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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너에게 꿈 꿀 시간을 줄게…”
열혈 교육형 아빠와 중학생 아들이 손잡고 떠난
시베리아 횡단열차 9,288km 여행!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농장 체험, 캠핑, 마라톤 참가, 무인도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살뜰히 챙겨왔다고 자부하는 아빠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이들의 사춘기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화가 줄고, 말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옛 성현은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얼굴을 뵌다(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며 자녀의 도리를 가르쳤건만, “아빠 다녀왔다”고 먼저 아이들의 방문을 두드려야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공부에 치이고 집에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아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못내 아쉬웠던 아빠, 마침내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TSR 타고 그림 그리며 러시아를 만나다
이 책은 자녀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 많은 열혈 아빠가 2018년 7월 17일부터 31일까지 14박 15일간 중학생 아들(두현명‧15)과 러시아를 여행한 기록이다. 아이와 좀 더 가까이서 부대끼고 색다른 경험을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어 선택한 여행지였다. 러시아의 속살을 보고 느끼는 체험을 하려면 대륙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거기다, 아들이 좋아하는 곤충 그림을 그려주다가 그림의 매력에 빠져 시작한 어반 스케치(urban sketch)를 곁들인 여행이었다.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그림 그리며 러시아를 만난다’는 독특한 테마 여행을 통해 함께 즐기고 공감하고 때로는 부대끼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장장 9,288km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Siberian Railway, TSR)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구간을 달리는 기차이며, 모든 여행자들이 꼭 한 번은 타고 싶어 하는 로망의 대상. 저자와 아들은 4인 공유 객실(쿠페)에서 현지인들과 ‘생활’하며,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 많고 속 깊은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몸소 체험한다. 저자의 특기를 살려 그림도 그려주고 같이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저자와 아들은 횡단열차를 두 번 나눠 탔다. 첫 번째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중심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를 보기 위해 이르쿠츠크 역에 내린 것. 부자(父子)는 바다만큼 넓고 장엄한 호수의 광경에 감동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며, 러시아 소도시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르쿠츠크를 즐긴 다음 다시 기차에 올라 모스크바로 향했다. 총 일주일간의 기차 여행이었다.
마침내 열차 종착지 모스크바에 도착해 본격적인 러시아 여행이 시작됐다. 러시아의 얼굴답게 현대적인 모습의 모스크바에서 아들을 데리고 모스크바국립대학교를 찾았다. “러시아의 학문적 성취와 학풍, 젊은 세대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학이야말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여행지이자 배움터”라며 “특히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현명이에게 다른 나라의 우수 대학과 그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에 매진하며 한 나라를 이끌고 갈 준비를 하는 인재들을 보여주어 더 큰 비전을 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다. 러시아 현대사의 중심지인 붉은 광장도 둘러봤다. 고리키 공원을 찾아 구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에 불었던 사회 변혁의 기운을 노래한 곡 <윈드 오브 체인지>(스콜피온스)도 아들과 함께 들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또 하나의 열차 ‘붉은 화살호’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갔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발레도 감상하고, 현지 스케치 그룹(‘USK 상트’)과 만나 ‘피의 구세주성당’ 등을 그리는 등 스케치 활동에 온전히 하루를 보냈다. 또한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문학기행에도 도전했다.
‘기다려주고, 천천히 함께 가는’ 여정을 배우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아이와 즐길 수 있었냐고?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아들이 여정을 통해 꿈을 되찾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열정을 가진 아빠”라서 가능했다. 물론 고되기도 하고 아들과 갈등을 빚는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에게 주었던 사랑과 기쁨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덕분에 일상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들은 제법 의젓하고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으며 발군의 그림 실력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국을 만나는 경험보다 훨씬 신기하고 값진 발견이었다.
