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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 광해군일기에서 순종실록까지

시리즈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25]

박시백 외 저 | 휴머니스트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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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0800968 / 496쪽 153 x 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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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1. 장장 17년,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이 나오기까지 ―《조선왕조실록》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다시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2001년 《국역 조선왕조실록》 시디롬을 구입하여 공부에 나선 박시백 화백. 2003년 1권 개국편을 시작으로 10년 만인 2013년 7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 20권)을 완간하여 3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3년 완간과 동시에 박시백 화백에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 인문학 번역가 겸 저술가 남경... 1. 장장 17년,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이 나오기까지 ―《조선왕조실록》이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다시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으로 2001년 《국역 조선왕조실록》 시디롬을 구입하여 공부에 나선 박시백 화백. 2003년 1권 개국편을 시작으로 10년 만인 2013년 7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 20권)을 완간하여 3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2013년 완간과 동시에 박시백 화백에 건국대 사학과 신병주 교수, 인문학 번역가 겸 저술가 남경태 선생, 휴머니스트 출판사 김학원 대표 등이 결합하여, 네 사람이 함께 만 1년 동안 역사 방송 ‘팟캐스트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총 50회(70시간 분량)에 걸쳐 진행, 역사 방송으로는 최초로 10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이 방송을 녹취한 원고 6000매를 3000매로 축약하여 조선왕조 500년사의 핵심을 짚은 것이 바로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다. 왕과 신료의 말을 글로 담은 《조선왕조실록》이 박시백 화백에 의해 글과 그림으로 재탄생했고, 다시 이를 바탕으로 나눈 70시간의 말이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란 글로 이어졌다. 17년, 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의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실록이라는 방대한 역사서로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준 조선의 기록 정신을 오늘에 되살려보고자 한 의도가 있었다. 더불어 하나의 역사에서 다양한 역사로, 주어진 역사에서 생각하는 역사로 나아가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논쟁을 통해 역사를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의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 것이다. 2. 4인4색 역사 수다꾼들과 함께 조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실록 담당 박시백, 역사 소통 담당 신병주, 세계사 담당 남경태, 흐름을 꿰는 진행 김학원, 환상의 조합 한 사람이 쓴 역사책은 일목요연하여 이해하기가 쉽다. 그러나 ‘이건 무슨 뜻이지?’ ‘이 통설은 내 생각과 다른데……’ 하는 부분에 이르러도 꾹 참고 계속 읽어 내려갈 수밖에 없는 것이 아쉬운 점. 그렇다면, 나의 궁금증을 바로바로 해소해주는 역사책은 없을까?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은 내가 그 속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책이다. 나 대신 그들이 질문하고 그들이 답을 해주어 궁금증을 풀어준다. 진행자 김학원 대표가 역사 용어의 뜻을 물으면 신병주 교수가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정리를 해준다. 남경태 선생이 방금 말한 내용이 실록에 정말 나오느냐 하면, ‘실록에 나온다’ 또는 ‘야사에 등장하는 이야기다’라고 정리해준다. 이 인물을, 이 사건을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냐는 질문에 신병주 교수가 연구 동향을 쭉 풀어주면, 때로는 박시백 화백이 ‘실록을 보면 좀 다른 것 같은데요’ 하고 딴지를 걸기도 한다. 