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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714995 / 304쪽 212 x 2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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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초간본楚簡本이 도덕경의 원본입니다.
동양철학계의 석학 김충열교수는 초간본이 출현하기 전에 통행본을 가지고 강의한 일에 대해서 학자로서 부끄럽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이제라도 초간본楚簡本으로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노자》는 오랜 세월 세계의 석학들이 탐독한 책입니다. 이를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번역하였고,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독일어로 번역하였답니다. 하이데거는 “누가 탁류를 안정(安靜)시켜서 서서히 맑게 할 수 있을까? 누가 안정되어 있는 것을 움직여 서서히 생동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초간본 제12장(통행본 제15장)의 두 구절을 한자로 써서 그의 서재 벽에 걸어놓고 보았다고 합니다. 신영복은 생애 중 소중하게 본 책으로 《노자》・《논어》・《자본론》 3권을 꼽았습니다.
노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사마천의 《사기》<노자・한비열전>에 나옵니다. <노자・한비열전>에는 노자라는 이름으로 노담・노래자・태사담 3명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노자》는 누가 쓴 책일까요? 그리고 성(聖)・지(智)・인(仁)・의(義)・예(禮)에 관한 전통적 오행의 윤리이념을, 초간본과 《한비자》<해로・유로>에서는 찬미하고 있는데 백서본과 통행본에서는 이를 반유가의 글자로 바꿔 노골적으로 유가를 배격한 이유는 뭘까요?
첫 번째 의문은 1973년에 호남성마왕퇴한묘에서백서본이 출토되었고, 이어서 1993년에 호북성곽점초묘에서 초간본이 출토되면서 제기되었던 것입니다. 이 의문은 곽기(郭沂)등 초간본을 연구한 학자에 의해서 풀립니다.
『노담은 공자에게 ‘예(禮)’를 가르쳐 주었으며, (노담 또는 그의 제자가) 춘추 말 BC480년경에 초간본을 쓴 사람이다. 태사담은 공자가 죽고 100여년이 지난 BC374년에 진헌공을 찾아가 만났으며, BC380년경 전국 중엽에 초간본을 바탕으로 당시의 여러 학설을 종합하여 증보판 <5천자 노자>를 지어 윤희에게 준 사람이다. 그리고 노래자는 그의 저술이 아직 알려지지 않아 불분명한 사람이다』라는 것입니다. 초간본은 그 자체로 완정한 족본(足本완전한 판본)입니다. 그리고 <5천자 노자>는 한비자가 《한비자》<해로>・<유로>편을 쓰기위해 본 책입니다.
두 번째 의문은 백서본과 통행본에서 전통적 윤리이념을 왜 배격하고 있는가라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생겨난 진원지는 백서본(갑)에 있습니다. 그동안 학자들은 백서본과 통행본에 나오는 <불상현(不尙賢)・천지불인(天地不仁)・성인불인(聖人不仁)・절성기지(絶聖棄智)・절인기의(絶仁棄義)>와 같은 글을 보고, 어떻게 설명할 수 없으니까 ‘仁’의 개념을 편애(偏愛)・편사(偏私)라고 거꾸로 해석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자를 반유가적 인물로 낙인찍었던 것입니다.
‘仁’이란 기본적으로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 즉 ‘애인약애기신(愛人若愛其身)’입니다《묵자》<겸애>. 仁의 개념은 이러한 애인(愛人)으로부터 시작하여 더 나아가 천지만물이 공생(共生)하는 애물(愛物) 그리고 애천(愛天)으로까지 더욱 확충해나갑니다. 仁의 본성은 청정(淸靜)입니다. 仁하다고 스스로 나타내지 않고 그저 맑고 고요합니다. 치열하게 흘러가는 강물도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함과 생명체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仁의 성품을 지녔습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仁의 본성인 청정을 온전하게 찾습니다. 마치 차별 없이 만물에 비추어 따스한 기운을 베풀어주는 햇빛처럼, 바다도 특정한 사물을 편애하거나 미워하지 않습니다. 참된 仁은 바다나 햇빛을 닮아 과시하거나 나타내려고 하지 않습니다[大仁不仁.《장자》<제물론>]. 소인(小人)들은 편애하고 과시하지 않는 경우가 없지만[未有小人而仁者也, 《논어》<헌문>], 성인은 결코 편애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역사상 여러 성인이 나와 인간사회를 좀 더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 주었던 것이며, 천지 또한 묵묵히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주고 갈무리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통행본 제3장의 불상현(不尙賢)이나 제19장의 절성기지(絶聖棄智)・절인기의(絶仁棄義)에 관해서는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무튼 초간본에는 이런 구절이 나오지 않습니다. 노자는 전통윤리를 중시하였을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유가사상을 선도하였음이 초간본의 출토로 확인되었습니다. 도가사상과 유가사상은 서로 대립과 갈등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소통이 잘 이뤄진 관계에 있습니다.