러시아 사람들과 쌓은 우정도 큰 소득이었다. 특히 기차여행은 승객들과 어울리며 친구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 하나. TSR 정차역 중 하나인 타이셰트 역에서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는데, 허겁지겁 올라탄 기차에서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차를 잘못 탄 줄 알고 식겁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객실을 찾아갔지만 정작 아들은 “아빠를 잃을 뻔한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기를 목 빼고 기다리던 사람은 같은 객실에 묵던 8살 꼬마 파샤. 저자는 “이렇게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친구가 생기는 것이 횡단열차의 또 다른 매력인가 싶었다”고 말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자는 욕심만 앞세우는 “나쁜 아빠”였다면,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를 기다려주고 천천히 함께 가는 여정을 택하는 부모로 거듭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몸살이 난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결심했다. “아이들은 러시아보다 훨씬 광활한 이 세상에 나가기 전 부모 품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책에는 횡단열차 안에서, 바이칼 호수에서, 이르쿠츠크에서, 그리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주한 러시아 명소를 그린 아빠와 아들의 스케치가 나란히 실렸다.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채색화는 아빠가,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펜으로만 그린 그림은 아들 현명이의 솜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나 러시아 방문을 꿈꾸는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멋진 사진과 그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특히 “이 이야기가 미로처럼 복잡하고 계산의 끝을 모르는 방정식만큼이나 어려운 자녀교육을 함께 하고 있는 동시대 부모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출판사 리뷰
“너에게 꿈 꿀 시간을 줄게…” 열혈 교육형 아빠와 중학생 아들이 손잡고 떠난 시베리아 횡단열차 9,288km 여행! 주말마다 가족과 함께 농장 체험, 캠핑, 마라톤 참가, 무인도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살뜰히 챙겨왔다고 자부하는 아빠였다. 하지만 그런 그도 아이들의 사춘기 앞에서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대화가 줄고, 말없이 등교하는 아이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기 일쑤였다. 옛 성현은 ‘나갈 때는 반드시 아뢰고, 돌아오면 얼굴을 뵌다(출필곡 반필면出必告 反必面)’며 자녀의 도리를 가르쳤건만, “아빠 다녀왔다”고 먼저 아이들의 방문을 두드려야만 겨우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씁쓸한 현실이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사춘기를 보내는 아들과 잘 지낼 수 있다”고 자조하기도 했다. 학교와 학원에서는 공부에 치이고 집에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빠져 사는 아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게 못내 아쉬웠던 아빠, 마침내 아들과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TSR 타고 그림 그리며 러시아를 만나다 이 책은 자녀 교육에 누구보다 관심 많은 열혈 아빠가 2018년 7월 17일부터 31일까지 14박 15일간 중학생 아들(두현명?15)과 러시아를 여행한 기록이다. 아이와 좀 더 가까이서 부대끼고 색다른 경험을 함께 하며 마음을 나누고 싶어 선택한 여행지였다. 러시아의 속살을 보고 느끼는 체험을 하려면 대륙을 가로지르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거기다, 아들이 좋아하는 곤충 그림을 그려주다가 그림의 매력에 빠져 시작한 어반 스케치(urban sketch)를 곁들인 여행이었다. 덕분에 ‘시베리아 횡단열차 타고 그림 그리며 러시아를 만난다’는 독특한 테마 여행을 통해 함께 즐기고 공감하고 때로는 부대끼면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고 가족 간의 사랑과 신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장장 9,288km를 달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Trans-Siberian Railway, TSR)는 세계에서 가장 긴 구간을 달리는 기차이며, 모든 여행자들이 꼭 한 번은 타고 싶어 하는 로망의 대상. 저자와 아들은 4인 공유 객실(쿠페)에서 현지인들과 ‘생활’하며, 겉으로는 무뚝뚝해 보이지만 정 많고 속 깊은 러시아 사람들의 정서와 문화를 몸소 체험한다. 저자의 특기를 살려 그림도 그려주고 같이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저자와 아들은 횡단열차를 두 번 나눠 탔다. 첫 번째는 러시아 극동 지역의 중심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호수인 바이칼호를 보기 위해 이르쿠츠크 역에 내린 것. 부자(父子)는 바다만큼 넓고 장엄한 호수의 광경에 감동하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며, 러시아 소도시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르쿠츠크를 즐긴 다음 다시 기차에 올라 모스크바로 향했다. 총 일주일간의 기차 여행이었다. 마침내 열차 종착지 모스크바에 도착해 본격적인 러시아 여행이 시작됐다. 