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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30년. 한국의 수많은 학자와 공무원들이 독일을 찾는다. 주요 기관을 방문해 고위 관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베를린장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놓친다. 독일 통일의 민낯은 바로 없어져 버린 국가, 동독에 사는 이들의 일상에 있다는 사실을.
구동독의 대표 도시 라이프치히에 사는 저자들이 뭉치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다. 라이프치히에 사는 내내 ‘동독 괜찮냐’라는 편견의 소리를 들었다. 물론 서독의 시선에서 온 질문이었다. 여전히 대상화되어 있는 동독을 좀 더 살펴보고자 했다. 아주 보통의 삶, 먹고 살며 아이를 키우고, 공부하고, 일하고, 문화를 즐기는 일상에서 동독의 어제와 오늘을 찾았다. 눈에 띄게 변하는 라이프치히의 풍경과 경제 정치적 일상에서 통일의 흔적을 찾았다.
2019년 오늘. 독일에서는 ‘다시 장벽을 세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독일정부는 매년 통일을 기념하며 성과를 알리기 바빴지만, 끊긴 철도에 버려진 녹슨 기차 마냥 외면당하던 이들에게 혐오와 분노가 싹텄다. 구동독, 통일의 상처가 곪는 곳에서 외국인과 난민을 혐오하는 극우 정당 AfD가 태어났다. 분노와 혐오는 다시 동서독을 가르고, 인간들은 마음의 벽을 세웠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가 지난 10월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독 주민의 58%가 “통일 이후 국가의 전횡이 더 나빠지거나 변한 게 없다”고 답했다. 41%는 “통일 이후 표현의 자유가 더욱 나빠지거나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가 좋았지’라는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동독에서 태어난 AfD가 독일 전역에서 지지를 받고, 혐오가 독일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다시 동독을 보기 시작했다. 통일 30주년이 되어서야 ‘이제는 동독의 목소리를 들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독에서 일주일은>은 라이프치히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저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찾아낸 동독의 이야기다. 언젠가는 다가올 우리의 통일 과정에서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에 책갈피를 꽂았다. 동독에서 일주일을 지내다 보면,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베를린장벽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삶이 보인다. 통계와 숫자가 보여주지 않는 동독의 이야기를 이제는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출판사 리뷰
1989년,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지 올해로 30년. 한국의 수많은 학자와 공무원들이 독일을 찾는다. 주요 기관을 방문해 고위 관료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고, 베를린장벽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놓친다. 독일 통일의 민낯은 바로 없어져 버린 국가, 동독에 사는 이들의 일상에 있다는 사실을. 구동독의 대표 도시 라이프치히에 사는 저자들이 뭉치게 된 계기도 여기에 있다. 라이프치히에 사는 내내 ‘동독 괜찮냐’라는 편견의 소리를 들었다. 물론 서독의 시선에서 온 질문이었다. 여전히 대상화되어 있는 동독을 좀 더 살펴보고자 했다. 아주 보통의 삶, 먹고 살며 아이를 키우고, 공부하고, 일하고, 문화를 즐기는 일상에서 동독의 어제와 오늘을 찾았다. 눈에 띄게 변하는 라이프치히의 풍경과 경제 정치적 일상에서 통일의 흔적을 찾았다. 2019년 오늘. 독일에서는 ‘다시 장벽을 세우라’는 이야기가 들린다. 독일정부는 매년 통일을 기념하며 성과를 알리기 바빴지만, 끊긴 철도에 버려진 녹슨 기차 마냥 외면당하던 이들에게 혐오와 분노가 싹텄다. 구동독, 통일의 상처가 곪는 곳에서 외국인과 난민을 혐오하는 극우 정당 AfD가 태어났다. 분노와 혐오는 다시 동서독을 가르고, 인간들은 마음의 벽을 세웠다. 독일 주간지 <디 차이트(Die Zeit)>가 지난 10월 공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독 주민의 58%가 “통일 이후 국가의 전횡이 더 나빠지거나 변한 게 없다”고 답했다. 41%는 “통일 이후 표현의 자유가 더욱 나빠지거나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때가 좋았지’라는 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동독에서 태어난 AfD가 독일 전역에서 지지를 받고, 혐오가 독일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다시 동독을 보기 시작했다. 통일 30주년이 되어서야 ‘이제는 동독의 목소리를 들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독에서 일주일은>은 라이프치히에서 오랜 기간 살아온 저자들이 직접 경험하고, 찾아낸 동독의 이야기다. 언젠가는 다가올 우리의 통일 과정에서 놓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들에 책갈피를 꽂았다. 동독에서 일주일을 지내다 보면, 관광객들이 바글거리는 베를린장벽에서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삶이 보인다. 통계와 숫자가 보여주지 않는 동독의 이야기를 이제는 한 번쯤 들어보는 것도 좋겠다. 