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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어스 홀로코스트, 역사이자 경고

티머시 스나이더 저 | 조행복 역 | 열린책들 | 2018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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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2918792 / 616쪽 148 x 224 (㎜)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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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워싱턴 포스트』, 『이코노미스트』,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2015년 올해의 책 새뮤얼 존슨상 파이널리스트 마크 린튼 역사상, 아서 로스 도서상 숏리스트 비극의 무대, <블랙 어스> 홀로코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유례없는 비극에 대해 우리에게 각인된 이미지는 의외로 빈약하다. 미치광이 히틀러와 전체주의 나치 독일, 반성 없이 임무를 수행한 관료와 산업화된 학살 시설 아우슈비츠 등이 전부다. 히틀러는 왜 전쟁을 일으켰을까? 패색이 짙어가는 와중에도 왜 유대인 몰살에 골몰했을까? 이들 이미지에 따르면 답은 간단해 보인다.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하다.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 연구의 권위자인 티머시 스나이더는 이 책 『블랙 어스Black Earth』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그가 지적한 것처럼, 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는 처음부터 히틀러의 마음속에 있었다. 히틀러는 유대인을 없애는 것은 지구의 생태학적 균형을 복원하고 독일인들을 다시 풍요롭게 만드는 길이라고 보았다. 이 세계관은 다른 국가를 파괴함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었고, 그 구체적인 실행 방안은 유럽 그 자체를 대상으로 한 식민지 전쟁이었다. 즉, 스나이더는 2차 세계 대전을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으로 제시한다. 독일인을 배불리 먹일 땅. 어딘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유대인을 보내 버릴 땅. 그리고 마침내 모든 유대인의 무덤이 된 땅. 그것이 바로 <블랙 어스>이다. 홀로코스트, 역사이자 경고 스나이더는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나치 이데올로기와 결부한 것은 옳았지만, 살인자들 다수가 나치가 아니었고 심지어 독일인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는다.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거의 전부 독일 밖에 살았는데도, 우리는 먼저 독일 유대인을 생각한다. 살해된 유대인은 대개 강제 수용소를 본 일도 없지만, 우리는 강제 수용소를 떠올린다. 살인은 국가 제도가 파괴된 곳에서만 가능했는데도, 우리는 국가의 허물을 묻는다. 우리는 과학에 책임을 돌리고, 따라서 히틀러가 지닌 세계관의 중요한 요소를 인정한다. 우리는 나치가 이용한 단순화에 빠져 국민을 비난한다.> 우리는 우리가 히틀러나 나치와는 다르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세계는 우리가 인정하는 것보다 히틀러의 세계에 더 가깝다. 『애틀랜틱』지의 편집장 제프리 골드버그가 평했듯이, <과거는 어쨌든 지나간 것이라고 믿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경고로 읽힐 것이다>. 히틀러의 세계 스나이더는 먼저 히틀러의 세계관을 분석한다. 히틀러는 지구를 종족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다. 그가 보기에 세계는 정글이었고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다른 종족을 굴복시켜야 한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따라서, 모든 종족이 상생할 수 있다는 관념은 거짓이자 전염병이다. 그러한 관념을 퍼뜨려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기생충 같은 존재가 바로 유대인이었다. 유대인은 비종족주의의 화신으로 보였다. 그들은 정주지가 없고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전통에 도전하는 모든 사상들,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둘 다에서 유대인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히틀러가 보기에 유대인은 독일 종족의 파멸을 위해 비종족주의적 믿음을 조장하는 음모 세력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독일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사라져야 할 존재가 된다. 