러시아의 얼굴답게 현대적인 모습의 모스크바에서 아들을 데리고 모스크바국립대학교를 찾았다. “러시아의 학문적 성취와 학풍, 젊은 세대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대학이야말로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가늠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여행지이자 배움터”라며 “특히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현명이에게 다른 나라의 우수 대학과 그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연구에 매진하며 한 나라를 이끌고 갈 준비를 하는 인재들을 보여주어 더 큰 비전을 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는 게 그 이유다. 러시아 현대사의 중심지인 붉은 광장도 둘러봤다. 고리키 공원을 찾아 구소련 붕괴 당시 러시아에 불었던 사회 변혁의 기운을 노래한 곡 [윈드 오브 체인지](스콜피온스)도 아들과 함께 들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에서 인기 있는 또 하나의 열차 ‘붉은 화살호’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도 갔다. 문화와 예술의 중심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발레도 감상하고, 현지 스케치 그룹(‘USK 상트’)과 만나 ‘피의 구세주성당’ 등을 그리는 등 스케치 활동에 온전히 하루를 보냈다. 또한 아들과 자전거를 타고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죄와 벌』의 흔적을 따라가 보는 문학기행에도 도전했다. ‘기다려주고, 천천히 함께 가는’ 여정을 배우다 어떻게 이 모든 것을 아이와 즐길 수 있었냐고? 아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아들이 여정을 통해 꿈을 되찾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려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은 “열정을 가진 아빠”라서 가능했다. 물론 고되기도 하고 아들과 갈등을 빚는 순간도 있었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부모에게 주었던 사랑과 기쁨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곤 했다. 덕분에 일상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아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도 했다. 아들은 제법 의젓하고 든든한 여행의 동반자가 되어 주었으며 발군의 그림 실력을 드러냈다. 그것은 이국을 만나는 경험보다 훨씬 신기하고 값진 발견이었다. 러시아 사람들과 쌓은 우정도 큰 소득이었다. 특히 기차여행은 승객들과 어울리며 친구가 되는 과정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 하나. TSR 정차역 중 하나인 타이셰트 역에서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는데, 허겁지겁 올라탄 기차에서 아들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기차를 잘못 탄 줄 알고 식겁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객실을 찾아갔지만 정작 아들은 “아빠를 잃을 뻔한 줄도 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가 돌아오기를 목 빼고 기다리던 사람은 같은 객실에 묵던 8살 꼬마 파샤. 저자는 “이렇게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친구가 생기는 것이 횡단열차의 또 다른 매력인가 싶었다”고 말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저자는 욕심만 앞세우는 “나쁜 아빠”였다면, 이번 여행을 통해 아이를 기다려주고 천천히 함께 가는 여정을 택하는 부모로 거듭난다. 그리고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몸살이 난 아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다 결심했다. “아이들은 러시아보다 훨씬 광활한 이 세상에 나가기 전 부모 품에서 더 많은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까 부모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고. 책에는 횡단열차 안에서, 바이칼 호수에서, 이르쿠츠크에서, 그리고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마주한 러시아 명소를 그린 아빠와 아들의 스케치가 나란히 실렸다. 따뜻하고 밝은 느낌의 채색화는 아빠가, 사실적이고 세밀하게 펜으로만 그린 그림은 아들 현명이의 솜씨다.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이나 러시아 방문을 꿈꾸는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을 흥미로운 이야기와 멋진 사진과 그림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특히 “이 이야기가 미로처럼 복잡하고 계산의 끝을 모르는 방정식만큼이나 어려운 자녀교육을 함께 하고 있는 동시대 부모들에게 소소한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꽤 오래전부터 나의 꿈은 ‘좋은’이라는 형용사를 나를 칭하는 모든 명사 앞에 붙이는 것이었다. 예를 들면 좋은 선배, 좋은 형,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같은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자 나는 ‘좋은 아빠’라는 환상을 쫓아 미친 듯이 달렸다. 좋다는 것을 다해주면서 키우지만 결과는 기대만큼이 아니었다. 어쩌면 좋은 아빠가 아니라 좋은 아빠이길 바라는 나쁜 아빠였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려놓고 놓아주기를 연습 중이다. 무심한 것은 무관심한 것과는 다르게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다. 그것이 아이 스스로 커 가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나는 천천히 그 길을 아이와 같이 갈 것이며 그 연습 과정 중 하나로 아들과의 여행을 선택했다.