책 속에서 첫 번째 장벽 동독 선생님이라니, 아무리 지금 살고 있는 라이프치히가 구동독 지역이라 해도 그렇지. 동독은 25년도 더 된 역사 속의 무너진 나라가 아니던가. 분단 독일이라는 옛날이야기가 어린 내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p.23 이와 반대로 전쟁 후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동독에서 노동은 신성했다. 그리고 신성한 노동을 함에 있어 남녀 구별은 없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이든 아니든 사회를 위해서 누구나 일을 해야만 했다. 따라서 부모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아줄 탁아 시설 및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교실 시스템 역시 정부의 진두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갖춰지게 되었다. p.35 두 번째 장벽 독일의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라는 주제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서독 출신 학생들은 나와 같은 이유로 동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소위 ‘베씨(Wessi)’의 동독행은 나보다 더한 역경과 비아냥을 이겨내야 했다. p.44 많은 서독 학생들에게 구동독은 여전히 극동 지역과 다를 바 없었다. 거기다가 최근 극우파들의 본거지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니 구동독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p.73 세 번째 장벽 이곳엔 상업성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도, 패스트푸드도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 초입에 위치한 유일한 패스트푸드, 버거킹은 손님보다 파리가 더 많을 정도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p.89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명성은 동독이라는 암울한 시대상과 작가들의 극복 의지 그리고 통일 후 창작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정부와 작가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p.100 네 번째 장벽 동서로 갈려졌던 독일에 새로운 시대가 왔지만 청년들의 상황은 불투명하고 불안정했다. 특히 완전히 새로운 정치 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 동독 지역 청년들은 그 상황이 더욱 어려웠을 테다. 혼란은 가중되고 결속은 약해졌다. p.113 독일이 겪은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곳의 음악도 그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굴곡진 길을 지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p.120 통일이 된 지 30여 년이 지나며 이곳의 음악도 얼룩졌던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체제와 사상에 짓눌리지도, 체제의 도구로 악용되지도 않는 자유와 평화의 터전에서 음악은 다시 본연의 가치와 역할을 되찾았다. p.132 다섯 번째 장벽 제대로 된 주택 공급과 부동산 관리에 관한 정부 정책의 공백을 틈타 라이프치히 주거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서독의 자본이었다. p.145 내 가족을 보듬고, 이웃과 더불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 한 칸을 마련하는 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이 소박한 꿈은 동독 시절에는 당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만 이뤄졌고, 지금은 돈 많은 부자에게만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p.156 여섯 번째 장벽 통일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동서독 지역 간의 경제 통합과 균형의 꿈은 여전히 요원하다. 통일 당시의 예상보다 앞으로도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P.174 동서를 가로막던 장벽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동서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 같다. P.175 일곱 번째 장벽 장벽이 무너진 후 새로운 소외와 박탈감으로 힘겨워하는 인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자신들을 가두던 체제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외쳤던 구호를 이제 자신들을 보호해줄 장벽을 세우기 위해 외치고 있다. P.189 만약 남북한의 통일이 현실화된다면 이때 남한 사회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 후 사회적 소외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지원할 수 있을까? 만약 이런 준비와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통일 한국에서 ‘압게행텐 (die Abgeha?ngten)’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소외된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과 증오는 한국 사회의 지반을 다시 뒤흔드는 위험이 될 수 있다. P.190-191
프롤로그: 거기 동독인데 괜찮겠어?
