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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

장석남 저 | 마음의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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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2850473 / 224쪽 120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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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매혹적이면서도 친근한 언어로 시를 짓는 신서정파 시인 장석남. 그가 삶 속에서 발굴해낸 여든 편의 시를 독자들에게 다정하게 건넨다. 누구든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사물, 사건, 사람의 이면을 집어내 한 편의 시로 표현해 고단한 우리네 삶에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전달해준다.
우리가 시와 눈맞춤하는 일을 두 영혼이 만나 입을 맞추는 사랑의 행위로 비유할 수 있다면 이 책에 수록된 시들은 우리의 마음에 사랑의 온기를 전하고, 긴 하루의 끝에 굽은 어깨를 펴게 해준다. 한 줌의 따스함이 필요한 강퍅한 세상 속에서 이 책을 통해 삶 속에 깃든 마음을 뒤흔드는 사랑을 느끼게 될 것이다.

 

출판사 리뷰

▶ 우리에게 필요한 한 줌의 따스함을 채워줄 아름다운 시들 이 책은 네 가지 주제로 구분된 80편의 시를 엮었다. 1부 <온 우주는 사랑의 섭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에서는 ‘사랑’에 관한 시들이 소개되어 있다. 누구나의 가슴에 한 편쯤 간직하고 있을 설레는 첫사랑에 관한 추억부터 숨 막히는 입맞춤, 사랑이 떠나고 난 자리의 스산함, 미스터리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 사랑 등 무엇보다 환하게 빛나는 사랑에 관한 시들로 구성되어 있다. 입맞춤 - 전봉건 우주의 한 뼘이 숨막히는 어둠으로 메워진다. 모든 꽃이 숨 막히는 어둠 모든 새가 숨 막히는 어둠 모든 바람과 모든 물보라도 숨 막히는 어둠으로 메워진다. 두 개의 입술이 하나로 포개졌다. 날이 너무나 화창하여 정원의 그늘에 서서 흥미로운 가정(假定) 하나를 세워보았습니다. 사람의 입맞춤이 가장 많은 철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아마도 장미 만발하고 햇빛 찬란한 이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우주의 기운 약동하여 모든 생명에의 풀무질이 한창입니다. ‘사랑 행위’의 ‘연옥’쯤에 해당할 ‘입맞춤’을 떠올리니 숨도 차고 눈도 흐리군요. ‘꽃’과 ‘새’와 ‘바람’과 ‘물보라’에 둘러싸인 이 ‘두 호흡의 만남’은 축복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만 왜 ‘어둠’으로 메워진다고 했을까요? 이 ‘어둠’은 컴컴한 상태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뭇 생명과 가치와 이름이 탄생하는, 카오스 상태의 현묘한 어둠, 노자(老子)가 말하는 ‘현빈지문(玄牝之門)’의 그 ‘검음’의 다른 말입니다. 새 질서, 새 생명은 이 카오스 상태를 거친다는 것도 이 시는 넌지시 보여줍니다. ‘입맞춤’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닌 우주의 일이군요. 그 '한 뼘 우주'에 들어서고 싶습니다. _1부 <온 우주는 사랑의 섭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본문 중에서 2부 <꽃은 늘 순방향으로 집니다>에서는 ‘화두’를 주제로 한 시들을 담았다. 독자들은 여기에 소개된 시들을 읽으며 마음에 질문 하나씩을 품게 된다. 그것은 스스로를 향한 것이기도 하고 세상으로 뻗어나가는 것이기도 하다. 인생 속에서 누구든 한두번쯤 생각하고 지나갈 만한 메시지를 던지는 시들을 모았다. 별 - 이홍섭 밤하늘에 웬 짐승 한 마리 떠 있습니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쌔근쌔근 숨소리 들리는 어리디어린 짐승입니다 애비라고, 어둠에 묻힌 늙은 짐승 한 마리도 그 옆에서 별을 핥고 있습니다 겨울 밤하늘은 유난히 광활해 보입니다. 찬 바람 속 추위 속에 서서 눈이 얼도록 하늘을 올려다볼 때가 있습니다. 오랜만에 고향에 들러 고향의 냄새, 고향의 산세를 만난 날의 밤도 그러합니다. 늙은 부모님을 두고 떠나온 날 밤 또한 그러합니다. 