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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피고인이 되고 싶다

유중원 저 | 글누림 | 2019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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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3275659 / 404쪽 140 x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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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형식을 결합 소설 쓰는 변호사인 유중원 작가는 논픽션 소설인 3편의 중편 소설을 써서 이미 몇 달 전에 인터넷에 발표하였다. 논픽션 소설에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형식을 결합해야 하기 때문에 메타픽션적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작년에 1987년 6월혁명과 2017년 촛불혁명에 관한 감각적 소설인 장편소설 ?광화문 광장?을 종이책으로 발표했고, 이번에 세 편의 중편소설ㅡ고 마광수 교수의 ‘즐거운 사라’와 관련한 구속 기소와 기나긴 재판 과정, 그 이후 그를 극심한 우울증과 죽음에 이르게 한 험난한 인생역정에 관한 ‘2019 즐거운 사라’와 유신독재라는 엄혹한 시대에 일어난 민청학련과 (비극적인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천인공노할) 인혁당 사법살인 사건, 내가 존경하는 강신옥 변호사님의 사상 초유의 변론과 관련한 구속 사건을 정리한 ‘차라리 피고인이 되고 싶다’, 그리고 아주 까마득한 옛날 20대 시절 월남전 참전의 불확실한 기억들을 더듬어 쓴 소설인 ‘인간의 초상’ 수정판ㅡ을 종이책으로 발간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그들 사건을 희미하게나마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서 작가는 시대의 에피소드 또는 가십거리로 전락하여 흘러간 옛 이야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그걸 쓰게 되었다. 진짜와 가짜를 뒤섞으면 가짜보다 더한 가짜가 된다. 2. 작품 중에서 나는 매일 매일 거울을 들여다봤지 그랬더니 늙고 못 생긴 내 얼굴도 아주 근사하게 보이는 거야 젊은 꽃미남으로, 잘생긴 플레이보이로 나는 더 뚫어져라 거울을 들여다봤지 정성을 들이고 애정을 담아…… ― 마광수 나는 메타픽션을 의식하면서 한 편의 논픽션 소설을 썼다. 이 소설은 역사소설 또는 실화소설이기 때문에 냉엄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될 것이다. 나는 역사소설을 쓸 때의 작가의 한계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 많은 참고 자료를 읽고 조사했지만 충분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마광수 교수를 만나서 조사하고 확인해야 할 사항이 많았지만. 내가 1차 자료에 근거하지 않고 또한 당사자를 직접 만나서 취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잘못 이해해서 또는 역사적 상황과 인물들, 사건, 배경에 대한 내 상상력이 지나쳤거나 부족했다면 그건 순전히 내 과오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참고한 자료는, 마광수 저, ‘즐거운 사라’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돌아온 사라’ ‘마광쉬즘’ ‘마광수의 뇌구조’ ‘나의 이력서’ ‘사라를 위한 변명’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읽기’ ‘비켜라 운명아, 내가 간다!’ 법률신문사 발행 ‘법조50년 야사’, 범우사 발행 ‘한승헌 변호사 변론사건실록’ 제6권, ‘마광수 교수 필화사건 백서’, 존 클레런드 저 / 정성호 옮김 ‘패니 힐’, 게리 덱스터 지음 / 박중서 옮김 ‘왜 시계태엽 바나나가 아니라 시계태엽 오렌지일까?’ 기타 나무위키 또는 네이버 인터넷 자료 등 이다. 다만 ‘즐거운 사라’ 사건의 공소장, 1심 판결문, 변호인들의 항소이유서, 마광수 교수 본인의 항소이유보충서, 한승헌 변호사의 상고이유서 등등 중요하면서 상세한 것은 한승헌 변호사의 전게서 457면부터 539면까지 및 ‘마광수 교수 필화사건 백서’를 참조해야 할 것이다. 