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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6464691 / 260쪽 14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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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전후 폐허에 대한 묘사 이 작품에서 하인리히 뵐은 종전 후의 일상을 온갖 폐허의 모습으로 표현한다. 1장에서 반복되는 ‘냄새’에 대한 묘사는 전쟁이 남긴 폐허가 공간적인 차원보다 훨씬 더 근본적으로 삶의 환경을 숨막히게 바꿔놓았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2장에서는 전복된 전차에서 생쥐가 시끄럽게 찍찍대는 모습을 그리며 독일인이 자신들이 페스트를 옮기는 생쥐 족속으로 전락한 현실을 침묵으로 일관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9장에서는 언덕 너머에서 나타나는 사람들을 통해 인류의 한세대가 완전히 멸망하고 새로운 미지의 종(種)이 탄생할 것을 암시한다. 13장에서 성당 내부에 모신 성인들의 조각상마저 파괴돼 ‘악마적 흉측함’을 드러낸 모습은 전쟁폭력의 악마성을 보여주며, 과연 신앙이 최후의 위안과 구원이 될 수 있는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교양이 망가진 나치의 유령 [천사는 침묵했다]에는 ‘교양이 망가진 나치의 유령’이 등장한다. 박사학위를 두개나 가진 피셔는 ‘종교적 임무’를 띠고 나치당에 들어가는 곡예를 부리고, 추기경의 총애를 받아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한 미술품을 팔아서 떼돈을 번다. 17장에 등장하는 의사는 곰페르츠 부인이 죽음을 앞두고 사투를 벌이는 장면에서도 연구 실적을 올릴 궁리를 하는데 이는 나치의 생체실험을 떠올리게 한다. 1964년 프랑크푸르트 대학 강연에서 독일인에 대해 “교양이 망가진 민족”이라 일컬은 저자 하인리히 뵐은 이들의 모습을 통해 교양이 지식으로 축적되고 학문으로 발전할수록 권력과 유착되며, 비판적 성찰의 기능을 상실하고 맹목적인 도구적 이성으로 변질된다는 것을 비판한다. 폐허에서 피어난 희망 [천사는 침묵했다]는 종전 직후 모든 것이 초토화된 폐허의 어두운 심연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이 폐허의 살풍경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콘크리트 잔해더미에서 풀이 자라나듯 숱한 죽음이 묻힌 폐허에서도 희망이 기적처럼 피어나며, 그것이 이 작품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1960년대 초반에 전후의 폐허문학을 돌이켜보면서 하인리히 뵐은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언어를 찾아내는 것이다”라고 언명한 바 있다. 전후 냉전시대와 분단시대를 살았던 뵐은 독일이 과연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 무척 회의적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뵐의 문학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언어와 희망’에 대한 탐색은 그만큼 더 치열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소설은 뵐이 평생 추구했던 ‘사람이 살 수 있는 언어와 희망’에 대한 치열한 탐색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다.
‖ 옮긴이의 말
『천사는 침묵했다』를 통해 하인리히 뵐은 삶의 터전이 초토화된 폐허에 대한 가감없는 묘사, 특히 ‘폐허의 자연사’와 묵시론적 분위기는 이것이 문명의 종말일 수 있음을 경고하며, 나치의 패망에도 나치 부역자가 활보하는 상황은 나치 과거사 극복의 지난함을 일깨운다. 그리고 이 모든 역경을 겪으며 극한의 절망 속에서도 폐허를 뚫고 사랑이 풀잎처럼 자라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임홍배
주춤주춤 다가간 그는 형체가 조각상이라는 것을 알아보고 나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더 가까이 다가가자 희미한 불빛을 통해 석조 천사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머리카락이 물결치는 천사상은 손에 백합 한송이를 들고 있었다. 그는 턱이 천사상의 가슴에 거의 닿을 정도로 몸을 앞으로 숙이고, 한참 동안 천사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기묘한 희열에 잠겼다. 이 도시에 와서 처음 마주친 얼굴이었다. 돌로 만든 천사의 얼굴은 부드럽고도 고통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8면)
어머니는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
“우편물이 왔단다.”
어머니의 입언저리가 떨리는 것이 보였다. 어머니는 입술을 깨물었고, 말을 더 잇지 못했다. 결국 어머니는 마른 울음을 서럽게 흐느꼈고, 그는 무슨 일이 생겼거나 생길 거라는 걸 불현듯 깨달았다. 그는 우편물이 이 모든 사달을 초래한 것임을 눈치챘다. 틀림없이 우편물에 무슨 곡절이 있었다.(37~38면)
그는 조금 물러나 침대 끝에 몸을 기대어 앉았고, 문득 자기도 모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 집에 있어도 될까? 내 말은 당분간…… 좀 오래…… 아니면 영영?”
“그래.” 그녀가 바로 대답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던 시선을 다시 거두었다. 여자는 머리 밑에 받쳤던 팔을 빼내 담요를 어깨까지 올리고는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이 집에 있어도 돼.” 여자가 다시 말했다.(77면)
어떻든 그녀가 이 시대의 법칙을 거꾸로 뒤집은 것은 기발해 보였다. 유가물에 돈을 투자하는 대신 그녀는 유가물을 돈으로 환전해서 사람들에게 공짜로 희사한 것이다. 그녀는 가족의 귀중품을 팔아치웠고, 임대주택에서 돈을 거두어들였으며, 은행계좌를 해지했고, 그림과 가구 들을 암시장에 내다팔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녀는 신종 휴먼 스포츠에 몰입했다. 사람들에게 빵 배급표를 나누어주었던 것이다……(141면)
그가 고개를 숙이자 뒤통수 언저리에 머리털을 완전히 깎은 부위와 목덜미의 흉터가 보였다. 빌리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당신을 사랑해. 기념물처럼 사랑하지.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하는 게 아니고, 과거의 흔적으로 남은 기념물만 사랑해.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그건 지금도 기억해.”(206면)
천사는 침묵했다
작품해설 / 전후 폐허문학의 원형
작가연보
발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