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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김승하 저 | 달아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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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8710201 / 120쪽 129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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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칼과 밥과 시
- 김승하 시인의 첫 시집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편집 후기

1
김승하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2016년 10월 21일 속초에서 열린 ‘2016년 강원작가대회’를 겸한 ‘이상국 시인 고희 헌정 문집 출판회’ 때였다. 강원도 출신의 많은 시인, 소설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그때 옆자리에 앉은 (처음 보는) 누군가 인사를 건넸다. “저 서울 환일 중고등학교에서 조리장으로 일하고 있는 김승하라고 합니다.”
‘뜬금없이 요리사(조리장)라니? 요리사가 이런 문학행사에는 웬일? 이 사람의 정체가 뭘까?’ 속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그저 건성으로 대답했던 것 같다. “아, 네. 저는 춘천에서 잡지를 만들고 있는 박제영입니다.” 그때 나는 월간 『태백』 편집장을 맡고 있었다. 그것으로 어색한 대화는 끝날 줄 알았는데, 그는 말을 이었다. “새로 나온 『태백』을 봤는데, 기대 이상이더군요.” 그 비슷한 내용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사실 저도 예전에 시를 썼습니다. 사는 게 먼저라, 호구지책을 마련하느라 잠시 시를 놓고 있지만, 언제고 다시 시로 돌아올 겁니다.” 그런 이야기도 들려줬고, 나는 또 건성으로 대답을 했던 것 같다. “아, 네. 언제고 한번 선생님 작품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날의 행사는 무사히 끝났고, 춘천으로 돌아온 나는 ‘과거에 시를 썼고 다시 시로 돌아올 거’라던 김승하라는 요리사를 어느새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2
그 후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월간 『태백』은 만 2년 스물네 권의 잡지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달아실출판사 편집장으로 자리를 옮겨 잡지 대신 단행본들을 만들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연락이 왔다. “저 김승하인데요, 원고를 한번 보여드리고 싶은데요…….” 사무실로 그의 원고가 배달되어 왔다.

그는 한때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신념을 갖고 열심히 시를 쓴 적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딸에게는
칼보다 강한 이 펜으로 꿈을 심어주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와 함께 만년필을 선물한 적도 있지만
이제는 펜을 믿지 않는다.
그가 다시 펜 대신 칼을 잡았을 때
칼보다 더 강한 것이 밥이라는 사실을
조금씩 깨닫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꿈꾸고 가슴속 뜨겁게 타오르던 불꽃들,
이제는 차갑게 식어 냉동된 언어들
양념도 없이 요리하고 있다.
하얗게 얼어붙어 서리 낀 이미지들,
뜨겁게 달아오른 팬 위에 쏟아 붓고 있다.
― 「요리사가 된 시인」 전문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 신념을 갖고 열심히 시를” 썼던, 시인을 꿈꾸었던 그가 신념도 꿈도 포기한 채 요리사가 되었는데, ‘요리사가 된 시인’이었는데, 그는 왜 다시 시를 쓰려고 하는 것일까. 그는 왜 다시 ‘시인이 된 요리사’로 방향을 선회한 것일까.
칼은 무사에게 주어지면 죽임의 무기가 되고 요리사에게 주어지면 살림의 도구가 되는 법이다. 밥은 우리 몸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밥을 벌어먹기 위해 시를 버리고 칼을 들었던 사내가 마침내 한 손에는 칼을 쥐고 한 손에는 다시 펜을 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칼’을 갈며 동시에 ‘시’를 갈았던 것이고, 요리를 하고 ‘밥’을 지으면서 동시에 ‘시’를 지었던 것은 아닐까.
더 이상 망설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시인님, 달아실에서 시집을 냅시다!”
내년이면 육십의 나이에 접어드는 한 사내가 젊은 날부터 꿈꾸고 품고 삭혔던 시가 한 권의 시집으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이기까지 38년이 걸린 셈이다.

3
그러니까 이 시집은 김승하 시인이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마침내 시의 대륙에 첫 발을 내디기까지의 역정(歷程)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하겠다.
그는 지난 삼십여 년의 세월동안 “시든 연꽃잎만 흐드러진 호수를 따라 걸으며 누이의 부활을 꿈”(「허균―누이를 생각하며」)꾸듯 시의 부활을 꿈꿔 왔다. “제 몸 나누어 씨눈 하나로 다시 태어나는 꿈을 꾸며 감자들은 얼마나 흙을 그리워하였을까”(「감자」). 그는 감자가 흙을 그리워하듯 시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마침내 감자처럼 푹푹 썩힌 그의 시들이 “썩어서 앙금 가라앉은, 속 깊은 침묵으로 빚은 쫀득쫀득한 감자떡 같은 시”(「감자떡」)들이 한 권의 시집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다.