원본 ‘즐거운 사라’는 그 사건 재판에서 음란물로 확정되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폐기되었다. 공개적으로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공소장과 판결문에서만 문제가 된 음란물 부분을 찾아서 읽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부분을 생략하지 않고 전부를 실었다. 판례가 제시한 음란물의 개념, 문학에서 성표현의 한계, 예술과 외설의 변별에 관해서 학술적 가치가 있는 논문을 쓰려고 한다면 반드시 공소장과 판결문을 참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 교수는 해야할 말은 해야겠다 싶어 신문 도중 검사에게 불쑥 물었다. 교수 : “현행범도 아닌데 이렇게 불시에 연행을 해도 되는 겁니까?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저는 지금 대학에서 다섯 강좌나 강의를 하고 있는 교수입니다.” 검사 : “사안이 그만큼 중대하기 때문이오. 당신의 소설이 미풍양속을 해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구속 수사를 하기로 방침을 정한 거요.” 교수 : “아니 가능성이 어떻게 죄가 됩니까? 제가 뭘 알겠습니까만은…… 범죄라는 게 실제 현실화되서 피해가 발생해야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 사건에서 누가 피해자인가요? 그 피해자는 어떤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십니까?” 검사는 그의 당연한 물음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굳어진 얼굴로 신문을 계속해나갔다. 검사 : “왜? 이 소설의 주인공 같은 방탕한 여자를 그렸소? 그게 도대체 말이 되는 겁니까. 낮 뜨거워서 그걸 어떻게 소설이라고 읽을 수 있겠소.” 그는 하는 수 없이 그 나름대로 답변을 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교수 : “저는 방탕한 여성을 그린 게 아니라 성에 자유로운 여성을 그린 것입니다. 설사 이 소설의 주인공이 방탕한 여성이라고 해도, 그런 여성은 이 시대의 한 개인으로 적지 않게 실존하고 있는 인물들 중의 하나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통해 한 젊은 여성이 봉건적 성윤리에 반항하면서, 성에 대한 학습 욕구를 실천해 보려고 애쓰는 과정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3. 편견 없는 냉정한 재평가 그의 문학세계는 비록 성담론으로 일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의 완고한 금기 사항에 도전했다는 측면에서 또한 일관된 체계성과 철학적 기반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그 유례를 찾아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대작가임에 틀림없다. 19세기 영국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월터 새비지 렌더(Waltaer Savage Lander)는 역사상 인물 사이의 ‘상상적 대화’를 시리즈로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다. 나는 그와 비슷하게 쓴다면 ‘마광수 교수와 나’ 또는 ‘마광수 교수와 그에게 적대적인 인물들’ 간 상상적 대화를 집필하고 싶다. 그런데 편견이 없는 정당한 전기 또는 평전이 간행될 때까지는 그의 인생과 문학에 대해서는 그의 경력에 관한 매스컴에 나온 단편적인 몇 가지 사실과 그 자신의 저작물에서 얻을 수 있는 사실 이외에는 믿을 수 있는 풍부한 자료가 거의 없다. 그에 대해 편견 없는 냉정한 재평가가 빠른 시일 내에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건 윤원일 작가의 답글에서 옮긴 것이다. 보를레르는 ‘파리의 우울’ 어디선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내 동포여, 내 형제여, 사기꾼이여.’ 마 교수는 이렇게 썼을 것 같네요. ‘내 동포여, 내 형제여, 비겁한 자들이여!’ 아니, ‘내 동포여, 내 형제여, 무정한 자들이여!’ 아니면? ‘내 동포여, 내 형제여, 위선자들이여!’ 반성하는 마음도 들고해서 새삼 숙연한 마음을 품어봅니다.

