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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4 1400~1500 탐험, 무역, 유토피아의 시대

원제 : Medioevo 4: Esplorazioni, Commerci, Utopie
시리즈 :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5]

움베르토 에코 저 | 김효정, 주효숙 역 | 시공사 | 2018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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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52774255 / 960쪽 168 x 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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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중세의 결정판 “중세는 암흑기가 아니다. 암흑기라는 표현에서 끝없는 공포, 광신주의와 이교에 대한 편협성, 역병, 빈곤과 대량 학살로 인한 문화적이고 물질적인 쇠퇴기를 떠올린다면 …… 이는 부분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다. 그 시대가 남긴 유산 대부분을 우리는 아직도 사용한다……. 우리가 우리 시대의 것인 것처럼 아직도 사용하는 중세의 발명품은 끝이 없다.” -움베르토 에코, 전체 서문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 소개] 중세 Ⅰ(476~1000): 야만인, 그리스도교도, 이슬람교도의 시대 중세 Ⅱ(1000~1200): 성당, 기사, 도시의 시대 중세 Ⅲ(1200~1400): 성, 상인, 시인의 시대 중세 Ⅳ(1400~1500): 탐험, 무역, 유토피아의 시대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은 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기획하고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해 중세의 모든 것을 다룬 인문 시리즈로, 시기에 따라 총 4권으로 구성된다. 역사와 철학에서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까지 현재 우리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세의 다양한 사건, 사상, 제도, 문화, 예술 등이 촘촘하게 소개된다. 흔히 암흑기라고 알려진 이 시기가 사실은 얼마나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 왔는지, 또 근현대의 여러 분야가 정착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기틀을 마련해 왔는지를 알려 준다. 기획자와 집필자들의 국제적인 명성, 방대하고도 세밀한 자료 등에서 다른 책들과는 절대 비교할 수 없는 중세의 결정판. [중세 4: 세부 내용] “천 년을 품은 중세, 내일의 역사를 잉태한 과거” 우리 시대의 석학,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유산! 1천 년 중세사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중세 컬렉션의 마지막 여정 고대의 이상을 계승하고 근대의 새로움을 고취시킨 마지막 1백 년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의 마지막 책인 『중세 Ⅳ』가 다루는 1400년부터 1500년까지의 1백 년은 중세와 르네상스가 혼재된 시기다.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1455년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발명, 1492년 그라나다 왕국의 함락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어디에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는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만 이것이 어느 한 분야만의 업적이나 성과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15세기에 상업과 무역업의 외연이 확대되면서 공간에 대한 인식이 진일보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조감으로 본 풍경을 그림으로써 그림의 경계선 너머를 상상하도록 자극했다. 또한 항해 기술이 발전하면서 지금까지는 상상에서만 가능했던 원거리 여행이 가능해졌다. 여러 번의 전쟁과 종교 불화를 겪으면서도 중세인들은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키웠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이 과정에서 근대 국가의 틀이 만들어졌다. 이들 모두가 르네상스의 문을 연 주인공이다. 중세 역사: 중세를 떠나 근대로 가는 길 15세기는 여러 가지 불안의 징후와 함께 열렸다. 무엇보다 ‘교회 대분열’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두 명의 교황과 두 개의 교황청이 존재하던 시기였다. 