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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

시리즈 : 문지작가선 [5]

서정인 저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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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035697 / 424쪽 130 x 2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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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문학과지성사의 새로운 소설 시리즈 <문지작가선> 오늘의 눈으로 다시 읽는 어제의 문학, <문지작가선>이 지난 7월 첫발을 떼었다. 또 한 번의 10년을 마무리하는 2019년, 문학과지성사는 한국 문학사, 나아가 한국 현대사에 깊은 족적을 남긴 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가려 뽑아 문학성을 조명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나갈 목록 구성이 필요한 때라고 판단했다. 진지한 문학적 탐구를 감행하면서도 폭넓은 독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한국 문학의 중추로서 의미 있는 창작 활동을 이어온 작가들을 선정한 다음, 그들의 작품을 비평적 관점에서 엄선해 독자들에게 선보이고자 한다. 또한 권별 책임 편집을 맡은 문학평론가들의 해제를 더하여 해당 작가와 작품이 지니는 문학적?역사적 의미를 상세하게 되새길 계획이다. <문지작가선>의 시작점은 억압된 시대 속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며 권력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문학의 언어로 표현한 ‘4?19세대’ 작가다. 타계 1주기에 맞추어 특별히 먼저 출간한 최인훈 중단편선 『달과 소년병』 외에, 김승옥 중단편선『서울 1964년 겨울』, 서정인 중단편선 『귤』, 이청준 중단편선 『가해자의 얼굴』, 윤흥길 중단편선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를 1차분으로 출간한다. 이어서 2차분으로 한국 현대 여성소설의 원류인 오정희, 박완서의 중단편선을 내년 1월 선보일 예정이다. 본문에서 모든 풍경은 새로워 보였다. 거울을 통해서 거꾸로 볼 때처럼 같은 세계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로 나타났다. 그의 수정체는 채색되어 있었다. 그것은 편리한 채색이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볼 때완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보는 대신에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었다. 보았던 것을 안 볼 수도 있었고, 안 보았던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풍경화가 더 진실에 가까웠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이쪽 수정체가 젖어 있다면 저쪽 수정체는 습관에 물들어 있었으니까. 하나의 풍경에 두 개의 풍경화… 성 중위는 드문 풍경화를 보고 있었다. 하늘이 기울고 지평선도 따라서 기울었다. 확실히 지구는 움직이고 있었다. 「후송」(pp. 47~48) 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가로등 없는 캄캄한 골목길을 미친 듯이 뛰어갔다. 포장된 큰길이 길가 가게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아 희끄무레하게 빛났다. 그는 문득 멈춰 서서 그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30년을 하루같이 걸어 다녔던 길이었다. 지난 5년 동안의 공백도 그 길이 그에게 대해서 갖는 친밀함을 덜지 못했다. 그는 30년 묵은 옛길을 그것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새로움을 가지고 쏘아보았다. 길 건너 청과전에는 귤과 노랑, 파랑, 빨강 사과들이 탐스럽게 쌓였다. 그는 문득 손가락들을 바짝 말아서 쥐는 태권도식 주먹으로 그 과일들을 내리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그리로 건너갔다. 그리고 주먹을 내리치는 대신에 귤 두 개를 샀다. 「귤」(p. 223) “멋쟁이고 돈 많고 학식 많고, 왕년에는 다 알아주는 한량이었지. 거, 시키지 않고 왜 직접 부엌 출입을 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것 쉽다. 너늠마 어려운 것은 알고 쉬운 것은 모르냐? 며느리가 미안해서 그랬다. 왕년이 무슨 소용이냐? 왕년에 끗발 안 선 사람 있냐?” “하, 그때, 일이 요상하게 될라고, 며느리가 불 켜진 것을 보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아버님, 저녁 식사 한 지가 얼마나 된다고.” “식사라니, 거기가 군대냐? 식사 군기가 문란하냐? 왜 요즘 것들은 아무한테나 식사를 앵기냐?” “며느리는 무심코 말했다. 그것이 아까웠겠냐? 전생에 원수 졌냐? 시아버지도 조금 무안했겠지만, 그게 뭐 어떠냐? 허, 허, 내가 널 깨웠냐? 가서 자거라. 오냐, 어서 자거라. 그러고 끝났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왜 아무 일도 아니냐? 음식 끝이 얼마나 맵고 모지다고! 한술 밥에 눈물 난다. 점잖은 노인이 음식 끝에 뽀쳤으니, 그 체면을 어쩔거나.” “니가 남의 속을 어찌 그리 잘 아냐?” “그것이 남의 일이냐?” 「치과 의사의 죽음」(pp. 303~04) 책임 편집 _ 백지은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평론집으로 『독자 시점』이 있다.

