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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710218 / 140쪽 129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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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시, 그 나쁜 년에게 다시 돌아온 장고
- 권준호 시인의 시집 『혼자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혼자가 아니어도 꽤 좋은 시간』 편집 후기
1
춘천에는 풍물시장이 있다. 아니지 어디에든 풍물시장은 있는 법이니까 표현이 잘못 되었다. 춘천에도 풍물시장이 있다. 그곳에 가면 늘 시를 쓰거나 시를 읽는 사람들을 만난다. 시를 썼거나(이제는 쓰지 않는), 시를 읽었던(더 이상 읽지 않는) 사람들도 만난다. 그곳에 가면 시를 썼던, 그러니까 이제는 시를 쓰지 않는 사람이 시인이라고 하는 사람도 만나고, 좋은 시를 품고 있으면서 나는 시를 쓰지 못한다고 시인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만난다. 작년 어느 날이었던가. 풍물시장에서 권준호 형을 만났다.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침내 술이 좀 거나해질 무렵, 형도 취하고 나도 취해서, 속에 있는 말들이 풀어지고 있었다
“제영아, 난 이제 시 못쓰겠다. 아니 안 쓸련다.”
“형, 형은 참 병신이야. 병신 같은 놈이야. 자기가 진짜 시인인 줄도 모르고. 형 안에 진짜 시가 가득 한 줄도 모르고. 에라 이 병신 같은 형님아!”
그랬다. 권준호 형은 시를 품고 있으면서 시를 쓰지 못한다고 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다.
며칠 전에 시인 권준호와 사천자장면을 먹었다.
권준호 시인은 요즘 실직 상태다. 컴퓨터 강습을 듣는데, 한 달에 공공자금 12만원을 주니까 억지로 나간다고 한다. 결석하면 12만원을 받지 못하나 주당 하루는 결석을 한다. 홍천 문화원에서 주부들을 대상으로 시쓰기반을 맡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오는 강사료가 한 달에 6만원 정도라고, 그러니까 권준호 시인의 월 수입은 도합 18만원인 것이다. 이따금 티코를 몰고 홍천으로 강의 가는데 기름 값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데도, 시에 관한 짓이니까 그만둘 생각도 못하고 안 하는 모양이다.
오늘 점심도 시인 권준호와 사천자장면을 먹었다. 매운 자장면은 어제 술 먹었기 때문에 생각나는 음식이다. 내가 미처 젓가락을 놓기 전에 얼른 일어나 7,000원을 계산한다. 뜨악한 얼굴로 쳐다보니까, 불쑥 “선생님 사정, 다 알아요.”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거개가 밥값 계산을 한다. 탁발(?)에 익숙해있는 상태다. 십년 넘은 대학 강사, 밥 얻어먹는 데 진력이 난 상태의 다른 이름이다. 내 언제, 어디 가서 밥 살 수 있을까를 궁리하기도 하지만, 호들갑떨지 않고 그저 숟가락 놓고 일어난 지 이미 오래 된다.
― 박기동, 「사천 자장면은 맵다」(『다시, 벼랑길』, 창조문화, 2000) 전문
박기동 선생께서 위의 시를 쓴 것이 20년 전이니 강산이 두 번 변한 세월이겠다. 그 사이 실직자였던 권준호 형은 직장을 얻었고, 십년 넘게 보따리 강사였던 박기동 선생은 교수가 되어 퇴임을 앞두고 있으니 강산이 변할 만도 하겠다. 그때나(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겠다) 지금이나 권준호 형은 “시에 관한 짓이니까 그만둘 생각도 못하고 안 하는” 천상 시인면서도, 언제부턴가 형은 “시를 쓰지 못한다, 못 하겠다……” 그러면서 자기 안 깊숙한 곳, 혼자만의 세계―혼술, 혼밥 그리고 혼자서 낚시하기, 혼자서 영화보기―로 숨어들었다. 자기 안에 어쩔 수 없는 뜨겁디뜨거운 시를 품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런 줄도 모르고! 그런 형이 늘 안타까웠다. 병신 같은 형!
2
“제영아, 내가 정말 시를 쓸 수 있을까? 아직도 시를 쓸 수 있을까?”
“쓰긴 뭘 써! 이미 그 안에 차고 넘치는 것을!”
