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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이름으로

이인휘 저 | 삶창 | 2018년 06월

노동자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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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6550944 / 512쪽 125 x 1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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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반디앤루니스 리뷰

깊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흡입력 강한 이야기에 푹 빠져 오전 9시부터 자정 가까이 15시간 동안 소설 전편을 단번에 읽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참된 이야기꾼 이인휘의 진솔한 말들을 귀 기울여 경청했다. 귀 기울여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만드는 이야기들, 그 말들은 화장실 갈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아깝게 했다. 이토록 소설을 위한 소설이 아닌, 인간을 위한 소설이 있단 말인가. 나는 아직 접해본 기억이 없다. 이야기는 자본과 정치권력이 야합해 노동(자)에게 끊임없이 가하고 있는 온갖 폭력과 착취로 인한 노동(자)의 고통, 절망, 분노에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배겨낼 수 없도록 만든다. 그리하다가도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 온갖 못된 것들에 불끈, 당당히 맞서 저항하고 투쟁하는 수많은 노동(자)들과 함께 나 자신이 한 몸이 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노동(자)의 피땀으로 한 획 한 획 새겨 넣은 이인휘의 말들은 참된 인간의 말이다. 그 인간의 말들로, 노동(자)는 “폐가처럼 무너져 먼지처럼 날아다니”지만 “어떠한 정치권력도 노동자의 친구가 될 수 없”는, “인간이 인간을 모르는 괴물 같은” 자본의 시간을 각혈처럼 전각했다. “괴물 같은 자본의 머리에 비정규직 제도라는 뿔까지 단” 것을 아파하며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어 하는 노동자의 마음으로” 통렬히 내뱉은 투쟁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은 산업화 이후 가장 탁월하게 빚은 노동운동의 빛나는 역사서이며, 지침서이기도 하다. (정세훈, 시인)

