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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거짓말 페미니즘이 발견한 그림 속 진실

조이한 저 | 한겨레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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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403107 / 352쪽 142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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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작가라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다” 독일 화가 오토 딕스는 〈대도시〉라는 작품에서 1차대전 이후 독일의 참혹한 풍경과 타락한 사회상을 가감 없이 그려낸다. 전쟁으로 부자들은 더욱 부자가 되지만, 전쟁에 동원된 병사들은 불구가 되고 거리에는 창녀들이 넘쳐난다. 저자는 당시 ‘있는 자’들의 위선과 빈부격차를 폭로하는 이 그림에서도 불편하고 부당한 젠더적 시각이 깔려 있음을 지적한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타락한 여성들의 모습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오른쪽의 붉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의 털목도리는 여성 성기를 닮았다. 왜 도덕적 타락의 증거가 여인의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가? 남자들보다 일자리를 얻을 기회도 적고 전쟁으로 보호자도 잃은 여성들이 늙어버린 몸이라도 팔아야 생계를 이을 수 있었던 현실에 대한 연민은 이 그림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_72쪽 그리스신화의 ‘레다와 백조’ 모티프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아름다운 레다에게 반한 제우스는 백조로 변신해 그녀에게 접근했고 순식간에 그녀를 덮친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세잔을 비롯해 여러 현대 예술가들이 이 주제로 작품을 창작했다. 18세기 프랑스의 화가 프랑수아 부셰가 그린 〈레다와 백조〉는 굉장히 자극적이다. 벌거벗고 침대에 누운 레다의 성기는 그대로 노출되어 있고, 백조는 모가지를 길게 빼고 그녀의 성기를 바라본다. “이건 사랑이 아니다. 제우스는 유부녀 레다를 강간했다. 모습을 바꿔서 접근했고 원치 않는데 임신을 시켰다. 언제나 그렇듯 제우스는 자기 모습 그대로를 노출하지 않는다. 그는 구름으로, 황금빛 비로, 황소로, 백조로, 독수리로, 수도 없이 변신하면서 맘에 드는 대상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덮친다. (…) 그런데도 대부분의 화가들은 레다가 백조를 품에 안고 절정에 달해 오묘한 표정을 짓는 장면으로 그린다.” _221쪽 이 그림에서 여성은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포르노적으로 코드화된 남성 시각으로 묘사된다. 서양미술사에는 이렇듯 젠더적으로 불공평한 시각이 넘쳐난다. 그러나 이것이 어디 미술사에만 국한된 이야기일까? 아일랜드 시인 W. B. 예이츠도 〈레다와 백조〉라는 동명의 시에서 제우스의 겁탈 장면을 “깃털에 싸인 영광”이라고 표현한다. “그 겁에 질린 힘없는 손가락들이 어찌 깃털에 싸인 영광을 자신의 무너지는 허벅지에서 밀어낼 수 있겠는가?”(223쪽)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이외수 작가가 SNS를 통해 올려 ‘여성혐오’라는 비판을 받았던 시 〈단풍〉을 언급하며, 뒤틀린 미술의 역사를 곧 우리의 현실과 연결시킨다. 