《한비자》<해로>편 해설을 보면, 한비자 또한 전통윤리 개념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칭송하고 있지요. 한비자는 외적으로 엄정한 법치를 강조하면서도 내적으로는 전통윤리를 존중한 법가입니다. 군주는 통치를 위해서 ‘법(法:道・刑)과 덕(德:術)이라는 두 개의 칼자루[二柄]를 잡고, 철저히 공익公益을 추구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해로>편에 나오는 “실도이후실덕(失道以后失德도를 잃으면 다음에 덕도 잃는다)”이 백서본에서는 “실도이후덕(失道而后德도를 잃은 다음에 덕이 나타난다)”으로 나옵니다. “失德”에서 ‘失’자를 빼고 “德”이라고 한 것이지요. 통행본 제38장에도 백서본과 같이 “실도이후덕(失道以后德)”으로 나옵니다.
김충열은 이를 해설하면서 인용한 <해로>편의 글 중에 “失자가 와서는 안 되는데, 한비자는 계속 失자를 쓰고 있다. 분명히 잘못된 것일 게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김충열의 책 233쪽>. ‘失’자가 들어간 것을 착오로 본 것이지요. 이는 한비자가<해로>와 <유로>를 쓰기위해 본 책을 “《백서본(갑)》”이라고 단정한 것에서 생긴 착각으로 봅니다.<김충열의 책 93쪽. 김용옥의 책 상권 93쪽>한비자가 본 책은 <5천자 노자>입니다. 그리고 ‘失’자가 들어간 것은 착오가 아닙니다.
<5천자 노자>에서 친유가적 글 12개장을 뽑아 <해로>편을 지은 것이지요. 실도이후덕(失道而后德)과 같은 반유가적 글은, 《한비자》가 작성된 BC240년까지는, 《노자》라는 책에 들어있지 않았음이 확실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언제 왜 <5천자 노자>에 있는 친유가적인 글을 반유가적인 글로 바꾸었을까요?
혐의가 가장 짙은 사람은 진시황 때 승상이었던 이사(李斯)입니다. 그가 『새 시대의 정책을 비판하는 낡은 사상을 지닌 유생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유가의 책들도 모두 불살라버려야 하며, 오로지 법치와 우민정책으로써 통치하여 군주의 권력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창한 글이 《사기》<진시황본기>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는 순자 문하에서 함께 공부한 동문 한비자를 독살하고, 시황의 승인을 받아 분서갱유를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이사의 언행으로 미루어보면 「백서본(갑)은 《한비자》를 작성한 BC240년 이후부터 분서갱유를 단행한 BC212년 전 사이에, 유가 등 지식인을 탄압하고 철권통치를 강화할 목적으로, 이사가 <5천자 노자> 중에서 일부 글자를 교묘하게 바꾸기도 하고 끼어 넣은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렇게 개작한 다음에 <5천자 노자>는 분서갱유 때 다른 책들과 함께 태워버렸겠지요. 그러나 그 흔적이 《한비자》에 남아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사가 <5천자 노자>를 개작한 것이 곧 백서본(갑)」이라고 봅니다. 백서본을 통행본과 비교해보면, 거의 같은 판본 계통에 속하는 것으로 道와 德에 관한 글의 순서가 바뀌어있을 뿐 새로운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이 ‘별 것 아니다’라고 평가절하 했던 것입니다. 백서본은그동안 노자사상을 왜곡시켜온 주범입니다. 현재로서는 이를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백서본에서는 “道가 상실된 이후에 德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왜 그런지 그 이유를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요? 학자들은 이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어물쩍 넘어갔습니다. 무어라 설명하든 그건 《장자》에 나오는 도척(盜跖도적 수령)이 도가나 유가를 힐난하며 내뱉는 궤변일 뿐입니다. 애당초 성립할 수 없는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강단에서 오래 동안 자신도 모르는 해괴한 논리로 노자강의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김충열은 초간본이 출현하기 전에 통행본을 가지고 강의한 일에 대해서 학자로서 부끄럽다고 선언하였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새로운 출토자료<초간본>를 보지 못해 자기의 잘못된 학설을 고치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나는 살아서 그 잘못을 수정하고 미비했던 학설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사실이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행복한 학자’라고 스스로 자위해 본다.”라고, 그의 책 머리말에 썼습니다. 양심을 지닌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국내의 《노자》관련 책 중에는, 초간본의 내용을 백서본이나 통행본과 비교하며 설명하기 위해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간본을 전면적으로 해설한 책은 현재 양방웅의 《초간 노자》와 김충열의 《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 그리고 최재목의 《노자》 3종에 불과합니다.