출판사 리뷰

소설로 읽는 1990년대 노동운동사! 제31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이인휘의 새 장편소설 『노동자의 이름으로』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노동운동사를 소설적 장치로 재구성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중 한 명은 실제 인물인 양봉수인데, 그는 1995년 노동조합 대의원 활동을 하던 중 노사협의 없는 신차 투입해 항의하다 두 번째 해고를 당하고, 그 해 5월 공동소위원회 출범식장에서 분신을 했다. 그 당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노사협조주의를 지향했던 집행부여서 노동 강도 강화와 회사 측의 노무관리에 협조적인 상태였다. 이에 대한 항의로 양봉수는 분신을 택한 것이다. 양봉수의 분신자살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그의 희생을 바탕으로 새로운 민주노조를 건설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패배로 끝났지만, 그 힘으로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은 IMF구제금융 체제가 강요하는 정리해고에 맞설 수 있었다. 이 책은 양봉수의 그 뜻을 기리는 ‘서영호·양봉수열사정신계승사업회’에서 기획하고 소설가 이인휘가 집필한 일종의 ‘평전소설’이다. 하지만 작가는 ‘김광주’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노동자의 전형성을 창출해냈다. 소설은 일단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운동의 큰 흐름을 바탕으로 하고, 실제 인물들과 가상 인물인 김광주 사이의 교유와 갈등, 그리고 연대와 배신, 투쟁 등을 직조해냈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으로 상징되는 1990년대 노동운동사에 대한 기록이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생활과 심리를 묘파해낸 소설 작품이 된다. 예를 들어 1991년 현대자동차가 632억 원의 순이익을 내자 노동조합은 그 성과를 분배하라는 투쟁에 돌입하고 1992년 1월 14일 88.88%의 찬성으로 쟁의에 돌입했다. 이 때 김영삼 정권이 노동자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보여주는 ‘사실’을 이렇게 복기해놨다. 여명이 염포산의 경계를 푸른빛으로 물들일 때 태화강을 건너온 헬리콥터의 요란한 굉음이 차갑게 얼어붙은 새벽을 깨웠다. 자동차 공장의 하늘에서 수만 장의 전단지가 살포됐다. 헬리콥터는 공장의 하늘을 빙빙 돌면서 선무 방송을 했다. (…) 최병렬은 노동부 장관직을 걸고 폭력 세력을 처단해서 회사와 노조를 정상화시키겠다고 했다. 체포 특공대를 포함한 전경 120개 중대 1만7천여 명이 자동차 공장을 에워싸고 명령을 기다렸다. 오전 집회를 열자 노동자들이 7천여 명으로 줄었다. 날을 세운 톱니바퀴처럼 수많은 유언비어가 노동자들 사이를 돌고 돌았다. 울산 전산망과 명촌교 폭파설이 나돌았다. 지역방송은 북한 공작원들 개입설까지 언급하면서 울산 시민의 민심을 자극했다. 울산에 있는 우익단체와 자동차 공장에 기생하는 업체들이 합심해 일인당 만 원씩을 주고 5만 명을 동원해서 ‘조업 촉구 궐기대회’도 열었다. (219~220) 역사와 문학이 만나 이룬 구성 이 소설은 당시의 국가권력과 현대자동차 노동자들 사이에 확실한 구분선이 존재했음을 사실 기술과 노동자들의 심리 상태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국가권력에 대한 노동자들의 투쟁 의지와 두려움, 심리적 좌절 등도 솔직히 다뤘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그렇다. 현장을 나와 도로를 건너간 봉수는 전경에게 뺏긴 공장을 쳐다봤다. 정문에 불이 켜진 공장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방인의 나라처럼 보였다. 바람이 얼어붙은 뺨을 야무지게 때렸다. 식어서 굳어버린 마음이 맹렬한 추위에 쩍쩍 갈라지는 소리를 냈다. “가재이, 술이나 진탕 묵구 죽자.” 경태가 봉수를 잡아끌었다. 며칠 동안 바싹 말라버린 나뭇잎처럼 푸석해진 얼굴을 떨구며 경태가 걸었다. 가슴속에서 비명이 아우성쳤지만 입이 닫혀버렸다. 터져 나오지 못한 비명이 온몸 구석구석에서 돋아나 바늘처럼 쑤셔댔다. 두 사람은 패잔병처럼 힘겹게 다리를 끌고 술집 문을 열었다.(222) 이런 꾸밈없는 사실 묘사가 큰 역사적 사건 사이에 촘촘히 박혀 역사적 사건을 더욱 살아 있게 하고, 인물들의 구체적인 캐릭터를 확보해 소설적인 성취를 밑받침해준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만의 이야기인가? 작가는 김광주의 아내 미경을 통해 IMF 시기 구조조정이 어떻게 노동자의 삶을 파괴했는지에 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IMF로 고달프게 사는 시절에 노조 간부들이 노래방에서 삐삐아줌마 불러 논다는 소문이 나자 운동판에서 비난이 쏟아졌던 거 알지? 근데, 사실은 우리 마누라가 원조였어. 내가 감옥에 들어가고 나서 먹 고살 길이 막막하니까 노래방을 다닌 거야. 