그리고 올해 8월쯤, 형의 시집 원고가 내게 왔다. 2012년 『금붕어꽃』(한결)이라는 시집을 낸 지, 6년 만의 일이다.
금붕어가 아팠다
창가의 나뭇가지마다 처방전을 흔들어댔다
그 푸른 언어를 온전히 해독할 수 없는 나는
그저 사랑도 아픔인줄 안다
더 이상 금붕어는 노래하지 않았다
어느 별로 갔을까
다시 혼자 가는 길
(…중략…)
모든 꽃씨들은
누군가 다른 별로 떠날 때
남겨둔 노래라는 것을 알았다
달빛 별빛 흔드는
저마다 외로운 노래들이
아름다운 꽃밭을 이룬다는 것을,
꽃들이 노래하고
새들과 나무들의 합창이 울리는 이 별에서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만큼 세상에 꽃이 핀다는 것을,
그래서 모두 사랑이라는 것을
― 「금붕어꽃」(『금붕어꽃』, 한결, 2012) 부분
“푸른 언어를 온전히 해독할 수 없”다며 시를 떠나려고 했던 형이, 혼밥과 혼술로 숨어들었던 형이, 은둔을 벗고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만큼 세상에 꽃이 핀다는 것”을 보여주려 시의 세상으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세상은, 세상을 살아내는 일은 “혼자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혼자가 아니어도 꽤 좋은 시간”이란 것을 보여주려 다시 돌아온 것이다.
3
이번 시집의 배경을 살펴보자면, 주요 공간은 춘천이며 주요 시간은 과거다. 시집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은 춘천 사람들이며 춘천에서 나고 죽은 사람들이다. 이를 두고 시집 해설을 쓴 이홍섭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권준호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일별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인상은,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춘천을 내면화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춘천의 자연과 인물, 그리고 성장과 얽힌 추억들을 하나하나 시로 그려내면서 자신의 연대기와 세계관을 표현해 내는 데 진력한다. 시인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을 시로 표현해 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나, 이번 시집처럼 ‘종합적’이고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이홍섭)
그런데 정확히 말하면 춘천이 아니라 춘천이라 불리는 어떤 곳이며, 그 곳에서 나고 죽는 사람들이겠다. “중력이 버거워” “중심 잡고 서 있기 힘”든(「이 별은 멀미가 심해」) 곳, “굴뚝으로 안개를 뿜어”내고, “골목에도 안개들이 살고 있”는(「그때, 예부룩」) 곳, “청춘이 겨울”인 곳, 당신이 머물고 있는 지금 그곳이 그런 곳이라면 바로 그곳이 춘천이겠다. “너무 지쳤어 라는 말을 / 이젠 늙었어 라고 뱉”는다면, “나는 살고 있지 않다”고 느낀다면, 존재하였는데 “존재할 수 었었다”(「존재를 증명하는 한 방식」)고 느낀다면, 당신이 바로 춘천 사람이겠다.
그러니까 이번 시집 『혼자가 가장 완벽하고 아름답지만 혼자가 아니어도 꽤 좋은 시간』은, 춘천이 아니라 춘천 같은 곳을 노래하고 있으며, 춘천 사람이 아니라 “춘천같이 아름답고 춘천같이 슬픈”, 춘천과 같이 흐르고 있는 사람(「춘천같이 슬픈」)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하겠다.
4
시를 떠나 혼자라는 어둠에 칩거했던 형이 “돌아온 장고(Django Strikes Again)”처럼 돌아왔으니 됐다.
찾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밤새 나를 흥분시키던 나부
감당하기 버거워 잠시 멀리한 요부
모니터 속, 텅 빈 침대 바라보며
언제 올까 해바라기하는 새벽
시, 나쁜 년
― 「가을엔 낙엽이 진다」 부분
“나쁜 년”이라며 떠났지만, 나쁜 년!이라며 더욱 그리워했던, 바로 그 ‘시’의 곁으로 형이 돌아왔으니 되었다. 돌아와 준 형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가끔, 먼 길 떠날 때
먼 길 떠나고 싶을 때
차 안을 노래로 가득 채운다.
긴 세월 듣고 들어 온 익숙한 노래들.