유럽 사회의 팽창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하나의 교회, 교회의 보편성이 위기를 맞자 여기저기서 반목이 생겨났다. 1449년에 니콜라오 5세가 유일한 교황이 되면서 공식적으로 분열은 끝났지만, 과거의 것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교황과 교황청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이상을 준비하고 대책을 제시해야 했으나 자의가 아닌 현실과의 어쩔 수 없는 타협이었다. 종교 불화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기에 종교 재판소와 이단 탄압은 더욱 거세졌으며 마녀사냥이 빈번했다. 이 시대의 표상으로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와 그가 후대에 미친 영향을 기억해야만 한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백년전쟁은 1453년에서야 종결되는데, 줄곧 우위를 점했던 영국이 아니라 프랑스의 승리였다. 이 과정에서 샤를 7세가 프랑스 왕국을 재편성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먼저 민족정신이라 할 수 있는 정신을 제기했고, 열일곱의 문맹 소녀 잔 다르크가 증명해 냈다. 백년전쟁은 봉건제의 실패라고도 할 수 있으나 이를 통해 근대로 한 걸음 다가갈 수 있었다. 영국의 장미전쟁, 에스파냐의 그라나다 정복, 샤를 8세의 이탈리아 원정 등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크고 작은 분쟁이 계속되었다. 동로마 제국의 몰락을 논하지 않고서는 중세의 문을 닫을 수 없다.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사라지면서 시작된 중세는 1천 년 후 동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그 종결이 뚜렷해졌다. 1453년 5월 29일 오스만 제국의 콘스탄티노플 정복은 중세가 열망했던 이상향인 제국과 교회를 하나로 엮어 보편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대상이 사라진 것을 의미했다. 1492년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으로 확실한 근대가 열리기까지 경제, 사회, 문화의 여러 방면에서 의식과 기술의 진일보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1455년에 구텐베르크가 종이 양면에 압착기를 이용함으로써 유럽에 이동식 활자를 통한 인쇄술이 도입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처럼 이탈리아의 15세기는 코무네라고 불리는 도시 국가들의 전성기였다. 밀라노, 베네치아, 토스카나 등은 코무네에서 시작하여 참주정, 대공국, 그리고 지역 국가로 성장해 나갔다. 하지만 유럽 전체로 봤을 때는 힘이 약했으므로 유럽 강국들의 전쟁에 여러 번 휘말려야 했다. 그럼에도 메디치 가문의 피렌체, 곤차가 가문의 만토바, 몬테펠트로 가문의 우르비노 등은 경제와 상업, 무엇보다 문화의 성숙을 자랑했다. 이들의 후원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르실리오 피치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와 같은 르네상스를 이끈 주역들이 탄생했다. 중세 철학과 사상: 능동적인 인간으로서의 새로운 역할 중세는 신, 르네상스는 인간 중심이라는 이분법적인 시각을 벗어나야 진정한 중세를 만날 수 있다. 15세기의 중세는 두 시대가 뒤섞여 숙성된 진정한 과도기였다. 이 시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이 모두 각광을 받았고, 유명한 철학자들은 이들 사이의 통일성을 증명하려고 시도했다. 15세기에 인문주의가 발전하면서 고대 사상과 사상가를 연구하려는 노력이 활발했는데,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플라톤과 비교되면서 처음에는 대립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신플라톤학파인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인문주의 철학자 피코 델라 미란돌라 덕분에 이 두 거장의 사상을 조화시킬 수 있었다. 더불어 고대 문헌들을 제대로 평가하고자 하는 요구에 부응하여 문헌학이 새롭게 떠올랐다. 대표적으로 수세기 동안 교황의 세속 권력의 정당성을 입증해 온 <콘스탄티누스의 증여 문서>가 가짜임을 밝혀낸 로렌초 발라는 『콘스탄티누스의 증여라고 믿어진 선언의 허구성』으로 문헌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또한 글자 그대로 한 단어씩 번역하던 15세기 이전과는 달리 문장의 의미를 전달하려는 노력으로 개념적인 내용을 번역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동시에 이미 번역된 내용이 아니라 그리스어와 라틴어로 쓰인 원전을 직접 읽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고대 철학자들의 사상을 더욱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간에 개입한 이들이 적을수록 좋았던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을 중심으로 생각한 것은 맞지만, 이는 인간이 신을 대신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신과 세상의 중개자로서 인간이 능동적인 역할을 한다는 의미다. 