필자가 2003년에 쓴 《초간 노자》와 2016년도판 《노자 왜 초간본인가》를 보완하여 다시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출판사 리뷰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라“, ”자기로 돌아가라“를 일관되게 강조한 《노자》는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의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에게 사상적 기틀을 마련해 준 위대한 중국의 철학자이자 사상가이다.
「1891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출판업자가 대문호톨스토이에게 “톨스토이 당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나 사상가는 누구입니까?” 라고 질문을 하자, 톨스토이는 “중국의 공자와 맹자에게서 아주 큰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노자에게 받은 영향은 실로 거대하다.”라고 답을 했다고 한다.
특히 이 책의 근간이 되는 『초간본』은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오래된 노자의 원본(古原本)으로1993년 죽간형태로 중국 곽점의 초(楚)나라시대의 묘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초간본 발굴은 1974년 발굴된 한묘 백서본과 함께 노자의 전면적인 재해석을 요구하는 획기적인사건으로, 학술계의 많은 의문들을 풀 수 있는 기준이 되는 매우 귀한 자료로 노자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할 수 있다.
초간본楚簡本은 도덕경의 원본이다.
중천김충열교수는 초간본이 출현하기 전에 통행본을 가지고 강의한 일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이 이 새로운 출토자료 『초간본』를 보지 못해 자신의 잘못된 학설을 고치지 못하고 죽어갔는데, 나는 살아서 그 잘못을 수정하고 미비했던 학설을 보완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그래서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행복한 학자’라고 스스로 자위해 본다.” 라고 자신의 책 머리말에 기록 했으며, 생전에 자신의 노자강의를 수정할 일이 없을 것으로 단언함으로써초간본의 학술적인 가치와 60년간 도가사상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 《노자》는 그 왜곡을 바로 잡고 초간본으로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인드라망]
초간본에는 우주생성론에 관한 노자사상의 핵심이 들어있다. 학자들은 갑조와을조의 죽간 작성 시기를 춘추 말이나 전국초기로 본다. 그 때가 BC480년에서 늦어도 BC450년 이전이다. 노자는 장수했다고 알려졌는데 그때까지 살아있을 가능성도 있다. 그래서 초간본의 갑조와을조를고원본(古原本)으로 보는 것이다. 노자의 우주생성론에 관해서는 1장•2장•6장과 35장을 함께 읽어야 노자의 압축된 우주본체론 사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중 략>
[道란 무엇인가]
이 장에서 말하는 道는 사람이 다니면서 만들어지는 물리적인 도로(道路)라는 뜻도 아니고, 인륜을 나타내는 도리(道理)라는 뜻도 아니다. 그것은 우주만물이 그 안에 존재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운행하도록 하는 형이상적 태일의 영이다. 이는 인간의 언어를 초월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이 창생한 피조물이 아니다. 천지창생보다 먼저 태일과 함께 존재하고 있으며, 태일과 동격인 ‘신령(神靈)’이다. 신령을 무엇이라고 불러야할지 몰라서 글자로 ‘道’라 쓰고, 별명으로 ‘大’라 불렀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道는 창생된 것이 아니고, 天地는 태일이 창생한 것이다. 따라서 (해석1)이 바르다. <※고전에서 비슷한 발음의 글자를 통용하였다. (예) 道dào와 大dà. 德dé과 得dé>
道는 시간이 생겨나면서 그 속에 진입하여 현상계의 만물 속(中)에 자리하며 만물을 화육(化育)한다. 그 작용은 한없이 멀리 나가다가 극점에 이르면 되돌아오는 순환 왕복운동을 멈추지 않고 영원히 시간여행을 지속한다<35장의 “周而或始”. 통행본의 “周行而不殆”>. <중략)>
불교에서는 천망(天網)을 ‘인드라망(Indra’s net. Cosmic web)‘이라고 한다. 인도신화에서 유래된 말이다. 힘의 신인 인드라Indra가, 정의의 신인 아수라Asura의 침입을 막기 위해 그물로 제석천궁 위의 하늘을 덮었는데, 그물의 매듭에는 구슬을 달아 두었단다. 아수라 군대가 어느 한곳에 침입하면 그곳의 구슬에 모습이 비치고 이어서 다른 모든 구슬에도 비치게 되어 있는 정보망이다.