그 무렵 다른 나라 상황은 어땠는지 궁금할라치면, 바로 남경태 선생이 끼어들어 부연설명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나는 강연에 참석하여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4인4색 역사 수다꾼들의 술자리에 끼어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렇게 직접 참여하고 능동적으로 읽을 수 있는 역사책이 바로 《역사 토크 조선왕조실록》이다. 3. 하나의 사건, 다양한 해석 ―조선사 핵심 쟁점을 놓치지 않고 전달하다 조선사 500년 핵심적인 사건만 가려 뽑아 전하되, 네 사람의 토크로 각 사건의 핵심 쟁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특히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면서 하나의 사건에 대한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보여주고, 예리한 분석과 뜨거운 토론으로 조선사 명장면을 확인케 한다. - 어쩔 수 없이 일으킨 반란이다?: 실록에 따르면, 1398년 1차 왕자의 난은 정도전 세력이 왕자들을 죽이고 정권을 찬탈하려 했기 때문에 이방원이 이를 막으려고 일으킨 것으로 서술된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시 정도전이 태조 이성계의 허락 없이 왕자들을 죽일 까닭이 없다. 게다가 거사를 앞둔 정도전이 남은의 첩 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이런 의문을 가지고 실록의 행간을 읽어보면 1차 왕자의 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하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1453년 수양대군의 계유정난도 마찬가지다. 안평대군 측의 역모에 반격을 가하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것이 실록의 기록인데, 기존의 해석과 새로운 해석, 그리고 왜 그와 같이 해석의 차이가 생겨났는지 그 이유를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 훈민정음은 누가 만들었나?: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합작품이라는 학계의 통설에 대해 박 화백은 반론을 제기한다. 세종이 언문 28자를 지었다고 발표한 1443년 12월까지 실록에 훈민정음과 관련해 단서가 될 만한 그 어떤 기록도 없으며, 당연히 집현전이 관여했다는 기록도 없다는 것. 그리고 여기에 문종이 세자 시절 훈민정음 창제에 관여했다는 설까지 나오는데 … 그렇다면 훈민정음 창제, 어떻게 보아야 하나? 실록에 기록이 없다니, 그렇다면 혹시 세종이 비밀리에 단독으로 만들고 깜짝 발표를 한 것은 아닐까? - 영조는 왜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였나?: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존의 통설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노론이나 사도세자를 싫어하는 쪽에서 왕과 세자를 이간질했다, 즉 사도세자의 죽음은 당쟁의 산물이라는 설이다. 또 하나는 사도세자가 미쳐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고, 그걸 차마 볼 수 없었던 영조가 죽였다는 설이다. 여기에 대해 박 화백은 제3의 설을 제기한다. 좀 뜬금없지만, 영조의 이례적인 장수가 결정적인 원인이었다는 것. 영조의 장수와 사도세자의 죽음,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 걸까? 기존의 통설과 새로운 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역사 토크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이미 평가가 끝난 인물, 그러나 …… ―700여 명의 인물이 입체적으로 살아나다 네 사람의 토크 속에서 조선사 500년의 주요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오늘의 눈으로 각 인물들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엇갈리는 평가의 인물을 다시 견줘보기도 하고, 애석하게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인물을 되살려내기도 하며, 너무 후한 평가를 받은 인물들을 냉철하게 돌아보기도 한다. - 우리가 알던 그 황희 정승 맞나?: 공평무사, 청렴결백의 화신으로 알려진 청백리이자 19년 동안 영의정의 자리에 있었던(정승 기간을 모두 합치면 24년) 명재상 황희. 그러나 실록은 그의 전혀 다른 면모를 전한다. 개간작업을 추진한 공을 내세워 개간한 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뇌물을 받고 벼슬자리를 주는 것도 모자라, 살인을 저지른 사위를 구하기 위해 동료와 짜고 공문서를 위조하기까지……. 그렇다면 우리는 황희에 대한 기존 평가를 모두 철회해야 할까? - 정조는 개혁군주인가?: 서얼의 차별을 금지한 서얼허통법, 시전 상인의 독점권인 금난전권을 폐지한 신해통공, 공노비 해방 등 숱하게 많은 개혁정책을 추진했고, 더 나아가 실학을 적극적으로 후원했다고 알려진 정조. 그가 개혁군주라는 데에 아무런 이견이 없을 듯 보이지만, 박 화백은 ‘정조\u003d개혁군주’ 도식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위대한 군주로 알려진 정조가 사실은 조선시대의 그저 그런 왕 가운데 한 명이었다는 말인가? - 재위기간은 짧지만 강렬했던 왕들: 재위기간이 짧아 왠지 유약할 것 같고 별로 한 일도 없을 것 같은 왕들이 있다. 하지만 그건 편견이다. 문종은 재위기간이 짧았지만(2년 3개월) 대리청정 기간까지 합하면 10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화포

저자 소개

