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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7756385 / 154쪽 128 x 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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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그늘을 만져 보다가
어둠을 접어 보다가
나무를 본다
문을 활짝 열어야겠다
호랑가시나무는 모항에서 새끼를 친다
호랑가시나무는 모항(茅港)에서 새끼를 친다 자꾸만 새끼를 치더니 무릎 꿇는 어미의 몸은 모서리를 풀어 풀어 둥글다 어리디어린데도 제법 도톰해진 새끼들의 얼굴 그 각점(角點)의 기운은 도도하고 다부져서 얼굴 살이 올라서 이목구비가 훤칠해져서 칠산 바다 빛으로 반짝거리는 생의 즐거움
그러나 팽팽한 이야기, 여기서 태어나는 절정의 순간에 뿌리내렸던 어미는 모항의 해풍을 품어 안고 따스하고 작은 항구에서 제 살을 깎아 시퍼렇게 솟아오르던 시절을 통과하는 늙은 나무의 순례기
모서리를 풀어놓는 일은 뾰족한 살의 각도를 깎아 내는 일 삶의 둥지를 한바탕 놀이마당으로 여는 일 어미는 자꾸 모서리를 깎는데 새끼들은 자꾸만 모서리를 만드는 모항에서 호랑가시나무가 붉은 나룻배를 탄다 ***
나무는 걷는다
선운사 입구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본색, 본색을 드러낸다
말갛게 들여다보이는 물속에
옷도 벗지 않은 채 들어가
보이지 않는 뿌리를 하늘로 들어 올리고
조금씩 수줍어한다
평온한, 저 면경 같은 물속에서
부끄러워한다 조금씩 더 부끄러워한다
햇살 한 줌으로 물구나무서는 나무들이
배꼽을 드러내고 성찰하는 오후
늙은 나무의 무게보다 더 찬란했을
새잎 한 장 태어나는 유쾌한 황홀로
바람이 걷는다
햇살이 걷는다
젖은 나무들이 걷는다
뿌리를 끌어안는 생잎사귀들은 속삭인다
좀 쉬어 가도 괜찮아요
절정이다 싶으면
잠시 머물다 가도 괜찮아요
몸속에 푸른 바람이 생기고 있으니
라일락 꽃숭어리처럼 안고 가세요
우듬지에 담아서 나누어 가세요
서로서로 손을 잡고 가슴 껴안는
따스한 날 물속에서 걷는다
제 무릎 아래 꽃무릇 세상 만드는 선운사의 나무들은 ***
오이꽃
팔순의 어머니 오이씨를 뿌리셨다
아파트 화단 흙을 퍼 올까 생각했지만
땅의 모서리를 훔쳐봤지만
단단하고 푸석해서 망설이다가
고봉산 자락 밑 흙을 빈 화분에 가득 채웠더니
아침나절 두 손으로 흙을 만드셨다
흙이 기름지다며
뼈 드러난 손으로 새 땅 빚으시더니
간밤 손바닥에서 반짝거리던 별을 심으셨다
씨 뿌리고 가신 후에
물은 잘 주고 있는지 싹은 나왔는지 너무 촘촘하면 옮겨 주어야 한다 창문은 활짝 열어 놓고 줄기 뻗으면 막대를 구해서 잘 세워 주어야 한다 전화벨 소리, 시간의 길이를 재셨는가 무게를 달고 계셨는가 첫 오이꽃 피던 날 이른 아침 꽃의 안부를 물으셨다
꽃이 피었다
샛노란 오이꽃이 다닥다닥 필 줄이야
피었다가 떨어지고 피었다가
떨어져 여름 내내 꽃만 피우더니 오이는 열렸을까
한여름 밤 어머니의 오이꽃 별자리에서 별들이 뜨고 있었다 ***
인의 말
제1부
벨링포젠 고원에서 ― 13
각시붓꽃 ― 14
생문(生門) ― 15
꽃문 ― 16
번행초 ― 18
귀룽나무 ― 19
레후아꽃 ― 20
동백나무 숲에 모이다 ― 22
나무는 걷는다 ― 24
별의 내부 ― 26
호랑가시나무는 모항에서 새끼를 친다 ― 28
꽃폭풍 ― 29
브로콜리 꽃 피다 ― 30
오이꽃 ― 32
나무는 나무에게 간다 ― 34
소광리에서 금강송 품다 ― 36
제2부
가벼운 것이 좋다 ― 41
달은 사막에서 운다 ― 42
도시의 어깨 ― 43
몸이 따뜻한 물고기 ― 44
안개는 젖은 채로 서 있다 ― 46
음악의 창고 ― 47
파란 T셔츠 ― 48
무의도(舞衣島) ― 49
폭포 그 강의 자궁 ― 50
빙하의 숨구멍 ― 51
풍경 이동 ― 52
가로지르기를 하다 ― 53
모과를 풍장하다 ― 54
채집한 꿈 ― 55
주발 ― 56
제3부
모자와 시 ― 61
고인돌 1 ― 62
고인돌 2 ― 64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1 ― 66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2 ― 68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3 ― 70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4 ― 72
파이프라인은 어디 있을까 5 ― 74
여섯 개의 푸른 병 ― 76
손주는 놀다 ― 78
얼음 호수 위에서 ― 79
껍데기 속에서 껍데기를 줍다 ― 80
귀를 접는다 ― 82
최고(最古)의 얼굴 ― 84
소금 바구니 ― 86
물방울 속에서 풍경을 읽다 ― 87
루부탱의 신발을 신어요 ― 88
붉은 상현달은 낙산에서 뜬다 ― 90
시인의 밥 ― 92
제4부
붕어 운동을 하다가 잠들었는데 ― 97
밥으로 오십니까, 왜 ― 98
옹기 ― 100
초록 식탁 위의 빵 ― 102
종탑에 오르다 ― 104
꽃십자가 ― 106
가슴 구유 ― 108
내가 빵으로 웃을 때 ― 110
피에타 ― 112
빛?성녀 클라라 ― 114
붉은 부채와 서재 사이 ― 116
11월 금요일 밤에 함께 있었다 ― 118
보원사지에 놀러 오시다 ― 120
와온에서 붉은 산을 만나다 ― 122
뿔 ― 124
은밀하고 팽팽한 경계에서 ― 126
고리 또는 고리의 숲 ― 128
반딧불이를 찾아가다 ― 129
해설
이찬 살의 존재론, 지상의 에피파니 ― 1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