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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261059 / 272쪽 128 x 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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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모든 문은 잠기고 모든 이는 잠들었으리
깊고 검은 웅덩이는 뒤뜰에 있고 치어들은 어항에서 자라네
깨어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이리”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경계인이자 주변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독감을 그린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임재희의 애도 소설집
2013년 첫 장편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가 임재희의 소설집. 한국인 이주민들의 신산한 삶을 묘파한 임재희의 세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소설집이다. 그동안 임재희는 구한말 조선인들의 하와이 이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에서 사탕수수 집단농장에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엇갈린 운명을 그려내 “한국 이민소설 장르의 새 장을 여는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두 번째 장편 『비늘』에서는 소설을 쓰는 삶과 그 시간에 대한 고뇌와 그리움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었다. 강원 철원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나 21세 때인 1985년에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그녀는 스스로 “미국인과 한국인의 중간에 선 ‘경계인’”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은 하지만 거기에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으며, “한국어는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서 작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민자인 서술자를 내세워 이국적이고 낯선 삶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미국으로 간 이민자’, ‘한국으로 돌아온 귀환자’,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이라는 세 부류의 인간형을 통해 ‘경계인’ 또는 ‘주변인’의 개념을,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까지로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경계인 또는 주변인에 대하여, 단순히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된 자들에 국한하지 않는다. 어느 한곳에 정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도는 그들을 통해 구획된 장소 너머의 공간에 대해 사유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결국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는 실존적 자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리뷰
“모든 문은 잠기고 모든 이는 잠들었으리
깊고 검은 웅덩이는 뒤뜰에 있고 치어들은 어항에서 자라네
깨어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이리”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
경계인이자 주변인으로서의 실존적 고독감을 그린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 작가 임재희의 애도 소설집
2013년 첫 장편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로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은 작가 임재희의 소설집. 한국인 이주민들의 신산한 삶을 묘파한 임재희의 세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소설집이다. 그동안 임재희는 구한말 조선인들의 하와이 이민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당신의 파라다이스』에서 사탕수수 집단농장에서 펼쳐지는 네 남녀의 엇갈린 운명을 그려내 “한국 이민소설 장르의 새 장을 여는 이정표”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두 번째 장편 『비늘』에서는 소설을 쓰는 삶과 그 시간에 대한 고뇌와 그리움을 통해 글쓰기의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주었다. 강원 철원에서 군인의 딸로 태어나 21세 때인 1985년에 하와이로 이민을 떠난 그녀는 스스로 “미국인과 한국인의 중간에 선 ‘경계인’”이라고 밝힌 바 있는데 “영어로 의사소통은 하지만 거기에선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으며, “한국어는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라고 술회하기도 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서 작가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민자인 서술자를 내세워 이국적이고 낯선 삶의 풍경을 섬세하게 그려내면서도, ‘미국으로 간 이민자’, ‘한국으로 돌아온 귀환자’, 그리고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이라는 세 부류의 인간형을 통해 ‘경계인’ 또는 ‘주변인’의 개념을, 어느 곳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까지로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작가는 이 경계인 또는 주변인에 대하여, 단순히 세상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배제된 자들에 국한하지 않는다. 어느 한곳에 정주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떠도는 그들을 통해 구획된 장소 너머의 공간에 대해 사유하는 힘을 지닌 존재로 그려냄으로써,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결국 내가 존재하고 있는 곳이라는 실존적 자각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하루 같았다.
홀가분해야 되는데 되레 너무도 많은 것들이
출렁이고 있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에는 미국에 살거나 머물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한국적인 것을 찾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에 머물러 있지만 한국 사회에 속하지 않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어느 한곳에 정주하지 못하고 방황하지만 끊임없이 한국과 결부된 과거를 환기하고 한국인 또는 한국적인 것들과 교감을 나누려고 한다. “폴은 그런 사람들과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지 연결되어 있다는 감정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이들에게 한국적인 것은 어떤 기호로 나타나든 기어이 와 닿는다.
한편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은 미국적인 것을 떨쳐버리지 못해 한국에서 생활하는 데 위화감을 느낀다. 특히 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된 사람들은 왜 여기에 다시 왔고, 왜 여기를 다시 떠나느냐는 질문을 수차례 받는다. 「히어 앤 데어」에서 동희는 그때마다 “단답형의 대답”을 찾아보려 하지만 이민과 귀환의 연유를 명쾌히 밝히지 못한다. 문제는 그런 질문은 그저 질문으로 끝나버린다는 것이다. 집요하게 묻는 사람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잠시 흥미를 끌다 사라지는 가십거리처럼 “자기 삶의 잣대로 듣고 이해하고 개입하고” 싶어 했을 뿐. 그럼에도 이들이 한국에서 살기로 결정을 내리는 이유는 자신의 근원에 접속하려는 열망 때문이다. 지난날의 기억과 뿌리를 자기 삶과 접합시키려는 노력, 그런 의미에서 임재희 작품 속 등장인물이 향해가는 길 위의 여정은 어쩌면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근원에 가 닿으려는 끊임없는 노력에 다름 아닌 것이다.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고.”