이와 더불어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문헌의 유통 및 확산에도 큰 변화가 찾아오며 지식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세 과학과 기술: 익명에서 벗어난 예술가-기술자들의 강렬한 등장 13-14세기에는 대학을 중심으로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이루어졌다고 한다면, 15세기에는 궁정을 중심으로 폭발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호화로운 궁전을 지키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구는 무기와 군대 장비에 힘을 쏟는 계기가 되었고,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갖춘 기술자들의 역할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필리포 브루넬레스키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다. 건축가와 군사 기술자로 활동한 브루넬레스키는 건설 현장까지 대리석을 운반하기 위한 수륙 양용 배와 피렌체 대성당의 유명한 돔으로 유명하다. 또한 그는 또 다른 15세기의 기술자 야코포의 마리아노에게 공공연히 발명품을 공개하지 말 것을 권고했고, 이는 처음으로 발명품에 대한 지적 재산권 문제를 제기한 경우다. 그동안 익명으로 뒤에서만 활동하던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낸 계기이기도 하다. 기술자가 단순한 장인에서 박식한 전문가로 인정받는 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화가 겸 기술자, 건축가로 활동하며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여러 궁정에서 작업했는데, 이는 예술가-기술자가 르네상스 시대에 높은 사회적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면서 비잔티움의 학자들이 이탈리아와 유럽의 여러 궁정으로 피신하는 일이 벌어졌고, 이로 인해 그리스어와 그리스 고대 문헌에 대한 지식이 유럽에 확산되었다. 더불어 15세기 말엽에 가동 활자 인쇄술이 발명되어 의학 및 과학 문화가 빠르게 전달되었다. 지중해 밖의 세계에 대한 자료가 늘어나면서 새로운 땅을 찾아 더 멀리 여행을 떠났고, 이러한 탐험으로 인해 지도와 항해 도구 제작 기술이 더욱 정교해지며 신세계에 대한 욕구는 점점 커져만 갔다. 물론 이러한 교류로 뜻하지 않게 매독이라는 새로운 질병이 유럽 사회에 퍼졌지만, 그때까지 단순하게 생각했던 전염병의 원인에서 벗어나 폭넓게 질병을 연구하는 계기가 되었고 병원 설립에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세 문학과 예술: 고전의 재발견과 인문주의의 실험실 15세기 인문주의의 업적 중 하나는 고대 세계의 재발견이라 할 수 있다. 위대한 시인 페트라르카는 고대 문헌에 깊은 애정을 보인 최초의 인문주의자였고, 그가 발견한 고대 문헌들은 다음 세대의 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고대 문헌들을 해석하기 위해 라틴어와 그리스어에 대한 지식과 문헌학이 발달했고, 자연스럽게 인문주의자들은 플라톤에 열광했다. 이탈리아의 개별 국가들에서는 각각의 특징과 시기에 따라 인문주의 문화가 발전하면서 속어 문학이 재탄생했다. 속어 문학은 15세기 로렌초 데 메디치가 피렌체를 다스리던 시기에 절정에 이르렀는데, 당시 문학과 정치의 관계가 밀접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각 지역의 속어 문학은 복잡했던 이탈리아 정세에서 그 지역의 우월성을 보여 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했다. 15세기는 고전 작가들을 재발견하고 인문주의적인 시각을 덧붙여 속어 문학도 재탄생하도록 한 풍요로운 실험실이었다. 곧 다가올 르네상스의 씨앗이 움트는 시기였던 것이다. 1492년 로렌초가 사망한 후에 이탈리아의 균형이 깨지면서 오히려 이탈리아의 발달한 문화는 유럽으로 퍼지는 계기가 되었다. 예술 영역에서 원근법이 사용되면서 공간과 신체에 대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를 설정했다. 대상을 바라보는 각도를 축소시키는 원근법은 이차원에 삼차원의 공간 표현을 위한 수학적 방법이 도입되었음을 뜻한다. 15세기에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가 실험하고,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이론화시켰으며, 마침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완성시켰다. 이들이 활동했던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국가와 동일한 개념이었고, 모든 권력 체계의 중심이었다. 메디치, 몬테펠트로, 비스콘티 등의 특정 가문이 군주 역할을 맡았다. 경제와 정치 지도자였을 뿐만 아니라 인문주의자이자 예술 애호가기도 했던 이들의 관심과 주문 덕분에 예술가 집단은 마음껏 창작품을 만들었고 고유의 명성을 얻었다. 이들이 조각, 회화, 건축 등의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15세기에 이탈리아 도시는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빛날 수 있었다. 15세기에 음악은 사회의 변화에 따라 커다랗고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그중에서도 ‘글’을 통한 노래법과 악기 연주법이 널리 퍼지고 함양되었다. 이와 더불어 교회에 종속된 존재로 여겨지던 음악가가 이론가, 작곡가 등으로 세분화되고 확실하게 구분되었다. 이것이 소리 예술로서의 음악의 근대적인 개념을 확실히 하는 데 기여하면서 음악은 학문보다는 예술 영역으로 자리매김했다. 종교 음악 영역과 함께 세속 음악도 궁정과 도시에서 귀족들에게 크게 인기를 얻었다.

