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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97779949 / 3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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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가장 완전한, 아마도 유일한 20세기 철학자 푸코를 읽는 실험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 기풍은 시간과 문화의 차이에도 서로 만난다. 기존의 규율 사회적인 질서와 상징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소요하며 노니는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2300년과 동서양이라는 차이에도 있음에도, 두 철학자의 만남을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푸코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인문학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인기 있는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특유의 광기와 독설로 지성을 자극하고 문명의 작위성을 비판한다. 문제는 지성을 비웃는 광기의 언... 가장 완전한, 아마도 유일한 20세기 철학자 푸코를 읽는 실험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 기풍은 시간과 문화의 차이에도 서로 만난다. 기존의 규율 사회적인 질서와 상징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소요하며 노니는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2300년과 동서양이라는 차이에도 있음에도, 두 철학자의 만남을 기획하면서 시작되었다. 푸코의 철학과 장자의 철학은 인문학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인기 있는 철학자들이다. 그들은 특유의 광기와 독설로 지성을 자극하고 문명의 작위성을 비판한다. 문제는 지성을 비웃는 광기의 언어가 더 정교하고 복잡하다는 것이다. 특히 푸코의 언어는 더더욱 난해하다. 19세기부터 축적된 서양철학의 방법론적인 논의를 토대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식과 도덕을 비판하는 미친 장자의 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장자의 언어는 우리의 전통에 속한지라 서구적 전통에서 성장한 푸코의 언어보다는 우리에게 더 쉽게 다가온다. 장자를 통해 푸코를 읽는다면 푸코의 현란한 20세기의 서구 언어를 받아들이기가 더 쉽지 않을까? 김성우 교수(올인고전학당 연구소장, e시대와철학 편집위원장)가 주목하는 두 철학자의 공통점은 먼저 그들이 삶의 실험철학자였다는 점, 당대의 다양한 학풍을 경험했다는 점, 주체와 구조의 논의를 넘어섰다는 점, 그리고 철학적 에토스(기풍, 스타일)이다. 김성우 교수는 먼저 삶의 실험철학자로서 푸코와 장자의 면모를 그려 낸다. 푸코는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고 선언했다. 삶의 실험철학자인 그는 자신의 신분 확인을 거부한다. 굳어진 정체성이란 사회가 자신에게 강요하는 일종의 굴레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사회를 노자는 명名, 즉 이름의 세계라고 부른다. 여기서 이름이란 사회 질서를 상징한다. 이런 이유로 노자와 장자는 무명無名, 즉 이름 없음을 추구한다. 하지만 푸코의 언어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방법론적 논쟁을 거친 산물이기에 상당히 세련되고 난해하다. 악명 높은 헤겔과 마르크스의 글에 못지않다. 그래서 전문적인 철학자들도 읽기 버거울 때가 많다. 또, 푸코는 마르크스주의, 니체주의, 정신분석학,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 프랑크푸르트학파, 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탈현대주의) 등 현대의 다양한 철학적 운동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상을 펼쳤다. 그런데 장자의 언어도 혜시로 대표되는 명가名家의 고도로 논리적인 분석과 논쟁을 거쳤기에 말 그대로 현학적이라고 할 만큼 어렵다. 장자도 마찬가지로 당대의 모든 사상과 학파에 정통했다. 다행히도 장자와 푸코는 동일한 철학적 기풍, 즉 에토스를 지니고 있다. 기풍이란 니체가 말한 일종의 스타일과 동의어이다. 각각의 철학자는 나름의 스타일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인 기풍은 동일하게도 극단적인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고정된 정체성을 거부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신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둘 다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의 철학자인 것이다. 푸코는 얼마나 매력적인가? 그리고 장자 철학과 함께 읽으면 얼마나 흥미로울 것인가? 1990년대 초반에 동유럽 사회주의 정권이 붕괴되었고, 이후에 마르크스와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회의가 일면서 많은 이들이 포스트모던 철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중에 대표적인 철학자가 미셸 푸코였는데, 푸코는 기존에 철학이 가졌던 중심 주제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 독특하다. 