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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의 꽃 : 호세 리살 시집

호세 리살 저 | 김달진 역 | 동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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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058792 / 240쪽 135 x 1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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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소설가이면서 조각가, 의사, 시인인 필리핀의 건국 영웅 호세 리살(1861~1896)의 시집이다. 편역자는 주제별 또는 시기별로 호세 리살의 작품을 7부로 나누어 총 29편의 시를 유려한 한국어 번역하여 소개하고 있다.
수록 시편 중 ‘나의 뮤즈에게’와 ‘꽃 중의 꽃’, ‘종교와 교육의 친밀한 동맹’ 그리고 “에스파냐 속의 필리핀” 편에 소개된 ‘콜럼버스와 후안 2세’와 ‘그라나다 정복’ 등 제3부 수록 전편이 이번에 처음으로 한국어로 번역, 소개되는 작품이다.
시인 호세 리살이 왜 시를 점차 포기하고 소설을 쓰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편역자는 리살이 스페인 식민통치자들에 의해 후에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한 소설 『나를 만지지 마라』와 『훼방꾼』 중의 일부 내용을 운문 형식으로 번역, 소개하고 있다(5부 “날개를 접은 시인”에 수록된 ‘엘리아 이야기’와 ‘카베스 탈레스 이야기’).
부록에는 주요 작품에 대한 해설과 호세 리살의 삶과 예술을 요약, 소개한 글이 실렸다. 머리말과 권말 부록 ‘식민지 시대를 산 필리핀과 조선의 시인들’을 통해 백석 연구자인 역자가 필리핀을 총 네 차례 여행한 후 어떻게 이 시집을 발간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은 한국 독자에게 적지 않은 재미와 기대를 안겨줄 것이다.

저자 소개

Jose Rizal, 1861.06.19~1896.12.30
소설가, 시인, 저널리스트, 안과의사, 필리핀의 민족주의 혁명가. 1861년 6월 19일에 필리핀 라구나Laguna 주 칼람바Calamba의 부유한 집안에서 2남9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리살은 두 살 때에 알파벳을 배우고 다섯 살에는 이미 읽고 쓸 수 있을 정도로 총명했다. 일찌감치 형 파시아노Paciano와 함께 권력에 저항하고 자유와 인권을 중시하는 정치사상에 눈을 떴다. 그는 스페인어를 비롯해 여러 외국어에 능통했고, 시작詩作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내면서 후에 저항과 독립의 대명사가 될 리살이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다.
리살은 수도로 옮겨 학업을 이어나가 예수회 신부들이 세운 아테네오대학Ateneo Municipal de Manila을 다니는 한편 산토토마스대학교University of Santo Tomas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눈이 멀자 바로 안과학ophthalmology으로 전공을 바꿨다. 스물한 살이 되던 1882년엔 부모 몰래 스페인으로 건너가 마드리드국립대학교Universidad Central de Madrid에서 공부하여 의학 학위를 취득한다. 이때부터 그는 스페인 신부와 지배자 들이 필리핀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고 있다 는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이 소설은 곧 스페인 식민지배 체제의 비판 여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후 파리와 하이델베르크에서 의학 공부를 이어나갔으며, 유명한 병리학자 루돌프 비르초프Rudolf Virchow의 지원으로 베를린 인류학 협회의 회원이 되었다. 1887년 4월에는 협회에서 타갈로그어 구조와 철자법에 관한 연설을 한다. 다양한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던 그는 독일어와 의학뿐만 아니라 과학, 미술, 조각, 시, 소설, 연극, 인류학, 역사학, 경제학 등의 분야에서도 뚜렷한 성과를 내었다. 이 시기에 그는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을 완성하였다. 스페인 당국은 몹시 분노해서 이 소설을 금서로 지정했다. 그는 필리핀의 동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1887년 8월 5일에 필리핀으로 돌아온다. 당시 필리핀은 스페인 신부들이 소작농을 착취하고 내쫓음으로써 재산을 축적하고 있었고, 리살은 농부들과 함께 이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하게 된다.
한편 리살은 이 소설에서 마리아 클라라의 모델이 된 인물로 알려진 레오노어 리베라Leonor Rivera와 결혼하려 한다. 그러나 이미 반체제 인사로 낙인찍혀 있던 그는 아버지와 주변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한다. 서른 셋이 되던 1895년 2월에 리살은 홍콩 출신의 아일랜드 여성 조세핀 브라킨Josephine Bracken을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을 약속한다. 그러나 담당 신부는 그의 문학적 명성과 정치적 입장 때문에 세부Cebu 주교의 허락을 받을 것을 요구했다. 가톨릭 교회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어머니의 권유로 성사가 아닌 세속혼civil marriage을 감행하여 결혼에 성공한다.
1892년에 그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회 개혁을 이루려는 온건 시민운동 라리가필리피나La Liga Filipina를 조직했지만 곧 해산당하고 스페인 당국으로부터 국가의 적으로 지목된다. 같은 해 7월, 그는 폭동에 연루되어 필리핀 남단의 민다나오 섬 잠보앙가Zamboanga주 다피탄Dapitan으로 추방된다. 그곳에서 그는 학교와 병원, 급수 시스템을 갖추고 학생들을 가르치며 농업에 종사했다. 4년에 이르는 추방기간 동안 예수회 신부들의 구명 운동과 유럽 각지에서 동료 학자들이 보낸 지지 편지가 끊이질 않았으며, 혁명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폭발하기 직전까지 혁명의 배후자로 여겨졌다. 그는 봉기에 반대했지만, 비밀 혁명그룹인 카띠푸난Katipunan은 그를 명예 대통령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전쟁, 통합, 자유와 동일시했다. 실상 그는 혁명보다는 인내와 희생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 했으며, 평화적인 방법이야말로 필리핀 민중을 더 큰 고통에서 구해내는 것이라 믿었다.
카띠푸난의 주도 하에 일어난 혁명이 전국을 휩쓸며 들끓은 1896년에 리살은 황열병 의료 자원봉사를 하기 위하여 쿠바로 향하던 중 경유지였던 바르셀로나에서 카띠푸난과의 연계 혐의로 체포되어 곧바로 마닐라로 압송된다. 마닐라의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감옥에 갇힌 그는 교육과 민족 정체성의 확립만이 자유의 전제조건임을 확신하는 선언문을 작성했다. 그는 반란, 선동, 음모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고 1896년 12월 30일에 처형되었다. 그는 마닐라의 파코Paco 묘원에 아무런 표식 없이 비밀리에 매장되었지만, 새로 생긴 무덤들을 살핀 그의 누이 나르시사Narcisa의 노력으로 간신히 찾아내었다.
리살은 오로지 그의 문학 작품으로 인해 사형을 당하고 스페인 지배를 도덕적으로 붕괴시킨 첫 필리핀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가 처형된 12월 30일은 “리살의 날”로 지정된 한편, 그가 처형당한 마닐라의 로하스 거리에는 리살 공원을, 수감되었던 산티아고 요새 근처에는 리살 기념관을 세워 스페인 압제로 희생된 사람들과 그의 평화주의적 혁명 정신을 기리고 있다. 그는 필리핀의 국가 정체성 확립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뿐만 아니라, 간디, 타고르, 손문 등과 더불어 아시아 전역에 평화주의적 혁명 정신을 널리 퍼뜨린 위대한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그는 이 소설과 후편인 『폭로자El Filibusterismo』를 비롯하여 수많은 소설, 에세이, 시, 희곡, 미술 작품을 남겼으며, 그의 생애와 작품은 끊임없이 영화와 소설 등을 통해 재생되고 있다.