아이가 태어나 부모가 되어 처음 집으로 데려온 날의 저녁, 별이니 풀이니 돌이니 하는 것들이 모두 제 나름의 부모의 연을 가진 사물들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갓 세상에 온 아이 곁에서 무언가 환하고 또 무겁고 절절한 심정으로 밤하늘을 우러릅니다. 인간의 계급장은 아무것도 없이 순수한 섭리의 자장 안에서 우리는 우주의 ‘짐승’이거나 ‘별’입니다. 별자리들의 사연이 다 우리들의 이야기로 구성된 연유입니다. 별이 씻기듯 순간순간 반짝이는 것은 그 곁에서 그 ‘어미아비’ 되는 무엇이 ‘핥고’ 있기 때문임을 ‘애비’가 되어 처음 압니다. _2부 <꽃은 늘 순방향으로 집니다> 본문 중에서 3부 <벽은 순간 한 생이 지나가는 은막이 되었습니다>에 수록된 시들은 우리네 ‘일상’에서 보이는 친근한 장면들이 연출된다. 긴 하루의 끝에 뱀 허물 벗듯 벗어진 스타킹의 모습부터 공원에서 아이들이 농구하는 모습, 미운 시어머니의 머리털을 모조리 뽑겠다고 다짐하는 앙큼한 며느리까지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하지만 사소해서 우리에겐 가까운 이야기가 종알종알 들려온다. 가자미 - 김영희 지붕들이 나지막한 가진항을 지나다 횟집 지붕 위 지느러미 말라가는 가자미들을 본다 노조에서도 밀려난 계약직처럼 수족관에서도 퇴출당한 횟감조차 될 수 없는 물 간 생 낮은 지붕 위 납작 엎드려 옆 눈으로 하늘이나 흘기며 멀쩡한 해풍에 지느러미나 앙칼지게 세워본다 나지막한 가진항 한겨울 한파 때 바다 여행의 맛은 색다릅니다. 날 세워 몰려오는 파도 앞에서 양손으로 귀를 싸매고는 잔뜩 웅크린 우리네 작디작은 생을 발견하는 일이라니! 바다는 왜 그리 매번 젊어지기만 하는 것인지. 거기 비로소 아름답고 힘센 왕이 나타나니 바로 적막입니다. 적막 왕국의 백성이 되려고 가끔 그곳에 가곤 합니다. 가진항. 동해 북부에 있는 항구입니다. 항구에 인적은 없고 낮은 지붕에 바람 소리와 함께 생선들이 마르고 있습니다. 좋은 것들은 다 팔려갔고 그렇고 그런 것들이 남아 ‘옆 눈으로 하늘이나 흘기며’ 마르는 풍경 앞에 오래 서 있습니다. ‘노조에서도 밀려난 계약직’ 같은 절실한 생이 그 풍경 위에 겹쳐지기도 합니다. 바람에 들썩이는 지느러미라니. 그것도 ‘앙칼지게 세워보’는 지느러미라니. 겨울 ‘나지막한’ 항구에 들러 우리 생의 지느러미를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떠한가요. _3부 <벽은 순간 한 생이 지나가는 은막이 되었습니다> 본문 중에서 4부 <‘나’는 이미 몸뚱이를 여윈 우주입니다>에는 아름다운 사계절의 모습을 포착한 시들을 모았다. 계절이 순환하듯 우리네 인생도 시들과 함께 순환한다. 봄은 부드러운 ‘초록빛으로 가득’하고 여름엔 ‘능소화가 맹렬히 피었다 떨어지’고 가을엔 ‘쓸쓸한 사람들이 스스럼없이 말을 섞’고 겨울엔 ‘아무 소리 없이 다가온 눈사람’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봄 손주를 위해 복숭아나무를 심는 아버지의 사진을 찍는 아들의 눈엔 눈물이 어린다. 순환의 바퀴 - 최승호 눈사람이라는 게 이미 순환의 바퀴이기 때문에 대륙 횡단 열차의 바퀴 같은 것을 굳이 발 없는 눈사람에게 달아서 굴러가게 할 필요는 없다. 눈사람은 시냇물로 달려가는 바퀴이고 강으로 바다로 돌아다니는 바퀴이며 맑은 날이면 하늘로 굴러가는 바퀴이다. 그 바퀴는 들꽃 속으로 들어가고 나무 꼭대기로 오르며 샘에서 다시 굴러 나온다. 공중 목욕탕에서 솟아오르는 수증기를 보며 누가 바다 밑에서 팔 없이 헤엄치던 눈사람을 기억할까. 해마다 이맘때면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묵묵한 표정으로, 후덕한 몸짓으로 와서는 나를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서 귀로 들을 수는 없습니다. ‘어디서 왔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대답은 없습니다. 다만 다시 내리기 시작한 눈발이 대답을 대신합니다. 눈사람! _4부 <나’는 이미 몸뚱이를 여윈 우주입니다> 본문 중에서 ▶ 긴 하루의 끝에 구부렸던 어깨를 펴고 미소 짓게 하는 시들 시는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삶에 고단해진 현대인에게 잠시 멈추고 숨을 쉬고 주변을 둘러보라고 말한다. ‘엉뚱한 형식으로 참으로 맞는, 아름다운 말’을 하는 시를 읽은 독자들은 비로소 잊고 지내던 ‘새벽 공기의 말귀도 알아듣던 시절’의 감각을 회복하게 된다. 사는 데 ‘강물, 소나무, 새들, 허공, 구름과 만나는 일이 더 큰 공부’임을 깨우친다. 한껏 아름다움에 취해 긴장을 벗어던지고 흥청거리기도 한다. 때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우리는 두꺼운 장막에 가려졌던 삶의 온기를 발견하고 그로부터 위로받고 다시 일상을 버텨낼 힘을 얻게 된다. 《사랑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를 통해 독자들은 삶이 건네는 사랑의 온기를 받아 긴 하루의 끝에서 구부렸던 어깨를 펴고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