스나이더는 히틀러가 민족주의자는 아니었다고 강조한다. 즉, 그가 독일의 승리에 모든 것을 건 것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히틀러는 독일 종족의 우수함을 믿었고, 독일이 마땅히 승리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스나이더가 강조하듯이, 히틀러가 믿은 유일한 진리는 정글의 법칙이었다. 독일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독일 종족이 그만큼 우수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독일은 마땅히 패배의 시련을 겪어야만 한다. 히틀러는 전후(1차 대전) 독일의 궁핍함을 미국의 풍족함과 비교했다. 독일이 미국만큼 풍족함을 누리려면 그 원천인 광활한 영토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에서 취할 것인가? 정복할 식민지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그때 이웃 유럽의 열등한 종족들의 영토가 히틀러의 눈에 들어왔다. 독일은 동유럽의 광활한 영토를 대상으로 식민지 전쟁을 벌였고, 그곳의 유럽인들을 아프리카의 <흑인>처럼 취급했다. 서구인들에게 이것은 미증유의 충격이었다. 유대인 해법, 이주 혹은 몰살 동유럽 영토는, 나아가 소련의 영토는 또 하나의 목적을 위해 필요했다. 스나이더가 이 책에서 잘 보여 주듯이, 1930년대 말까지 독일은 폴란드와 함께 유대인 해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다. 유대인은 독일의 시야에서 사라져야 했지만, 그것이 곧 몰살을 뜻하지는 않았다. 모두 죽일 필요는 없었다. 어딘가 먼,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보내 버리면 그만이었다. 독일이 동유럽 점령지의 유대인을 보는 즉시 모두 죽이지 않고 게토와 수용소를 만들어 살려 둔 이유는 최종적으로 그들을 어딘가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 <어딘가>는 한때 마다가스카르와 팔레스타인이었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시베리아 동토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그 모든 시도가 실패하자, 히틀러는 마침내 유대인을 모두 죽이기로 한다. <국가 없는> 지대의 국민 스나이더는 <이중 점령>과 <국가 없는 상태>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비극의 성격은 이 지점에서 극도로 복잡해진다.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따라 동유럽을 양분해 침공한 독일과 소련은 각기 기존의 국가 제도를 파괴하고 지배 체제를 구축한다. 1941년, 독일이 동맹을 파기하고 소련을 침공하기로 했을 때, 전선은 2년 전에 소련에 점령당했던 지역에 그어졌다. 이 지역은 소련에 의해 한번 파괴되었고, 독일에 의해 재차 파괴된다. 이것이 이른바 <이중 점령>이다. <이중 점령>은 국가의 흔적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독일은 이 지역에 국가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 선언한다. 스나이더는 누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임을 당했는가에 주목한다. 독일에 굴복했지만 국가 제도가 살아남은 곳, 이를테면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국가들과 프랑스 같은 곳에서 유대인은 제약을 받을지언정 결코 함부로 체포되거나 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중 점령>을 당한 <국가 없는> 지대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들은 시민권을 부정당하고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언이나 들소처럼 사냥을 당했다. 그들은 그곳을 무단 점거한 야만인 취급을 받았다. 20세기 군국주의가 초래한 비극에서, 우리는 국가의 권한과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러나 이 책이 분명히 보여 주듯이 국가가 역할을 하지 못할 때, 그 국민은 언제든 손쉽게 사라질 수 있었다. 살인자와 구원자 유대인 절멸을 구상한 것은 히틀러이다. 그러나 그 실행자는 히틀러도 독일인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소련은 독일 이상의 유대인 학살자였다. 내무인민위원부의 만행은 이 책에 언급된 것만으로도 경악할 만하지만, 대부분 은폐되거나 조작되어 제대로 전하지 않는다. 유대인 혐오는 어디에나 만연한 현상이었다. 독일 점령자들이 유대인을 탐욕스러운 자본가로, 혹은 소련의 앞잡이로 제시하자마자 점령지의 비유대인들은 기꺼이 유대인을 죽이고자 했다. 유대인의 재산을 차지하고 얼마 안 되는 보상을 받기 위해 그들은 기꺼이 밀고자, 살인자가 되었다. 한편으로 별다를 것 없는 이들이 때로 유대인을 구했다. 감시와 밀고가 만연한 사회에서 구원자가 되는 것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일이었다. 