1960년에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에는 사회과학 고전들을 번역하는 데 주력하다가 1990년대부터는 인문학의 대중화에 관심을 두고 역사와 철학에 관한 책들을 쓰거나 번역했다. 2014년 12월 23일 작고했다. 《개념어 사전》, 《철학,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종횡무진 한국사》, 《종횡무진 서양사》, 《종횡무진 동양사》 등을 저술했으며, 《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빛나는 로마 역사 이야기》, 《고대 세계의 70가지 미스터리》, 《1.5평의 문명사》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국사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였다(석사, 박사).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를 거쳐 2020년 현재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조선시대 역사와 문화를 전공하고 있으며, KBS1 TV에서 ‘역사저널 그날’을, KBS1 라디오에서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을 진행했으며, JTBC 차이나는 클라스 연산군과 광해군, 왕과 아들, 전염병 편에 출연하였다. 문화재재단 이사, 궁능활용심의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KBS 1 라디오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에는 국가공무원 인재개발원 최고 베스트 강사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조선과 만나는 법》《키워드 한국사》《왕과 아들》《조선평전》 《남명학파와 화담학파 연구》《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하룻밤에 읽는 조선사》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조선왕실 기록문화의 꽃, 의궤》《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공저)》《모반의 역사(공저)》《제왕의 리더십(공저)》《조선 최고의 명저들》《조선 중·후기 지성사 연구》《규장각에서 찾은 조선의 명품들》《이지함 평전》《왕실 도서관 규장각에서 조선의 보물찾기》《고전 소설 속 역사여행》《조선을 움직인 사건들》등이 있다. 역사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으며 선조들의 투철한 기록정신과 품격 있는 정치와 문화 활동을 연구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1964년 제주생
1984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입학
1996년 한겨레 신문사 입사
1996-1997년 한겨레 신문에 만평 <한겨레 그림판> 연재 
1997-2001년 한겨레 신문에 <박시백의 그림세상> 연재, <출판 저널>, <우리 교육>, <민족 21>, <함께 걸음> 등 다수의 매체에 만평 및 이야기 만화 연재
2003년 대한민국 만화대상 우수상 수상
201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전20권)》완간
2013년 《부천만화대상 수상》


고려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면서 총학생회 신문에 그린 만평이 첫 만화 작품이었다. 이후 독학으로 만화를 공부하다 1996년 한겨레신문에 만평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 뒤 5년 간 한겨레신문에 따뜻함과 촌철살인이 공존하는 만평으로 인기를 끌다가 2001년 신문사를 그만둔 후 집에 틀어박혀 하루 12시간씩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하며 습작을 그리고 찢는 일을 반복하였다. 2003년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첫 권이 출간되는 기쁨을 맛보았으며 2010년 11월, 작품을 시작한지 10년 만에 16권 정조 편을 출간하였다. 2012년에 20권으로 완간하였다.

현재 (주)휴머니스트 출판그룹의 대표이사·발행인이며,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 이사,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인권'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1962년생으로 제주가 고향이며, 1981년 서강대 국문학과에 입학,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으로 세 차례 투옥과 출소를 거듭했다. 월간 '길을 찾는 사람들' 기자, 전국노동단체연합 기관지 편집장으로 활동한 후 1992년 인문사회과학출판사인 새길에 입사하며 출판계에 입문했다. 새길의 편집주간으로 ‘비판총서’와 ‘지혜가 드는 창’ 시리즈를 통해 [철학과 굴뚝 청소부], [상식 밖의 세계사], [미학 오디세이] 등 100여 종의 인문교양서를 선보였다. 이후 도서출판 푸른숲에 편집주간으로 입사, 6년 동안 시, 소설, 비소설, 인문교양서 분야에서 200여 종을 펴냈다. 1997년 푸른숲의 자회사인 푸른역사의 설립에 참여, 편집주간과 대표를 겸임하며 20여 종의 역사교양서를 발간했다. 
2001년 5월 ‘새로운 시대의 편집자와 출판사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8년 동안의 편집주간 생활을 마감하고 휴머니스트를 창업했다. 전문 편집장의 육성에 초점을 두어 인문, 역사, 청소년, 어린이, 교양만화 등 5개 출판 부문에서 책임편집자 제도를 도입, 첫 책 [서양과 동양이 127일간 e-mail을 주고받다]를 시작으로 [대담], [동의보감], [미학 오디세이] 완간,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행복한 한국사 초등학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등 300여 종의 교양서를 발간했다. 
