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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환장할 우리 가족》은 한국 사회의 ‘가족’이 갖는 배타적이고 억압적인 모습에 답답함을 느껴온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국회에서 입법 및 정책 보좌관으로 일했던 저자 홍주현은 남편의 암 선고라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돌아보고, ‘우리’가 아닌 ‘나’와 ‘너’가 존중받는 가족의 새로운 모습을 이 책에서 모색하고자 한다.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나누고 차별의 시선을 보내는 우리 사회의 편견에 맞서, 누구나 존중받는, 정신적으로 자립한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출판사 리뷰
환장할 ‘우리’ 사회의 가족을 위한 이야기 집단으로서의 ‘우리’ 가족을 해체하고 ‘개인’과 ‘개인’이 연대하는 공동체로서의 가족 만들기 '우리 가족'은 삭막한 세상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기 쉽고, 그 마지막 보루를 위해 가족 구성원은 희생을 감내하고자 한다. 그 마음에는 어떤 악의도 없겠지만, 가족에게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때, 우리는 그 사태를 해결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낙오자의 기분을 느낀다. 그러나 거기서 끝일까. 우리는 암 또는 이혼과 같은 문제를 겪는 가족의 구성원을 인생의 낙오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가족의 불행에 해당 구성원의 잘못이 없더라도 말이다.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 부모의 불화로 이혼한 가족의 자녀는 가족의 불행에 어떤 죄도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마지막 보루인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가족의 문제를 자신의 잘못으로 생각하고, 타인들은 쉽게 그 사람을 낙오자로 평가한다. 왜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 앞에서 쉽게 죄인이 되는 걸까. 왜 '가족'이란 이름은 우리에게 환장할 고통을 주는 걸까. 이 책은 이 부분에서 한국 가족의 위기와 가족 해체의 원인을 본다. 한국 사회는 우리에게 아무 문제 없는 '정상 가족'에 의존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우리는 '우리 가족'에서 가족 구성원이라는 '개인'을 분리해야 하고, '비정상' 가족이 된 구성원을 소외시키는 것도 멈춰야 한다. 가족은 이상이 아니라 우리가 포용하고 키워야 할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를 위해 저자 개인의 사연과 한국의 가족관을 설명하면서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책은 총 3장으로, 1장은 저자가 문제를 갖게 됨으로써 자각하게 된 한국의 가족 (집단주의) 현상을 고발한다. 2장은 저자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으로서 전통적 가족관을 대신할 새로운 가족관을 제시하고, ‘개인’이 연대한 공동체로서의 가족의 모습을 보여준다. 3장은 ‘개인’이 연대한 공동체로서 가족을 만들기 위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과 방향을 모색하고자 한다. 집필 동기 남편의 암 선고와 투병생활. 가족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 경제라는 현실적 문제. 이 모든 어려움에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정상'에서 ‘비정상’ 가족이 되어가는 두려움이었다. 남편의 건강 상태를 알았을 때, 나는 나 자신의 자존감이 하락하는 것을 느꼈다. 모든 것이 불안하고 괴로웠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있었다. 바로 나 자신이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가족의 불행은 슬픈 일이지만 그것이 곧 내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는 실패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고, 주변에서는 다른 출발을 권유하기도 하였다. 가족을 정리하여 ‘비정상’에서 벗어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나를 위한 최선의 조언이었겠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 될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 결혼하고 만 2년이 되지 않았을 때 남편이 말기 암 선고를 받았다. 암이 발생한 장기의 상태도 중증이지만, 다른 장기까지 퍼졌다면서 빨리 수술해야 한다고 했다. 처음엔 잘 와 닿지 않았다. 암은 그저 드라마에서 보거나 남들 얘기인 줄 알았기에 그것이 얼마나 심각하고 충격적인 일인지, 내 인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인지 전혀 가늠하지 못했다. 심지어 하루 종일 남편과 함께 지낼 수 있어 좋다고 생각했으니, 얼마나 어수룩했는가. 그 무게는 천천히 조금씩 나를 짓눌렀고, 투병하는 남편 곁에서 나는 평소 잘 인지하지 못한 가족과 자신에 대한 생각이 그 무게를 더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나는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투병 생활도 힘들었고 죽음이 엄습하는 것도 무서웠으며, 미래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도 괴로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이 루저(패배자나 불량품 같은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루저가 된 것 같았을까? 그 일이 발생한 원인에 내 잘못은 없었다. 무엇보다 배우자가 큰 병에 걸린 건 내 존재 가치와 아무 상관없는 일이다. (7쪽)