떠나는 자, 돌아온 자, 머무는 자들이
자신의 근원을 향해가는 여정
임재희의 소설에는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도 등장한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사는 것은 무난해 보일지 모르나 거기에도 난관은 많다. 「동국」의 주인공인 동국은 비극의 한복판에서도 한 핏줄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에게까지 외면당한 채 기댈 곳 없이 살아간다. “친척들은 옷자락 끝에라도 불행의 씨가 묻을까 작은 엄마를 멀리했고 작은엄마는 그들로부터 스스로 멀어져가는 방법을 택하며 자존심을 지켰다.”(「동국」) 한국에 사는 한국인들은 상호 도움의 공동체를 기대하지만 이는 애초부터 제대로 기능했던 적이 드물다. 이 지점에서 작가 임재희는 다른 길을 모색한다. 상황과 주어진 역할에 의해 변화하는 나의 정체성이 아닌, 언제 어디서든 변하지 않는 실존적인 나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표제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을 비롯해 「분홍에 대하여」, 「동국」 등의 인물들은 떠나는 자, 돌아온 자, 머무는 자, 세 부류로 구분 지을 수 있다. 이들은 떠나도 떠나는 것이 아니며, 돌아와도 자신의 발끝이 공간에 뿌리 내리는 것도 아니다. 한국, 미국, 또는 그 밖의 다른 국적 소속이라는 레테르가 붙지만, 어디까지나 외부에서 형성되는 껍데기일 뿐이다. 세상으로부터 소외를 느끼고, 자의 또는 타의로 동질감을 잃어버린 사람들. 그렇게 세상에 속하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질 때, 나는 어디에 속한 누구인지, 어디로 향해가고 있는지에 대한 근원적 질문에 가 닿는다. “어디 사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결국 어디에서 죽느냐의 문제더라고. 체류 기간 2년 동안 잘 생각해봐요.”(「히어 앤 데어」)
어느 곳에 속하지 못한 자들이 끊임없이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것은 필연의 과정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파라다이스가 생존의 장소가 되어 그 빛을 잃고 나면, 그들은 또다시 새로운 파라다이스를 꿈꿀 수밖에 없다. 이편에 있으면서도 없고, 저편에 없으면서도 있는 장소. 파라다이스, 즉 유토피아가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뜻의 말임을 새삼 떠올리지 않더라도, 임재희가 ‘실체화’된 파라다이스에 들어가는 일이 영영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다.
지금 여기 있는 ‘나’를 살아가게 할
애도 의식은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임재희는 자신의 첫 장편 『당신의 파라다이스』의 집필 이유로 “아무런 흔적도 없이 한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에 대한 애도의 한 방식”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작가로서의 첫 걸음이 애도였고, 그 애도 행위는 이번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폴의 하루』에서도 이어진다. 일반적으로 애도는 사라진 대상을 추모하는 행위를 가리키지만 임재희의 소설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상실의 충격을 자기 안에서 서서히 완화하는 과정 자체를 말한다. 허희 문학평론가는 이를 두고 “애도할 타자를 이곳으로 불러와 애도하는 주체와의 공유 지대를 만들어냄으로써, 지금 여기 있는 ‘나’를 계속 살아가게 하는 의식”이라고 정의 내린다. 산 자와 죽은 자, 지금 여기 없는 자와 있는 자 모두를 위한 이 애도는 작가 자신을 포함해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했던 운명에 처한 사람들을 위한 의식인 것이다.
이처럼 임재희는 삶의 목적은 가시적인 목표의 달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그곳을 향하는 도정에서 어렴풋하게 포착될 수 있는 것임을,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폴의 하루』에 실린 아홉 편의 소설들로서 예증하고 있다. 한 시대를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살다 간 사람들, 그리고 이곳에 남아 계속 살아가려는 사람들 모두에 대한 작가 임재희의 애도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이다.