독일 라이프치히에 사는 우리들이 이곳으로 오기 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우리뿐만이 아니다. 서독에 살던 독일인들도, 독일 이외의 국가에서 온 ‘외국인’들도, 동독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들었다.
독일 통일이 된 지 30년. 동서를 가르던 장벽은 무너졌다. 장벽은 이제 파편이 되어 기념품으로 팔리고 있지만, 동독으로 들어가는 ‘외부인’들은 여전히 장벽 검문소를 지나듯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동독에서 살아도 정말 괜찮겠어?”
모두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라이프치히에 자리를 잡았다. 우연과 필연들이 얽히고, 선택과 선택들이 모여 지금 이 순간, 그곳에 있는 여러분들처럼 우리도 라이프치히라는 도시로 흘러들어왔다. ‘구동독’이라는 딱지가 지워지지 않은 곳. 라이프치히에 살면서 오해와 편견을 풀어내고 나면, 또 다른 오해와 편견이 다가왔다. 동서를 가르는 장벽은 무너지고 또다시 세워지고를 반복했다. 우리의 프로젝트는 그렇게 시작됐다.
라이프치히에서 몇 번의 사계절을 보냈다. 라이프치히의 내면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었다. 대학에서, 회사에서, 집에서, 광장에서 라이프치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로 했다. 편견의 시선을 지워보자. 구동독 도시 라이프치히가 진짜 어떤 곳인지 이야기해보자. 동시에 우리나라의 지금을 생각해봤다. 언젠가 통일이 된다면, 우리는 북한의 어떤 도시에서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그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라이프치히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고자 했다.
글을 이어가는 순간에도 라이프치히는 계속 변했다. 모든 변화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라이프치거의 시선으로 구동독 도시에서의 삶과 그 도시의 생을 솔직하게 담았다.
사실 라이프치히는 억울하다. ‘구동독’ 중에서도 라이프치히는 조금 특별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통일의 시발점이 된 촛불혁명의 시작점이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열망이 높은 곳이다. 독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대학이 있고, 일찍이 지식산업과 문화 예술이 번성했던 곳이다.
라이프치히는 지금 구동독을 휩쓸고 있는 신나치와 극우파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좌파 성향을 유지하고 있는 도시다. 라이프치거들은 종종 구동독과 라이프치히를 분리해서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생각조차 ‘구동독’에 대한 이미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라이프치거들도 구동독 스스로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독에서 살아도 괜찮겠어?”
결론부터 말하자면 물론 괜찮았다. 과거형인 이유는 미래까지 장담할 수는 없어서다. 장벽은 정말로 무너진 것일까. 라이프치히에서 살면서 경험한 일곱 가지 장벽 이야기를 하나씩 하나씩 들여다보았다. 우리가 본 장벽이, 우리가 지워낸 장벽이 물론 다는 아니다. 장벽은 무너지고, 또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한다. 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니까.
에필로그:
수십 년간 분단되었다가 다시 합쳐진 통일 국가. 우리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요원한 대상이다. 남북한이 나눠지기 이전을 경험했던 부모 세대와 달리, 분단된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리 세대에게는 평양과 개성이 도쿄나 베이징보다 더 멀고 낯설게 느껴진다. 때문에 통일된 한반도를 상상하고 그려보기에는 젊은 세대가 가진 경험과 상상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북한이나 통일 관련해서는 기껏해야 TV 프로그램의 가십 정도 아니면 아예 나와 상관없는 먼 나라 일쯤으로 여기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된 저자들도 별반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독일에 오게 되었고, 그중에서도 구동독의 도시 라이프치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통일된 독일, 그리고 통일 후의 구동독 지역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통일의 길에 먼저 들어선 독일을 경험하며 과연 통일된 한반도는 어떨까, 통일 이후 남북한의 사람들은 모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통일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와 문제들을 안겨줄까 하는 물음들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물음들을 갖고 통일 독일의 현재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통일 독일이라는 구체적인 현실을 통해서 한반도 통일이라는 미래를 보다 잘 그려볼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서였다.