저자 소개

  • 저자 : 유중원
저자 : 유중원
작가는 아주 옛날 전남 고흥에서 태어났다. 그는 원래 변호사였다. 그러므로 전관예우를 받는 전관 경력은 없다. 국제거래와 금융 분야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전문 변호사였고, 유명한 법학자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이들 분야에서 100여 편의 학술 논문과 판례평석을 발표했고, 벽돌처럼 두꺼운 법학 전문 저서 12권을 발간했다. 신용장 법학을 도입하고 정립하는데 절대적으로 기여하였다.

머리말

나이가 드니 이제서야 철이 들었다는 느낌이 들고 세상일에 조금 눈을 뜨게 된다. 論語의 六十而耳順이라는 경구가 비로소 마음에 와 닿는다. 그리고, 꼭 쓰고 싶다면 이제는 소설을 잘 쓸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러나, 늦어도 한참 늦었다는 자괴감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나이에 무슨 소설을 쓴다고 하면, 소설작가가 되겠다고 우기면, 누군들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겠는가? 남들은 20대에 등단해서 젊은 시절 한창 문명을 날리고 60대쯤이면 벌써 반 은퇴하여 원로 대접을 받는 데 말이다.
내가 4년 전쯤, 이 작품의 초고 30매 정도를 몇몇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진지한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모두 한결 같이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본업인 대학교수나 변호사 일에 전념하라고, 격려 아닌 격려를 쏟아냈다. 그들 모두가 문학에는 거의 무지막지한 수준의 동료 변호사였으니 말이다.
그 중에서 막역한 후배인 Y변호사를 결코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형님, 제발 그만 두세요. 유치한 짓 그만 두란 말이에요. 사람들이 노망들었다고 욕할 거예요.” 하면서, 노골적으로 핀잔을 했던 것이다. 그때 우리는 거나하게 취해 있었다. 취중진담이라고나 할까. 나는 아연실색 하였다. 내 하찮은 소설이 아니라 무릇 인간의 한심함 때문에 오랫동안 절망하였다.
그러나, 그런 노골적인 야유도 나를 멈추게 할 수는 없었다.
말랑말랑한 감성적인 글을 쓰는 일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학술논문이나 법학 전문서를 쓰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았다. 우선 글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교류하면서 서로 유쾌하게 소통할 수 있었다. 손으로 고통스럽게 쓰면서 내 몸과 글이 견고하게 결합되어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새삼스럽게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그 운율 때문에 감탄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말이 그렇게도 아름다운 줄은 미처 모르고 살아 온 것이다.
강남역 1번 출구. 낡은 회색 건물. 10층 구석 방.
그 방은 남향이여서 고층 빌딩 사이를 뚫고 침입한 햇빛이 늘 찬란하였다. 그 빛의 수다스러운 달변이 나에게 패배를 안겨 주었다. 내 마음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나는 그때 사악한 죄악을 마음속에 획책하고 있었던가. 패배는 인간의 영혼에게 승리보다 깊게 침투한다. 그 경이로운 빛이 나의 가슴 속에 강렬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 방에서 지난 4년여 동안 김규현 상무의 비극적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 100여 권이 넘는 참고서적을 자세히 읽었다. 그리고, 쓰고 또 고쳤다. 읽고, 쓰는 일처럼 유쾌한 일이 어디에 있을까. 한 문장을 완성하고 마침표를 찍을 때면 안도의 한숨을 쉰다. 그 마침표는 배가 항구에 도착하여 바다 밑바닥으로 던지는 무거운 닻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다시 읽어보면 늘 불만족스럽다. 단 한 번도 만족스러운 적이 없었다.
나는 평생을 읽고 쓰는 일에 매달려 살아온 셈이다. 종이 냄새를 사랑하였다. 그러니, 변호사들의 필수품인 골프, 바둑이나 포커, 고스톱도 할 줄 모르는 바보가 되어버렸다. 컴퓨터나 핸드폰 같은 문명의 이기도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들이다. 그래도, 글을 잘 쓰는 일은 항상 버겁다.