때로는 돈이, 때로는 성적인 기대 따위가 유대인을 구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하등의 이유 없이> 유대인을 구했다. 스나이더가 썼듯이, 이 구조자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자기 인식>이었다. <자신을 안다면 할 말이 없다. 자신을 너무도 모르면서 자신에 관하여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우리가 곰곰이 생각해 볼 만한 말이다.> 우리의 세계 스나이더는 마지막 장에서 우리가 직면한 현실에 대해 길게 평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 세계는 20세기가 걸었던 비극의 길을 비슷하게 따라 가고 있다. 과학 발전에 따른 <농업 혁명>은 지구에서 식량 걱정을 덜어 줄 것 같아 보였다. 그러나 지구는 여전히 굶주리고 있다. 생활 수준에 대한 욕구는 끝이 없고, 우리는 여전히 더 넓은 공간과 더 풍요로운 생활을 위해 투쟁한다. 중국과 러시아는 이 투쟁의 선두에 있다. 이슬람 세력도 빼 놓을 수 없다. 한편 미국은 과거를 오도하고 대체로 잘못된 해법을 제시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세계를 보존하기 위해, 시민은 무엇을 해야 할까. 스나이더는 이렇게 적었다. <국가가 파괴되고 지역의 공공 기관들이 붕괴하고 경제적 유인이 살인을 부추긴다면, 선하게 행동할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가 1930년대와 1940년대의 유럽인보다 윤리적으로 우월하며 따라서 히틀러가 그토록 성공리에 선전하고 실현한 사상에 덜 취약하다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진정으로 구조자들을 본받으려면 먼저 그렇게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홀로코스트를 이해하면 인류를 보전할 기회를 얻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 미국인 비평자 저자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몇 해 전만 해도 대중적으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역사학자였다. 그러던 그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한 책, 『폭정On Tyranny』(2017)으로 일약 미국을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으로 떠올랐다. 그는 『폭정』에서 트럼프를 히틀러에 빗댄다. 과장이 좀 심한 게 아닌가 싶겠지만 그렇지 않다. 히틀러가 처음부터 독재자였거나 학살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민주적 절차, 즉 선거로 권력을 잡았고 그 권력으로 민주주의 제도를 파괴했다. 따라서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는 허튼소리가 아니다. 역사학자로서 스나이더는 미국 내 소수 집단에 속한다.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는 우리 만큼이나 미국에서도 그다지 인기가 없다. 브라운 대학에서 역사와 정치학으로 석사를 마친 그는 옥스포드에서 유럽사 권위자인 티머시 가튼 애시와 폴란드 유대인 역사학자 예지 예들리츠키의 지도 아래 현대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들의 영향으로 동유럽사를 전공으로 하게 된다. 동유럽 사료 연구를 위해 광범위한 언어를 습득한 것으로 유명한데, 영어와 불어, 독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를 읽고 말할 줄 알며, 체코어, 슬로바키아어, 러시아어, 벨라루스어를 읽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유럽사 주요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2010년에 작고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와의 우정은 잘 알려져 있고, 대답집 『20세기를 생각한다Thinking the Twentieth Century』를 함께 펴낸 바 있다. 폴란드인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다룬 문제작 『이웃들Neighbors』(2001)의 저자인 폴란드 출신 역사학자 얀 그로스에게서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스나이더는 『블랙 어스』의 많은 부분이 그에게 빚지고 있음을 언급한다. 국가 권력의 작동 방식에 대한 연구에서 그는 또한 해나 아렌트의 해석을 계승하고 있다. 스나이더는 학계의 주목을 받은 첫 저작 『피의 땅Bloodlands』(2010)으로 독일의 하인리히 뵐 재단이 설립한 권위 있는 해나 아렌트상을 2013년에 수상했다. 그는 이 상을 받은 유일한 미국인이다(토니 주트는 2007년에 영국인으로서 이 상을 받았다).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 역사학자로서, 동유럽사와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만큼 정통한 학자는 달리 찾을 수 없다. 이 주제에 관해, 이 전례없는 비극의 교훈에 대해 그가 미국 내에서 더욱 중요한 비평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저자 소개