일체의 존재가 홀로 있지 않고 첩첩이 겹쳐진 가운데 얽혀 함께 존재함을 비유하여 설명할 때 이 말을 쓴다. 우주의 모든 요소는 그물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매듭에 달린 구슬은 구슬마다 우주 전체를 비추어준단다. 우주 속에 한 구슬이 있고, 한 구슬 속에 우주가 들어 있다. 전체 속에 하나가 있고, 하나 속에 전체가 있다는 연기론(緣起論)이다.
한 사람의 신체를 인드라망으로 보면 세포라는 그물로 얽혀 있고, 세포마다 유전자라는 구슬이 있으며, 이 유전자가 그 사람 전체를 비추어준다는 뜻이다. 우주만물도 마찬가지로 道라는 구슬로 서로 연결되어있다. 이런 우주적 관계의 망은 “너무 넓기 때문에 이르지 않는 곳이 없고, 이르지 않는 곳이 없으니 한없이 미치고, 한없이 미치니 제자리로 되돌아간다<大曰逝, 逝曰遠, 遠曰反>.”라고 했다. 우주의 역동적 순환 질서를 설파하는 말이다. 이러한 장엄한 ‘태일의 섭리’가 自然이다. <중 략>
[덕(德)이란 무엇인가]
노자철학의 핵심은 天과 人사이에 통로를 여는 일이다. 天은 인사(人事)에 귀결되는 것이고, 또한 인사의 근본은 반드시 天으로부터 나오는데, 그 天이 곧 自然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노자의 세계관•사회관과 인생관은 하나의 통일 체제를 이룬다.
“노자철학의 목적은 형이상적 우주론의 건립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질서의 근원인 道로부터 인생의 의미와 생활태도를 찾아 잘 정돈하는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도가의 우주론이란 노자의 인생철학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서복관(徐復觀)의 견해에 대하여, 학자들은 대체로 긍정한다.
人은 만물중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일반 물(物)과는 달리 만물의 영장으로서, 만물의 주인노릇을 하고 있다. 그래서 노자는 人에게 道•天•地와 대등할 정도의 숭고한 지위를 부여한 것이다. 여기에서 노자의 인본주의사상을 찾아볼 수 있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1장)>
道는 만물을 낳기만 하고 임무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항상 德과 상부상조하면서 만물이 성장하고 결실을 맺게 하고 보호해준다. 道는 어떤 의지를 가지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그렇게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만물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自然而然)이다. 이 점이 창조주가 피조물을 초월하여 존재하고 있으면서 생사에 직접관여하고 있다고 보는 기독교사상과 다르다. 여기에서 德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 인덕(人德)이 아니라, 만물지덕(萬物之德)을 가리킨다. <곽기의 책 685~686쪽. 719쪽>
“德이란 오행(仁義禮智聖)의 다섯 가지 품성이 해화(諧和)되어 몸 밖으로 내는 아름다운 화음”이라 했다. 오행 중에서 어느 한 요소만 빠져도 아름다운 화음이 나오지 않는다. 오행의 화음을 옥음(玉音)이라 했다. 옥음이 곧 德이다. 德은 道가 있어야 따라서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오행이 있어야 성립되는 개념인 것이다.
<참조: 제30장 해설. 《대학•초간 오행》 237쪽>
[기기(欹器)]
마음에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곧 만족이다. 그릇에 물을 가득 채우려고 하면 넘쳐버리지만, 조금 아래 선에서 멈추면 넘치지 않는다. 사람의 욕심에는 제한 선이 없다. 남보다 조금 더 가지려고 하고, 조금 더 높게 오르려는 욕심 때문에 삶의 무대가 고해(苦海)가 된다. 그러니 보통사람들은 고해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명성•재물>과 <건강•생명> 중 어느 것이 소중한가라고 질문한다면 어느 누구든지 같은 답을 할 것이다. 그런데 실재로는 명성과 재물을 더 많이 얻으려고 노력한다. 우리 사회는 “군자는 죽은 후에도 명성을 내지 못할까 고민한다(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논어15-20)”고 말한 공자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면서까지 명성을 중요시해왔다. 명성과 재물에 대한 과욕 때문에 건강을 잃고 심지어 생명마저 잃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욕심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이성이 마비되고 자제력을 잃어버린다. 사고를 친 다음에야 후회하지만, 이미 회복불능의 상태가 되고 재앙이 찾아온다.