저자 소개

  • 저자 : 움베르토 에코
저자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기호학자인 동시에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 1932년 이탈리아 서북부의 피에몬테주 알레산드리아에서 태어났다. 변호사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토리노 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중세 철학과 문학으로 전공을 선회, 1954년 토마스 아퀴나스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학위논문을 발간함으로써 문학비평 및 기호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62년 토리노대학교와 밀라노대학교에서 미학 강의를 시작했으며, 최초의 주요 저서인 『열린 작품 Opera apertas』(1962)을 발간해 현대미학의 새로운 해석방법을 제시했다. 이어 『제임스 조이스의 시학 Le poetiche di James Joyce』(1965), 『예술의 정의 La definizione dell'arte』(1968) 등 새로운 이론서를 발표해 문학비평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1966년 상파울루대학교와 피렌체대학교에서 시각커뮤니케이션을 강의했으며, 1967년 『시각커뮤니케이션 기호학을 위한 노트』를 출간했다.
1968년 인간의 사고와 문화행위, 이념구성 등에 다양하게 관련되어 있는 기호를 개념, 유형, 의미론, 이데올로기 등으로 명쾌하게 분석 정리한 『텅빈 구조 La struttura assente』를 발간했으며, 이어서 『내용의 형식 Le forme del contenuto』(1971)을 발간한 후 이 두 저서의 내용을 증보해 영문판 『기호학이론 A Theory of Semiotics』(1976)을 발간함으로써 세계적인 기호학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Visio 문화, 즉 읽는 문화가 아니라 보는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인 중세 미학과 러시아 형식주의, 그리고 아방가르드 문화로부터 출발했으며, 퍼스의 철학적 기호론을 통해 독특한 기호학 체계를 구축, 프랑스 중심의 언어학적 기호학이나 구조주의와 철저하게 맞대결하는 한편 프랑크푸르트 학파류의 마르크스주의와도 완연히 다른 예술 이해와 미학관을 보여주었다. 1971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조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세계 최초의 국제기호학 잡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활동했다. 1974년 밀라노에서 제1회 국제기호학 회의를 주관했으며, 1975년 볼로냐대학교의 기호학 정교수 및 커뮤니케이션·연극학 연구소장으로 임명되었다.
기호학과 미학의 세계에 열중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집필하게 되었다. 당시 원자핵의 확산과 환경오염 등으로 인한 세기말적인 위기를 문학으로 표현해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는 2년 반에 걸쳐 집필을 완료해 1980년 첫번째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Il nome della rosa』을 발표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의 논리학,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경험주의 철학과 자신의 기호학 이론을 유감없이 발휘한 이 소설은 출간되자마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어 1988년 두 번째 장편소설 『푸코의 진자 Il pendolo di Foucauilt』를 발표해 프랑크푸르트 북페어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았으며, 1994년 자전적 작품인 세 번째 장편소설 『전날의 섬 L'isola del giornoprima』을 발표해 작가로서의 재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에코는 문학은 죽는 방법까지 가르쳐 준다고 말할 정도로 문학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움베르토 에코의 문학 강의』라는 책에서 문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그리고 문학이 개인적 삶과 사회적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웅변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문학의 몇 가지 기능에 대해’에서 시작하여 마르크스, 단테, 네르발, 와일드, 조이스, 보르헤스 등의 작품에 대한 비평과 문체, 상징, 형식, 아이러니 등 문학 이론의 핵심적인 개념들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 등을 담고 있다.
움베르토 에코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에서 퍼스널컴퓨터에 이르기까지 기호학·철학·역사학·미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문적 지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모국어인 이탈리아어를 비롯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러시아어, 에스파냐어까지 통달한 언어의 천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이래 최고의 르네상스적 인물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특히 파리 제4대학인 소르본에서의 강의활동과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 폴 드 만(Paul de Mann)과 함께 하는 예일학파로서의 학술활동은 유명하다. 그의 기호학이론은 오늘날 세계 학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문학이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볼로냐대학교에서 건축학·기호학·미학 등을 강의했으며, 세계 명문대학의 객원교수 등으로 활동해오다 2016년 2월 향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작품으로 장편소설『장미의 이름』(1980) 과『푸코의 진자』(1988),『전날의 섬』(1994), 동화『폭탄과 장군』(1988),『세 우주 비행사』(1988), 이론서『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열린 작품』,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