그는 출판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1996년에 한겨레신문 부설 문화센터의 출판기획 과정의 강사, 1998년 한국출판인회의 부설 서울출판학교의 편집장 과정 책임교수를 맡아 10여 년 동안 출판기획에 대해 강의했다. 2007년 7월, ‘디지털 시대의 출판의 역할’이라는 문제의식을 안고 미국 컬럼비아 대학의 방문학자로 출국, 2년 동안 동아시아연구소 초청연구원으로 활동하면서 ‘동아시아, 미국, 유럽의 출판 환경과 시스템의 비교’와 ‘디지털 시대의 출판’을 주제로 공부했다. 2009년 8월 귀국, 다시 책의 현장에 복귀하여 출판사 창립의 1차 목표인 분야, 부문, 세대에 기초한 교양서 1,000종의 발간과 100여 명의 전문 편집인 육성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목차

Talk 11 광해군일기 ― 경험의 함정에 빠진 군주
분조 활동으로 민심을 달래다 | 세자를 질투한 왕 | 유성룡의 자기변명 | 대동법 실시와 탕평 인사―주목할 만한 집권 초기 |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문묘 종사 | 왕실의 권위와 성리학적 질서를 다시 세우다 | 존재 자체만으로도 부담스러웠던 형, 임해군 | 봉산옥사: ‘광해군식 옥사’의 시작 | ‘폐모살제’―반정의 씨앗을 심다 | 허균의 석연치 않은 죽음 | “오직 패하지 않을 방도를 강구하라” | 음양술에 빠져 무리하게 토목공사를 진행하다 | 인조반정―광해군과 소성대비의 인생 역전 | 피해의식을 버리고 개혁으로 나아갔다면 ……
Talk 12 인조실록 ― 명분에 사로잡혀 병란을 부르다
인조반정의 주역들: ‘잡군자’ 이귀, 화합형 관료 김류 | 이괄의 ‘난’인가, 이괄의 ‘변’인가 | 굴러가는 힘이 부족했던 반란 | 정묘호란: 후금의 후방 다지기 | 조선은 정묘호란 이후 어느 나라 연호를 썼나? | 유일한 대안은 남한산성, 그러나 결국 …… | 시대착오적인 친명배금의 대가 | ‘환향녀’를 저버린 조선 사대부들 | 김상헌과 최명길, 누가 옳았나? | 비운의 장수 임경업, 인생 역전 정명수 | 비극의 씨앗이 된 심양 생활 | 소현세자의 죽음, 독살인가? | 잔혹한 인조―며느리와 손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다 | 인조와 소현세자: 선조·광해군 세트의 확대증보판
Talk 13 효종·현종실록 ― 군약신강의 나라
사대부들이 예학에 집착한 까닭 | 두 번 쿠데타의 주역이 될 뻔한 김자점 | 효종의 정통성 콤플렉스 | 무인적 기질이 강한 실용주의자 | 네덜란드 상인들은 조선의 존재를 몰랐을까? | 대동법, 그들은 왜 반대했나? | 효종과 송시열의 미스터리한 독대 | 효종이 꺼내 든 회심의 카드, 북벌 | 여론조사로 대동법 실시의 근거를 마련하다 | 1년복이냐 3년복이냐―기해년의 예송논쟁 |현종의 이미지와 실체 | 송시열과 그의 적들 | 군약신강의 나라 | 이번에는 ‘9개월복이냐 1년복이냐’로―갑인년의 예송논쟁 | 밖으로는 굴욕, 안으로는 기근 | 정통성 문제로 에너지를 소모한 25년
Talk 14 숙종실록 ― 공작정치, 궁중 암투, 그리고 환국
강력한 소년 군주 | 사관조차 쩔쩔매게 한 왕의 비답 | 북벌의 숨은 주창자, 윤휴 | 당파에 치우치지 않은 허적과 공작정치의 달인 김석주의 연대 | 숙종식 환국정치의 서막―경신환국 |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화하다 | 사극의 단골 주인공 장 희빈의 부상 | 기사환국: 그녀를 위한 기획 | 송시열의 시대가 막을 내리다 | 갑술환국: 군강신약의 나라로 | 장 희빈과 인현왕후의 최후 | 대리청정의 그물에 걸린 세자 | 조선 사회에 다양한 변화를 가져온 숙종시대 46년 | 민간 외교사상 유례없는 쾌거―안용복의 울릉도 지키기 | 군강신약은 이루었으나
Talk 15 경종·영조실록 ― 탕평의 깃발 아래
소론 임금, 노론 정권 | 경종의 ‘숙종식’ 환국 | 벼랑 끝에 몰린 세제―목호룡 고변사건 | 거대한 그늘을 남긴 경종 집권 4년 | 노론 임금, 소론 정권 | 영조의 탕평책에 숨겨진 의미 | 탕평의 효과, 하나: 소론이 소론의 난을 평정하다 | 탕평의 효과, 둘: 소론의 양보를 얻어내다 | 탕평의 효과, 셋: 영조가 역모의 혐의를 벗다 | 껍데기만 남은 탕평 | 탕평정치에서 척신정치로 | 성실한 유학 군주의 긴 치세 | 최연소 원자, 최연소 세자 | 선위파동―세자 길들이기 | 노론이 왕과 세자 사이를 이간질했을까? | 영조는 아들의 죽음을 슬퍼했나? | 사도세자의 죽음에 대한 몇 가지 해석
Talk 16 정조실록 ― 높은 이상과 빼어난 자질, 그러나 …