그리하여 이 문제는 미술사의 문제를 넘어 우리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가 된다. 이런 점에서 저자의 비판은 매섭고 거침이 없다. “정의롭지 못하고 불평등한 사회에 대해 날카로운 시선을 던지는 작가라도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는 둔감하기 짝이 없다.”(72쪽) 기울어진 감각, 빼앗긴 상상력, 강요당한 아름다움… 뒤틀린 미술의 역사를 거침없이 도발하는 페미니스트의 그림 읽기 예술은 현실의 반영이며, 미술의 역사는 남성 중심주의 문화에서 쓰여진 여성의 역사를 반영한다. “여자는 예쁘고 봐야 한다”는 말이 당연시되는 사회에서 여성은 원래부터 아름다움의 대상이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과거 여성은 추한 존재로 규정되었고 심지어 필요에 따라 ‘악녀’나 ‘마녀’로 규정되기도 했다. 또한 고대 신화에서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폭력이 사랑으로 포장되고 성적 불평등이 당연시되는 사이 여성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존재로 재현되었다. 이런 역사를 지나 현대의 수많은 여성 미술가들은 여성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사회적 통념과 관습에 저항하는 다양한 작업들을 시도해왔다. 이 책은 신화와 성서, 문학과 역사, 여성학과 미학을 아우르며 탄탄한 인문학적 깊이로 기나긴 시간의 여성사를 한 권의 책으로 갈무리한다. 페미니즘은 개인이 주체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주장이자 실천이다. 저자가 미술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제안하는 ‘나만의 시각으로 다르게 보기’는 그래서 페미니즘과 맞닿아 있다. 저자가 쓰는 미술사는 곧 여성의 역사이기도 하며, 그것은 예술의 영역을 넘어 우리가 사는 현실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다. 캐테 콜비츠의 작품 〈죽은 아이를 안은 여인〉을 보며 세월호로 자식을 잃은 어미를 애도하고, 바버라 크루거의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를 통해 대한민국에서 증가하는 성폭력의 데이터를 제시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강간〉에 이르러서는 온몸에 검은 천을 두른 터키의 여인들과 한국의 탈코르셋 운동을 나란히 이야기한다. 저자의 글쓰기는 에두르지 않고 콕 집어 말해 제대로 주목하게 한다. 어쩌면 한쪽의 입장에서 쓰여진 미술의 역사를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는 동안, 독자들은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또한 젠더적으로 얼마나 기울어져 있었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고 나면 이제껏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서울에서 태어나 성신여자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대학 졸업 후 1992년 독일로 유학가기 전까지 노동자 문화운동연합에서 가수로 활동했다. 독일 유학 중에는 베를린 훔볼트 대학에서 미술사와 젠더학을 공부했다. 2005년에 귀국하여 인하대, 경원대 대학원, 서강대 평생교육원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한겨레 문화센터, 문예 아카데미, 상상마당 등에서도 일반인들을 위한 미술사를 강의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천.천.히 그림읽기󰡕, 󰡔그림에 갇힌 남자󰡕, 󰡔위험한 미술관󰡕, 󰡔혼돈의 시대를 기혹한 고야󰡕, 󰡔베를린, 젊은 예술가들의 천국󰡕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이 그림책은 왜 비쌀까󰡕, 󰡔게르하르트 리히터: 독일에서 온 화가󰡕가 있다.