■ ‘우리’에서 ‘나’를 분리하는 시도는 의식적 측면의 내적 변화다. 따라서 투병하는 남편과 그 옆에서 투병을 돕는 내 상태는 여전했다. 경제적 사정도 마찬가지다. 외적으로 변하는 건 전혀 없었다. 내가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과 태도가 달라졌을 뿐이다. 나는 남편의 투병을 ‘우리’, 즉 가족의 일이라기보다 ‘나’의 일로 받아들였다. 비록 내 의지나 잘못으로 겪은 일이 아니지만, 무력한 피해자로서 어쩔 수 없이 불행을 이겨내는 게 아니라 내 삶에 등장한 내 일로, 그 일에 대한 내 책임을 수용하려고 했다. 그러자 나를 무겁게 짓누르며 벼랑으로 내모는 것 같은 일이 두렵지 않았고, 점점 그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했다. 나를 짓누른 건 그런 일이 아니라 어쩌면 그 일에 내 책임은 없다며 피하고 도망가려는 내 태도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가족 안에서 ‘우리’가 아닌 ‘나’로 거듭나며 삶의 주인 자리를 되찾으려고 노력했다. (11~12쪽)
■ 혈육과 가족이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는 없다. 혈육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가족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의무를 요구하고, 반대로 가족은 반드시 혈육이어야 한다는 믿음은 가족을 평생 풀지 못할 족쇄로 만드는 원인이 된다. 이런 믿음이 안락과 정신적 지지로 작용해야 할 가족이 환장할 사슬이 돼 오히려 가족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 아닐까. 포에게 생부는 아버지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를 낳아준, 피가 섞인 혈육이니까. 하지만 그것으로 가족이라 여기기엔 부족하다. ‘아버지’는 그저 호칭에 불과하다. 포에게 가족은 생물학적 동질성을 갖춘 생부가 아니라 판다인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혀 다른 종인 거위 핑이다. 가족의 자격은 생물학적 핏줄이 아니라 구성원을 ‘너’로 존중하고 신뢰하는 태도에 있는 것 아닐까. (152~153쪽)
■ 과연 가족은 온전히 사적인 영역일까. 사회라는 공적 영역이 ‘개인’이라는 사적 존재가 모여 만든 것이라면, 사회 이전 단계의 공동체인 가족도 어느 정도는 공적 성격을 갖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가족 역시 ‘개인’이 모여 만든 공동체니까. 엄밀히 말해서 가족은 사생활을 공유하는 관계고 집이나 가정은 그 공유가 구체적으로 이뤄지는 공간이지, 가족이나 그 영역의 성격을 오직 사적인 것으로 규정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만약 가족이나 그 영역이 온전히 사적인 것이라면 가족 구성원은 사적인 개인이 될 수 없다. 가족을 하나의 사적인 것으로 뭉뚱그려 인식하면 ‘개인’이 존재할 자리를 찾기 어렵다. ‘나’라는 개인, 사적 존재는 그저 가족이라는 한 덩어리로 소멸되고, 사회라는 공적 영역을 형성한 사적 존재는 개인이 아니라 가족 집단이 된다. (172쪽)
1. 남편의 말기 암 선고가 왜 내 자존감을 저하시켰을까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의 함정, 환장할 ‘우리’의 탄생
가족과 교류를 끊고 지내겠다는 정치인과 이를 환영하는 사회, 괜찮은 걸까
아이 없이 둘이서만 사는 것도 가족이야? 하나의 ‘정상’과 다양한 ‘비정상’
아이 없이 살아야 하는 걸 그토록 두려워했던 이유는 ‘비정상’ 가족이라는 낙인
이혼한 친구와 내가 이민을 가고 싶은 건 주류로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를 잘라라’ 주문을 외우며 다니던 직장
최소한의 인간적 삶을 위해 각자도생하는 ‘우리’
불완전한 가족을 탈출하라, 이혼을 권유하는 자상한 충고들
가족은 화목하고 완전한 것이라는 환상의 역설
갈등에 대한 죄책감 증후군
직장 환영 회식에서 울음을 터트린 외국인, 다름을 비정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내가 해야 할 효도를 배우자가 대신 할 수 있을까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우리’
2. ‘우리’에서 ‘나’를 분리하다
한국에서 결혼은 개인과 개인의 일인가
아이에게 해야 할 사과를 아이 엄마와 주고받은 나, 신체발부수지부모 가족관의 마력
대학 중퇴라는 자식의 갑작스런 결정을 그녀가 존중할 수 있었던 건
가족은 ‘나’의 선택과 동의로 만든 공동체
남편의 투병을 ‘우리’가 아닌 나 ‘개인’의 일로 만들다
나는 아내인가 며느리인가 간병인인가
외국인이 솔깃해하는 꿀팁, 한국에서는 상대방 이름을 몰라도 돼!
아내이고 며느리이고 간병인인 나, 그 뒤에 있는 ‘나’를 찾다
어려움에 처한 자식을 두고 여행가는 엄마, 덕분에 자신감을 얻다
가족에게 힘이 되려면 ‘너’와 ‘나’로 분리하는 일부터
‘우리’의 자아도취적 만족이 아닌 ‘너’와 ‘나’의 진짜 사랑
가족이란 ‘남’에 불과했던 사람들을 ‘너’로 만드는 연금술사
엄마의 사랑은 ‘피’에서 나오는 것일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미신의 실체, 한국의 혈연관계는 핏줄이 아니다
아버지와 가족은 다르다
WEIRD문화권에서는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놀다가 새벽녘에 들어 온 그, 화를 낼까 말까
3. ‘우리’가 아닌 ‘너’와 ‘나’의 연대를 위해
가족이 마지막 보루인 사회에서 일어나는 가정폭력
가정폭력과 사생활, 사생활은 ‘개인’의 것이지 가족 ‘집단’의 것이 아니다
결혼을 두고 요즘 청년이 이것저것 너무 따지는 이유
결혼은 선택이라고 말하는 젊은이, ‘개인’의 등장
결혼 대신 동거를 권하는 부모, 북유럽 보편 복지가 지향하는 바는 평등이 아니라 개인주의
저출산 현상에 대한 대응책은 미혼모와 입양에 대한 인식 개선
윤식당 스페인 편, 회사를 위해서 내 시간을 쏟고 싶진 않아(일과 나 분리를 위한 공적 보험)
구시대적 시각을 벗어나지 못하는 살림에 대한 편견
공동체에서는 아무도 희생하지 않는다, 갈등은 유토피아에 이르는 관문
애덤 스미스의 이익추구는 이기주의가 아니라 연대를 위한 개인주의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해하기 위해서 하는 토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