- 프롤로그 ‘천천히, 그러나 함께 걷는 길’중에서
아빠가 대부분 준비한다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아이를 참여시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준비물도 함께 생각하고 장도 같이 본다. 그러다 보면 여행에 대한 기대로 아이와 대화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와 함께 준비하는 여행은 하루가 아닌 한 달짜리 여행이 되고 1년짜리 여행이 된다.
아들과 머리를 맞대고 여행의 큰 밑그림을 그려나가는 동시에, 세부 일정도 세웠다. 여행 가서 하고 싶은 일을 미리 골라보는 것인데, 이름난 관광지를 쫓아다닐 게 아니라 우리 부자가 함께 보고 듣고 즐길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철칙이었다.
어른이 주도하는 잘 짜인 여행이 아닌, 조미료나 소금기 없는 다소 맛없고 투박한 음식처럼 아이 스스로 체험하고 배울 여지가 많은 여행. 그런 여행이야말로 인터넷을 비롯한 수많은 자극에 길들여진 아이에게 더 의미 있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아이가 상상하는 여행 계획하기’ 중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처음 본 아저씨는 만난 지 5분 만에 자신의 휴대폰 속 사진을 보여주며 만담을 시작했다. 곰 털로 만든 색 바랜 코트를 입고 면도를 안 해 덥수룩한 모습이 딱 사냥꾼 같았다. 철도 수리하는 일을 하며 이르쿠츠크에 산다고 했다. 그는 한참 동안 휴대폰을 뒤져 동영상을 보여줬는데 친구들과 함께 숲속에 있는 곰을 잡는 장면이었다. 러시아에서 곰 사냥은 합법적이라 여행 온 외국인들도 많이 즐긴다고 하는데, 말로만 듣던 곰 사냥이라니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 횡단열차 안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는 집 근처에서 마주친 호랑이와, 불곰을 잡으려다 곰에 물리는 장면을 찍은 동영상도 보여줬는데, 자기가 봐도 재미있는지 혼잣말을 하며 껄껄 웃기도 했다. 그 모습에선 강인한 러시아 남자들의 ‘마초 기질’이 배어 나왔다.
-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다’ 중에서 -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는 침대째 하늘을 떠다니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에서는 물안개를 침대삼아 떠다니는 기분이다. 기차 흔들림 속에서도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등 시간이 갈수록 적응이 돼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호숫가에서 책이나 스케치북을 펼쳐도 한없이 좋을 것 같다. 차창 밖 대평원의 장대함과 러시아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은근한 마음의 교감이 횡단열차가 주는 선물 같았는데, 바이칼 호수의 장엄함과 고요한 아름다움도 기차가 내려놓고 간 또 다른 선물 같았다.
