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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1290560 / 632쪽 223 x 1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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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성령은 누구신가? 성령은 신자의 구원과 교회의 생활 가운데 실제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신약성경 저자들은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무엇이라 말하는가? 우리는 오늘날 성령의 은사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방언, 예언, 치유와 같은 은사들은 오늘날 중단되었는가? 전통적인 복음주의 교회와 은사주의적 오순절 교회 사이에 성령과 은사에 관한 논의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가? 오늘날의 모든 신자들과 교회의 삶 속에서 성령과 성령의 은사들이 하는 역할과 관련하여 이러한 질문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으며, 교회 내 논란의 한 원천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막스 터너 교수는 신약의 성령론과 관련된 논의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이 중요한 책에서 성경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 가고 현대 신학의 제 측면들을 살피는 가운데 성령에 대한 명료한 학문적 결과물을 제시한다. 터너는 세 명의 주요한 신약 저자인 누가, 요한 바울이 성령에 관한 구약과 중간기 사상을 어떻게 이어받고 발전시키는지를 주의 깊게 탐사하고 있으며, 또한 이러한 성경적 가르침들이 오늘날 과연 어떠한 신학적 적실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연구한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는 성령에 대한 구약과 중간기의 견해들을 간략하게 검토하며 시작한다. 1장에서는 구약시대에서 신구약 중간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성령이 주로 계시와 지혜와 영감을 받은 연설을 가능하게 하는 “예언의 영”으로 이해되었음을 주장한다. 슈바이처(Schweizer)와 멘지즈(Menzies) 등은 성령이 구원론적으로 필수적이지 않고 단지 어떤 종류의 봉사를 위해 능력을 부여하는 것이었다고 결론을 내리지만, 저자는 유대교에서조차도 “예언의 영”의 이 은사들(선물들)이 오로지 능력을 부여하는 것만이 아니라 회복된 공동체의 “삶/생명” 자체인 것으로, 그리고 그 공동체의 거룩함의 권능인 것으로 예견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2-8장은 누가, 요한, 바울이 이러한 이해를 발전시켰으며, 믿는 자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선물을 “예언의 영”에 대한 기독교화 된 버전으로 보고 있다고 제시한다. 이어서 9-11장은 성령의 선물(주어짐)에 대한 현대 신학과 조직신학을 향해 나아가면서 신약 증거의 의의를 탐구한다. 제10장에서는 성령 받음에 대한 고전적인 오순절적 두 단계 견해가 좀 더 광범위한 은사주의와 연결된 단일 단계의 회심-입회(one stage conversion-initiation) 패러다임으로 대체될 필요가 있음을 주장한다. 제11장에서는 신약성경의 증거가 후일의 성령에 대한 삼위일체적 이해의 근거를 어느 정도로 예비하고 있는지 검토한다. 2부는 세 가지 원형적인 “성령의 은사들”(예언, 방언, 치유) 및 신약 교회에서의 이 은사들과 다른 영적 은사들의 성격과 목적에 대한 검토로 시작한다(12-15장). 이어지는 16장에서는 은사중지론에 대해서 논한다. 은사중지론은 이 은사들이 주로 신약성경의 책들을 쓰는 일에 필수적인 계시를 제공하기 위해서 그리고 정경이 완성될 때까지 교회를 지도하기 위해서, 신적 계시의 담지자들인 예수와 사도들에게 하나님의 인증(attestation)으로서 주어졌다는 주장이다. 에드가, 파넬, 개핀, 마스터스 등의 추론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사도들과 그 동역자들의 죽음과 함께 그러한 영적 은사들이 그칠 것을 예견했다는 것이다. 거의 모든 신약학자들은 그러한 견해를 신기한 골동품처럼 취급해버리겠지만, 최소한 은사중지론은 흥미로운 형태로 그러한 영적인 은사들의 진정한 성격과 목적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어지는 장들은 오순절 및 은사주의 갱신 운동들 가운데서 주장되고 있는 예언, 치유, 방언의 성격과 의의를, 같은 용어로 언급되고 있는 신약성경의 은사들과 연관하여 탐구한다. 저자는 전통적 복음주의와 오순절적 은사주의가 극단적으로 대립해왔던 주제인 성령-은사론 분야에서 양 진영을 연결하면서 궁극적으로 양자의 일치를 위한 가교 역할을 자임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직면한 성령-은사론과 관련된 많은 혼란과 대립 한가운데서 이 책은 문제의 성경적 기반을 공고히 밝혀주고 그러한 대립 사이의 진정한 대화 가능성을 열어주는 길잡이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으로 기대한다.
중간기 유대교 문헌에 나타나는 성령은 무엇보다 “예언의 영”이었다. 따라서 성령으로부터 기대되었던 가장 전형적인 은사들은 다양한 유형의 은사적 계시, 은사적 지혜, 그리고 급작스럽게 엄습해오는 은사적 발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예언의 영이 다른 종류의 권능의 행위들과 연결되는 것을 배제시킨 것은 아니었다. 또한 “예언의 영”은 단순히 거의 윤리적인 영향은 없는 부가적인 선물(donum superadditum)이 아니었다. 성령의 계시적이면서 지혜를 부여하는 역할들은 (많은 영역에서) 변혁적이기 때문에 잠재적으로 구원론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 여러 메시아적인 인물들 가운데서 예언의 영은 또한 급진적으로 윤리적인 방향을 지닌, 야웨에 대한 지식과 경외의 영 및 통치를 위한 지혜와 권능의 영이 될 것임이 예견되었다.