저자 소개

196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8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새떼들에게로의 망명』 『지금은 간신히 아무도 그립지 않을 무렵』 『젖은 눈』 『왼쪽 가슴 아래께에 온 통증』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 『뺨에 서쪽을 빛내다』 『고요는 도망가지 말아라』, 산문집 『물의 정거장』 『물 긷는 소리』 『시의 정거장』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미당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 속에서


▬
해당화
- 김영삼

오래된 책을 들추다
본다,
책갈피 속에 숨어 있는 나비 한 마리

어둠을 가르며 얼마나 긴 시간 날아왔을까 은빛 가루 다 떨어진 날개, 느닷없는 햇빛에 눈마저 멀었는지 다가가도 꼼짝하지 않는다 곤히 접은 날개 살며시 집어 올리자 화들짝 나비 아래 숨었던 또 한 마리가 날개를 활짝 펼친다

손바닥에 입술 자국 남기듯 해당화 꽃잎 한 장 올려놓고 간 사랑

얼마나 갔을까
푸른 허공을 향해 빛바랜 나비가 날아오르고 있다

***
옆구리에 책 끼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어려운 서양 책을 ‘패션’으로 들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소중한 날의 기념으로 책 안에 주변에서 채취한 꽃잎을, 나뭇잎을 넣어두던 풍습도 있었습니다. 연애를 시작하면 더욱 그랬습니다. 시간의 물결은 주름을 남긴 채 급속히 지나가고 모든 게 밋밋한 날들이 되어 있을 때 무심히 펼친 옛 책에 ‘해당화’ 꽃이 납작하게 말라 접혀 있습니다. 더듬어 더듬어 이 꽃의 시간을 찾아갑니다. 스물일곱 쪽! 당시 나이의 페이지에 넣어두었던 것! 이 사물은 분명 시간 저편의 하찮은 미라입니다만 기억을 펼치니 금세 나비가 되어 날아오릅니다. ‘집어 올리자 화들짝’ 또 한 마리가 날아오릅니다. 눈 감고 한참 그것들을 봅니다. 바다 빛 푸른 백사장가의 붉게 타던 ‘해당화’의 시간은 지금 어디로 간 것일까요?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같이 있는 것은 아닐까요?
- 1부 온 우주는 사랑의 섭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해당화> 중에서(48~49p)