그리고 가끔, 내 곁엔 이 노래들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주섬주섬 기억을 더듬어 가을 여행에 함께 할 노래들을 담는다.
My Hometown _ Bruce Springsteen
The Coldest Days Of My Life _ Timmy Thomas
Anything That’s Part Of You _ Elvis Presley
Sometimes My Love _ Hanne Boel
Autumn Leaves _ Bob Dylan
I’m A Fool To Want You _ Billie Holiday
Laura _ Ace Cannon
Je T’Aime Moi Non Plus _ Jane Birkin & Serge Gainsbourg
She’s Gone _ Black Sabbath
안개 낀 장충단 공원 _ 배호
Samba Pa Ti _ Santana
I Can’t Stop Loving You _ Ray Charles
Still I’m Sad _ The Yardbirds
……
2018년 가을, 춘천에서
권준호
‘춘천(春川)’이란 한자 지명은 뜻도 예쁘고, 발음도 예쁘다. ‘봄내’라는 한글도 역시 예쁘다. 춘천의 자연 환경도 이름에 못지않다. 물의 도시답게 아름다운 강이 도시를 감싸고, 미혹으로 이끄는 안개가 도시를 품는다.
권준호 시인의 이번 시집을 일별했을 때 가장 먼저 다가오는 인상은, 시인이 이번 시집을 통해 춘천을 내면화하고자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시인은 춘천의 자연과 인물, 그리고 성장과 얽힌 추억들을 하나하나 시로 그려내면서 자신의 연대기와 세계관을 표현해 내는 데 진력한다. 시인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공간을 시로 표현해 내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나, 이번 시집처럼 ‘종합적’이고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다.
미군 병사가 하늘로 한 줌의 동전을 날렸다
한 줌, 한 줌, 비처럼 쏟아지는 동전들
흙바닥에 떨어져 사방팔방 굴러가는 동전들을 향해
어린 육체보다 더 슬픈
황혼, 두견, 소양강 처녀보다 더 슬픈
십 원짜리 동전들을 향해 우리는 몸을 날렸다
무르팍이 찢기고, 팔꿈치 피딱지가 다시 벗겨지던
그 순간 우리의 아트만은
그 누런 동전과 밀접했다
― 「소양로 1969」 부분
준호야
누나는
슬픈 사랑을 하고 있어
밖은 2월의 눈 내리는데
나는 지하 카페에서 부고를 받고
도옥의 자리 앞에 앉아 녹슬고 있었다
― 「미소의 그늘 1998」 부분
1983
형은 사단장 따까리였다
탱크를 몰고 광주에 투입된 부대였다
형이 제대할 무렵 나는 그 부대 군악대로 배치됐다
국난극복기장이 버려진 빈 관물대에 이등병 관등 성명을 붙였다
(중략)
2017
내 갓난 아들은 전방의 초병이 되었고,
형의 유작들을 전시장으로 옮기던 그날
촛불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민들레 불꽃들이
도끼날처럼 타올라 대통령을 찍어 내렸다
― 「희선이 형」 부분
위의 시들은 춘천을 배경으로 각각 특정한 시간, 특정한 예술가들을 회고하고 있다. 어린 시절 춘천 소양로 미군부대 앞에서의 추억을 배경으로 한 「소양로 1969」에는 춘천 출신 진이정 시인의 시가 인용되어 있고, 「미소의 그늘 1998」은 역시 춘천 출신으로 1998년 고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소설가 권도옥과의 추억이 반추되고 있다. 「희선이 형」 또한 춘천 출신으로 일찍 세상을 뜬 조각가 박희선과의 인연이 연대기적인 방식으로 회고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은 춘천이라는 공간을 중심에 놓고 특정한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물을 하나로 엮어낸다. 그것은 마치 무수한 실핏줄이 얽히고설키어 춘천이라는 심장으로 역류해 들어가는 형국과 같다. 춘천을 통해 자신의 연대기와 세계관을 표현하고자 열망은 위의 인용 시들에서처럼 시의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쌔드 무비 1983」, 「그때, 예부룩」, 「내가 살던 지하실 1998」 등 구체적인 장소와 시간이 결합되거나, 「춘천, 섬」, 「춘천, 동급생 이야기」, 「춘천, 아름다운 춘배 형」 등 ‘춘천’이라는 지명을 앞세우고, 소재가 된 이미지나 인물을 덧붙이는 방식이 대표적 예들이다. 이러한 제목들은 시인 자신이 체험한 시간과 공간을 춘천으로 집약시켜 내면화하고자 애쓰고 있음을 증명해 준다.