난, 지난 25여 년 동안 한 주에도 수십 장의 글을 썼다. 변호사의 주업무인 소장이나 답변서, 준비서면, 가끔 형사 고소장, 법률의견서 등을 쓰는 일 말이다. 그 이외에도 나의 주전공인 국제거래와 신용장거래, 금융거래와 관련해서 제법 두툼한 법학전문서 12권, 이들 분야에 대한 90여 편의 학술논문과 판례평석을 발표하였고,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으로 있으면서 200여 편의 사설과 기타 칼럼을 갈겨썼다.
그것들은 모두 한결같이 너무나 직설적이고 명쾌하며, 한 치의 빈틈도 있어서는 안 되는 논리 정연한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세상만사, 인생사 중에서 어느 것 한가지인들 그렇게 명쾌하고 논리적일 것인가. 모두가 불분명하고 확실치 않은 것 투성이일 뿐이다. 인간 삶의 조건 역시 의문투성이인 것이다. 그러니 주식투자도, 사람 사는 일도 고달픈 것이다.
나도 지금쯤은 그 지겨운 흑백논리의 멍에를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무엇보다도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세상의 허공에 대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왜 없겠는가.
왜, 하필 사막 이야기인가.
사막에는 완벽한 침묵이 존재한다. 사막에서 유일하게 귀중한 말은 침묵이다. 그곳에서 인간의 목소리는 언어가 되기 전에 먼저 침묵과 조우한다. 죽음과 같은 침묵이 황량한 사막의 존재를 정당화시켜 주었다. 대지에서 울리는 느낌이 너무 강렬하기 때문에 그 사막은 인간의 영혼을 사로잡는 주술적 마력을 갖고 있었다. 초인간적인 대지의 기운이 엄청난 힘으로 인간의 영혼을 빨아들인다.
요즈음의 경박한 세상에는 하찮은 일상을 지저분하게 늘어놓은 수필이나 에세이류, 여행기 또는 신변잡담을 무슨 의식의 흐름 수법이라는 그럴듯한 미명 하에 주절주절 써놓은 일기장 같은 소설, 새로운 것, 신기한 것에 강박관념이 든 나머지 얼토당토 않는 해괴망칙한 소설들이 넘쳐 난다.
지금 우리 소설들은 이야기는 너무 빈약하면서 변곡점에서 느닷없이 또는 지나치게 비틀어서 탈이다. 이제는 소설의 본류,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소설은 이야기일 뿐이다. 장편소설은 좀 더 긴 이야기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정확한 세부 묘사를 통하여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앞뒤가 잘 들어맞는 꽉 짜인 이야기여야 할 것이다. 소설은 현실보다 훨씬 더 진지하고 성실해야 한다.
나는 자신의 경험을 정직하게 간직하고 있다. 사람들의 오랜 경험은 인간 내면의 가치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삶에 대하여 절망하지 않으면 삶에 대한 희망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모든 걸 잃은 후에야 겨우 뭔가를 깨닫는다.
나는 인간 삶과 죽음의 조건, 인간의 운명과 같은 보다 근원적인 존재들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탐구할 생각이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는 필연적으로 자신의 존재 안에 죽음을 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삶의 마지막이 죽음이고 죽음의 시작이 삶이다. 죽음은 인간 삶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것이다.
이 소설의 전체적이건 또는 사소한 것이건 간에 모든 줄거리는 픽션이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깔린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상황 또는 배경은 대부분 실제 사실관계를 토대로 하였다.
아프리카와 사하라, 아라비아 반도, 지중해, 아마존 강 유역이나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콩고 강 유역의 열대다우림,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여러 사막, 아랍 민족, 이슬람교, 투아레그족, 낙타, 사자 등에 대하여 국내외에서 나온 수많은 훌륭한 저서들(역사서, 전기, 여행기, 종교 서적, 지리학 책, 인문학 책, 전문 잡지 등)을 참고로 하였다. 만약 이 책이 소설이 아니고 논문이나 학술서이었다면 그 각주를 몇백 개쯤은 달아야 했을 것이다.

컴퓨터 작업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작가를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은 법무법인 한결의 송보라 님과 법무법인 사람과 사람의 김미정 님께 감사드린다. 또, 이 소설을 흔쾌히 출판해주신 글누림출판사의 최종숙 대표와 이태곤 편집장, 편집부 직원들께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김규현 상무님과 작별인사를 할 차례이다.
이 고독한 사막 여행자는 가벼운 알코올 중독자였고 평생 동안 폐쇄 공포증과 우울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구 못지않게 성실하였고 깨끗한 삶을 살았다.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운명을 거역하지 않았다. 그에게 사막은 성지였고 그는 성지 순례자였다. 그는 2000년 7월 사하라를 여행하던 중 사막의 심연 속으로 사라졌다. 그의 나이 45세 때였다. 2000년 뜨거운 여름은 그때 모래 속에 묻혔다.
그의 고결한 영혼은 지금도 빛나는 태양의 직사광선을 면류관처럼 머리에 이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사하라의 모래언덕 위를 사뿐사뿐 걸어갈 것이다. 아니 깃털보다 더 가벼운 그의 영혼은 사막의 모래바람에 날려서 여기저기 가볍게 떠다닐 것이다.


목차

차라리 피고인이 되고 싶다
2019 즐거운 사라
인간의 초상

부록 1
마광수 교수의 문학관 소고

부록 2
단상 혹은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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