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카우츠키(Karl Kautsky, 1854~1938)
1854년 10월 6일 프라하에서 출생했다. 1874년 입학한 빈대학에서 다윈에 매료되고 유물론을 섭렵하면서 점차 사회주의로 경도되었고 그 결과 1875년 사민당에 입당했다. 1881년 회흐베르크(Karl Höchberg)의 주선으로 런던에 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만났고 이를 통해 평생 “교화될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83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대중에게 전파할 목적으로 동료들과 힘을 합쳐 ≪노이에 차이트(Neue Zeit)≫를 창간했고 이후 35년간 이 잡지의 편집장을 맡아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잡지의 편집부는 런던으로 자리를 옮겼고 카우츠키는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실질적인 대부였던 엥겔스에게 개인교습을 받다시피 하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는 엥겔스의 신임을 얻어 그가 특별히 넘겨준 마르크스의 유고를 정리해 마르크스의 ≪자본≫ 제4권으로 일컬어지는 ≪잉여가치론≫을 처음으로 편집해 출판하기도 했다.
1896년 베른슈타인이 ≪노이에 차이트≫에 기고한 글 때문에 수정주의 논쟁이 발발하자 그는 마르크스주의를 지켜 내기 위한 이론가로서 역할을 다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내의 의견 분열이 분당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에서 그는 당을 떠나게 되었고 1917년 결국 ≪노이에 차이트≫의 편집장직을 사임했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마지막 소임을 수행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에 들떠 있던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예외적인 입장을 견지한 그는 점차 고립되었고 결국 당을 떠나 빈으로 이주해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저작의 집필에만 몰두했다. 나치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피해 1938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다음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서울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19세기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서유럽 경제사상사, 경제학에서 확률적 방법론의 발달, 사회보험 등에 관심을 가졌다. 이후 LG환경연구원 등에서 환경 분야 정책 연구를 했으며, 폐기물과 자원 순환 정책 연구, 그리고 순환형 경제, 사회로의 전환에 관한 연구를 위해 순환경제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해 오고 있으며, 사회자본연구원 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순환경제의 미시경제적 조건으로서의 기업과 노동 형태, 지역 단위의 물질 순환적 경제 모델, 이를 위한 사회적 제도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를 통해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경제적 조건과 평화적 통일의 경제 모델을 찾아내기를 희망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내가 믿는 세상≫(에른스트 슈마허, 문예출판사, 2003), ≪그리스도교의 기원≫(카를 카우츠키, 동연, 2011), ≪일본의 순환형사회 만들기 무엇이 잘못되었는가≫(구마모토 가즈키, 순환경제연구소, 2012), ≪농촌 문제≫(카를 카우츠키, 지식을만드는지식, 2015) 등이 있으며, ≪순환경제학 첫걸음≫(사회자본연구원, 2015)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