감옥까지 그 소문이 들려왔을 때 창피하고 화가 나서 미치겠더구만. 소문이란 얼마나 무서운가? 삐삐아줌마에서 몸 파는 여자라는 소리까지 들렸을 땐 탈옥을 해서 아내를 죽여버리고 싶은 충동까지 일었었지.(457) 물론 여기서 등장하는 광주나 그의 아내 미경은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이지만, 노동운동과는 그리 가깝지 않았던 평범한 노동자의 모습을 그려내어 역사적 기록이 감당해내지 못하는 개별적인 삶의 모습을 메워주고 있다. 미경은 파업이 있을 때마다 참여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광주와 갈등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들인 개벽이와의 평범한 삶을 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광주는 광주 나름대로 동료들의 헌신과 열정에 끝내 등을 돌리지 못한다. 도리어 친한 후배였던 양봉수의 분신자살로 깊숙이 노동운동에 동참하게 되고 1998년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서 ‘녹색사수대’의 지대장까지 맡게 된다. 물론 그 투쟁의 실패로 체포영장을 받고 도피해 있다가 ‘자수 투쟁’을 감행해 감옥으로 향하게 된다. 그 결과 그의 가족은 파괴되고 출옥 후 자살을 택하게 된다. 광주의 선택은 문학적으로는 상투적일 수 있지만 문학적 차원과는 다른 감동을 독자들에게 준다. 잠들면 그대로 죽을 것 같아 사흘을 뜬눈으로 버티던 어느 순간 눈앞에서 대왕암이 아른거리며 손짓을 했다. 그는 집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는 간절함에 사로잡혀 새벽에 맨발로 뛰쳐나가 차를 몰고 달렸다. 여명이 움트고 있는 한적한 도로를 질주해 대왕암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기만 하면 모든 것이 편해질 것 같았다.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 끝까지 차를 몰고 갔다. 아침 햇살이 소나무 숲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솔잎 사이로 햇살이 눈부시게 퍼져 들어오는 숲길로 광주는 허겁지겁 걸어 들어갔다. 대지가 허연 입김을 내뱉고 있었다. 넋이 나간 듯 비틀거리며 무엇인가에 이끌려 점점 빠르게 걸었다. 숲속을 벗어나자 대왕암이 눈부시게 우뚝 서 있었다. 광주는 바위 사이로 난 길을 따라서 대왕암 제일 끝에 다다랐다.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는 바다 저 멀리 세상의 끝처럼 수평선이 펼쳐져 있었다. 광주는 그대로 바다에 몸을 던졌다.(473~474)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길은 무엇인가? 광주가 죽음을 선택한 것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부활을 상징하고 싶어서였을까? 그것은 그렇지 않다. 광주는 그 뒤로 노동현장을 떠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광주라는 인물은 실제 인물인 양봉수가 조형해냈다. 다른 말로 하면 양봉수의 목숨을 건 투쟁이 또 다른 노동자를 만들어냈으며, 그 면면히 이어지는 노동자의 역사가 바로 ‘노동자의 이름으로’라는 운명을 탄생시킨 것이다. 바다에 몸을 던진 자신을 구해준 노파의 집에서 13년을 살고 광주는 아들 개벽이를 찾아나선다. 그런데 그 개벽이는 현재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며 고공농성 중이다. 하지만 광주는 개벽이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광주에게는 노동운동의 역사가 큰 상처였으며,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운명 앞에 서기 위해 광주가 우회로를 택하는 게 이 소설에서의 뒷이야기이다. 작가는 작중 인물 광주를 통해서 실제 인물 양봉수가 분신을 통해 던진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셈이다. 광주는 양봉수가 남긴 메시지를 “도대체 인간이라는 것이 뭔데?”로 요약한다. 이것은 심원한 물음이면서 양봉수의 선택을 통해 제시된 ‘답’이기도 하다. 그것은 광주가 비정규직 투쟁을 하고 있는 아들에게 불가피하게 물려준 역사이기도 하지만 전태일 이후 식을 수 없는 이념,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다. 작가는 그 ‘길’을 그치지 않는 투쟁으로 봤다. 이 소설은 오늘날 변함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노동 현장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지만,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새삼 묻고 있기도 하다. 따라서 이 소설은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투쟁에 기대 그간의 노동운동에 대한 소설적 응답인 동시에 전태일을 이은 양봉수의 투쟁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묻고 있다.