▬
천년의 바람
- 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
커다란 손이, 노동으로 굳은살도 박인 뭉툭한 손가락이 사랑하는 이에게 간지럼 태우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절로 흐뭇한 미소가 나옵니다. 허나 이내 눈이 젖고 맙니다. 끝 모를 깊이에서 저려오는 것이 있었습니다. 부드러운 손에만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지요. 상처 하나 없이 살아온 손의 사랑만을 아는 당신이라면 영영 모를 세계지요. 그 무뚝뚝하고 깊고 거룩함!
바위 곁에 구붓한 소나무 한 주 서 있습니다. 바위에 앉아 뻗어나간 소나무 가지들 바라보니 거기 바람이 와서 놉니다. 어디서 난 줄 모를 바람의 손길입니다. 겨울 나느라 수척한 초록을 바람은 와서 깨우고 깨웁니다. 새 초록이 나오도록 그리 합니다.
봄을 부르는 행복의 애무입니다. 그 가난한 사랑놀이가 천년이나 만년이나 되풀이되어 저토록 지침 없이 어여쁘다면 우리도 따라 되풀이해야 마땅합니다. ‘이상한 것’에까지 ‘탐을 내는’ 당신, ‘보아요 보아요’ 저 바람의 일을.
- 2부 꽃은 늘 순방향으로 집니다 - <천년의 바람> 중에서(62~63p)

▬
벗어놓은 스타킹
- 나희덕

지치도록 달려온 갈색 암말이
여기 쓰러져 있다
더 이상 흘러가지 않을 것처럼

生의 얼굴은 촘촘한 그물 같아서
조그만 까끄러기에도 올이 주르르 풀려나가고
무릎과 엉덩이 부분은 이미 늘어져 있다
몸이 끌고 다니다가 벗어놓은 욕망의
껍데기는 아직 몸의 굴곡을 기억하고 있다
의상을 벗은 광대처럼 맨발이 낯설다
얼른 집어들고 일어나 물속에 던져넣으면
달려온 하루가 현상되어 나오고
물을 머금은 암말은
갈색빛이 짙어지면서 다시 일어난다
또 다른 의상이 되기 위하여

밤새 갈기는 잠자리 날개처럼 잘 마를 것이다

***
고단한 누님의 스타킹을 오래전 본 일이 있습니다. 뿌리친 물건의 표정에서 옥죄인 하루가 읽히곤 하지요. 스타킹은 살에 가까운 여성의 옷. 거기에도 숨은 인류사의 비애가 섞여 있을 겁니다.
한 ‘일하는 여성’의 저녁 일상이 들춰지면서 ‘암말’로 환치됩니다. ‘암말’, 노자(老子)의 어느 구절에 의하면 ‘현빈(玄牝)’이라 부른 세상을 낳는 아름다운 말입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암말이 걸어온 초원의 여로가 환하고도 아득합니다. 그러나 이내 그것은 욕망이 끌고 다닌 허물이라는 자각이 옵니다. 하찮은 어떤 것에도 쉽게 올이 풀어지니 그렇습니다.
건강한 암말이 이내 ‘광대’로 바뀝니다. 내일이면 스타킹은 또다시 ‘몸의 굴곡’ 욕망의 ‘굴곡’을 죄이기 위해 빨래 통으로 들어갑니다. 이 시 이후 스타킹은 더 이상 ‘의상’만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 3부 벽은 순간 한 생이 지나가는 은막이 되었습니다 - <벗어놓은 스타킹> 중에서 (126~127p)


▬
복숭아나무를 심고
- 윤영범

나무 한 그루 심고 손자놈 이름표 붙여주자며
아버지가 키 작은 복숭아나무 한 그루 사오셨다.
왜 무거운 것 들고 다니냐며 역정내는 어머니를 거들며 난 삽질을 한다.
잘 무른 봄 마당을 한 삽 푸자 까마귀 한 마리 꺼억 하며 소나무 위에서 운다.
나무를 심고 아버지와 아들과 나와 복숭아나무 이렇게 넷이서 봄볕을 맞으며
사진을 찍었다.
새순이 텄으니 이틀이면 꽃이 필 게다.
나뭇가지에 손자 쪽지명패 걸며
아버지는 풀어진 흰 머리카락 추스르고 꽃처럼 웃었다.
사진에는 눈물이 안 보였으면 좋겠다.

