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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지하철 안에서 맞은편에 앉은 남자를 훔쳐보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달로 가는 사다리」는 누구나 한 번쯤은 그런 비슷한 경험을 했을 법한 일상적 상황이다. ‘나’가 일상을 떠나 도달한 곳은 50년 전 소규모 출판사 편집부이다. 소설은 ‘나’가 그곳에서 머물면서 관찰하고 경험했던 몇 가지 에피소드를 회상하면서 전개된다. 그 편집부에서는 ‘나’를 포함하여 여러 개성적인 인물들이 한 편의 시트콤을 벌인다. ‘나’는 작문 텍스트까지 거쳐 나름 치열한 경쟁을 뚫고 입사한 신입사원으로 부푼 꿈을 꾸었지만, 실상은 사진이나 그림 자료를 찾아오는 편집보조에 불과하고, 더 정확히는 ‘오징어 다리 사 오는 심부름’을 하는 ‘꼬마 김양’으로 불린다. 일보다 회식에 더 열성적인 ‘치고이네르바이젠’ 신봉자 최 선생, S대 사학과 출신으로 현재 자신의 처지에 자괴감을 느끼는 좌파 성향의 김 선생, 영문과를 중퇴하고 얼굴이 못생긴 노처녀 미스 정 언니, 자신이 쓴 시가 한 번 호평받자 무작정 상경한 대책 없는 송 시인, 어엿한 등단 소설가이자 부도직전의 출판사를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묵묵히 이끌어가는 편집장 등은 그곳에 머물렀던 몇 개월간의 추억을 빛내주는 훌륭한 조연들이다. 이 각각의 인물들은 50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독자 바로 곁에서 옥신각신 좌충우돌 살아있는 느낌으로 다가와 소설적 상황에 빠져드는 몰입도가 으뜸이다. 이 매력적 인물들이 펼치는 몰입도 높은 이야기는 소년 이현수의 꿈에 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소년의 꿈 이야기는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달이라는 꿈, 그곳에 오르기 위한 사다리의 비유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나’가 50년 후의 이현수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하는 궁금증 속에서 실제와 허구 사이의 긴장, 일상과 상상 사이의 긴장, 사다리 아래 세계와 달나라 사이의 긴장이 선명한 반짝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하여 숨」은 지루한 일상이 순식간에 악몽으로 변하다면 어떨까? 하는 공상에서 시작된다. 이 작품은 일요일 외출 준비 중인 주인공이 맞이하게 되는 우발적 상황이 폐소공포증과 결합하여 극적 긴장을 연출한다. 단편 소설 특유의 응집력 있는 서사가 인상적인데다 일상적 소재와 기발한 상상을 아찔하게 결합하는데 성공한 작품이다. 주인공이 욕실에 갇혀 자신을 구조해줄 수 있는 사람을 떠올려보다가 결국 포기할 때 밀려오는 서글픔을 적절하게 표현한 것은 이 소설의 독창적인 반짝임이다. 또한 ‘나’의 심리 상태를 서술하는 직관적이고 실감나는 표현방식이 돋보인다. 단순히 ‘나’의 구출 여부에 관한 의미뿐만 아니라 아파트에 사는 일상 속에서 갑작스레 찾아온 절대적 고독, 그리고 고독의 끝에서 자리하고 있을 죽음에 관한 암시까지, 그저 고요한 물속에 누워있는 ‘나’의 모습을 통해 한꺼번에 전달되고 있다. 「차표 한 장 손에 들고」는 ‘나’가 어머니 기일에 큰언니네 집에 갔다가 경의중앙선 열차를 타고 오면서 부모님과 형제를 추억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소설집에 수록된 여러 작품에 나오는 인물 중 가장 손에 잡힐 듯 생생히 형상화 된 인물이다. 소설은 여러 형제자매가 어머니를 추억하고 회상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소설의 결말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여정이다. 