗어놓고 여백을 즐기다
생활이 비대해지고 욕망에 휩쓸리고

평온한 아름다움을 간직하다
집은 일상복처럼 편안해야 한다
가장 오래된 살림집
엄숙함과 평온함이 공존하다

제2장 사람을 품은 집

부대끼며 살아온 흔적이 있다
즐거움은 먼 곳에 있지 않다
교감하며 온기를 나누다
집의 온도, 마음의 온도

자기 앞의 생, 자기 앞의 집
라이프스타일은 변한다
모던 라이프가 가져온 가상의 세계
나를 그려내고, 나를 담다

시인의 집은 시다
시로 집을 짓다
편하고 아프고 아름다운 공간
바위를 열 듯 비스듬히 길이 열리다

주인의 성품을 닮는다
집은 얼마나 커야 충분한가?
기억과 기록의 땅
화해와 조화를 꿈꾸다

고정관념을 깨다
한옥은 ‘지금 여기의 집’인가?
아주 특별한 2층 한옥
시대와 호응하며 진화하다

제3장 자연을 품은 집

이상적인 지혜에 이르다
불확정성의 원리
우주의 무작위성을 깨닫는 지혜
인간의 불완전성을 완전하게 만드는 길

수직과 수평이 조화를 이루다
선을 긋는다는 것
‘동양의 선’과 ‘서양의 선’
빈 땅에서 선을 찾아내 집을 세우다

경계와 경계를 넘나들다
도를 닦기 위한 첫 관문
100년의 시간을 복원하다
시간의 문이자 이야기로 들어가는 문

자연을 즐기다
오뚝한 산과 유장한 물을 품다
경계를 알 수 없는 정원
책을 읽고 세상을 보다

자연의 질서, 인간의 질서
한국의 문화는 동적이면서 입체적이다
해학과 생략의 미학
회화나무가 만드는 풍경

제4장 이야기를 품은 집

집은 어떻게 완성되는가?
이야기 속에서 살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자세
집은 한 개인의 우주다

집은 사람이 살면서 채워진다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일상성이 주는 안도감과 공감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이야기를 담다

집은 희망으로 짓는다
사람은 희망으로 산다
건축의 재료는 희망이다
희망의 이야기를 담다

우리의 정서와 정신을 담아내다
‘고희동 가옥’에서 가졌던 의문
한옥은 이 시대의 삶을 담을 수 있을까?
우리 시대, 한옥의 가치

비움과 채움의 삶의 풍경
비워져 있지만, 채워져 있는 공간
공간을 풍성하게 만들다
각자의 이야기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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