그렇게 해서 라이프치히의 주거, 일자리, 교육, 문화 등 이곳 구동독 지역의 생활환경을 1년간 글과 사진으로 담아보는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애초 계획과 달리 작업은 한 해를 넘기고 지금 이 책을 내기까지 3년의 시간이 지났다. 이곳 라이프치히가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더 흥미롭고 풍부한 이야기들을 지니고 있어 이를 글로 담아내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처음 시작 때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중요한 사건과 변화들이 그간 생겨났다. 특히 그간 독일 내, 특히 구동독 지역에 극우파들이 세를 불리고 2017년 독일 총선에서 주요 정당으로 자리 잡은 사건은 통일 독일의 현재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독일의 통일이 아직 미완의 과정에 있다는 사실,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벽들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지난 3년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끼고 경험했던 것도 같은 선상에 있다. 독일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라 생각한다. 한편 반가운 것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동안 남북한 관계가 극적으로 변화한 사실이다. 누구도 예상 못했던 남북한 정상회담과 교류 행사, 그리고 북미 정상회담까지 놀라운 사건들이 2018년 한 해 동안 숨 가쁘게 이어졌다. 라이프치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무된 시간이었다. 통일에 대한, 남북한 관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건설적인 논의들이 활발해질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한편 걱정도 됐다. 몇 번의 극적인 이벤트 후 관심과 기대가 금세 사그라지지 않을지. 통일은 한순간의 장밋빛 사건이 아니라 오랜 시간의 인내와 노력이 요구되는 과정의 산물임을 독일의 통일은 말해주고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통일된 한반도를 구상하고 구체적인 논의와 준비를 진척 시켜 나가야만, 통일을 남북한 주민 모두에게 불행이 아닌 축복이 되는 길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이 이를 위해 국민적 공감대와 논의의 장을 만들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한다. 한편 이 책이 출간되는 2019년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30주년이 되는 해라 더욱 뜻깊다. 독일 내에서도 통일 후 30년을 되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는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독일 사회는 자신들의 현주소를 어떻게 진단할지 궁금하다. 또 독일인들 스스로 인식하는 자화상과 이방인의 눈으로 본 통일 독일의 모습이 어떻게 닮아 있고, 어떻게 다를지 궁금하다.
분단의 아픔을 공유하는 한국과 독일이기에 통일 독일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남다르고 의미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독일 통일 30주년을 맞으며 이 책이 통일 독일의 한 면을 이해하는데, 그리고 독일 사례를 통해 한반도의 통일을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고 논의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2019년 11월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첫 번째 장벽
동독 선생님이라니, 아무리 지금 살고 있는 라이프치히가 구동독 지역이라 해도 그렇지. 동독은 25년도 더 된 역사 속의 무너진 나라가 아니던가. 분단 독일이라는 옛날이야기가 어린 내 아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p.23
이와 반대로 전쟁 후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동독에서 노동은 신성했다. 그리고 신성한 노동을 함에 있어 남녀 구별은 없었다. 아이를 낳은 엄마이든 아니든 사회를 위해서 누구나 일을 해야만 했다. 따라서 부모가 일하는 동안 아이를 맡아줄 탁아 시설 및 초등학교 방과 후 돌봄교실 시스템 역시 정부의 진두지휘 아래 체계적으로 갖춰지게 되었다. p.35
두 번째 장벽
독일의 젊은 세대에게 ‘통일’이라는 주제는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서독 출신 학생들은 나와 같은 이유로 동독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소위 ‘베씨(Wessi)’의 동독행은 나보다 더한 역경과 비아냥을 이겨내야 했다. p.44
