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고예상일 안내
주문하신 상품이 한국에서 현지 배송을 위한 출고단계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날짜입니다. 상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출고예상일에 다소 오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러 상품(예약상품포함)을 함께 주문하신 경우 출고예상일이 가장 늦은 날짜에 맞춰 함께 배송됩니다.

ISBN : 9791160944525 / 312쪽 / 406g / 140 x 210 (㎜)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
홍성수
-
박미진, 박은정
-
주지현
- 21,600
- 16,920
- 21,150
- 18,900
출판사 리뷰
사진에 찍힌 것과 찍히지 않은 것
고향에 있는 친척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었다는 점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가족사진’은 단지 거기에 찍힌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사진이라는 점이요. 사진이라는 표현 미디어는 찍는 행위만으로는 완결되지 않고 보여줄 때에야 비로소 의미가 성립되는 특징이 있죠. 사진을 볼 사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을 위해 찍은 재일조선인의 가족사진은 그것을 인화한 뒤 발생하는 의미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_266쪽, 하기와라 히로코와의 인터뷰 중에서
사진은 진실을 드러낼 뿐 아니라 진실을 감추기도 한다.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에게 가족사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바다 건너 타국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온 그들은 조선에 남은 가족들에게 소식을 전할 수단으로 가족사진을 택했다. 직업을 구했을 때, 결혼을 했을 때, 아이가 태어났을 때 등 그들은 가족의 대소사를 사진에 담아 조선으로 실어 보냈다. 이때 가족사진에는 그것을 받아보게 될 조선의 가족들에게 하고자 하는 말이 담겨 있었다. ‘저는 여기에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곳의 생활은 괜찮아요. 부디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그러나 이 말은 어디까지가 사실일까? 그들은 정말로 안전하고 넉넉한 삶을 꾸릴 수 있었을까? 『보통이 아닌 날들』(원제 ‘가족사진을 둘러싼 우리의 역사家族寫眞をめぐる私たちの?史’)은 이러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마이너리티 여성의 삶으로 쓴 역사
일본은 1995년 국제 인종차별철폐협약에 가입했지만 근대에 일본제국에 의해 강제로 편입된 아이누와 류큐?오키나와의 사람들, 식민 지배를 받았던 조선 및 타이완 출신자와 그 자손들, 그리고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과 난민에 대한 차별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일명 재특회)’의 재일조선인을 향한 헤이트스피치는 날이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고 있고, 기업이 직원을 채용할 때 피차별부락의 지명과 주소, 상호 등이 적시된 ‘부락지명총람’을 이용했다가 적발되는 사건이 여전히 빈번하게 벌어진다. 그 속에서 여성은 출신과 성性이라는 이중의 사슬에 묶인 채 살아가고 있다.
『보통이 아닌 날들』에는 여성이 살아온 삶의 생생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나이도 다르고 태어난 곳과 자라온 환경도 달랐지만, 이들은 각자의 앨범에서 가족사진 한 장을 꺼내와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그리고 자신으로부터 다시 딸에게로 이어지는 현실의 문제들을 함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일상에서 겪는 차별은 개인의 생명과 소수자 공동체 전체의 생존을 위협하기도 했고, 때로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차별 의식을 마주하게 하기도 했다.
일본 사회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온 재일조선인, 피차별부락, 아이누, 오키나와, 베트남, 필리핀 출신 여성 22명의 이야기가 세대와 출신지를 뛰어넘어 서로 교차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안에 존재하는 차별의 구조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여기에 더해 책을 통해 하나로 묶인 이야기들은 그 자체로 ‘근현대 여성사’의 일부가 되었다. 누구나 아는 역사가 아닌 피차별 여성의 삶을 바탕으로 새로 쓴 역사는 책 말미에 실린 「가족사진으로 본 역사 연표」에서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여전히 ‘보통이 아닌 날들’
책 속의 이야기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마이너리티 공동체 내부에 ‘일본인 되기’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평범한 수준의 생활과 안전에 도달한다는 뜻이었다. 이 열망은 그들이 가진 정체성을 배신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그것을 유지한 채 생존하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마이너리티 정체성을 다져가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였다. 가족 앨범 안에 들어간 ‘기모노를 입고 찍은 사진’에 대한 묘사가 이런 상황을 잘 보여준다. “기모노 차림의 사진을 나뿐만 아니라 많은 자이니치들이 가지고 있었다. ‘조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본인 같다’는 말이 자이니치들 사이에선 칭찬이기도 했다. 일본인인 척할 수 있다는 것은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값비싼 기모노를 살 수 있을 만큼 성공한 자신의 삶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기모노 차림의 어머니가 자랑스러웠고, 사진을 앨범에 붙이면서 ‘자, 이제 난 일본인이 될 수 있어’라는 생각에 가슴이 부풀었다” 등 여러 장면에서 ‘일본인 되기’의 열망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다.