비 갠 오후, 감나무 잎 사이 쏟아지는 햇살 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릇들. 푸른 감나무 잎에 돋는 물방울 소리, ?톡, 톡, 물이랑처럼 번져가는 풍경 소리, 귀를 열고 노스님 독경 듣고 있다. 뒤란 감나무 아래 정좌한 낡은 옹기그릇 하나, ??이 빠지고 상처 입은 작은 그릇들 오롯이 품고 있다.
― 「옹기그릇 부처님」

무엇보다 김승하 시인의 첫 시집을 편집하면서 내가 발견한 보석 같은 시가 있으니, 바로 「옹기그릇 부처님」이다. 이 시 하나로 어쩌면 충분하겠다 싶은 그런 시였다. 독자들이여, 세상으로부터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입었거든 “이 빠지고 상처 입은 작은 그릇들 오롯이 품고 있”는 김승하 시인의 첫 시집을 읽어보시라. 조금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테니.

저자 소개

  • 저자 : 김승하
지은이 : 김승하
1960년 강원 삼척에서 태어났다. 1979년 강릉고, 1983년 강릉대 경영학과 졸업 후 중소기업에서 임원으로 근무하다 2014년 한국폴리텍대학 전통조리학과 1년과정 수료 후, 결식아동을 위해 공공 도시락을 공급하는 업체인 SK행복재단 서부플러스센터 다솜도시락에서 조리장으로 근무, 현재 환일 중고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장으로 근무 중이다. 강릉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시동인 <어화>의 회원으로 <더듬이를 키워 온 감자들> 등 동인지에 작품 발표.  

머리말

시는 시인 자신의 솔직하고 진솔한 삶의 모습이 투영될 때 독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진솔한 표현일지라도 단순한 감상의 나열만으로는 시가 될 수 없음을, 시인에겐 치열한 삶이 필요함을 알고 있다. 그래서 나는 백지를 대할 때면 언제나 두려움이 앞선다.
부끄럽게도 시를 쓴 지 38년 만에 첫 시집을 묶게 되었다. 지난날 시는 삶이 힘들고 어려워졌을 때 마지막까지 버틸 수 있었던 내 삶의 버팀목이자 자존심이었다. 이렇듯 시는 나에게 구원이었지만 나는 언제나 시로부터 탈출을 꿈꾸는, 시와는 반역된 삶을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이제껏 시의 변방을 떠도는 어둠 속의 별을 꿈꾸었는지 모른다.
시의 감동은 겨자씨처럼 아주 작은 감동으로 시작하지만, 겨자씨 속에는 태산이 들어가고도 남을 넉넉한 감동의 깊이가 있지만 울림의 깊이는 여전히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시인은 누구보다 깨끗한 심성과 심안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상처받기 쉬운 시인의 예민한 가슴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현과 같은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2018년 가을
김승하

책 속에서

김승하의 시들은 훨씬 넓은 지평으로 이동한다. 마치 “슬픔과 노여움 홀로 삼키며 아픔마저 그리움으로 삭이는” 강물처럼 그는 슬픔의 휘하에서 서서히 벗어난다. “슬픔의 흔적만 남기며 더욱 깊은 곳으로”(「겨울 강에서」) 흐르는 강물처럼 그는 더욱 넓은 곳으로 나아간다. 말하자면 그는 슬픔의 무수한 지층들을 관통한 후 세계와 다시 만나는 것인데, 거기에는 슬픔으로 단련된 자만이 볼 수 있는 중층적 시선이 존재한다.

벽을 향해 아이가 공을 던진다.
공은 벽을 튕겨 나와 또르르 굴러
아이의 발밑에서 멎는다.
아이가 다시 공을 던진다.
조금 강하게 튕겨 나온 공은
발 앞에서 몇 번 통통 튄 다음
아이의 뻗은 팔 옆으로 지나간다.
아이가 다시 벽을 향해 공을 겨눈다.
벽을 향해 공을 던질 때마다
머리로 가슴으로, 온몸으로 부딪는 공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공은
도약하는 높이뛰기 선수처럼,
훌쩍 아이의 키를 넘어 담을 넘는다.

멀리 튀는 공은 얼마나 가슴이 아픈 것일까.
―「멀리 튀는 공」 전문

탄력은 벽과 강하게 부딪칠수록 더욱 커진다. 세게 부딪칠수록 공은 더욱 멀리 튀지만, 공 자체에 주어지는 충격은 그만큼 더욱 커진다. “멀리 튀는 공”의 “가슴이 아픈” 이유가 이것이다. 부딪치는 힘이 어떤 한계를 넘어설 때 탄성 변형이 일어난다. 세계와의 충돌로 주체의 내상(內傷)이 극도로 심해질 때 탄성은 사라진다. 이 시는 이처럼 주체가 세계와 대면하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잘 보여준다. 시는 시인들이 “훌쩍” 제 키를 넘도록 세상과 부딪칠 때 생겨나는 내상의 기록이다. 그것은 감각의 근육으로 세상과 부딪치는 일이므로 ‘야생의 사유’이고, 지적 성찰로 그것을 다시 걸러내는 작업이므로 ‘문화’이다. 시는 야생과 문화의 축이 서로를 감싸 안을 때 생겨나는 불꽃이다.