많은 서독 학생들에게 구동독은 여전히 극동 지역과 다를 바 없었다. 거기다가 최근 극우파들의 본거지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으니 구동독의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p.73
세 번째 장벽
이곳엔 상업성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도, 패스트푸드도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 초입에 위치한 유일한 패스트푸드, 버거킹은 손님보다 파리가 더 많을 정도로 무관심 속에 방치되고 있다. p.89
신 라이프치히 화파의 명성은 동독이라는 암울한 시대상과 작가들의 극복 의지 그리고 통일 후 창작 환경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한 정부와 작가들의 노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다. p.100
네 번째 장벽
동서로 갈려졌던 독일에 새로운 시대가 왔지만 청년들의 상황은 불투명하고 불안정했다. 특히 완전히 새로운 정치 사회 시스템을 받아들여야 하는 동독 지역 청년들은 그 상황이 더욱 어려웠을 테다. 혼란은 가중되고 결속은 약해졌다. p.113
독일이 겪은 격동의 근현대사 속에서 이곳의 음악도 그런 역사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굴곡진 길을 지나왔음을 알게 되었다. p.120
통일이 된 지 30여 년이 지나며 이곳의 음악도 얼룩졌던 지난 과거에서 벗어나 다시 날갯짓을 하고 있다. 체제와 사상에 짓눌리지도, 체제의 도구로 악용되지도 않는 자유와 평화의 터전에서 음악은 다시 본연의 가치와 역할을 되찾았다. p.132
다섯 번째 장벽
제대로 된 주택 공급과 부동산 관리에 관한 정부 정책의 공백을 틈타 라이프치히 주거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서독의 자본이었다. p.145
내 가족을 보듬고, 이웃과 더불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보금자리 한 칸을 마련하는 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이 소박한 꿈은 동독 시절에는 당에 충성하는 사람에게만 이뤄졌고, 지금은 돈 많은 부자에게만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p.156
여섯 번째 장벽
통일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동서독 지역 간의 경제 통합과 균형의 꿈은 여전히 요원하다. 통일 당시의 예상보다 앞으로도 훨씬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P.174
동서를 가로막던 장벽은 이제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장벽이 동서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있는 것 같다. P.175
일곱 번째 장벽
장벽이 무너진 후 새로운 소외와 박탈감으로 힘겨워하는 인민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자신들을 가두던 체제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 외쳤던 구호를 이제 자신들을 보호해줄 장벽을 세우기 위해 외치고 있다. P.189
만약 남북한의 통일이 현실화된다면 이때 남한 사회는 북한 주민들이 통일 후 사회적 소외층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이들을 제대로 포용하고 지원할 수 있을까? 만약 이런 준비와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북한 주민들은 통일 한국에서 ‘압게행텐 (die Abgehängten)’의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소외된 자리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과 증오는 한국 사회의 지반을 다시 뒤흔드는 위험이 될 수 있다. P.190-191
프롤로그 /거기 동독인데 괜찮겠어? 12\t
첫 번째 장벽: 교육 /높아지는 자존감, 낮아지는 교육 장벽 19\t
두 번째 장벽: 대학 /장벽의 흔적을 지우는 동서독 대학생들 43\t
세 번째 장벽: 도시재생 /동독의 예술, 장벽을 넘는 무지개 사다리 75\t
네 번째 장벽: 음악 /선율은 장벽을 넘어 흐른다: 라이프치히의 두 음악 축제 이야기 103
다섯 번째 장벽: 주택 양극화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견고한 부동산 장벽 135 \t
여섯 번째 장벽: 경제 /여전히 허물지 못한 동서독의 경제 장벽 159\t
일곱 번째 장벽: 정치 /소외된 땅에 세워지는 분노의 장벽 179\t
에필로그 /라이프치히 프로젝트 19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