_1장 “신약 성령론의 배경: 중간기 유대교에서의 성령” 중에서
누가의 성령론은 누가의 신학적 시도에 대해 어떤 점을 전해주고 있는가? 이스라엘의 다윗 계열의 메시아이자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아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가져오는 카리스마적 권능으로서의 “예언의 영”에 대한 누가의 그림은 이데올로기적인 동기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누가는 교회가 세워지는 순간에 비추어서 교회를 설명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고 있다. 교회가 교회로서의 진정한 정체성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교회가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떠날 때라고 독자를 설득하는 일과는 거리가 멀게, 누가는 교회가 이스라엘에 대한 약속들의 성취라고 주장하고자 한다. 누가가 모세와 같은 예언자에게 청종하지 않는 자들을 이스라엘 민족에서 배제시키고 있고, 누가복음 1-2장의 약속들이 대부분 오순절 이후의 공동체인인 사도행전 15장에서 성취되고 있다는 그의 믿음이 이 점을 지지한다. 그리고 이에 덧붙여 그 사실은 그가 (제4복음서의 저자와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여전히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는 주장을 놓고서 (헬레니즘적인) 유대교와 활발하게 경쟁하고 있을 때에 글을 쓰고 있음을 시사해준다.
_3장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선물: 이스라엘의 회복과 증거의 권능인 예언의 영” 중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검토한 항목들에서 우리는 즉시로 (“예언의 영”으로서) 성령이 카리스마적인 계시, 감동된 연설 및 영적 지혜/이해를 주신다는 유대적 이해를 추적할 수 있다. 계시의 성령을 한량없이 소유하고 있는(3:34) 예수 안에서, 그 예수를 통해서, 구원의 계시적 지혜라는 최상의 선물이 나누어진다. 의심할 바 없이 요한은 예수에게 성령이 주어짐으로써 예수가 신적 지혜의 전형이 되는 가르침을 줄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그러나 요한은 또한 그 이상의 것을 확증하기를 원한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을 통해 성령이 듣는 자들의 마음속에 도달한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한다.
_4장 “요한복음 1-12장에 나타난 성령” 중에서
아직은 우리가 바울 사상의 의미심장한 발전에 대한 중요한 진술을 제공할 만한 명확한 입장에 있지 않다. 처음부터 바울은 성령을 “예언의 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인식을 에스겔 36-37장과 연결시키고 있으며, 그리하여 유대교의 일부와 사도행전과 바울 이전의 몇몇 전승들과 요한의 경우에서와 같이 “예언의 영”을 구원론상 필수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발전적인 정황에서 정리된 성령론이 성령에 대한 바울의 기본적인 이해에 대한 그의 창의적인 상황화를 선명하게 제시해줄 수는 있지만, 만일 그것이 바울의 성령 신학의 “발전” 단계에 대한 연대기라고 여긴다면 이는 잘못된 것일 것이다
_7장 “바울 서신에 나타난 성령(1): 바울의 성령론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 중에서
이 장을 시작하면서 말했듯이, 이제까지 필자는 의도적으로 누가, 바울, 요한의 성령론들을 계속해서 따로 구별해서 다루었다. 이제는 이들 서로 간의 관계에 대해서 묻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이 관계를 우선은 다음과 같이 기술적인 수준(descriptive level)에서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셋은 성령
에 대해서 어느 정도로 통일되어 있고 일관성 있는 견해를 제공하고 있는가? 성령에 대한 진정한 “신약신학”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초기 기독교 성령론에 관해 상당히 다른 증거들에 대해서밖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성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뒤이어서 다양한 구약 문서들의 기여에 대해 마땅한 무게를 두는 성령에 대한 좀 더 광범위한 “성경신학”에 대해 말하는 것이 가능한지의 여부에 대해서 물을 수 있다. 그러한 가능성을 제기하는 것은 분명히 우선적으로 “고백적인” 질문을 취급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아카데미의 관심사에서 전적으로 벗어나는 것으로 취급해
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신구약성경이 조화 가운데서 말하는지의 여부는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평가에 중요한 의의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세 번째로 성령에 대한 그와 같은 신약신학 혹은 성경신학이 어제와 오늘의 교회의 신학적 이해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역사신학, 조직신학, 교의신학에 의해서 다른 방식으로 접근되는 과제이다.