브라운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파리 대학과 바르샤바 대학, 빈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빈의 인간과학연구소 종신회원이며 현재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유럽사에 관해 쓴 다섯 권의 책이 모두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대표작인 『피의 땅: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유럽』은 10여 개의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3년 이 책을 쓴 공로로 해나 아렌트 상을 수상했다. 

역자 소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20세기를 생각한다》《세계전쟁사사전》《포스트워》《독재자들》《1차세계대전사》 등이 있다. 

책 속에서

직관은 우리를 저버린다. 우리가 홀로코스트를 나치 이데올로기와 결부한 것은 옳았지만, 살인자들 다수가 나치가 아니었고 심지어 독일인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는다. 홀로코스트에서 살해된 유대인은 거의 전부 독일 밖에 살았는데도, 우리는 먼저 독일 유대인을 생각한다. 살해된 유대인은 대개 강제 수용소를 본 일도 없지만, 우리는 강제 수용소를 떠올린다. 살인은 국가 제도가 파괴된 곳에서만 가능했는데도, 우리는 국가의 허물을 묻는다. 우리는 과학에 책임을 돌리고, 따라서 히틀러가 지닌 세계관의 중요한 요소를 인정한다. 우리는 나치가 이용한 단순화에 빠져 국민을 비난한다. -12쪽

유대인은 〈흑사병보다 더 나쁜 유행병, 정신적 유행병〉이었다. 유대인은 사상을 무기로 삼아 싸웠기 때문에, 그들의 힘은 도처에 퍼졌고 밖으로 드러났든 드러나지 않았든 누구라도 그들의 대리인이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역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뿌리를 제거하는 것이었다. -26쪽

히틀러는 소련을 파괴하면 진짜 주인 종족이 올바른 이유에서 진짜 하등 인간들을 굶겨 죽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일인이 유대인을 대신하여 식민지의 주인이 되면, 쓸모없는 소련 주민들로부터 우크라이나의 식량을 빼앗아 감사할 줄 아는 독일 도시들과 복종하는 유럽에 줄 수 있을 것이었다. -46쪽

반유대주의는 적어도 1933년 이전에는 독일보다 폴란드에서 더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켰을 가능성이 크지만, 폴란드에서는 히틀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자는 권력에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독일의 정책이 유대인이 사는 모든 국가의 파괴를 포함했던 반면, 폴란드의 정책은 유대인 국가의 수립을 추구했다. -63쪽

스탈린은 히틀러와 유럽의 동부를 나눠 갖기로 하면서 무력 충돌을 유럽의 서부로 돌리기를 바랐다. 그곳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독일을 상대해야 할 것이었다. ……스탈린의 전술적 관점에서 보면, 가장 훌륭한 전쟁 수행 방법은 다른 이들이 서로 싸워 있는 대로 피를 흘리게 한 뒤 전리품을 취하는 것이었다. -156쪽

독일인들에게 게토는 유대인을 어떤 이국적인 장소로 추방하기 전에 모아 두는 오수 저장 탱크였다. -167쪽

퓌러는 결코 틀릴 수 없었다. 오직 세상만 틀릴 수 있었다. 그리고 세상이 틀렸을 때, 그 책임은 유대인이 져야 했다. -170쪽

독일인들은 1941년에 소련을 침공할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을, 즉 처음으로 유대인을 대규모로 살해할 수 있는 상황을 찾아냈다. 최종해결이 실현된 곳은 독일에 앞서 소련이 지배했던 곳, 소련이 두 대전 사이의 국가들을 파괴한 후 독일이 소련 제도를 폐지한 곳, 즉 이중 점령 지대였다. -176쪽

유대볼셰비즘 신화는 나치가 자신들의 침공을 의미 있게 하려면 유지해야만 하는 생각이 옳음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소련에 일격을 가하면 세계적인 유대인 음모가 실패할 것이고 유대인에 일격을 가하면 소련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222쪽