***
나무 심는 철이 왔습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나무를 심는 일은 생각을 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고사리 같은 크기가 자라서 하늘을 덮습니다. 그 아래 사람들이 모여 쉬며 웃습니다. 그러한 상상을 함께 심지요. 여차하면 당대를 위한 나무가 아니기 십상입니다. 그 열매를 바라며 웃을 사람이 꼭 제 후손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 넉넉함을 심는 일입니다. 책상머리 공부보다 이러한 행위가 월등히 큰 공부임을 알았으면 합니다.
몸이 쇠해지는 아버지에게 손자가 생겼습니다. 손자는 오래 기다려 맞는 봄꽃입니다. 그 손자를 기념하는 나무 하나를 고릅니다. 복숭아나무입니다. 옛이야기 속 ‘무릉도원’의 평화를 손자에게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겁니다. ‘내가 사라진 훗날 이 나무가 대신 너를 보리라….’ 이러한 자막이 할아버지의 마음 밑을 흘러갑니다. 아들은 그 마음을 읽습니다. 새 생명이 오고 또 묵은 생명은 멀어져간다는 섭리에 눈이 젖습니다.
- 4부 ‘나’는 이미 몸뚱이를 여윈 우주입니다 - <복숭아나무를 심고> 중에서(220~221p)

목차

시인의 말 5

1부 온 우주는 사랑의 섭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사랑_ 지디마자 12
설명해 줘요 내게, 사랑_잉게보르크 바하만 16
도화桃花 한 가지_박목월 20
풀따기_ 김소월 22
입맞춤_ 전봉건 24
너무 늦지 않은 어떤 때_김소연 28
양파 공동체_손미 32
칠 일이 지나고 오늘_이성미 36
아침숲_임선기 40
수증기_박성준 42만남_피천득 44
해당화_ 김영삼 48
빛의 발자국_ 신달자 50
나팔꽃_ 권대웅 52
의자_ 서안나 54

2부 꽃은 늘 순방향으로 집니다

바위_ 유치환 60
천년의 바람_박재삼 62
배음背音_김종삼 64
낙화_ 조지훈 68
물속의 돌_이철성 72
난초 _ 이병기 74
들꽃_ 이근배 78
깊은 우물_이건청 80
거울 앞에서_장옥관 84
별_ 이홍섭 86
광야曠野 _ 이육사 88
수묵화 속에 들어앉아_박종해 92
곁에누워본다_문동만 94
생일_ 오은 98
긴오후_신효순 100여운_ 천양희 102
현상곡예絃上曲藝 _ 박성룡 104
꽃나무_ 이상 108
북관北關-함주시초咸州詩抄 1_백석 110

3부 벽은 순간 한 생이 지나가는 은막이 되었습니다

북_ 김영랑 116
金 星 라디오 _ 김수영 120
시골길 또는 술통_송수권 1122
앞이 안보여 지팡이로 더듬거리며_신경림 124
벗어놓은 스타킹_나희덕 126
저나비_허수경 128
진흙 논에 드리운 백일홍 그림자_이영광 130
언덕_ 박덕규 132
안테나_ 송진권 134
이십세기_ 문신 136
침식_ 김선태 138
소리씨앗_김명수 142
정거장가는길_김이강 144
탁!탁!_이설야 146
실용적인 독서_권현형 150
대장장이_ 정한아 154
가자미_ 김영희 156
이마_ 신미나 158
대학시절_기형도 160
앙큼한꽃_손택수162
응_ 신동엽 164
저녁 무렵-아파트 쌈지공원_김성배 166
품_ 이인구 168
당신은 상추쌈을 무척 좋아하나요_유용주 170
그말이아직망아지였을때_이건청 172

4부 ‘나’는 이미 몸뚱이를 여윈 우주입니다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_김춘수 178
세상 초록빛을 다해_정현종 180
봄볕_ 서정주 182
상치꽃 아욱꽃_박용래 184
염천 _ 정끝별 188
우기_ 최문자 190
과목果木_ 박성룡 192
돌과 포도나무_문태준 194
아침 이슬_문정희 196
소금_ 김용택 198
바람이 분다-로르카에게_ 한승태 202
추일산조秋日山朝 _ 백석 204
겨울산_안상학 206
순환의 바퀴_최승호 208
집이 앓는 소리를 들었다_이재무 210
복사꽃에 떠밀려_송재학 212
홍매紅梅 _ 김상옥 214
밤비 오는 소리를 두고_ 문성해 216
증발후에남은것_박연준 218
복숭아나무를 심고_ 윤영범 220
봄봄_ 안현미 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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