대신에 예전에는 전혀 다뤄본 적이 없었던 광기, 범죄, 성욕 등에 관해 썼다. 이 점 때문에 노동 해방과 민족 해방이라는 거대 서사가 효력을 상실한 시대에 푸코의 철학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그런데 장자의 눈으로 푸코를 읽으려면 먼저 장자 자체를 이해해야 한다. 장자가 자기 자신을 묘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사상은 크게 세 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 장자의 지혜는 소극적인 은둔의 철학이나 비겁한 도피주의가 아니라, 도리어 세속의 프레임을 깨뜨리는 적극적인 현실 비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푸코도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참여(앙가주망)의 철학자인 사르트르를 이어받은 실천적 지식인이다. 둘째로 장자는 “마음과 생명을 상하게 하지 않는 책”을 지었다. 푸코도 마찬가지로 규율 사회에서 버림받고 억압받는 광인, 범죄자들을 다루었다. 셋째로 장자는 시작도 끝도 없는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삶의 무게와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 무위자연의 도道와 함께 소요하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배타적인 협소한 구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푸코도 마찬가지로 한계 체험을 통해 나눔의 이분법적 논리와 배제의 지배 권력의 메커니즘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이를 극복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장자의 말처럼 유명有名의 세계는 억압적인 배제와 착취적인 구분으로 지배하고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노예적인 삶을 주조한다. 이는 도의 무명無名의 세계와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규율 사회적인 질서와 상징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소요하며 노니는 경지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 기풍은 시간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날 수 있다. 비교철학인가? 계보학적 접근인가? 김성우 교수는 이 책에서, 푸코의 역사비판적 존재론이나 장자의 양생술이라는 처세 철학이 실존의 미학으로 연결된다고 보며, 니체의 자기 수양으로서의 실험 정신과 연결 짓는다. 단순히 푸코와 장자를 비교하려는 ‘비교철학’은 2300년의 시간과 동서양의 사상/문화적 차이를 감안하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 교수는 푸코를 정점으로 그 이전 철학자 특히 니체 철학부터 계보학적으로 접근해 간다. 이 점에서 중요한 것은 푸코가 가진 지식의 고고학과 계보학이란 주제이며, 장자가 제물론에서 취했던 방식이다. 푸코가 던진 ‘실존의 미학’으로서의 주체의 변형이라는 주제는 니체의 자기 수양으로서의 실험 정신과 장자의 양생술과 동일한 철학적인 기풍을 지니고 있다. 즉, 김 교수는 니체를 매개로 해서 장자의 양생술과 푸코의 자기 테크놀로지를 연결해서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니체가 제시한 관점의 전환과 가치의 전도, 이로부터 생겨난 운명애와 위대한 건강은 주체의 변형으로서의 위대한 스타일로 구현된다. 이는 장자의 안명安命 및 진인眞人이 되기 위한 양생술과 동일한 스타일을 보여 주기도 한다. 또한 푸코는 니체를 이어받아 자기 수양인 실존 미학으로서의 자기 테크놀로지를 주창한다. 이렇게 니체를 통해 푸코와 장자는 연결된다. 다시 말해서 니체, 장자, 푸코는 동일한 철학적인 기풍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2장에서 김성우 교수는, 계몽주의의 과학 맹신주의에 대한 비판을 수행한다. 대체로 푸코 사상을 구조주의로 대표되는 인식론이나 과학사의 관점에서 읽는 것이 통상적인 해석이다. 구조주의는 객관적 과학성의 외관을 띠기 때문에 현대 학자들의 열광을 불러일으켰다. 구조주의에 대한 열광은 과학주의에 대한 맹신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은 진리로 가는 유일한 길로 간주된다. 비非과학이라는 딱지는 적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무기가 된다. 그러나 구조는 과학적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역사를 무시하기에 특정 프레임에 갇힌 감옥의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구조주의는 ‘언어의 감옥’(프레드릭 제임슨)인 것이다. 장자의 표현을 빌리면 ‘우물 안 개구리’이다. 다시 말하면 과학주의란 일종의 언어의 감옥이라는 갇힌 ‘우물 안 개구리’ 신세라는 말이다. 실제로, 칸트가 의미하는 인식 대상은 인식의 한계 안에 들어오는 과학성의 대상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푸코가 탐구한 대상은 광기, 질병,
장자의 양생 철학에 따르면 인간이 진정한 자신이 되려면 자아라는 실체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자아를 버리는 투쟁에 편안해야 한다. 장자가 언급한 ‘내가 자아를 잊는다[吾喪我]’와, ‘앉아 잊는 경지[坐忘]’ 등이 이런 정신을 대표한다. 그는 이러한 말들로 자아에 집착하는 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다. 자아에 집착하는 자는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고 슬퍼할 것이다.
그러나 장자의 양생은 곧 “때를 편안하게 여기며 천리에 순응하는[安時而處順]” 태도이다.