영조 말년의 두 척신 세력: 북당과 남당 | 세손·홍국·서명선 라인의 형성 |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오” | 단호한 의지로 척신을 숙청하다 | 대놓고 시도한 정조 암살 | ‘원한 비서실장’의 실각 | 사회 비주류들이 일으킨 역모사건 | 정조와 예순대비의 정치적 타협 | 정조식 탕평책: 준론 탕평 | 정조식 탕평의 세 번째 축, 채제공 | 정조는 실학의 후원자인가? | “대체로 이문을 넓히려는 것이었습니다”― 정약용의 해명 | 시파와 벽파 | 실록과는 다른 사도세자 묘의 지문 내용 | 5·22하교의 속뜻 | 금등 이야기는 사실일까? | 백성이 그나마 좀 편안했던 시절 | 정조는 개혁군주인가? | 18세기를 마감하고 떠나다
Talk 17 순조실록 ― 가문이 당파를 삼키다
벽파 정부의 등장 | 명분의 승리―예순대비의 언문 하교 | 벽파의 복수―홍낙임 처형 | 예순대비는 왜 천주교를 박해했나? | 예순대비의 정치, 반동인가 계승인가 | 대왕대비와 좌의정의 설전 | 김조순 시대의 개막 | 홍경래의 난―새로운 성격의 반란 | 정주성, 조선시대판 해방구 | 똑똑한, 그러나 전략이 없었던 왕 | 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은 빛났으나 …… | 세도정치는 당파정치와 어떻게 다른가? | 사대부에 의한, 사대부를 위한, 사대부의 나라 | 이양선의 출현, 무반응으로 일관하는 조정

Talk 18 헌종·철종실록 ― 극에 달한 내우, 박두한 외환
안동 김씨가 비변사를 중심으로 국정을 장악하다 | 또다시 천주교를 탄압하다―기해박해 | 안동 김씨의 천하 | 헌종의 반격―안동 김씨에 맞서다 | 강화 도령의 즉위, 안동 김씨의 음모인가? | 세도정치의 희생양, 추사 김정희 | 안동 김씨를 위한 세상 | 삼정의 문란과 민란 도미노 | 아무 성과 없이 끝난 삼정 개혁 | 서로 달랐던 중국과 일본의 개항 | 사대부의 조선 500년 | 이양선에 대한 대책: ‘중국을 통해서 해결한다’ | 존재감이 없었던 헌종과 철종
Talk 19 고종실록 ― 쇄국의 길, 개화의 길
효유대비와 흥선군이 손을 잡다 | 요즘 정치가들도 살펴볼 필요가 있는 흥선대원군의 정치 | 부정부패 척결에서 제도 개혁으로 | 온갖 적폐의 온상, 서원을 철폐하다 | 속전속결로 경복궁을 재건하다 | 대대적인 천주교도 학살 |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본격적인 척사의 길로 | 흥선대원군의 공과 과 | 반反흥선대원군 세력의 형성 | 대원군 저격수, 최익현 | 고종의 대원군식 인사정책 | ‘명성황후’인가 ‘민비’인가 | 서양을 인정하고 근대화에 나서다―일본의 메이지 유신 | 불평등했던 조선의 개항 | 《사의조선책략》을 둘러싼 시각 차이 | 임오군란―흥선대원군의 재등장 | 시아버지와 며느리, 기막힌 운명의 교차 | 개화 흐름의 형성 | 친청 온건개화파 vs 친일 급진개화파 | ‘삼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 | 갑신정변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인가?
Talk 20 망국 ― 오백 년 왕조가 저물다
잃어버린 10년 | 동학의 확장: 교조 신원을 넘어서 | ‘수탈의 달인’ 조병갑, 혁명의 도화선이 되다 | 청일전쟁을 초래한 고종의 파병 요청 | 일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갑오개혁 | 일본에 맞서 다시 봉기하는 동학농민군 | 1894년의 농민전쟁, 어떻게 부를 것인가? | 갑신정변 주역들의 귀환 | 이노우에는 왜 친일 세력의 상징 박영효를 퇴출시켰나? | ‘여우 사냥’: 명성황후 시해사건 | 아관파천―치욕적이지만 굉장히 치한 작전 |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 주연이 되려 한 두 조연 | 고종, 황제가 되다 | 러시아를 둘러싼 고종과 독립협회의 갈등 | 독립협회운동에서 의회설립운동으로 | 관민 합동 국무회의 |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의 종언 | 고종황제의 마지막 승부수: 대한국 국제 반포와 광무개혁 | 일본의 러일전쟁 승리―한국에 대한 우위를 결정짓다 | 을사조약: “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 역사의 비극, 최익현의 죽음 | 자강운동, 그러나 …… | 헤이그 밀사 파견으로 퇴위당하는 고종황제 | 일제의 홍보에 이용당한 순종 | 안중근의 하얼빈 의거 | 조선왕조의 최후 | 망국 후의 황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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