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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의 언덕

김현숙 저 | 개미 | 2018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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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4459929 / 256쪽 / 486g / 153 x 2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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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저자 소개

  • 저자 : 김현숙
지은이 : 김현숙
  

책 속에서

평일이라 산은 한산했다. 수도권에 위치해 있고 나무 많고 산세 수려하여 주말이면 사람이 꽤나 많이 모여드는 산이었다. 아내의 뜻에 따라 딸의 유학 자금을 위해 강남의 아파트를 팔고 신도시인 이곳으로 옮겨올 때만 해도 직장과의 거리며 교통 문제, 그리고 모든 게 낯설고 낯설어 도무지 쉽게 정이 가질 않던 곳이었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퇴직을 하고 보니 공기 좋고 산이 가까워 백수에게 이 보다 더 좋은 동네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행이 건강에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몸의 단련뿐 아니라 생각의 단련과 마음수련을 동시에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산을 오르면 오직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지나쳐 온 길들을 찬찬히 되짚어 보며 차분한 성찰과 자가진단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았다. 지나온 시간이 켜켜이 쌓인 두터운 더께를 뚫고 회오의 바람을 불러 일으키며 솟구쳐 오르면 문득 그는 산으로 오르는 발길을 멈추고 아득히 내려다 보이는 골짜기를 향해 가뿐 숨을 몰아쉬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지나간 모든 일은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모두가 다 까마아득한 하나의 소실점으로 남았을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것은 몹시도 허허롭고도 쓸쓸한 일이었다.
그 여자들을 만난 날은 평일이라 토토에게 미처 목줄도 매지 않은 채 한껏 자유로움을 즐기도록 방치해 놓은 채 홀로 산길로 들어섰다. 앞장 서 신나게 달려가는 토토의 모습이 그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일게 했다. 저만치서 두 여자가 산길을 따라 유유히 걷고 있었다. 튀지 않는 수수한 차림이었으나 산행이 몸에 밴 듯한 곧은 자세하며 전혀 서두르지 않는 유연한 걸음걸음이 무언가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모습들이었다. 그의 기준으로 보자면 해발 고작 500여미터에 불과한 동네산일 뿐인데 차림새는 마치 백두 대간 종주를 하듯 온갖 장비에 울긋불긋 요란스런 등산복을 하곤 그에 더해 눈만 빠끔히 내놓고 얼굴 전체를 뒤덮는 전면 마스크를 착용한 여자들을 보면 마치 히잡을 뒤집어 쓴 이슬람 여인을 보듯 그는 섬뜩한 느낌을 받곤 했다. 하긴 그런 차림을 한 사람일수록 초보 등산객임이 틀림없다는 것이 또한 그의 지론이기도 했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불필요한 것을 절하고 극히 간편화되어감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이 평소 그의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차림새가 뭔가 어지럽지 않고 단아한 두 여자의 모습을 쫓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갔다. 일순 그녀들의 뒷모습뿐 아니라 앞모습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남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미묘한 마음을 미처 확인도 하기 전 일은 정작 엉뚱한 곳에서 터지고 말았다. 토토가 먼저 그녀들과 인사를 트려 반가이 달려간 때문이었다. 멍멍!! 토토가 휘익, 그녀들의 틈을 가르며 쏜살같이 앞으로 내닫는 순간, “아악, 놀래라아~ 뭐니? 저 강아진 왜 끈을 안 묶은 거야? 벌금인 줄 모르나~기절할 뻔했네~” 머리를 뒤로 묶은 분홍색 야구모의 여자가 앞서 달아나는 토토를 향해 날카롭게 소리치며 뒤따르는 그에게 힐난의 눈길을 보내왔다. “아, 죄송합니다. 산길 초입이라 미처…….” 