둘만 있는 이곳이 마치 우리 집인 양 느릿느릿 움직였다. 대자연의 장관을 보고 마음의 안정과 평안을 느끼고 왔으니 배고픔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닌 듯했다. 때늦은 식사를 해결한 뒤 숙소로 돌아가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마치 안방에서 뒹굴거리듯 편안한 기분이다. 옆에서 포근히 자는 아들이 있어 좋다. 아이가 잠꼬대를 하는데 무려 러시아 말이 튀어나온다. 깜짝 놀라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아들을 쳐다보며 키득거렸다.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그다’중에서
이르쿠츠크는 어떤 때는 대도시 같고 어떤 때는 폐허의 도시 같은 이중적 느낌을 준다. ‘시베리아의 파리’라지만, 먼지 날리는 뒷골목과 손질되지 않은 정원, 비포장도로가 지금도 계속 개발 중인 도시임을 증명해준다. 러시아는 냉전 시대에 소련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의 종주국이었고, 우주개발과 핵미사일 등으로 미국과 치열하게 경쟁을 하던 나라다. 또한 소련 붕괴 당시 세계사의 변화를 주도했던 나라이다. 그렇게 세계 패권을 쥐고 흔들던 러시아가 이토록 평범하고 소박한 면모가 있었던가 싶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 이르쿠츠크의 뒷골목이다. 그런 길을 새로 산 캐리어를 끌고 간다는 건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버스를 타자는 내 말에도 아들은 거침없이 캐리어를 끌고 앞으로 나갔다.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중에서
고리키 공원은 우리나라에도 온 적 있는 독일 메탈그룹 스콜피온스의 세계적인 히트곡〈윈드 오브 체인지〉의 첫 소절에 등장하는 곳이기도 하다. ‘모스크바 강을 따라 고리키 공원을 거닐며 변혁의 바람 소리를 들었지(I follow the Moskva, Down to Gorky Park, Listening to the wind of change)’
나는 스콜피온스의 공연을 직접 본 적이 있어 이 공원에 더욱 와보고 싶었다. 아들과 이어폰을 나눠 끼고〈윈드 오브 체인지〉를 들으며 공원을 산책했다. 이 곡은 냉전이 끝나갈 무렵, 구소련 체제의 막을 내리고 글라스노스트(고르바초프 서기장이 실시한 개방정책)의 길로 나아가던 모스크바의 모습을 담았다. 한 마디로 구소련 붕괴를 ‘변화의 바람’이라 노래한 것이다. 당시 독일에 이어 러시아까지 동구권의 거대한 변화를 목격하며 도도한 역사의 흐름에 전율했던 우리 세대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명곡인데, 아들은 그런 배경 설명을 듣고도 큰 감흥은 없는 듯했다. 역사 인식이 서로 다른 만큼 세대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나 할까.
‘한낮의 모스크바 산책’중에서
드디어 공연을 보러 가는 길. 하지만 공연 시간에 임박해 도착한 곳은 알렉산드린스키 극장이 아닌, 미하일로프스키 극장이었다. 미하일로프스키 극장 매니저는 러시아어 억양이 강한 영어로 ‘시간이 늦어서 공연 시간에 맞춰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러시아 여행에서 꼭 하고 싶었던 한 가지를 못 하게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하지만 망설일 시간조차 없었다. 구글 지도로 확인하니 달려가면 충분히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들에게 뛰어야 한다고 하니, 걱정 말라며 쏜살 같이 달리는 녀석. 바람처럼 달려 겨우 도착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몸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본고장에서 발레를 보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수할 일이다. 언젠가는 이마저도 잊지 못할 아들과의 소중한 추억이고 기억이리라.
-‘백조처럼 우아하고 히피처럼 자유로운’중에서
현명이에게 USK 상트 멤버들과 만나기 전에 연습 삼아 그림 한 장 그려보자고 했지만 자기는 현장에서 바로 그리겠단다. 사진을 보고 그린 모스크바 대학본부를 실제와 비교해 보며 자신감을 얻었던 것 같다.
아이의 그런 용기와 배짱이 부러운 한편, 나중에 이 여행이 어떤 식으로든 아이의 삶에 양분이 되어 줄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강요 대신 믿고 기다려 주는 만큼 쑥쑥 자라다는 믿음도.
… 나중에 듣기로는 USK 상트 멤버들은 한국에서 온 우리 부자를 위해 피의 구세주성당을 모임 장소로 선정했다고 한다. 자신들은 이미 수없이 그린 곳이지만, 한국에서 온 아빠와 아들이 그리기 좋으면서도 러시아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할 만한 곳으로 고심 끝에 이곳을 골랐다는 것. 우리는 그런 사정도 모르고 며칠 전까지도 연락이 없길래 ‘못 만나겠구나’ 싶었는데, 이런 따뜻한 배려가 숨어 있었을 줄이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그리다’중에서
어려운 고전도 아빠와 함께 읽어 좋았던 것일까. 현명이와 반나절을 라스콜니코프가 되어 그의 동선을 따라다니는 사이, 150년 전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죄와 벌』은 인쇄된 활자가 아닌 우리 머릿속에서 생생한 현실로 되살아나는 듯했다.
