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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433581 / 302쪽 / 437g / 145 x 210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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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으로 세계문단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는 황석영의 신작 『바리데기』가 출간되었다. 『바리데기』에서 탈북소녀 ‘바리’를 통해 신화와 현실을 재구성하고 새롭게 해석해냄으로써, 작가는 또 한번 작품세계의 혁신을 일궈낸다. 현실과 환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형식실험과, 동아시아와 대양을 넘어 서구사회의 심장부 런던에까지 들어가 21세기 전세계가 당면한 문제를 드러내 보이는 주인공의 삶을 통해 이전에 볼 수 없던 서사와 스케일을 자랑한다.
단숨에 읽게 되는 박진감 있는 문장과 숨가쁘게 진행되는 사건과 장면 전환, 손에 잡힐 듯 자연스럽고 생생한 현실과 환상 세계의 묘사, 가슴을 찌르는 감동적인 주제 등은 오랜 여운과 더불어 새로운 한국소설의 힘을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출판사 리뷰
책 속에서
야야, 정신차리라.
현이는 얼어붙은 듯이 쪼그려 있던 모양 그대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움집 안에 들어가 이불 속에 넣고 셋이서 그애의 발과 손과 다리를 비벼주었다. 한참 만에 잠에서 부스스 깨어나듯 눈을 뜬 현이가 우리를 쳐다보았다. 할머니가 말을 시켰다.
거 추운데 왜 나가 있댄?
오줌 마레와서......
오줌 누군 들오지 거기 있다 얼어 죽을 뻔했구나.
현이는 스르르 눈을 감더니 다시 잠이 들었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현이의 손과 뺨을 비비다가 다급하게 말했다.
오마니, 이거 체온이 돌아오지 않소. 물이라두 데워 멕이기요.
할머니는 문간 아궁이에 나가서 냄비에 눈을 담아 끓였다.
더운물을 양은그릇에 담아 코끝에 내밀었지만 그애는 몇모금 혀를 적시는 시늉만 하고는 다시 늘어졌다. 우리는 윗목의 짐을 풀어 언제나 축축한 채로 뻣뻣하게 얼어 있는 옷가지들을 꺼내어 가슴에 품고 비비거나 깔고 앉아 체온을 담은 뒤에 현이의 몸에 덮어주고 이불로 감쌌다. 그동안에 지핀 아궁이로 불이 잘 들었는지 구들돌 위에 깐 골판지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현이의 몸 위에 검게 얹힌 아주 부드러운 연기 같은 것이 뭔지는 몰랐지만 그애에게 가까이 가서 그걸 떼어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혼자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언니야, 너 떠나려고 하는 줄 내 다 안다.
우리는 이불 속에 하반신을 넣고 모두 앉은 채로 끄덕끄덕 졸다가 잠들었다. 그날밤 현이는 죽었다. 몸이 너무 쇠약해진데다 한기를 배겨내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나 세 사람 누구도 정말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버지가 그애를 옷가지와 비료포대 여러 장으로 둘둘 말아서 안고는 움집을 나서면서 눈을 사납게 부라렸다.
따라오지 말라!
--- p.75`
P. 124-125
자꾸 달아나지 말구 좀 멈춰봐라.
너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어.
칠성이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면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다가 멈추가다 했다. 강변에 이르었다. 바람이 소리없이 불었고 모래먼지가 일어났는데 강물 쪽은 시커멓게 보였다. 긴 다리가 걸려 있었다. 다리 입구에 흰옷 차림의 사람이 서 있었다. 내가 가까이 다가서자 어둠에 가려져 있던 얼굴에 빛이 내리듯 낯익은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 바리 왔구나!
할마니, 어데서 오십네까?
나는 할머니엑 안기려고 앞으로 걸음을 내딛는데 그녀는 바람이 가득 든 비닐봉지처럼 딱 한 걸음의 거리로 가볍게 물러갔다. 내가 또 한 걸은 내디디면 다시 물러나고.
보구팠는데 안아주지두 않구서리.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기래기래, 이승 저승이 달라 벨수가 읎지비. 너가 걱정이 돼서 불렀구나. 이제부텀 나 하는 얘기 잘 들으라. 수천수만 리 바다 건너 하늘 건너 갈 텐데 그 길은 악머구리 벅작대구 악령 사령이 날뛰는 지옥에 길이야. 사지육신이 다 찢게질지두 모른다. 하지만 푸르구 누런 질루 가지 말고 흰 질루만 가문 된다. 여행이 다 끝나게 되문 넌 예전 아기가 아니라 큰 만신 바리가 되는 거다. 할마니가 도와줄 테니까디 어려울 땐 칠성일 따라 내게 물으러 오라.
P. 48
언젠가 미이 언니와 두만강에 나갔다가 사람이 천천히 떠내려오는 걸 보았다. 어린애를 업은 채 앞으로 처박힌 아낙네의 시체였다. 그러니까 아기와 엄마가 함께 죽은 것이다. 언니와 나는 보통때 같았으면 깜짝 놀라서 외마디소리도 지르고 누군가를 부르러 달려가기라도 했으련만 숨을 멈추고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체 뒤로 풀린 채 길게 따라서 흘러내려가는 포대기끈이 흐느적거렸다. 나중에 그 강변에는 더 많은 시체들이 떠내려오곤 했는데 맞은편 중국인 마을에서는 자기네 기슭에 닿으면 장대로 밀어내곤 했고 이쪽에서도 군인들이나 장정들이 지켜섰다가 강심으로 밀어내곤 했다. 어느날인가 저녁때 사택 동네의 사람들이 수런거리는 기색이더니 군인들이 리어카를 끌고 중심가를 내려오는 게 보였다. 우리도 처음에는 양곡포대를 덮어놓아서 무엇인지 모르다가 그 아래로 삐죽이 나와 있는 사람들의 발을 여러 개 보고는 시체인 줄 알았다. 밤사이에 동네에서 사람이 죽으면 이웃들이 신고해서 치워갔는데 그해 여름을 지나고부터는 그냥 방치해두어서 빈집 앞을 지날 때면 간장을 조리는 듯한 썩은 냄새가 진동했다.
P. 282
말 좀 해봐, 우리가 받은 고통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는 왜 여기 있는지. 누구 말을 빌려서 하는지 나는 저절로 어린아이의 목소리로 변하며 공수가 터진다.사람들의 욕망 때문이래. 남보다 더 좋은 것 먹고 입고 쓰고 살려고 우리를 괴롭혔지. 그래서 너희 배에 함께 타고 계시는 신께서도 고통스러워하신대. 이제 저들을 용서하면 그이를 돕는 일이 되겠구나.
P. 286
희망을 버리면 살아 있어도 죽은 거나 다름없지. 네가 바라는 생명수가 어떤 것인지 모르겠다만,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서도 남을 위해 눈물을 흘려야 한다. 어떤 지독한 일을 겪을지라도 타인과 세상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된다.
P. 290
지금 벌어지고 있는 전쟁은 힘센 자의 교만과 힘없는 자의 절망이 이루어낸 지옥이다. 우리가 약하고 가진 것도 없지만 저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좀더 나아질 거다.
P. 223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시간을 기다리고 견디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늘 기대보다는 못 미치지만 어쨌든 살아 있는 한 시간은 흐르고 모든 것은 지나간다.
P. 263
불행과 고통은 모두 우리가 이미 저지른 것들이 나타나는 거야. 우리에게 훌륭한 인생을 살아가도록 가르치기 위해서 우여곡절이 나타나는 거야. 그러니 이겨내야 하고 마땅히 생의 아름다움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