저자 소개

1958년 서울에서 태어나 1988년 『녹두꽃』에 「우리 억센 주먹」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활화산』 『문밖의 사람들』 『그 아침은 다시 오지 않는다』 『내 생의 적들』 『날개 달린 물고기』가 있으며 소설집 『폐허를 보다』로 2016년 만해문학상
을 수상했다. 오랫동안 노동문화운동을 했고 박영진 열사 추모사업회에서 일했다. 진보생활 문예지 『삶이 보이는 창』과 ‘사단법인 디지털노동문화복지센터’를 만들어 후배들에게 이어주었고,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이사이며 행동하는 작가네트워크 ‘리얼리스트 100’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7년 전부터 남한강이 아름답게 흐르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관덕마을에 내려와서 살고 있다. 

 

머리말

삼십 년의 세월이 지나 들어간 공장은 옛날보다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져 있었습니다. 삼 년 동안 공장을 다니면서 내가 살아온 세월이 불쌍하고, 억울하고, 분노로 치밀어 올라 죽을 것 같았을 때, 다시는 못 쓸 것 같았던 글이 찾아왔습니다. 새벽마다 환청에 시달리면서 미친 듯이 삼 년 동안 글을 썼습니다.

이번 글을 쓰면서 많은 것들을 더 깊이 보면서 배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영원한 핍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 자본은 결코 공동체의 희망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 내가 겪어온 세월 역시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민중들이 지독한 폭력을 당해온 역사라는 것, 불행하게도 그건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

도대체 왜 현실은 이렇게 흘러가야만 하는가? 그 물결을 인간을 살리는 길로 돌릴 수는 결코 없는 것인가? 아마도 제가 쓰고 있는 모든 글들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과정일 것입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은 양봉수, 서영호, 정재성 열사만 실존 인물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허구임을 밝혀둡니다. 동시에 이 글 속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들은 사실이며, 『현대노조 20년사』를 바탕으로 썼음을 알려드립니다.



책 속에서



민주노조라는 말은 대부분의 회사대표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이었다. 산에 오르다 미끄덩한 무엇인가를 밟고 흠칫 놀라 보았을 때 뱀이 혀를 내밀고 고개를 쳐든 모습을 만났을 때처럼 자본가들을 소름 돋게 만드는 그런 말을 정주영은 수차례 또렷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노동자들은 현대왕국의 회장 입에서 그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오자 모두들 귀를 기울였다. 그는 노동자들도 살 만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회사 역시 노력하고 있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노동자들이 결정적인 무엇인가가 회장의 입으로부터 나올 거라고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을 때 그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지며 연단을 내려섰다.
“회사는 합법성 있는 노조와 대화를 할 것이며, 힘으로 밀어붙이는 집단과는 대화하지 않을 겁니다!”
민주노조라는 말, 노동자도 가족이라는 말, 같이 상생하겠다는 말에 현혹된 노동자들은 사리 판단을 못 하고 웅성거렸다. 정주영은 그 틈을 타서 유유히 헬기를 타고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가 떠나고 나서 정신을 차린 노동자들은 연단에 뛰어올라 집행부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농성장이 혼돈 속에서 아수라장으로 변해버렸다.

_58쪽


날을 세운 톱니바퀴처럼 수많은 유언비어가 노동자들 사이를 돌고 돌았다. 울산 전산망과 명촌교 폭파설이 나돌았다. 지역방송은 북한 공작원들 개입설까지 언급하면서 울산 시민의 민심을 자극했다. 울산에 있는 우익단체와 자동차 공장에 기생하는 업체들이 합심해 일인당 만 원씩을 주고 5만 명을 동원해서 ‘조업 촉구 궐기대회’도 열었다.
상황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몇 개월에 걸친 싸움 끝에 공장을 점거했지만 조합원들은 겁을 먹으며 뒤로 빠져나갔다. 집행부는 논의를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점거 5일 후인 19일, 집행부 역시 위협을 느끼고 회사와 다시 협상에 나섰다. 그들은 원래 요구했던 안보다 훨씬 후퇴한 안을 내놨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는 3대 집행부를 초토화시킨 뒤 민주파를 공장 밖으로 영원히 추방시키고 싶어 했다.