역자 김효정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예술과 광고』, 『아름다운 여름』, 『중세Ⅰ』, 『사라진 도서관』, 『불안의 책』,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등이 있다.



주효숙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페루자 국립언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돈 카밀로’ 시리즈를 번역해 이탈리아 외무성에서 수여하는 번역상을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통번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단테의 비밀서적』,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등이 있다.



차용구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파사우 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현재는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중세 유럽 여성의 발견》, 《로마 제국 사라지고 마르탱 게르 귀향하다》를 비롯하여 《가해와 피해 의 구분을 넘어: 독일/폴란드 역사 화해의 길》(공저), 《서양 중세사 강의》(공저)가 있다. 옮긴 책으로 《교황 의 역사》, 《중세 천년의 빛과 그림자》, 《국가의 탄생: 근대 국가의 중세적 기원》(공역)이 있다. 또한 국내에서 〈중세의 이단과 여성〉, 〈독일과 폴란드의 역사대화: 접경지역 역사서술을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해외 학술지에 〈12세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긴느의 볼드윈과 그의 장남The Relationship between Fathers and Sons in the Twelfth Century: Baldwin of Guines and his Eldest Son〉 등을 게재했다.



박승찬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 중세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8년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의 ‘중세 철학사’ 강의는 2012년 11월에 SBS와 대학교육협의회에서 공동으로 주관하는 ‘대학 100대 명강의’로 선정되었다. 또한 SBS-CNBC ‘인문학 아고라’ 「어떻게 살 것인가」, EBS 특별 기획 「통찰」 등의 TV 방송 출연, 한겨레신문 연재, 다양한 강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중세에 대해 갖는 편견을 깨고 중세 철학이 지닌 매력과 그 깊이를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저서로 『생각하고 토론하는 서양 철학 이야기 2: 중세-신학과의 만남』(책세상, 2006), 『서양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수용사: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누멘, 2010), 『철학의 멘토, 멘토의 철학』(공저,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13), 『알수록 재미있는 그리스도교 이야기』(전2권, 가톨릭출판사, 2015), 『서양고대철학 2』(공저, 도서출판 길, 2016),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삶의 길을 묻다』(가톨릭출판사, 2017)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라틴어 원문에서 번역한 『모놀로기온 & 프로슬로기온』(캔터베리의 안셀무스, 아카넷, 2002), 『신학요강』(토마스 아퀴나스, 나남출판, 2008), 『대이교도대전 Ⅱ』(토마스 아퀴나스, 분도출판사, 2015),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의 형이상학』(레오 엘더스, 가톨릭출판사, 2003)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김효정, 주효숙
[번역 | 김효정]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사라진 도서관』, 『불안의 책』, 『고대 로마인의 성과 사랑』 등이 있다.