모든 감각이 부리로만 집중된 새, 노래하지 못하리. 조롱 속에 갇혀 가성으로 노래하는 새, 이제는 꿈꾸지 못하리. (……) 모이를 주면 더욱 공손하게 노예처럼 지저귀는 기계들, 조롱 속에 갇혀 날개를 퍼덕이며 퇴행하는 아득한 기억, 겨드랑이 가려울 때마다 날카로운 야생의 발톱을 감추고 부리로 우아한 날개를 다듬는 새, 이제 노래할 수 없으리.
―「지저귀는 기계들―조롱 속의 구관조에게」 부분

야생을 상실했을 때 주체는 세계와 부딪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노예-기계이다. 기계의 지저귐은 “가성”이다. 시인이 “날카로운 야생의 발톱”으로 세상을 움켜쥐고 “노래”할 때 참 목소리가 나온다. 이러할 때, 야생은 동력이 되고 노래는 문화적 힘이 된다. 김승하 시인은 이런 점에서 “노예처럼 지저귀는” 것을 거부하는 시인이고, 가성을 거절하는 시인이며, 야생의 발톱으로 세계의 벽에 부딪치기를 갈망하는 시인이다.

비 갠 오후, 감나무 잎 사이 쏟아지는 햇살 담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릇들. 푸른 감나무 잎에 돋는 물방울 소리, 톡, 톡, 물이랑처럼 번져가는 풍경 소리, 귀를 열고 노스님 독경 듣고 있다. 뒤란 감나무 아래 정좌한 낡은 옹기그릇 하나, 이 빠지고 상처 입은 작은 그릇들 오롯이 품고 있다.
―「옹기그릇 부처님」 전문

겉으로 보기에 매우 평화로운 이 풍경도 사실은 갈등과 충돌의 서사들을 담고 있다. “상처 입은 작은 그릇들”이 그것을 보여준다. 상처 입은 그릇들은 강한 충격 끝에 내상을 입은 주체들이다. 그것을 부처님 같은 “낡은 옹기그릇”이 “오롯이 품고 있”는 풍경은 얼마나 정겹고 따듯한가. 무릇 살아 있는 모든 것들 앞에는 다양한 ‘벽’들이 존재하고, 주체는 그 벽과 부딪치고 충돌한다. 그리하여, 상처 없는 영혼은 없다. 김승하의 시들은 이런 상처의 지도이며, 슬픔의 노래이고, 그 벽에 부딪친 다양한 탄성(彈性)들의 기록이다.

― 오민석(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의 해설, 「슬픔의 계보학」 중에서


목차

시인의 말

1부 도봉산 뻐꾸기

허균 ― 누이를 생각하며
감자떡
감자
달무리
도봉산 뻐꾸기 1
외할머니의 축수
도봉산 뻐꾸기 2
고향
유적지에서
오십천에서
눈사람과의 대화
포천
억새풀 1
억새풀 2
억새풀 3
4월의 단풍나무
메콩강의 노래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화전리의 불꽃
나와 마을로 가는 열차 ― 샤갈의 마을을 지나


2부 요리사가 된 시인

요리사가 된 시인
늙은 솔개
시들, 시들한 시들
가자미 구분하는 법
로봇 요리사 K
길 건너 불구경하기
기르는 개들의 충고
면도 1
새들은 과녁 속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면도 2 ― 거울 속의 자화상
사이보그 1
사이보그 2
조용한 뒷정리
25시의 여자
끈끈이주걱 풀
에프킬라
산벚나무에 봄을 묻는다
신문
엉겅퀴
4월과 5월 사이


3부 옹기그릇 부처님

옹기그릇 부처님
지저귀는 기계들 ― 조롱 속의 구관조에게
모자이크 달
꿈꾸는 돌
이명
해망산에서
겨울 강에서
우화
금잠초 설화 ― K를 위하여
수락산행
로빈슨 크루소를 읽으며 ― H에게
겨울 잠행
등꽃
사막 일기 1 ― 우로보로스의 뱀
사막 일기 2
옥탑방 풍경
지빠귀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멀리 튀는 공
향단이 사랑
겨울 바다


해설|슬픔의 계보학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

발문|詩想을 잘 요리한 깊이 있는 시
박호영 (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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