저자 소개

이청준, 김승옥 등과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그는 1936년 전남 순천에서 태어났다. 
1962년 <후송>이 「사상계」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의 작품들은 실체를 상징 또는 환상으로 포착하면서 자의식의 분열을 추적, 진실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민을 분석했다. 
등단 이래 40여 년 동안 꾸준한 작품활동을 통해 새로운 소설기법을 추구해온 작가의 작품세계는 경박한 이 시대에 사유의 깊이를 느끼게 해주는 개성적인 문학적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1976년 한국문학 작가상, 1983년 월탄문학상, 1986년 한국문학 창작상, 1995년 동서문학상, 1998년 제1회 김동리문학상, 1999년 제7회 대산문학상, 2002년 제14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작품집 <강>(1976), <가위>(1977), <토요일과 금요일 사이>(1980), <철쭉제>(1986), 장편 <달궁>(1987), <달궁 둘>(1988), <달궁 셋>(1990), <봄꽃 가을열매>(1991), 소설집 <붕어>(1994),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1999), 산문집 <지리산 옆에서 살기>(1990)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성 중위님, 참모장님이 부르십니다." 잘 닦아 번쩍이는 계급장을 단 상병이 뻐걱거리는 판자 바닥 위로 몇 걸음 걸어오면서 말했다.

 


P. 47-48 모든 풍경은 새로워 보였다. 거울을 통해서 거꾸로 볼 때처럼 같은 세계가 또 하나의 다른 세계로 나타났다. 그의 수정체는 채색되어 있었다. 그것은 편리한 채색이었다. 각도를 달리해서 볼 때완 또 다른 무엇이 있었다. 보이는 대로 보는 대신에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있었다. 보았던 것을 안 볼 수도 있었고, 안 보았던 것을 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 풍경화가 더 진실에 가까웠는지 말하기 어려웠다. 이쪽 수정체가 젖어 있다면 저쪽 수정체는 습관에 물들어 있었으니까. 하나의 풍경에 두 개의 풍경화… 성 중위는 드문 풍경화를 보고 있었다. 하늘이 기울고 지평선도 따라서 기울었다. 확실히 지구는 움직이고 있었다.
「후송」 

P. 223 밖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는 가로등 없는 캄캄한 골목길을 미친 듯이 뛰어갔다. 포장된 큰길이 길가 가게들로부터 흘러나오는 불빛을 받아 희끄무레하게 빛났다. 그는 문득 멈춰 서서 그 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가 30년을 하루같이 걸어 다녔던 길이었다. 지난 5년 동안의 공백도 그 길이 그에게 대해서 갖는 친밀함을 덜지 못했다. 그는 30년 묵은 옛길을 그것을 떠나본 적이 없는 사람은 가질 수 없는 새로움을 가지고 쏘아보았다.
길 건너 청과전에는 귤과 노랑, 파랑, 빨강 사과들이 탐스럽게 쌓였다. 그는 문득 손가락들을 바짝 말아서 쥐는 태권도식 주먹으로 그 과일들을 내리치고 싶은 격렬한 충동을 느꼈다. 그는 그리로 건너갔다. 그리고 주먹을 내리치는 대신에 귤 두 개를 샀다.
「귤」

 

P. 303-304 “멋쟁이고 돈 많고 학식 많고, 왕년에는 다 알아주는 한량이었지. 거, 시키지 않고 왜 직접 부엌 출입을 했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그것 쉽다. 너늠마 어려운 것은 알고 쉬운 것은 모르냐? 며느리가 미안해서 그랬다. 왕년이 무슨 소용이냐? 왕년에 끗발 안 선 사람 있냐?”
“하, 그때, 일이 요상하게 될라고, 며느리가 불 켜진 것을 보고 주방으로 들어왔다. 어머, 아버님, 저녁 식사 한 지가 얼마나 된다고.”
“식사라니, 거기가 군대냐? 식사 군기가 문란하냐? 왜 요즘 것들은 아무한테나 식사를 앵기냐?”
“며느리는 무심코 말했다. 그것이 아까웠겠냐? 전생에 원수 졌냐? 시아버지도 조금 무안했겠지만, 그게 뭐 어떠냐? 허, 허, 내가 널 깨웠냐? 가서 자거라. 오냐, 어서 자거라. 그러고 끝났다. 아무 일도 아니었다.”
“왜 아무 일도 아니냐? 음식 끝이 얼마나 맵고 모지다고! 한술 밥에 눈물 난다. 점잖은 노인이 음식 끝에 뽀쳤으니, 그 체면을 어쩔거나.”
“니가 남의 속을 어찌 그리 잘 아냐?”
“그것이 남의 일이냐?”
「치과 의사의 죽음」

목차

후송 | 나주댁 | 가을비 | 어느 날 | 밤 이야기 | 남문통 | 천호동 | 귤 | 춘분 | 해바라기 | 치과 의사의 죽음 | 베네치아에서 만난 사람 | 뜬봉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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