공자가 노나라 환공의 사당을 방문하였을 때 ‘기기(欹器)’라는 그릇을 보고 사당지기에게 무슨 그릇이냐고 묻자, 사당지기는 “환공이 자리 오른편에 두던 유좌기(宥坐器)”라고 대답한다. 공자가 “이 그릇은 비어 있으면 기울고, 알맞게 차면 바르게 놓이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虛則欹, 中則正, 滿則覆>”고 들었다면서 제자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그릇에 담아 실험해보니 실제로 그와 같았다. *《순자(荀子)》<유좌(宥坐)편>
고대 중국에서 왕이 앉는 자리의 오른쪽에 놓고 보면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알맞게’ 처신하도록 스스로 경계하는 데 사용한 그릇이다. 이를 ‘계영배(戒盈杯)’라고도 한다. 공자도 이를 항상 곁에 두고 마음을 추스르며 과욕을 경계했다고 한다.
[성인(聖人)]
강과 바다가 수많은 계곡물의 왕이 되는 까닭은 자신을 낮은 곳에 위치하면서, 색깔이나 성분이 혼탁하든 특정한 곳에서 흘러왔든 차별 없이 모든 물을 포용하여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강물은 먼저 가려고 앞을 다투지도 않고 밤낮으로 더불어 흘러간다. 어느 강물이든 흘러가는 방향은 바다일 뿐이다. 바다는 수많은 갈등이 녹아들어 팽팽하게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배타적이거나 개별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는 곳, 그래서 자유가 넘쳐나는 공동체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강물의 치열함도 사실은 강물의 본성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땅으로 인하여 그렇게 달려왔을 뿐입니다. 강물의 본성은 오히려 보다 낮은 곳을 지향하는 겸손과 평화인지도 모릅니다.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비로소 그 본성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물이며 가장 평화로운 물이기 때문입니다.(…)평화는 평등과 조화이며 갇혀 있는 우리의 이성과 역량을 해방하여 겨레의 자존(自尊) 을 지키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함으로써 자기(自己)의 이유(理由)로 걸어갈 수 있게 하는 자유(自由) 그 자체입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156쪽>
성인은 가장 낮은 곳으로 향하는 강을 닮고, 가장 낮은 곳에서 모두를 포용하는 바다를 닮았다. 서로 다른 중생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포용하여 하나의 화음을 내게 하고[화이부동(和而不同)], 또 타자를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움직인다. 천지와 소통하면서 만물의 화육(化育)에 참여하고, 민중을 교화하여 善의 경지에 오래 머무르게 한다. 역사상 여러 성인이 나타나 인간사회를 좀 더 밝은 세상으로 이끌어왔다. <중 략>
성인은 지위가 비록 민중의 앞에 있고[在民前] 또 민중의 위에 있지만[在民上], 언제나 겸손하고[以身後之] 말씨도 공손하다[以言下之]. 성인은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대할 때도 언제나 대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듣고 이해하며 말한다.
[섭생(攝生)]
‘罪’자가 죽간에는 ‘辛(신)’자 위에 ‘自(자)’자가 있는 모양이다. ‘皇(황)’자와 비슷한 모양이라고 하여, 진시황이 ‘罪’자로 바꾸었다고 한다. <罪(죄) ⟶ 咎(구) ⟶ 禍(화)>에 상응되게 <甚欲(심욕) ⟶欲得(욕득) ⟶不知足(부지족)>을 차례로 쓴 것으로 보아, 나에게 닥친 불행의 정도에 따라 심한 것에서부터 가벼운 것의 순으로 쓴 듯하다. 그 정도가 가장 심한 것을 <罪•甚欲>, 중간 정도를 <咎•欲得>, 가장 약한 것을 <禍•不知足>이라 한 것이다. ‘甚欲(심욕)’은 욕심이 아주 심한한 것이고, ‘欲得(욕득)’은 자기의 분수에 넘치는 정도가 약한 욕심이며, ‘不知足(부지족)’은 ‘欲得’보다 낮은 수준의 욕심을 뜻하는 말이다. ‘甚欲’을 ‘淫欲(음욕)’ 또는 ‘貪欲(탐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중략>
불행은 욕심 때문에 생긴다. 욕심이 심하면 심할수록 불행의 정도도 커지기 마련이다. 역으로 욕심을 줄이면 줄일수록 불행의 정도도 작아지고, 매사에 만족함을 알면 마침내 위태로움이 사라지게 된다는 말이다.