[번역 | 주효숙]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비교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페루자 국립언어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조반니노 과레스키의 ‘돈 카밀로’ 시리즈를 번역해 이탈리아 외무성에서 수여하는 번역상을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탈리아어통번역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단테의 비밀서적』, 『고대 로마인의 24시간』 등이 있다.

[감수 | 차용구]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파사우 대학교에서 서양 중세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중앙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감수 | 박승찬]
서울대학교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신학부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중에 중세 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책 속에서

4월 12일에서 18일까지 투르크족은 흙으로 지은 성벽의 중심부를 쉬지 않고 폭격하고 나서 마침내 18일 밤에 최초의 본격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럼에도 모든 방어군의 사기는 높았다(베네치아 함대가 지원을 보냈다). 4월 20일에 무기와 식량이 실린 네 척의 배가 도착하자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3시간 동안의 교전 후에 방어군은 투르크족 함대의 손아귀에서 벗어났고, 거대한 산맥으로 막혀 있어 그때까지만 해도 투르크족의 손에 들어가지 못한 금각만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4월 22일에 기름을 묻힌 굴림대 위에 실린 70여 척의 투르크 범선이 갈라타 언덕을 통해 금각만으로 내려왔다. 해안 성벽도 블라헤르나이 궁도 더 이상 안전하지 못했기에 방어군은 힘을 분산시켜야 했다. 베네치아인 함장 야코포 코코는 금각만을 해방시키기 위해 대담하게도 밤중에 몇 척의 배에 불을 붙여(화공선) 투르크 함대 한가운데로 밀어 넣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계획을 생각한 순간부터 그것을 실행하는 순간까지 베네치아군과 제노바군 사이의 마찰 때문에 너무 많
은 시간이 지나갔다.
-‘역사: 콘스탄티노플의 몰락’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선택한 책의 의미와 그들의 몸짓의 상징성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어떤 이들은 정반대의 내용을 지적했고, 다른 이들은 좀 더 정확하게 상보성을 주장했다. 사실상 서명의 방 안에 있는 모든 프레스코화가 심오하게 신플라톤적인 영감을 드러낸다면, <아테네 학당>에서 마르실리오 피치노와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영향은 철학의 정확한 개념을 숙고하는 데 특별한 영향을 끼친다. 그 개념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나 플라톤의 사상으로 식별되지 않고, 오히려 인간 이성에 대한 가장 고양된 두 설명으로 평가되고, 뚜렷이 구별되지만 조화시킬 수 있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학설의 종합으
로 이해된다. 이런 방식으로 라파엘로는 논의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중심성을 그려 냈다. 이 두 철학자 사이의 비교라는 주제는 15세기를 압도했다.
-‘철학: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대립에서 화해로’에서

레오나르도의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향상의 예외성은, 죽어가는 순간에 레오나르도를 ‘위대한 철학자’라는 호칭으로 부른 벤베누토 첼리니의 말들로 가려졌다. 기술 지식의 인정 및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들’의 지원 차원을 위해 노력하고 의견을 같이 하며 접촉한 15세기의 다른 예술가-기술자들의 문화적 맥락에서 분리하여, 르네상스의 천재에 대한 최고의 표현으
로 레오나르도를 평가하는 것은 실수일 것이다. 전통과의 연결은 지나칠 정도로 분명했지만, 다른 어떤 이들보다도 15세기 예술가-기술자들 대다수에 의해 공유되던 ‘기술의 꿈’에 목소리와 그래픽적인 가시성을 부여할 수 있는 기술자가 되려던 레오나르도의 정신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과학과 기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서