_9장 “성경적 조직신학을 향하여” 중에서
우리는 신학의 발전에 계시적 예언이 끼친 영향에 대해 보다 진지한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바울이 복음에 대한 근본적인 판단이 사도들의 위임 하에 성립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을 살펴보았다. 바울의 신학 중에서 다메섹 도상에서의 체험과 이방인들의 사도라는 그의 사명, 바울의 랍비적 배경, 케리그마에 대한 사전 지식, 그리고 관심의 대상이었던 교회의 전승에 대한 점증하는 지식에서 유추된 것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 바울 신학의 대부분은 그리스도 사건과 이방인에 대한 자신의 소명을 각기 다른 상황에서 반성적으로 설명해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카리스마적인 지혜의 은사는 예언보다 더 중요한 것일 수 있다. 우리가 바울에게서 예언의 존재 혹은 영향을 발견할 수 있는 한, 그것들은 대부분 종말론적인 프로그램의 세부 사항에 대한 예언들이다. 종말론적인 예언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새로운 신학적 계시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신학을 특정한 상황을 위해 상세히 설명해주는 목회적인 “말씀”들이다. 따라서 케리그마적인 계시/전승은 대부분의 경우에 시금석이 된다.
_12장 “신약에 나타난 예언” 중에서
대표적인 은사들은 어쨌든 중단되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상대적으로 드물기는 하지만 그런 기적들이 있었다는 주장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고작이다. 이런 입장에서 볼 때, 초기에 비해 후대의 교회에서는 어쨌든 이러한 은사들이 덜 두드러졌지 않느냐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보는 것이 주는 신학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사도 시대 직후에 깜짝 놀랄 만한 모든 은사들이 중지되었다”고 하는 단호한 주장이 입증되기만 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은사중지론자들의 은사 이해를 뒷받침해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입장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순교자 유스티누스 당시에도 예언, 방언, 치유가 있었다고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신뢰할 만한 주장들에 대처할 수 있는 뭔가 뾰족한 묘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부들이 제시하는 증거들을 그런 식으로 읽어내려고 하는 세대주의자(dispensationalist)는 하나도 없을뿐더러, 그들이 주장하는 것의 객관성을 확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쪽에 확실한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른 쪽에 그런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하튼 신약성경은 이러한 은사들이 단순히 “표적”이었을 뿐이라거나, 혹은 정경이 완성되기 이전에 임시로 사용된 대용물에 불과했다는 견해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_16장 “은사중지론과 신약의 입장” 중에서
이러한 진영에서 오순절/은사주의의 공헌이 직접적인 “체험”에 열중하다가 복음에 대한(그리고 복음을 오늘날의 세계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사려 깊은 이해에 질적인 저하를 가져오는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기독교의 복음에 대한, 또한 복음과 제자도 그리고 복음과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철저한 연구와 심도 깊은 분석이 없으면 교회는 그저 더 많은 목회적 재앙과 충분히 피할 수 있는 오해로 인해 발생하는 더 심각한 교회의 분열을 경험하고 세상에서 교회의 신뢰성을 더 많이 상실하게 될 것이 뻔하다. 마찬가지로 오순절/은사주의 진영에서 강조하는 것들은 기독교가 단순히 지성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일련의 이성적인 전제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교회에게 제대로 지적해주고 있다. 개별적인 존재이자 연합적인 존재인 교회의 모든 차원이 다 기독교에 포함된다. 그리고 오순절 운동은 보다 전통적이며 “이성적인” 형태의 기독교에서는 종종 쉽게 눈감아버렸던 계시의 여러 가지 형태에 대해 신자들의 눈이 열리는 것과 같은 식의, 오늘날의 하나님 “체험”이 성경적인 계시와 공통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올바르게 지적해주었다.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긍정적인 길은, 종종 거만을 떨기만 하고 사이만 멀어지게 하는 둘 사이의 논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양쪽 진영의 지혜를 하나로 통합하는 데 있다.
_20장 “결론적 고찰: 오늘날 교회의 삶에 나타난 성령과 성령의 은사” 중에서
서문|감사의 말|약어제
1부 신약 성령론의 발전
제1장 신약 성령론의 배경: 구약과 ‘중간기’ 유대교에서의 성령
제2장 공관복음서 전통에 나타난 예수와 성령
제3장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령의 선물: 이스라엘의 회복과 증거의 권능인 ‘예언의 영’
제4장 요한복음 1-12장에 나타난 성령
제5장 요한복음 14-16장에 나타난 성령: 보혜사에 대한 약속
제6장 요한의 교회와 그 안에 주어진 선물인 성령
제7장 바울 서신에 나타난 성령 (1): 바울의 성령론을 확립하기 위한 방법론의 문제
제8장 바울 서신에 나타난 성령 (2): 특징적 주제들
제9장 성경적 조직신학을 향하여
제10장 믿는 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선물’에 대한 성경적 조직신학을 향하여
제11장 오순절 관점에서 본 삼위일체적 성령론을 향하여
제2부 신약 교회와 오늘날의 성령의 은사들
제12장 신약에 나타난 예언
제13장 신약에 나타난 방언
제14장 신약에 나타난 치유의 은사
제15장 바울 계열 교회의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사와 성령
제16장 은사중지론과 신약의 입장
제17장 오늘날의 방언 현상
제18장 오늘날의 예언
제19장 오늘날의 치유
제20장 결론적 고찰: 오늘날 교회의 삶에 나타난 성령과 ‘성령의 은사’
참고 문헌|성경 색인|인명 색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