재일조선인의 ‘조선 국적’은 국가가 구성원에게 제공하는 사회?경제?교육의 혜택을 제한했다. 그들은 일본에 ‘특별히 영주할 수 있는 자격’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언제라도 강제 퇴거당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렸다. 민족성이 소거된 재일조선인은 조선식 이름과 일본식 이름 사이에서 갈등해야 했고, 항상 외국인등록증을 휴대한 채 생활하며 손가락 10개의 지문 모두를 국가에 제출해야 했다. 모국인 한국의 정치 상황이 혼란스러울 때마다 간첩 조작 사건의 희생양이 되었던 것도 바로 이들이다. 2010년에는 일본의 고등학교 무상교육 대상에서 조선학교가 제외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도 거리 곳곳에 “조센징이냐. 꺼져라朝鮮人かよ. 朝鮮人は?れ” 따위의 위협 발언이 넘치고 있다. ‘부락지명총람’으로 대표되는 피차별부락에 대한 부조리, 일본 방위를 이유로 섬 전체가 거대한 미군기지로 변한 오키나와, 조상의 유골을 대학 박물관과 연구실에 빼앗긴 채 지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누민족 등 일본 곳곳에서 어처구니없는 억압과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 각각의 마이너리티 공동체는 때로는 따로 때로는 힘을 합쳐 일본 정부와 사회를 향해 반성과 변화를 요구하지만, 이들의 일상이 ‘보통의 날들’이 되기까지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다.
P.35
처음으로 일본인 사회에 뛰어들던 순간에는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지만 일본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기술을 바로 몸에 익힐 수 있었다. “어디서 전학 왔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던 나는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을 하게 됐다. 학교에서는 나의 본명을 일본어 발음으로 소개했다. 한 친구의 어머니가 “독특한 이름이네. 황족의 친척이니?” 하고 물어서 선대에는 그랬던 것 같다고 대답한 적도 있다. 이 대답이 꼭 틀렸다고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10살 무렵부터는 조선인이라는 내 뿌리를 부정하려 애썼다. _ 황보강자(1957년 생)의 글 중에서
P.51
19살에서 20살 무렵 어머니의 표정은 정말로 밝고 행복해 보였다. 어머니는 “여학교에 다니고 싶었어. 하지만 돈 많은 사람 아니면 갈 수 없던 시절이었어. 학교를 못 가서 원통했지”라는 말을 자주했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공부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는데, 장녀라는 이유로 가족을 위해 일을 해야만 했지”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으며 자랐다. _ 정미유기(1959년 생)의 글 중에서
P.68~69
오사카처럼 재일동포가 많이 사는 지역에는 한국계 학교와 민족학급이 있지만 내가 사는 지방 도시에는 한 군데도 없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들어가고 초등학교를 다니며 성장하는 동안 ‘민족의 속성에 관계없이 일본인으로 대한다. 그것이 차별하지 않는 최선의 교육이다’라는, 국적과 민족성이 소거된 학교의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1노골적인 민족 차별을 받지 않는 대신 일본인이라는 가면을 씌우는 부조리가 존재했다. _ 이화자(1955년 생)의 글 중에서
P.74
가족사를 의식하게 된 것은 조선학교 초급부에 다닐 무렵이었다. 자신의 고향이 어디인지 알아 오라는 숙제를 받고 집에 오자마자 취재를 시작했다. 그때 처음 내 고향이 전라북도라는 사실을 알았다. 재일조선인 1세인 할아버지는 전라북도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왔으며, 그 손주인 나는 재일조선인 3세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재일조선인이 역사의 뿌리, 특히 가족사를 되짚을 때, 남성의 경험이 기준이 되는 일에 거부감을 느끼게 된 것은 조금 더 뒤의 일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때부터 왜 할아버지만을 기준으로 삼는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_ 김리화(1990년 생)의 글 중에서
5 추천의 글 열린 친밀권의 힘
8 한국어판 서문
12 들어가며
16 서문 왜 가족사진인가: 젠더, 민족적 마이너리티와 표현 활동
1장 재일조선인 여성
30 ‘자이니치’ 가족의 사진 황보강자
48 어머니에게 가족사진은 어떤 의미였을까 정미유기
62 부모님에게 배운 것 이화자
72 할머니의 이야기로 더듬어본 가족사 김리화
81 나의 첫 치마저고리 박리사
90 어느 재일조선인 종갓집 이야기 리향
100 “치이짱, 있잖아…” 어머니의 입버릇 양천하자
107 타국에서 마음의 병을 지니고 산 엄마 최리영
2장 피차별부락 여성
120 순백의 앨범 가미모토 유카리
135 엄마의 메시지: 무슨 일이든 스스로 정하면 돼 가와사키 도모에
145 가족이라는 부스럼 딱지 구마모토 리사
161 결혼 후 부락을 만나다 다니조에 미야코
172 고무 공장 딸 니시다 마쓰미
180 그 시절, 가족의 풍경 후쿠오카 도모미
191 부락 밖에 숨어 산 가족 미야마에 지카코
202 나의 엄마 야마자키 마유코
3장 아이누?오키나와?필리핀?베트남 여성
214 엄마 아빠 이야기 하라다 기쿠에
223 필리핀에서 일본으로: 전쟁으로 고국을 떠난 엄마 아라가키 야쓰코
231 내 안의 오키나와: 할아버지의 죽음을 맞으며 오오시로 쇼코
240 오키나와를 떠나 아주 멀리 나카마 게이코
249 이별이 선물한 만남 다마시로 후쿠코
257 말레이시아 난민 캠프부터 현재까지 구 티 고쿠 트린
265
<인터뷰>
하기와라 히로코에게 묻다
가족사진에 찍히지 않은 것: 사진의 진실, 혹은 거짓
275 감사의 말
277 가족사진으로 본 역사 연표
307 한국어판 후기
310 이 책에 참여한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