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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변의 예가 - 큰글한국문학선집 051

오일도 저 | 글로벌콘텐츠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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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8521899 / 144쪽 210 x 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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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낭만적인 서정과 애상에 바탕을 두며 예술지상주의의 꽃을 피우다

오일도의 작품은 주로 낭만주의적 서정과 애상에 바탕을 둔 것이 대부분이다. 또한 감정의 절제보다는 그것의 자유로운 표출에 치중하였다는 점이 특징이다. 거기에 깃든 애상과 영탄은 어둡고, 그늘지고, 암울한 정서를 주로 노래하게 만들고 있다.
오일도는 작품 활동보다는 순수한 시 전문잡지인 ≪시원≫을 창간하여 한국 현대시의 발전에 기여하였다는 점에서 더 중요한 시사적 의미를 지니는 시인이라 할 수 있다.
<노변의 애가>는 고향을 떠난 시인의 노스탈지어를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다. 오일도의 작품은 주로 애상의 가을을 노래한 것이 많은데, 이 작품 역시 가을의 서정 속에서 고향의 추억을 쫓고 있으며, 작품 기법상의 리리시즘에다 작가 내면의 우수적 로맨티시즘이 복합되어 그야말로 이 작품 속에서 표현한 ‘계절의 조락(凋落)’ 같은 애수를 느끼게 한다.

저자 소개

  • 저자 : 오일도
지은이 : 오일도
1901년에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영양의 천석 거부 오익휴의 차남으로 본명은 희병(熙秉)이었다. 일도는 아명이었는데, 후에 필명으로 사용했다. 한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집안이라 8세부터 14세까지 한학을 공부했다. 이때 공부한 한학의 영향으로 한시를 창작했으며 한시 78수를 남겼다. 아들의 증언에 따르면 굉장히 과묵한 성격이었다고 한다.

17세에 영양보통학교를 다니면서 근대 교육 체계 속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학습에 뛰어난 성취를 보여 1922년 18세 때에 경성제일고보에 진학했다. 이후 일본으로 건너가 릿쿄대학 철학과에 진학했다. 유학 중이던 1925년 ≪조선문단≫을 통해 <한가람 백사장에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초기 시들은 비극적인 낭만성과 압축미가 있어 높은 미학적 완성도를 보여 주었다는 평을 받았다.
릿쿄대학(立敎大學)을 졸업하고 1929년 조선으로 돌아왔다. 귀국 후에 중앙, 휘문 등 여러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전하나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오일도가 집안이 부유해서 일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73년 ≪현대시학≫에 그의 유고가 발표되면서 함께 실린 김해성(金海星)의 <오일도의 시>에 그가 교편을 잡았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과 유고 시집 ≪저녁놀≫에도 그러한 기록이 실린 것으로 보아 한동안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쳤던 것이 사실로 보인다.

귀국 후 여러 시인들과 교우를 쌓았다. 특히 이하윤과는 절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는 오일도가 시인으로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다. 이는 특히 그가 1935년 시 전문 문예지 ≪시원≫을 창간한 것과 관련이 깊다. ≪시원≫은 범시단적 잡지로 출범하면서 여러 시인들의 호응을 얻었다. 카프 계열의 시인들 작품을 싣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 오일도는 ≪시원≫을 발간하면서 잡지 발행인으로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지만 안타깝게도 ≪시원≫은 5호를 마지막으로 종간되었다. 채 1년이 못 되는 기간 동안 총 5호 정도만 발간했지만 ≪시원≫은 1930년대 한국 문단에 커다란 영향을 남겼다. 그 외에 1936년에 ≪을해 명시 선집(乙亥明詩選集)≫과 1938년에 조동진의 유고 시집 ≪세림 시집≫을 발간하는 등 편집자로서의 재능도 발휘했다. 이들 시집은 한국 문학사에서 중요한 자료들로 평가되고 있다.

≪시원≫의 종간은 오일도의 심신에 큰 충격을 남겼다. 그는 이후 폭음 등으로 건강을 상했으며 결국 1942년 고향으로 낙향해 요양하게 된다. 1945년 해방을 맞이해 서울로 올라가 ≪시원≫을 복간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어 ≪시원≫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대해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게다가 건강이 악화되면서 오일도는 귀향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결국 1946년 고향 영양에서 투병 중에 병세가 악화되면서 여의전병원에서 운명했다. 사인은 과도한 폭음으로 인한 간경화로 추정된다.

오일도 시인의 대표작으로는 <내 소녀>, <도요새>, <지하실(地下室)의 달> 등이 있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품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오일도 시인은 ≪시원≫을 창간함으로써 1930년대 문단에 다양성을 가져오고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과 함께 문학사적으로 조명받고 있다. 1973년 ≪현대시학≫을 통해 유고 시들이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3년 뒤엔 1976년 유고 시집 ≪저녁놀≫이 근역서재에서 발간되었다. 이들 유고는 오일도 시인이 생전에 조지훈 선생에게 맡겨 두었던 것인데, 조지훈 선생 사후 조지훈 선생의 고모인 시조 시인 조애영 선생이 묶었다. 이후에 ≪지하실의 달≫이 문화공론사에서 출간되었으며 1988년에는 영양 출신 시인 이병각, 조지훈, 조동진, 오일도 네 사람의 시를 묶어 낸 ≪영양 시선집≫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경북 영양에는 오일도 생가가 보존되어 있으며 그 인근에 오일도 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목차

가을은 / 가을하늘 / 검은구름 / 고정기 / 그믐밤 / 꽃에 물 주는 뜻은 / 내 연인이여! 가까이 오렴! / 내 창이 바다에 향했기에 / 노랑 가랑잎 / 노변의 애가 / 누른 포도잎 / 눈이여! 어서 나려 다오 / 도요새 / 돌팔매 / 멀리 오시는 님 어이 맞으오리까 / 물의 유혹 / 바람이 붑니다 / 백말 / 벽서 / 별 / 봄비 / 봄 아침 / 비파행: 백낙천(白樂天) 작(作) / 새해 아침 / 송원의 밤 / 십월의 정두원 / 아기의 눈 / 5월 화단 / 올빼미 / 인생의 광야 / 임해장의 삼야 / 입금강: 김립(金笠) 작(作) / 저녁놀 / 지하실의 달 / 찬 벽 / 창을 남쪽으로 / 코스모스꽃 / 한가람 백사장에서 / 흰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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