… 물론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특유의 반항심과 고집스러운 태도로 부모를 속상하게 할 때가 있는데, 이날도 아들의 어이없는 태도에 기가 막히고 말았다. 주인공이 전당포 노파를 죽이고 소냐 집까지 갔던 길을 되짚어 가보자고 하니, 퉁명스럽게 “진짜 있었던 일도 아니고 소설인데 굳이 이 길로 가야 해? 그냥 편한 길로 가면 되지”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즐겁게 잘 다니다가 갑자기 시큰둥하게 돌아서버리는 녀석. 이것이 방황하는 사춘기 아이들의 특징이라는 걸 알면서도 화가 났다. 30도 가까운 날씨에도 무더운 줄 모르고 다녔는데 갑자기 더워진다. 하지만 감정을 가라앉혀본다. ‘우리 아들은 모순덩어리이자 한없이 엇나가고 싶은, 영락없는 사춘기다. 그걸 잊지 말자.’ 그러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다시 웃으며 아들을 봤다.
‘소설이 현실이 되는 마법의 시간’중에서
그러나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따뜻한 우리 집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알기 때문에 힘들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오히려 아들과 좀 더 가까워지고, 더 많이, 더 자주 소통했다는 기쁨이 가득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물설고 낯선 곳에서 우리 부자는 완벽한 한 팀이 되곤 했다.
… 하지만 우리는 갈등과 시행착오, 용서와 화해를 통해 다시 회복되고 돈독해지는 가족이다. 신뢰는 단번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과 시간의 단련을 통해 탄탄해지는 것 같다. 멋진 경험은 사소한 작은 일들이 모여 이루어진다는 것도 여행을 통해 배웠다. 이 모든 기억과 깨달음이 훗날 우리 둘 사이에 변치 않는 화석이 되어 힘들고 깨지고 다쳤을 때 끈끈한 접착제가 되고 치료제가 될 거라는 믿음, 그것이 바로 내가 이번 여행에서 받은 선물이었다.
‘우리 여행은 감동이었어’중에서
프롤로그 ________ 천천히, 그러나 함께 걷는 길
CHAPTER 1 _________ 아빠와 아들, 낯선 세상 속을 걷기로 하다
‘가족생활기록부’가 있다면/ 네게도 찾아온 ‘중2병’/
아빠도 ‘사추기’를 겪는다/ 아들아, 우리 이제 여행을 떠나자
CHAPTER 2 ________ 두근두근, 여행 준비
아이가 상상하는 여행 계획하기/ 좋은 것을 좋게 볼 수 있는 행복/
[세상의 1/4을 가로지르다!]
CHAPTER 3 ________ 반갑다, 러시아
러시아의 관문,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천사를 만나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다/
횡단열차 풍경/ 그녀는 선생님, 나는 학생/ 너는 무료하지만 아빠는 즐거워/
정차역에서 만난 그녀의 고향/ [횡단열차 타고 만나는 러시아 관광 명소]/
러시아 의사는 각설탕을 6개 먹는다/ 츤데레, 그들의 매력입니다
CHAPTER 4 ________ 기차는 대륙을 건너고
바이칼 호수에 손을 담그다/ [손발을 적시며 젊음을 되찾는 곳]/
호수의 아침, 내게 준 사랑을 기억할게/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 두 번째 기차에 오르다/
‘TSR 패밀리’가 되는 법/ 스케치는 ‘자유로움’이다/ [안나가 그린 환바이칼 철도란?]/
아빠를 잃을 뻔한 줄도 모르고/ 아빠는 대평원을 꿈꾼다/ 러시아 엄마의 ‘마술 가방’
CHAPTER 5 ________ 러시아의 심장을 만나다
붉은 광장은 아름답다/ [러시아의 자랑, 모스크바 지하철]/ 한낮의 모스크바 산책/
너에게 모스크바대학을 보여주고 싶은 이유/ [모스크바의 ‘스탈린 시스터즈’]/
붉은 화살호를 타고/ 고풍적인 아름다움, 상트페테르부르크/
[아름다운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이모저모]/ 백조처럼 우아하고 히피처럼 자유로운/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그리다/ 소설이 현실이 되는 마법의 시간
CHAPTER 6 ________ 집으로 가는 길
수수한 매력의 그대는 ‘발트 해의 아가씨’/ 우리 여행은 감동이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