동희는 밤이 되면 오랫동안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십 대 때 떠난 한국을 사십 대에 접어들면서 돌아온 이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지 않기로 했다. 불분명한 것들이 오히려 진실 같았다. 캔 맥주나 방금 내린 커피가 손에 들려 있는 날은 더 오래 창밖을 바라보았다. 황사인지 미세먼지인지 모를 밤안개가 자욱한 날들이 이어졌다. 도시의 불빛이 희미하게 깜박였다. 모든 것이 흐릿한 가운데 그녀의 의식만이 분명했다. 한국도 미국도 아닌 현재 서 있는 곳이 그녀가 존재하는 곳이었다. 딱히 공간성도 시간성도 없는 원초적인 그리움 같은 게 뭉실뭉실 피어오르다 사라졌다.
_33~34쪽
“어디야, 올케? 안 와?”
“네? 어디를요?”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한 올케의 목소리가 내게 어떤 아득함을 불러일으켰다. 변기통의 오물과 치약이 가득 묻어 있는 채로 굳어 있던 칫솔과 바닥이 시커멓게 타버린 냄비들과 세탁기 안에 꾸덕꾸덕 말라가던 빨래들이 내게 살려달라며 달려드는 것만 같았다. 엄마가 혀를 끌끌 차며 돌아섰을 때도 누구에게나 있는 건망증이라고 애써 태연한 척했었는데,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
“연희야!”
나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올케의 이름을 부르며 주저앉았다. 엘에이 한복판에서 그 누구도 알 수 없을 이름이었다.
_87쪽
로사는 먼발치에 서서 언덕 위를 올려다보았다. 남의 집인 듯 스치고 지나온 제집을 바라보는 거였다. 푸른 저녁 빛이 여전히 집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창가에서 흘러나온 연주황 불빛들이 환했다. 불빛들은 잠자리 날개처럼 투명했다. 하나하나가 꽃잎 같은 창이었다. 어디에서 봐도 완벽하게 제 모습을 갖추고 있었는데, 하나도 변한 게 없는데 예전의 집이 아닌 것만 같았다. 그녀는 이 모든 게 농담 같았다. 그 어떤 설렘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설렘은 사물이 만들어내는 감정이 아닌 것만 같았다. 집이 아니라, 절대적인 아름다움이 사라진 쓸데없이 큰 흰 박스가 그녀 앞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로사는 뭔가에 단단히 속은 기분이었다.
_137쪽
양아버지는 그걸 보고 많은 생각을 했었대요. 미국으로 데려가 달라는 말인가? 공부를 많이 시켜달라는 뜻인가? 그래도 의문이 풀어지지는 않았나 봐요. 흔히 적어놓을 법한 한국 이름이나 출생일은 없었고요. 마치 손으로 꾹꾹 정성 들여 쓴 글씨처럼 보여 함부로 버리지도 못했대요. 그러다 양아버지는 오랜 생각 끝에 나의 이름을 그렇게 지어달라는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대요. 그래서 Abcd라고 써놓고 ‘압시드’라고 발음해보았더니 꽤 괜찮더래요. 그렇게 나는 한국에서부터 영문 이름을 갖게 되었지요.
_190쪽
“서울이 곧 한국이야. 중심이고 전체라고.”
남자가 폴의 표정을 살피며 말했다. 자기 말을 이해했냐는 눈빛이었다. “네가 한국 사람이 아니라 몰라서 그래.” 남자가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또 건넸다. 폴은 이해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고 여겼다. 평소에도 ‘중심’이라는 말은 자본과 힘에 의해 만들어진 정의라고 생각했다. 정작 그의 온 신경은 타인이 바라본 엄마의 사회적 위치에 가 있었다. 어쩌면 그게 더 정확히 엄마 삶의 현주소를 폴에게 설명해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_217쪽
뒤뜰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린 날의 범과 명 같았다. 둘은 지붕 상태를 보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진은 범이 사는 시애틀, 명이 살아가게 될 뉴욕, 그리고 자신이 사는 하와이를 떠올렸다. 댈러스가 그 모든 지역의 중간지점이었다. 엄마가 걸어왔던 모든 길의 중간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엄마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곳에 표석을 다시 세우기로 결정했을 것만 같았다. 진은 여전히 엄마가 선택한 엄마의 집이라고 믿고 싶었고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엄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진은 얼굴을 유리창에 더욱 바짝 붙이고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엄마라는 존재가 여전히 그녀를 놀라게 해 다행스러웠다.
_247쪽
히어 앤 데어(Here and There)
동국
라스트 북스토어(The Last Bookstore)
천천히 초록
로사의 연못
분홍에 대하여
압시드(Abcd)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
로드
작품 해설 / 허희(문학평론가)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