잠시 일상을 벗어나 그리운 어머니 품에 안겼다가 다시 쓸쓸한 세상으로 돌아가는 길은 발걸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일상적 삶의 무게를 다시 감당해야 한다. 그러나 한바탕 수다를 떨고, 함께 웃고 울었기에 그들의 앞길은 희망적이다. 세간의 주목을 받는 화려한 삶은 아니더라도 일상 속에서 작은 희망을 찾아낸 자의 당당한 걸음걸이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다정큼나무 꽃이 피면」은 소설 창작 교실이 배경이다. 회원이 한 스무 명 되고, 젊은 시절부터 글을 향한 욕구는 있었으나 마음껏 뜻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창작욕을 불태우는 곳, 그곳에서 소설가인 ‘나’는 회원들에게 소설 창작법을 가르친다. 회원 가운데 하나인 이현아가 말기 폐암 선고를 받으면서, 소설 창작 교실이라는 작가의 평범한 일상적 공간은 낯설고 충격적인 감정의 격랑으로 소용돌이치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는 이현아가 소설을 완성하는지 완성하지 못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녀의 ‘목구멍 너머에 오랫동안 숨겨져 있던 불덩이’를 결국 토해냈다는 사실, 드디어 자기 고백에 성공했다는 사실에 더 주목한다. 울분의 덩어리를 토해내는 진실한 고백이야말로 소설 쓰기의 유일한 방법이라는 사실은 일상을 넘어 아찔한 상상력의 모험을 벌인 끝에 도달한 창작적 모색의 결론인 것이다. 「봄에 홀리다」는 내용의 대부분이 주인공 ‘나’가 집 주변 개천을 산책하면서 떠올린 다양한 사색들로 채워진다. 그러나 조금 더 찬찬히 살펴보면 시간의 흐름에 따른 일상적인 변화가 감지되는데, 가장 뚜렷한 지표는 손자 지민이의 상태다. 처음에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걱정하던 손자가 오리 가족을 보면서 말문이 트이고 나중에는 ‘나’와 함께 개천가를 산책하기에 이른다. 이 소설은 지극히 익숙하게 지나쳐 예전에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소함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자신의 주변에 작은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이 일상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쉬운 방법을 알려 준다. 『오후의 뒤뜰』에 수록된 여러 작품은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비약하는 상상력으로 건져 올려 삶의 엄숙과 비애와 평화를 온몸에 가득 받아들이도록 독자들을 이끌어 근원에 관한 진지한 성찰에 다가가도록 한다.
작가의 말
그런 어느 날 이야기 하나가 나를 찾아왔다. 파블로 네루다에게 시가 찾아왔듯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모르게 네루다에게 시가 찾아왔듯이, 내게도 불현듯 이야기가 찾아왔다. 언 땅을 치고 달아나는 찬바람에 눈을 감았을 때였는지, 죽은 서어나무 밑을 지날 때였는지 모르겠는데, 산이 자그맣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걸음을 멈추고 들으니 그건 어떤 아릿한 이야기의 서두였다. 산이 내게 주는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내 산을 지켜준 내게. 산의 속삭임은 매일 계속되었다. 속삭임은 아주 작아서 온 마음을 모아 듣지 않으면 들을 수 없었다. 산의 이야기를 들으러 나는 매일 산에 올랐다. 한 발 한 발 발자국을 찍으며 이야기를 마음속에 차곡차곡 받아 두었다가 집에 내려와 컴퓨터에 옮겼다. 잊힐 만한 문장은 햇살 받는 벤치에 앉아 메모를 했다. 산이 말하고 내가 받아 적는 작업이 이른 봄까지 계속되었다. 무엇에 들린 듯 받아 적은 이야기는 소설 한 편이 되었다. 신기하고 황홀한 글쓰기였다.