탁월한 문학의 ‘군주’였던 로렌초는 시인과 예술가들을 보호하는 것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15세기 말 피렌체 문학의 재탄생을 위해 많이 기여했다. 피렌체에서 뒤늦게 인문주의가 전성기를 맞은 것에는 로렌초의 정치적 관심사가 한몫을 했다. 그는 우수한 문화를 통해서도 복잡한 이탈리아 정치에 기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전통적으로 볼 때 로렌초의 다방면에 걸친 문학 작품은 세 단계로 구분된다. 대부분 권력을 잡기 이전인 첫 번째 단계에서는 모범을 충실히 따르는 세련된 페트라르카주의와, 토스카나 특유의 희극적-풍자적 전통을 따르는 이중적인 노선을 걸었다.
-‘문학과 연극: 로렌초 치하의 피렌체에서 재탄생한 속어시’에서

오늘날에 표현과 전망의 가장 좋은 연습 방법으로 여겨지는 것은, 사실 가능한 수많은 공간 표현 방법의 하나일 뿐이다. 1927년에 에르빈 파노프스키(1892-1968)는 『‘상징적인 형태’와 같은 원근법』을 썼다. 여전히 훌륭한 이 글에서 독일 태생의 미술사가는 사람의 신체적-정서적 공간과 비교하여 15세기의 원근법 연습 안에 감추어진 추상적 개념과 관례를 강조했으며 심오한 역사적 측정을 지지했다. 수학적으로 식별되는 기하학적 기준 선망을 기반으로 하는 회화 이미지창조는 르네상스 정신과 결합되는 전통적인 방식이다. 오늘날에 대상은 합리적인 좌표계에 새겨지고, 모든 공간은 더 높은 보편적인 질서를 드러내는 균형을 이루며, 조화로운 구상 규칙의 적용에 근거하여 구성된다. 또 이들은 전적으로 측정과 인식이 가능하다. 따라서 통제 가능한 우주를 종이 위에 옮기는 상징적인 구조를 만들어 낸 주인공이 15세기 피렌체의 상인층과 중산층이라는 것은 놀랍지 않다.
-‘시각예술: 원근법과 투시 공간’에서

음악의 사변적인 측면의 많은 부분은, 실현 가능하거나 시행할 수 있는 활동의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사색의 대상 및 영혼의 움직임에 대한 윤리 행동의 도구처럼 관념적으로 탐구되어야 하는 바에 따라서 음악을 위한 인문주의자들의 관심을 포착했다. 15세기에 관념적인 음악 미학의 진정한 주창자는 단연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였다. 피치노는 『티마이오스 개요서』와 『음악에 관한 논의』(1484)의 서간 작가기도 했지만 피렌체 로렌치아 카메라의 음악가이자 시인이었기에 리라 연주자로도 기억되어야 한다.
-‘음악: 마르실리오 피치노, 요하네스 팅크토리스, 프란키누스 가푸리우스,
그리고 음악 인문주의’에서

 

목차

역사
-역사 서문(라우라 바를레타)
-사건들
-국가들
-경제
-사회

철학
-철학 서문(움베르토 에코)
-연속성과 파열: 철학과 전통의 부활
-르네상스의 문턱에 선 인문주의와 철학

과학과 기술
-과학과 기술 서문(피에트로 코르시)
-천문학
-수학
-의학
-연금술과 실험 화학
-기술 지식의 문화 혁명
-혁신, 발견, 발명
-유럽 밖으로

문학과 연극
-문학과 연극 서문(에치오 라이몬디, 주세페 레다)
-인문주의 시대
-궁정과 도시의 문학
-종교 문학의 형식
-연극

시각예술
-시각예술 서문(안나 오타니 카비나)
-국제 고딕 양식
-르네상스
-이탈리아 미술과 플랑드르 미술
-새로운 주제와 유형
-중심지와 주인공들

음악
-음악 서문(루카 마르코니, 체칠리아 판티)
-음악의 이론적 사상
-연주 및 작곡 기법

찾아보기 / 부록 I : 도판과 지도 / 부록 II :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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