(…중략…)
춘천을 ‘아름답고 슬픈’ 이미지로 내면화하고자 하는 열망의 저 밑바닥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시인의 비극적인 세계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일찍 세상을 떠난 예술가들에 대한 사랑과 연민은 이러한 비극적 세계관이 만들어 낸 결과물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저녁 햇살이 처마 밑을 핥기 시작할 때
세상 떠돌던 아기가 빈손으로 돌아왔다
이미 늙어버린 앵두나무에 한 나비가
꽃잎인 듯 앉아 꽃잎을 날리고 있었다
― 「앵두꽃 핀 날」 부분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
어디서 풀잎들의 푸른 추억을 듣고 있는지
어디서 졸가리들의 시린 이야기에 울고 있는지
비상 열쇠는 차를 깨우지 못했다
여전히 눈은 올 듯 말 듯
다시 바람처럼 걸었다
―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 부분
페이스북에 사진이 올라왔다
술잔을 부딪치며 마냥 행복한 얼굴들
내게 전화하여 서로를 흉보던 사람들
나만 없다
― 「창가에 봄빛 쌓이고」 부분
위의 시들은 시인이 지닌 비극적 세계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짐작하게 해준다. 시간의 격절을 담고 있는 「앵두꽃 핀 날」에서 “세상을 떠돌던 아기”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오고, 거기에는 “이미 늙어버린 앵두나무”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 역시 앞의 시처럼 상실감과 떠돌이 의식을, 「창가에 봄빛 쌓이고」는 “나만 없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공동체 속에서의 소외감과 외톨이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시인은 상실감, 떠돌이 의식, 소외감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비극적 세계관을 견디며 살아가는 외로운 주체이다. 그 견딤의 방식을 대표하는 것이 ‘술 마시기’와 ‘혼자 영화 보기’이다. 근대 낭만주의 예술가들의 대표적 양태이기도 한 이러한 행동은 ‘도취’와 ‘도피’의 방식으로 도저한 자본주의 현실의 압박을 견뎌내는 저항적 행위이다. 술을 통한 도취가 일종의 위악을 내포하고 있다면, 영화관으로의 도피는 마치 홀로 섬에 숨어든 듯한 자기 위안을 품고 있다.
― 이홍섭(시인)의 해설 「비극적 세계관과 춘천의 내면화」 중에서
시인의 말
1부 춘천같이 슬픈
이 별은 멀미가 심해
잃어버린 향기를 찾다 ― 역逆 프루스트
성현이가 준 십 원
조때루 괴기 잡을랴구
오래된 일기
이름 모를 소녀
동시상영
소양로 1969
쌔드 무비 1983
저 죽을 사람 아닙니다
잠자리의 여름 일기
그때, 예부룩
청춘이 겨울이었으니
유정, 이정
존재를 증명하는 한 방식
미소의 그늘 1998
내가 살던 지하실 1998
희선이 형
춘천같이 슬픈
앵두꽃 핀 날
2부 황야의 무법자
달빛 흐린 밤, 고양이 울어대고
창가에 봄빛 쌓이고
가을엔 낙엽이 진다
황야의 무법자
권준호 찾기
영화 보는 법
아랑곳없는 날
춘천, 아름다운 춘배 형
춘천, 섬
덩그러니
하얀 소주
재미없는 날
별을 켜는 밤
뱃살 빼기
가을 숲 아카펠라
알 수 없는
SOS 아니 SNS
용궁낚시터
춘천, 동급생 이야기
사족
3부 록 밴드 드러머
윔플피시
동행
터널
꽃노을을 삼켰다
종이 울기 전에
가슴난로 한 병
연말 정산
밥은 먹고 다니니
봄이 오고 있다
검은 날개
하얀 날개
빨간 날개
차 열쇠를 잃어버렸다
사계四季
록 밴드 드러머
어머니의 구연동화
자화상
산막에서
인형 뽑기
음미
해설 | 비극적 세계관과 춘천의 내면화
이홍섭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