그때쯤 소년 이현수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 사다리 아래서 뭔가를 만들던 남자애들 중 한 아이였다. 그들이 만드는 것은 모형 거북선이었다. 손바닥에 올려놓을 만한 크기였다. 인물사전의 별책부록이라고 했다. 아이들 중 누군가는 내가 사다리를 오르내릴 때마다 휘익휘익! 휘파람을 불어댔다. 나는 사다리를 오르는 일에 처음처럼 조바심치지 않았다. 판탈롱을 입었으면 편했을 텐데 무슨 심사였는지 나는 굳이 미니스커트를 입고 사다리를 오르내렸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사다리를 올랐지만 소년 이현수는 휘파람 부는 아이를 번번이 저지하고 야단쳤다. 그가 작업반장쯤 되는 것 같았다. “에이, 그러지 말라니까. 우리가 저질로 보이잖아!” 그가 말리면 누군가가 말했다. “야, 우리가 좀 밑에 있긴 하잖냐! 쟨 저렇게 높이 있고.” 그 말에 소년이 단호하게 대꾸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밑에 있니? 우리가 평생 모형 거북선이나 만드냐구.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만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 말을 들은 뒤 나는 처음으로 소년을 자세히 바라다봤다. 키가 작고 얼굴도 작았다. 몸은 말랐지만 허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눈빛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눈에 확 뜨일 만큼 형형했다.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만들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그 말은 소년이 자신에게 한 말이었겠지만, 사실은 내게 더 큰 응원의 메시지가 되어 꽂혔다.(「달로 가는 사다리」)
욕조의 물이 식었다. 물을 한 컵 마시고 뜨거운 물을 받는다. 욕실 안이 더운 김으로 가득 찬다. 물속에 몸을 누인다. 가쁘게 토해내는 내 숨소리뿐, 욕실은 너무도 적요하다. 아파트 주민들이 나만 이곳에 가둬놓고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처럼 고요하다. 이 문은 언제 무엇이 의해 열리게 될까.(「그리하여 숨」)
형제가 많으니 성격에도 배움에도 차이가 있고, 사는 수준의 높낮이도 달랐다. 당연히 크고 작은 갈등과 질시가 있었다. (…) 한데 막내가 오십을 훌쩍 넘기자 모든 경계가 허물어졌다. 너무 분명해서 도저히 허물 수 없을 것 같던 구획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평준화되었다. 배움도, 살림살이 형편도, 성격도, 인물까지도. 젊어서는 아버지를 빼닮았던 막내와 남동생까지도 희한할 만큼 엄마 얼굴이 되어 버렸다.(「차표 한 장 손에 들고」)
그건 평생 따라다니는 지병 같은 거다. 소설만 안 쓴다면 이 나이에 열패감에 시달릴 일은 없을 텐데 싶어 글을 떠나보기도 하지만, 소설이 아니고는 내가 살아 있다는 증명을 해줄 것이 없으니,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처럼 매번 다시 돌아오고 있다. (…) 그럼에도 아직 내가 소설을 포기 못 하듯, 우리 회원들도 글 쓰는 일의 지난함을 다 알면서 첫사랑보다도 더 징글징글하게 못 잊는 글을 찾아 여기 왔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그들과 함께 달릴 수밖에. “구중궁궐처럼 깊은 곳에 감춰뒀던 속엣것을 털어내어 수없이 덖다보면 누군가의 가슴팍에 쏙 들어앉을 글을 쓰게 될 거예요. 기대합니다.”(「다정큼나무 꽃이 피면」)
그들을 보는 순간 아, 어떡하지 하는 탄식이 내 입에서 터져 나왔다. 어째서 그런 탄식이 터져 나왔는지 모르겠다. 새끼 일곱 마리를 턱 하니 낳아 세상에 데리고 나온 어미 흰뺨검둥오리가 대견해서 그랬는지, 이 개울에서 험난한 시간을 살아내야 할 새끼들에 대한 연민과 안쓰러움으로 그랬는지 알 수는 없다. 나는 휴대폰 카메라 속에 흰뺨검둥오리 가족의 탄생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감격과 연민과 안쓰러움을 함께 담았다.(「봄에 홀리다」)
달로 가는 사다리 · 7
그리하여 숨 · 47
차표 한 장 손에 들고 · 81
다정큼나무 꽃이 피면 · 121
봄에 홀리다 · 159
해설 _ 일상 속 작은 희망을 찾아서 · 195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