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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인 목은, 성리학 발전에 큰 공헌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은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 중의 한 사람이다. 대사성, 정당문학,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그는 정방을 폐지하고, 3년상을 제도화하였다. 그리고 김구용·정몽주 등과 강론, 성리학 발전에 공헌했으며, 우왕의 사부였다. 위화도 회군 후 창(昌)을 즉위시켜 이성계를 억제하려 했던 이색 선생은 고려의 마지막 대학자이자 정치가로, 또 혼란스러운 격동의 시대적 환경을 성실히 감내한 위대한 지식인으로 고려 왕조의 마지막을 지켰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조선 초기 개국에 공이 있는 유학자 출신 중에는 비록 이색 선생을 적대시한 인물도 있었지만, 이색 선생의 가르침과 사상적 지도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 이후 그들이 세운 조선은 개국의 사상적인 면에서 이색 선생을 떠날 수가 없었다. 따라서 조선의 성리학은 모두 이색 선생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하여 목은 이색 선생을 조선 성리학의 비조(鼻祖)로 삼게 된 이유를 알 수 있다. 원서(原書) 1957년 출간, 읽기 편하게 역주(譯註) 달아 보강 이 책은 1957년에 이미 출간된 바 있다. 저저가 서문에 말하였듯이 그 당시 우리나라의 역사인물에 대한 위인전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은 시절이었는데 《목은(牧隱) 이색선생약전(李穡先生略傳)》은 그러한 시절에 그나마 접할 수 있었던 우리 역사인물의 위인전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의 역·주자(譯·註者)인 이중원 씨는 “이 책이 출판한지 오래되어 절판되고 또한 혹 헌 책방에서 구할 수 있더라도 당시의 한글 맞춤법과 현재의 맞춤법과는 많이 달라서 읽기에 매우 불편하였다”고 말하고 “따라서 오늘날 사용하는 한글 맞춤법에 맞추어 번역(飜譯)과 주석(註釋)을 달아 보강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목은 이색 선생의 위인전은 사실 이렇게 간략하게 이루어 질 수 없는 것”이라는 그는 또 “고려사를 보면 고려 공민왕 이후 조선이 세워져서도 당시의 대부분의 정치적 사건에 관여되어 있어 그 내용은 몇 배로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보다 구체적이고 풍부한 내용의 위인전을 기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1. 목은(牧隱) 선생의 출생
목은 선생의 이름은 색(穡)이며, 자(字)는 영숙(?叔), 호(號)는 목은(牧隱)이다. 고려(高麗) 충숙왕(忠肅王) 15년(1328년) 무진(戊辰) 5월 9일 신미(辛未)에 경상북도 영해(寧海) 땅 괴시촌(槐市村) 또는 호지말(濠池村) 무가정(無價亭) 터에서 출생했다. 태어날 때 그 지방의 풀과 나무가 다 말라서 이상하게 여겼다. 이 일로 《한산읍지(韓山邑誌)》에 목은의 출생지를 한산 이울(고촌枯村)이라고 되어 있다. 즉, 선생의 선대(先代) 여러분이 살았던 마을이기도 하므로 후세 사람이 추측으로 이렇게 기록을 한 것이다. 그러나 목은이 지은 시(詩)에 “영해는 나의 시골, 문물이 동방에 으뜸이다”라고 하였고 또 “내가 나서 두 살 때에 부모가 한산으로 돌아오시었다”라고 한 말을 보더라도 영해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고 또 선생이 돌아가신 후 약 7·80년 된 때에 김종직(金宗直) 선생이 읊은 시를 보면 “선생이 한 번 나심에 사람의 상서(祥瑞)로운 조짐이 있으니 이로부터 단양의 초목이 말랐도다”라고 하였다. 이 시는 김종직 선생의 영해(寧海) 회고시(懷古詩)이다. 현재는 이 괴시촌이 영양(英陽) 남씨(南氏)들의 집단 거주지가 되었다. 마을 가운데에 경목재(敬牧齋)라는 재각(齋閣)이 있고 또 후손(後孫) 이산보(李山甫)가 경상감사(慶尙監司)로 갔을 때에 마을 앞의 큰길가에 ‘가정목은양선생유허비(稼亭牧隱兩先生遺墟碑’)를 만들어 세웠고, 또 그 후에 후손 이경재(李景在)가 경상감사를 갔을 때에 비각(碑閣)을 지었으며, 그 후에 군수(郡守) 이병옥(李炳?)이 중수(重修)하였고 또 그 후에는 안동(安東) 소호리(蘇湖里)에 사는 후손들이 몇 번이고 중수하였다.
인걸지령(人傑地靈)이란 말은 왕발(王勃)이 한 말이지만 이 호지말을 볼 때에 과연 명승지(名勝地)인 것을 알 수가 있다. 태백산맥(太白山脈)이 남으로 남으로 뻗어 내려가다가 한 가닥이 영덕(盈德)에서부터 역룡(逆龍)으로 5·60리를 동해 바닷가를 거슬러 올라가서 관어대(觀魚臺)에서 감돌면서 끝을 막았고, 호지말의 뒷산은 일출봉(日出峰)과 월출봉(月出峰)이 높이 솟아있다. 그 전면에는 넓고 긴 십여 리나 되는 비옥한 평야가 전개되어서 어염시수(魚鹽柴水)가 편리한, 살기 좋고 경치가 좋은 마을이요 그 가운데 무가정(無價亭) 터가 있는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머리말
1. 목은(牧隱) 선생의 출생
2. 목은 선생의 가정(家庭)
3. 목은 선생의 유소년(幼少年) 시대
4. 목은 선생의 결혼
5. 목은 선생의 외국(外國) 유학(遊學) 시대(時代)
6. 목은 선생의 초기(初期) 정견(政見)
7. 목은 선생의 출세영달(出世榮達)
8. 한산(韓山) 팔경시(八景詩)
9. 목은 선생의 동귀(東歸)
10. 삼년상제(三年喪制) 행하기를 청하다
11. 왜구의 횡행과 그 대책
12. 홍건적(紅巾賊)의 난리(亂離)
13. 목은 선생의 귀현(貴顯) 시대
14. 《가정집(稼亭集)》의 편집(編輯) 및 간행(刊行)
15. 복위표(復位表)
16. 성리학설(性理學說)과 유학(儒學) 진흥(振興)
17. 목은 선생의 충성(忠誠)
18. 인재의 등용과 유도(儒道)의 진흥(振興)
19. 공민왕의 대우(待遇)를 받다
20. 목은과 이태조(李太祖)와의 친분(親分)
21. 목은 선생의 불우(不遇)
22. 목은 선생과 위화도(威化島) 반군(反軍)
23. 목은 선생과 명(明) 태조(太祖)
24. 목은 선생과 이성계 장군과의 알력
25. 목은 선생의 장단(長湍) 유배(流配)
26. 목은 선생의 박해(迫害) 생활
27. 목은 선생의 함창 유형(流刑)
28. 목은과 정포은(鄭圃隱)
29. 목은 선생과 혁명 후의 정세
30. 목은 선생의 역책(易?)
31. 목은 선생과 그 문집(文集)
32. 목은 선생의 영정(影幀)
33. 목은 선생의 숭고한 인격(人格)
부록(附錄)
참고도서목록(參考圖書目錄)
역자의 일러두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