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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시리즈 :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 [17]

김이듬 저 | 현대문학 | 2019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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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2751168 / 188쪽 104 x 182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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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현대문학 × 아티스트 경현수 <현대문학 핀 시리즈>는 아티스트의 영혼이 깃든 표지 작업과 함께 하나의 특별한 예술작품으로 구성된 독창적인 시인선, 즉 예술 선집이 되었다. 각 시편이 그 작품마다의 독특한 향기와 그윽한 예술적 매혹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시와 예술, 이 두 세계의 만남이 이루어낸 영혼의 조화로움 때문일 것이다. * 경현수(b. 1969) 중앙대 서양화과와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 순수미술 석사 과정 졸업. 서울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부산비엔날레, 플라토미술관, 이유진갤러리 등 국내외 다수의 개인전, 그룹전 참여.

저자 소개

  • 저자 : 김이듬
저자 : 김이듬
2001년 『포에지』로 등단, 시집으로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이 있고, 장편소설로 『블러드 시스터즈』를 썼다. 산문집으로 『모든 국적의 친구』 『디어 슬로베니아』 등이 있다.

머리말

7년 전 봄, 새벽에 일어나 내게 찬합 도시락을 싸준 시인은 이제 음식을 드시지 못한다. “객지에서 잘 먹어야 된다, 이듬아. 사람이 먹어야만 산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니?” 그해 봄 베를린으로 돌아가는 나를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차비를 쥐여주던 시인은 앓아 누우셨다. 믿을 수 없다. 우리는 보리밭 길을 걸어 얼음 창고가 있던 산마루에 갔다. 산책 중에 언니가 내게 물었다. “시인이 될 결심을 언제 했니?”“결심한 적은 없지만 자연스레 이리되었네요. 이곳에 와서 언니를 만나겠다고 정한 적 없듯이.”
―에세이 「절대 늦지 않았어요」 중에서

책 속에서

운이 좋으면 아무도 없다

벌써 덥다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운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서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여덟 개의 침대가 있는 방에서
이렇게 많은 사랑의 말이 새겨져 있는 벽 앞에서

나는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을 꾼 적 없고 원고가 불타오르는 꿈을 꾼 적 없고 양고기 먹은 밤에도 순한 양이 우는 꿈을 꾼 적 없다 지난 사람의 침대에서 지난 사람에게 속삭인 말을 하고 아직 안 끝났어 마르지 않은 티셔츠를 입고
―「도미토리」 부분 


내가 미군이 버린 깡통처럼 뒹굴고 있을 때 친구를 사귀었다 그 애는 흑인이었는데 우리가 얼굴을 비빌 때마다 그 애의 머리칼이 내 뺨과 이마를 할퀴어 나는 피범벅이 되었다 상관없었다 그 애의 억세며 곱슬곱슬한 머리칼은 매력적이었지만 촘촘히 땋지 않으면 자기 머릿속으로 파고든다고 했다 나의 어머니는 원래 속눈썹이 자꾸 눈을 찔러서 언제나 피멍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패지 않아도 내 친구가 서양에서 왔다는 말을 어머니는 믿지 않았다

내 어머니들은 나를 버린 어머니를 한 번도 욕하지 않았다 트로트를 틀어놓고 춤을 추는 할머니가 될 때까지 할머니들은 예쁘지 않았고 전쟁을 겪었으며 부스스 살아남았다 혼자서 한글을 깨친 이는 깨진 장독으로 이름을 썼다
―「너는 언제나 아름다웠지만 한 번도 예쁘지 않았다」 부분 


어린 시절 집 앞에서 사람들이 소를 보며 말했다
소는 쟁기질을 끝내고 돌아오고 있었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버릴 게 없는 가축이라고 했다 시체들이
흘러가는 강가가 보였다

버릴 것만 가득한 인생을 꿈꾸었다.
마음으로만 살해했다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의외로 평범하다
햇볕에 데워진 돌계단에 뺨을 대고
―「몸을 숨긴 연인들은 버릴 게 없고」 부분


누군가와의 만남이 자신의 삶을 바꿀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뿔을 숨긴 자리에서 첫인상으로 사람들을 조립했다
그곳이 들판이었는지 동굴 안이었는지 끔찍하게 아름답고 부유한 사람들의 장원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갸우뚱하다 어디서나 언제든지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우리들의 미래가 사라질 때까지
―「습작생이 떠나면 끔찍하게 조용한 송년회를」 부분

목차

한 시
아쿠아리움
역광
원형탈모
외곽으로 가는 버스
도미토리
싱어송라이터
마법책을 받은 날
아르누보는 왜 의자들과 관계 있는가
짐노페디
정오의 마음
파수꾼
잘 표현되지 않은 불행
시월에서 구월까지
그들이 그녀에게 말하는 것
1막 1장
누수 그리고 단수
너는 언제나 아름다웠지만 한 번도 예쁘지 않았다
당신이 잠든 사이
잠적
비하인드 스토리
피처링
알바천국
잠실
광기의 다이아몬드에 빛을
너를 기다리는 동안
후문
어두운 여름
주인
반신
오해하는 오후
몸을 숨긴 연인들은 버릴 게 없고
폴 델보의 야간열차―지옥의 문
칸막이 뒤에서
학
죽은 조세핀에게 보내는 아벨라르의 사랑 노래를 듣고
죄책의 마음
습작생이 떠나면 끔찍하게 조용한 송년회를

에세이 : 절대 늦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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