역자 소개

(金達鎭, 1907~1989)
월하(月下) 김달진은 무위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국 시의 정신주의적 세계를 확고히 한 시인이다. 1929년 ≪문예공론(文藝公論)≫ 7월호에 양주동의 추천으로 <잡영수곡(雜詠數曲)>이 실리면서 문단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 뒤로 줄곧 사상과 관념과는 거리가 먼 시를 썼다. 민족의 현실 앞에 절망하다가 우연히 찢어진 벽지 사이의 초벌 신문지에서 ‘불(佛)’ 자를 발견하고 입산을 결심, 1934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에서 김운악(金雲岳) 스님을 은사로 승려가 되었다. 그러나 그해 <유점사 찾는 길에>를 ≪동아일보≫에 발표하고, 1935년 시 전문지 ≪시원(詩苑)≫ 동인으로 참가했으며, 같은 해 <나의 뜰> 외 여러 작품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는 등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1935년 백용성(白龍城) 스님을 모시고 함양 백운산 화과원(華果院)에서 수도생활을 했으며, 이듬해 1936년에는 유점사 공비생(公費生)으로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해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등과 함께 ≪시인부락(詩人部落)≫ 동인으로 참가해 11월 창간호에 <황혼>을 발표하고, 1938년에는 <샘물>을 ≪동아일보≫에 발표하는 등 작품 활동을 이어 갔다. 1940년 9월에는 관념이나 이념을 내세우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서정의 세계를 담은 첫 시집 ≪청시(靑柿)≫를 청색지사에서 발간했다. 1945년 해방을 맞은 그는 이광수의 권유로 잠시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했다. 1954년에는 해군사관학교에 출강하면서 ≪손오병서(孫吳兵書)≫를 출간했고, 이때부터 30여 년간 고전과 불경 번역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다 1989년 6월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같은 해 ≪한국한시≫ 1∼3권과 ≪한산시≫가 나란히 출간되었으며, 1990년부터 인간이 구현해야 할 정신주의 영역을 일관되게 추구했던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김달진문학상’이 제정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목차

머리말 4

제1부 : 꽃의 노래
꽃 중의 꽃 14
하이델베르크의 꽃들에게 16
사람들은 내게 시를 청하지만 21

제2부 : 어린 시절의 꿈과 행복
나의 첫 영감 28
고향을 추억하며 31
종교와 교육의 친밀한 동맹 35
축사 39
파블로 라몬 학장 생신에 부쳐 41

제3부 : 에스파냐 속의 필리핀 ― 정복과 지배, 저항의 역사
출항 ― 페르디난드 마젤란 선단 찬가 46
그리고 그는 서반아인이었네 ― 최초로 세계 일주를 한 엘카노 49
콜럼버스의 영웅 기질 53
콜럼버스와 후안 2세 58
커다란 불행 속에 크나큰 위안 61
압드엘아지스와 마호메트 73
유수(幽囚)와 승리 ― 루세나 전투와 보압딜의 투옥 82
그라나다 승리 87

제4부 : 폭풍 전야
필리핀의 젊은이들에게 102
노동의 찬가 106
쿤디만 ― 필리핀 세레나데 110

제 5 부 : 날개를 접은 시인 ― 소설가 호세 리살
엘리아 이야기 113
카베상 탈레스 이야기 135

제 6 부 : 유배지에서
나그네의 노래 148
탈리사이 찬가 151
나의 외진 시골집 156

제 7 부 : 비애(悲愛)
안녕, 레오노르 172
조세피나에게 173
마리아 클라라의 노래 174
C에게 176
나의 뮤즈에게 179

호세 리살 시 주해 187
호세 리살의 삶과 예술 202
작품 해설 : 식민지 시대를 산 필리핀과 조선의 시인들 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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