어느 우크라이나인 경찰은 거리에서 유대인을 멈춰 세우고는 이렇게 물었다. 〈어이 친구, 말해 보게. 소련 체제에서 무슨 일을 했나?〉 그러고는 답을 듣지도 않고 두들겨 팼다. 그 폭행이 답이었다. -259쪽

유대볼셰비즘 신화는 유대인을 다른 소련 시민들로부터, 많은 소련 시민을 그 과거로부터 분리했다. 유대인 학살과 그 재산의 이전은 과거에 대한 책임 의식을 제거했고 독일의 점령에서 이득을 얻는 사람들을 창출했으며 독일의 미래 안에서 상대적인 사회적 향상을 약속하는 것 같았다. -264쪽

히틀러가 소련을 과소평가했기에 독일은 영국과 소련, 미국과 동시에 싸워야 했다. 그러나 히틀러의 세계관에 내재한 논리를 따르자면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독일에 맞서 펼친 〈공동 전선〉은 유대인의 작품이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세계 전쟁이 여기에 있다. 유대인의 절멸은 필연적인 결말이어야 한다.〉 -277쪽

〈아우슈비츠〉라는 낱말은 홀로코스트 전체를 가리키는 환유법이었다. 그러나 대다수 유대인은 아우슈비츠가 주된 학살 시설이 될 때쯤이면 그 동쪽에서 이미 죽임을 당했다. 아우슈비츠는 기억되었지만, 홀로코스트의 대부분은 대체로 잊혔다. -293쪽

시민권은 개인과 이들을 보호하는 국가 체제 사이의 상호 관계를 지칭하는 이름이다. 국가가 없었던 때에는 시민도 없었고 인간의 생명은 소홀하게 다뤄질 수 있었다. -309쪽

진정으로 구조자들을 본받으려면 먼저 그렇게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구조 행위는, 이렇게 넓은 의미에서는, 전통적인 정치에 도전하고 전례 없는 범죄를 풀어놓은 그 사상을 확실히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447쪽

미국인들은 홀로코스트를 생각할 때면 당연히 자신들은 절대로 그러한 범죄를 저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거나 미군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옳은 편에 섰다. 역사적 진실은 약간 더 복잡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유럽을 해방하려고 인종적으로 분리된 군대를 보냈다. 반유대주의는 당시 미국에서 현저했다. 홀로코스트는 미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을 때 대체로 끝났다. 미군이 몇몇 강제 수용소를 해방했지만, 미군 부대는 홀로코스트의 주요 학살장 어느 곳에도 도달하지 않았으며 동유럽의 수많은 죽음의 구덩이를 전혀 보지 못했다. -466쪽

미국인들이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국가 권력의 부재가 자유라고 믿는 것이다. 이러한 혼동의 계보를 따라 올라가면 1930년대의 독일과 오스트리아가 나온다. -468쪽

국가가 없으면, 권리는 당연히 유지할 수 없다. 국가는 당연하게 받아들이거나 착취되거나 버려질 조직이 아니라 오랫동안 조용히 노력을 기울여 얻은 성과물이다. 우파의 시각에서 국가를 즐겁게 부숴 버리거나, 좌파의 시각에서 마치 다 안다는 듯이 그 파편들을 응시하는 것은 유혹적이지만 위험하다. 정치사상은 파괴도 비판도 아니다. -472쪽



목차

머리말

서론 히틀러의 세계
1장 생활 공간
2장 베를린, 바르샤바, 모스크바
3장 팔레스타인의 약속
4장 국가 파괴자들
5장 이중 점령
6장 더 큰 악
7장 독일인, 폴란드인, 소련인, 유대인
8장 아우슈비츠 역설
9장 주권과 생존
10장 잿빛 구조자들
11장 신과 인간의 투사들
12장 의로운 소수

결론 우리의 세계

감사의 말
주
기록 보관소와 약어
출판된 사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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