사람들은 호랑이 발톱의 무서움을 알면서도, 모든 사물에 들어있는 발톱의 무서움은 잘 모른다. 욕심의 발톱, 물과 불의 발톱, 음식 속에 들어있는 독성의 발톱, 질병의 발톱, 법망의 발톱 등등 수많은 발톱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질 못한다. 발톱에서 멀리 벗어나 ‘무사지(无死地죽음의 자리가 없음)’에서 살아가는 것을 섭생(攝生)이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욕심을 줄이고 무사지로 들어가 섭생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 이 땅에 존재하고 있다는 그 자체의 이유만으로도 불행을 온전하게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영복은 여름철의 감옥이야기를 들려준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 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신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고 자신의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은 그 불행을 매우 절망적인 것으로 만듭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329쪽
왜 초간본인가 ㆍ11
초간 《노자》 ㆍ19
[제1편] 갑조 ㆍ21
제1장 유상혼성(有狀混成) ㆍ22 / 인드라망
제2장 허이불굴(虛而不屈) ㆍ31 / 우주적 호흡
제3장 각복기근(各復其根) ㆍ35 / 노자와 헤라클레이토스
제4장 함덕(含德) ㆍ41 / 덕이란 무엇인가
제5장 지족불욕(知足不辱) ㆍ47 / 기기
제6장 생우무(生于无) ㆍ51 / 본원도와 차생도
제7장 공수신퇴(功遂身退) ㆍ56 / 행로난
제8장 절위기려(絶僞棄慮) ㆍ60 / 전통윤리를 부정하는 백서본과 통행본
제9장 백곡왕(百谷王) ㆍ66 / 성인
제10장 지족지위족(知足之爲足)ㆍ72 / 섭생
제11장 과이불강(果而不强) ㆍ76 / 화이부동
제12장 불욕상영(不欲尙盈) ㆍ79 / 탁류
제13장 신종여시(?終如始) ㆍ83 / 무위
제14장 도항무위야(道恒无爲也) ㆍ89 / 도교의 전래
제15장 유난지(猶難之) ㆍ94 / 노자의 장수 비방
제16장 유무지상생(有无之相生)ㆍ101 / 변증법 사상
제17장 도항무명(道恒无名) ㆍ109 / 소박
제18장 지지불태(知止不殆) ㆍ111 / 일음일양
제19장 천리지행(千里之行) ㆍ115 / 상아 젓가락
제20장 지지자불언(知之者弗言) ㆍ119 / 현동
제21장 이정치방(以正治邦) ㆍ125 / 가정맹우호
[제2편] 을조 ㆍ131
제22장 막약색(莫若嗇) ㆍ132 / 심근고저
제23장 절학무우(絶學无憂) ㆍ137 / 후흑학
제24장 미여악(美與惡) ㆍ142 / 당당한 기품
제25장 애이신위천하(愛以身爲天下) ㆍ145 / 가장 위대한 사랑
제26장 폐기문(閉其門) ㆍ151 / 양봉음위
제27장 대영약충((大盈若?) ㆍ155 / 형용모순
제28장 청정(淸靜) ㆍ159 / 삼매경
제29장 선건자(善建者) ㆍ162 / 수신제가
제30장 도(道)와 덕(德) ㆍ168 / 간축객서
[제3편] 병조ㆍ177
제31장 안유인의(安有仁義) ㆍ178 / 최하급 정치
제32장 집대상(執大象) ㆍ184 / 충성
제33장 병자(兵者) ㆍ187 / 전쟁과 평화
제34장 위지자(爲之者) ㆍ191 / X-mas
[제4편] 태일생수조 ㆍ197
제35장 태일생수(太一生水) ㆍ198 / 우주 생성
제36장 천도귀약(天道貴弱) ㆍ209 / 이유극강
[부록Ⅰ]
1. 초간본과 주요판본들 ㆍ219
2. 《사기》<노자열전>분석 ㆍ230
3. 춘추말 열국도와 역사연대표 ㆍ241
4. 《초간본》 원문 ㆍ244
5. 《한비자》<해로> 해설 ㆍ259
6. 주돈이의 《태극도설》 ㆍ275
[부록Ⅱ]
노자문답 ㆍ283
에필로그 ㆍ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