_220쪽


“더 이상 우리를 막지 마라!”
양봉수는 정문으로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그가 달려들자 경비들이 우르르 그의 곁으로 뛰어오다가 멈췄다. 역한 휘발유 냄새가 봉수의 몸에서 진동하며 풍기자 모두의 발걸음이 일시적으로 멈췄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한 손에 휘발유가 담긴 병을, 또 한 손엔 라이터를 쥔 채 봉수가 경비들을 향해 걸어갔다. 경비들이 당황해하며 주춤거리다가 뒤로 물러섰다. 봉수의 머리카락에서 휘발유가 뚝뚝 떨어져 내리고 기름에 젖은 얼굴은 햇빛을 받아 번들거렸다. 여전히 옆에서는 해고자들이 경비들과 씨름을 하면서 비명 같은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한순간 뒤로 물러서던 경비들 중에 한 명이 기습적으로 달려들어 봉수를 붙들었다. 봉수의 손에 쥔 병이 흔들리면서 휘발유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나머지 경비들이 와르르 달려들었다. 흔들리던 병이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병이 깨지고 휘발유가 아스팔트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봉수야, 안 돼! 하지 마, 안 돼!”

_315~316쪽


“도대체 인간이란 게 뭔데?”
염병할! 광주는 봉수가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던진 말이 어둠 속에서 들려오자 소주병을 들었다. 목구멍으로 술 넘어가는 소리에서도 그의 목소리가 묻어나와 담뱃갑을 꺼냈다.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담배 연기처럼 가시 같은 봉수의 목소리가 가득 돋아났다.
나도 모르겠다, 봉수야. 도대체 인간이라는 게 뭐냐?
광주는 깊은 탄식과 함께 신음을 흘렸다. 살아왔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다가 한꺼번에 뒤얽혀 분간하기도 어려웠다. 그는 빈 소주병을 던지고 다른 병뚜껑을 땄다. 하구언 댐에 막혀 빙빙 떠돌던 쓰레기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 쓰레기들 속으로 봉수의 유해가 버려졌다는 생각이 들자 다시 술을 마셨다. 보고 싶다,라는 봉수의 전화 목소리가 바람결에 묻어왔다. 광주는 얼굴을 가슴에 파묻고 울기 시작했다.

_350~351쪽


“뭐하는 사람인데 이러는 겁니까?”
신경질적으로 묻는 형사의 목소리를 쫓아 민원실에 있던 경찰들과 몇몇의 시민들이 광주를 쳐다봤다. 광주의 손에 들린 종이에는 ‘폭력 경찰 만세!’라고 적혀 있었다.
“현대자동차 녹색사수대 지대장 김광주요.”
“근데, 왜 여기서 이러는 겁니까?”
“염병, 보면 모르겠소? 지금 시위하는 겁니다.”
“그런 건 당신네들 공장에서 해야지, 왜 여기서 이러느냐구?”
형사가 언성을 높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광주 곁으로 나왔다.
“이 양반들, 까막눈일세. 야, 이 사람들아. 당신들이 체포영장 발부해 놓은 사람도 몰라? 이거 완전히 개판이구만.”
“이 사람이 어디 와서 깽판이야! 자수하러 온 거야?”
“염병, 자수 좋아하고 있네, 시위하러 왔다니까!”
“어이, 잡아들여!”
“그래, 잡아가라. 나 현대자동차 녹색사수대 지대장 김광주다!”

_437~438쪽


아들아, 내 아버지도 노동자였는데 너도 노동자가 됐구나. 아버지로서 그 이름을 물려준 것 같아 가슴이 아프지만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 우린 노동자이기 전에 인간이다. 인간이라면 인간답게 살아가는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니? 내 비록 부끄러운 아버지이지만 네가 그 길을 찾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지금 너의 투쟁이 그 길을 찾아가는 빛나는 길이 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하마! 이 통장은 아버지로서 네게 주는 것이 아니라 너희들과 함께 세상을 바꿔나가고 싶어 하는 한 노동자의 마음으로 받아주기 바란다.

_507쪽

목차

1장. 뜻밖의 방문 / 7
2장. 지나간 나날들 / 21
3장. 또 다른 인생 / 107
4장. 구체적 현실 / 163
5장. 빛을 찾아서 / 233
6장. 또 다른 시작 / 341
7장. 노동자라는 이름의 굴레 / 439

작가의 말 /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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