이는 곧 슬픔과 기쁨 등의 감정으로부터 ‘거리 두기의 파토스’(니체)이다.
이러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하늘을 저버린 죄[遁天之刑]”에서 벗어나고, “천제天帝의 저울로부터 해방[懸解]”된다. 한마디로 장자가 취한 양생의 도는 ‘안명安命’, 즉 ‘운명에 대한 사랑amor fati’(니체)인 것이다. 「지락至樂」에는 그가 처의 죽음 앞에서 춤추고 노래한 대목이 나온다. 이는 그의 안명 정신을 잘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푸코가 벌이는, ‘나를 찾기 위해 나를 찢는 투쟁’도 장자의 양생의 도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시대가 더 복잡하고 이에 따라 쓰는 언어가 더 번쇄할 뿐이다.
─본문, 17쪽
장자와 푸코의 철학적인 기풍은 동일하게도 극단적인 실험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들뢰즈식으로 말하면 둘 다 정주민이 아닌 유목민의 철학자이다.
─만남 1, 철학에도 기풍이 있다
장자는 다섯 유형의 선비를 권력과 욕망의 노예로 풍자한다. 장자는 선비와 그들의 지식을 흉기로 규정한다. 마찬가지로 푸코도 권력/지식을 비판한다.
─만남 2, 과학과 지식은 구원이 아니다
“철학의 과제는 우리 세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다. 한마디로, 푸코의 비판은 현대의 우리 자신에 대한 분석이자 해체이다.
─만남 3, 제물론, 어떤 비판인가?
푸코의 비판은 그 목적 지향에 있어서는 계보학적이며 그 방법에 있어서는 고고학적이다.
─만남 4, 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푸코는 니체를 이어받아 자기 수양인 실존미학으로서의 자기 테크놀로지를 주창한다. 이렇게 니체를 통해 푸코와 장자는 연결된다.
─만남 5, 양생술은 자기 테크놀로지이다
혼자 자유롭다는 것은 아직 모든 사람이 자유롭지 않기 때문에 진정한 자유가 아니다. 장자도 이 점을 지적한다. 진정한 자유인은 세속과 더불어 살며 자유로운 자이다.
─만남 6, 진리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이소노미아의 소요유로
들어가며 미친 세상을 비웃는 미친 철학자
1장철학에도 기풍이 있다
생각한다는 것은 실험이다
당대의 다양한 학풍을 접하다
주체와 구조를 넘어서
철학적 기풍이란?
2장과학과 지식은 구원이 아니다
과학을 닮으려는 철학의 이론적인 빈곤
과학의 감옥과 마음 비우기
지식이라는 흉기를 버려라
구조주의도 아니고 프로이트주의도 아니고 마르크스주의도 아닌
푸코는 하이데거적인 니체, 즉 해체 존재론자이다
역사 비판 존재론과 참다운 인간
온전한 인간, 신나는 인간, 성스러운 인간
다섯 종류의 선비에 대한 비판
3장제물론, 어떤 비판인가?
철학을 역사와 정치로부터 떼어낼 수 없다
진리의 분석론에서 실천적 비판으로
칸트의 계몽 텍스트에 관한 푸코의 분석
계보학으로서의 제물론
4장고고학에서 계보학으로
들어가기 전에
사상 체계들의 역사란 무엇인가?
『임상의학의 탄생』에 나타난 지식의 고고학
담론 분석으로서의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비판적이고 해체적인 고고학
정신의학의 계보학
역사 비판이자 주체화의 존재론인 계보학
5장양생술은 자기 테크놀로지이다
정신의학의 계보학으로부터 윤리적 주체의 계보학을 향해서
니체의 운명애와 수양으로서의 실험
양생이란 장수도 좋아하고 요절도 좋아하는 것이다
동일하게 남아 있도록 요구하지 말라
얼굴을 갖지 않기 위한 글쓰기
자기의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실존 미학을 향하여
6장진리의 정치경제학을 통해 이소노미아의 소요유로
개인주의도 아니고 도피주의도 아니고 낭만주의도 아닌
자치로서의 무치주의와 이소노미아로서의 아나키즘
해방의 댄스 대 자유의 체제
온전한 덕의 시대와 무치주의
국지적이고 특수한 문제를 묻는 행위가 정치의 회피인가?
왜 이데올로기의 정치경제학이 아닌 진리의 정치경제학인가
권력은 왜 미시물리학적 분석을 해야 하는가?
자유는 왜 국가화으로부터의 해방인 동시에 개인화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참고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