여자들을 향해 정중히 사과한 후 그는 목줄을 손에 들고 황급히 토토의 뒤를 따랐다. “토토!!” 장난스레 되돌아온 토토를 붙잡아 목줄을 맨 후 그는 여자들을 떠올리며 천천히 산길을 올라갔다. 개를 무척 싫어하는 여자……두 여자 중 적어도 분홍색 야구모의 여자는 분명히 그렇다는 결론에 이르자 마음 한켠이 하릴없이 서늘해 왔다. 개를 싫어하다니……개가 왜 싫은 것일까. 그로서는 쉽게 이해되질 않는 부분이었다. 사람보다 더 살갑고 의리있고 묵묵한 존재이거늘……애견이란 그에겐 그런 존재였다. 그러나 사람의 취향이란 다 다르니 저렇듯 질색하는 반응도 있을 수 있겠지……그러나 그는 여자의 반응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산을 오르며 바라본 하늘이 너무도 맑아 마음이 시려왔다. 오후엔 노모를 위한 산책이 가능할 날씨였다. 해수증으로 점차 기운이 쇠잔해져 거동조차 불편해진 노모는 하루 종일 접이식 침대에 누워 모든 것을 해결하려 했다. 주로 그곳에서 자다 깨다 하며 TV를 보거나 세 끼의 식사를 하곤 했다. 젊은 시절 풋밤처럼 싱그럽고 단정하던 모습은 흔적 없고 이제 텅 빈 껍질로만 남겨진 듯한 노모의 모습은 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맏아들인 그에게 쏟은 젊은 엄마의 애틋한 사랑. 그는 그것을 잊지 못했다. 조기 유학 간 딸아이와 아내를 따라 이민 간 막냇동생이 자리잡고 있는 캐나다로 훌쩍 떠나지 못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산허리 중간쯤의 약수터에 이르자 토토가 꼬리를 흔들며 쉬어가길 원하는 몸짓을 한다. 시에서 내린 오염도 측정 검사를 통과한 약수라니 한 모금 마시고 쉬어갈 만도 했다. 그는 배낭에서 페트병을 꺼내어 한껏 인내심을 갖고 바위 틈 사이로 감질나리만큼 쫄쫄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낸다. 겨우 500ml짜리 페트병에 물을 다 채우기에도 한 시간이 족히 걸릴 듯한 속도이나 그는 잘 참아내며 계속 물을 받는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시간뿐. 그렇게나 앞만 보며 쉼없이 달려왔으나 그토록 빠른 속도와 시간이 그에게 남겨준 것은 단지 시간뿐이다. 이젠 젖은 가랑잎처럼 버려졌다는 느낌과 한 웅큼의 허망함, 그리고 나이 들어간다는 설명할 수 없는 슬픔. 그것이 전부였다.
산길 초입에서 만난 여자들이 차츰 가까이 다가와 그는 좀 긴장한다. 두 여자의 느낌은 요즘 흔히 말하는 이른바 차거운 도시풍의 여자라는 차도녀의 부류라고까진 할 순 없었으나 차분하고 정적인 느낌의 단발 커트 쪽과는 달리 꽁지머리의 분홍 야구모는 상당히 좀 까칠한 느낌이다. 곧장 샘터 쪽으로 다가올 듯하다간 주춤주춤 멈춰서는 모습이 아직도 토토와 그를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라 그는 페트병에 물이 다 채워지기도 전에 서둘러 병마개를 닫으며 약수터를 벗어나려 서두른다. 순간 다시 또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목줄을 매단 채 쪼르르 그녀들 쪽으로 달려간 토토로인해 분홍 야구모가 어머머~저리가라니깐!, 토토를 향해 다시금 소릴 내지른 때문이었다. “엘라, 그러지 마. 귀엽잖아. 이리 오련, 쮸쮸…….” 그나마 단발머리 여자가 토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게 말해 다행이었다. “아, 잠시 물을 받느라고……죄송합니다. 토토, 이리 와.” 그는 급히 다가가 토토의 목줄을 잡아끌며 그녀들을 향해 재차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토토라 했나요? 이름도 귀엽네요.”
단발머리 여자는 토토를 향해 살포시 웃어 보이며 그에게 목례를 보내왔다. 40대 중반인 듯한, 레이어드 스타일의 단발 커트가 작고 여윈 얼굴과 썩 잘 어울리는 지적인 모습의 여자였다. 자칫 차가운 느낌을 줄 법도 한, 그러나 따스하고 맑은 눈빛이 그 모든 것을 압도하여 전체적으로 포근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분홍 모자 쪽은 그가 판단한 대로 어딘가 좀 깔깔한 느낌이 전해오는 인상이었다. 그러나 전에 살던 서울의 도심에선 흔히 볼 수 없는 무언가 좀 호젓하고 정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자들이라고 그는 계속 그녀들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며 산을 올랐다.

목차

작가의 마음 004

산우山雨 009
목가牧歌 035
호수회의 두 번째 여행 057
호수회의 세 번째 여행 077
그 여자의 여섯 번째 눈물 101
히스의 언덕 123
이웃집 여자들 145
와디(마른 강) 171
그 가을 병동에서 193
그 겨울의 하행 217

해설 박덕규 문학평론가 야생의 이야기나무에 오르는 재미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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