책 속에서

여자들은 환갑이 넘으면 거울을 보지 않는다는 속설처럼, 여자들에게 노화는 ‘포기’ 혹은 ‘젊음을 되돌리려는 안타까운 시도’와 연결된다. 쿠엔틴 마시스의 그림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다분히 여성혐오적이다. 실제로 주변을 둘러보자. 늙어서도 나잇값 못하고 젊은 여자 쫓아다니며, 조금만 친절을 베풀면 자기를 좋아하는 줄 알고 껄떡대는 남자가 어디 한둘인가? 프란스 할스나 얀 스텐, 피테르 데 호흐 같은 화가들의 그림에서 그런 남자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 대개는 유머와 함께 은유적으로 묘사된다. 허튼짓을 하는 남자의 외모를 통해 직접적으로 ‘추’를 드러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 서양미술에서는 도덕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추함을 드러낼 때 여자의 몸을 사용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이다.
_34~35쪽 〈기괴한 늙은 여자와 중후한 늙은 남자〉


《향연》에는 젊은이의 아름다운 육체를 보고도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인품을 찬양하는 내용이 나오지만, 여기서 드는 불경스러운 의문 하나! 소크라테스는 정말로 왜 그랬을까? 많은 이들이 이 대목에서 소크라테스의 초인적인 절제력과 정신력을 언급한다. 그런데 그건 소크라테스가 동성애자임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당시 귀족이나 지식인들에게 동성애가 권장되었고 진정한 사랑은 남자들끼리 하는 거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지만, 만일 소크라테스가 이성애자였다면 아름다운 남자를 보고도 끌리지 않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오늘날 이성애자를 기본으로 놓고 동성애자를 별종으로 취급하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전제하에 소크라테스를 두고 “참 이상한 사람일세. 아름다운 남자를 보고도 서질 않는단 말이야?”라고 했던 거라면? 그런 사회에서 이성애자였을 수도 있는 소크라테스는 얼마나 괴로웠을까? 고상한 도시국가 시민으로서 마땅히 동성애자여야 하는데 자신은 동성에게 끌리지 않고, 차마 그 사실을 말할 수는 없고……
_94~95쪽 〈에로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눈을 뗄 수 없도록 아름답지만 절대로 순종적이지 않은 여자, 남자의 말을 무조건 따르지 않는 여자, “우리가 동등하다면 네가 왜 항상 내게 명령하는가”라고 ‘생각’할 줄 알고 의문을 제기하는 여자, 자신의 성욕을 인정하고 욕망과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 편안하지만 종속적인 낙원을 스스로 박차고 나간 여자는 악마로 내몰리고 악마와 더불어 살아간다. 여자를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아담과 사느니 악마와 사는 걸 선택했다니, 통쾌하지 않은가! 이로써 릴리트는 인류 최초의 페미니스트가 된다.
_133쪽 〈릴리트,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미켈란젤로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레다와 백조〉는 그 둘이 한 몸이 되는 순간을 담았다. 레다는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백조가 자기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돕는다. 명백한 섹스 장면이고 다른 방식으로 따지고 들면 수간(獸姦)에 해당하므로 포르노그래피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화가와 조각가들이 묘사한 이 장면을 딱히 포르노그래피라고 부르지 않는다.
_220~221쪽 〈그것은 당신의 판타지일 뿐〉 


온몸을 검은 베일로 가려야만 보호된다는 말은 역으로 온몸이 ‘성기’라는 의미다. 심한 경우 눈마저도 가려야 보호되는 여성의 몸이라니, 얼마나 끔찍한가. 바로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그림이 르네 마그리트의 〈강간〉이다. 그림 속 얼굴은 여성의 몸으로 대치된다. 그는 나의 얼굴을 바라보지만 그것은 곧 내 몸이다. 내가 곧 나의 성기로 대치되는 순간 타인의 시선은 강간이 된다. 그러므로 베일은 여성의 몸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몸 전체가, 존재 자체가 성기임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라보는 사람이지 내 몸이 아니다. 그렇다면 보는 이의 눈을 가릴 일이지 내 몸을 가릴 일은 아니지 않은가?
_273쪽 〈코르셋을 벗어던져라>

목차

들어가며 _익숙함에서 벗어나 달리 본다는 것

1장 아름다움과 추함의 이분법
기괴한 늙은 여자와 중후한 늙은 남자
불완전한 몸, ‘현대의 비너스’
보라, 괴물 같은 인간이 여기 있다!
이게 어떻게 예술이 될 수 있을까?
때로는, 아니 자주 추한 것 속에 진실이

2장 누가 아름다움을 정의하는가
남자와 여자, 두 개의 벗은 몸
에로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남자는 아름답고 여자는 추하다

3장 그녀는 왜 ‘악녀’가 되었나
판도라는 그저 상자를 열었을 뿐인데
이브를 위한 변명
릴리트, 아담의 첫 번째 아내
어머니 여신, 살해되다
팜파탈과 거세공포
메두사의 머리를 끄집어내라
악마도 구원자도 아닌, 여성

4장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랑과 폭력의 경계에서
여성을 향한 폭력의 미술사
그것은 당신의 판타지일 뿐
처녀와 매춘부, 그리고 남자
여성성을 연기하는 여자

5장 여성, 섹스의 발견
코르셋을 벗어던져라
복수의 카타르시스
성기 공포
음순을 음순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는 몸
성적 대상에서 성적 주체로

감사의 말
주
도판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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