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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 - 정권은 재벌을 만들고 재벌은 권력을 지배한다

안치용 저 | 내일을여는책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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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7460829 / 264쪽 150 x 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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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범죄자본주의’ 해체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전면 재구성하자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이렇듯 불법과 탈법과 정경유착으로 부와 권력을 쌓아올린 자본권력을 마피아보다 더 사악한 ‘범죄집단’으로 규정한다. 그 이유는 “사법적 심판을 벗어나 있고 나아가 사법을 포함한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총체적으로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자본주의’는 한국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성이며, 이는 대한민국이란 근대국가 형성과 맞물려 있는 한국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친일세력과 두 개의 외세에 편승한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민족공동체의 이익에 반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장악하여 대한민국을 그들의 나라로 만들어왔는지는 현대사를 통해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기초하고 설계하여 완성한 이승만·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진 정치권력은 태생 자체가 범죄적이다. 이 독재자들은 민족과 공동체의 국가를 찬탈하여 소수 기득권 집단의 국가로 만든 범죄자다.” - 저자 서문 중에서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오늘날 ‘범죄자’의 반열에까지 오른 자본권력의 과거와 현재를 낱낱이 파헤치고 화려한 자본의 그늘 뒤에 숨은 추악한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리하여 자본 권력의 약한 고리가 무엇인지 차근차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죄자본주의’를 해체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전면 재구성하자고 제안한다. 더디고 힘든 길이겠지만, 《한국 자본권력의 불량한 역사》는 대한민국이 건강한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저자 소개

안치용은 삶을 그렇게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하여간 자유주의자다. 또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억압하고 구조적으로 약탈하는 현 체제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갖고, 염증만 느끼고 있는 비판적 허무주의자라 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는 좌와 우를 초월한, 또는 좌와 우로부터 모두 외면받는 아젠다에 천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을 맡고 있고, 《경향신문》 사회책임 전문기자,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영대학원 겸임교수(CSR 담당), ISO 26000전문가포럼 공동대표, 사회적 기업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젊은 기업가들(YeSS)’ 대표를 겸하고 있다.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전두환, 노태우 정권 때 20대를 보냈다. 대학 시절 누구나 그랬듯 학생운동권 주변을 맴돌며 방황했고, 1987년 6월 항쟁을 경험한 386세대다. 1991년에 경향신문에 입사해 주로 경제ㆍ산업 쪽에서 취재했다. “국정원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며 당시 한화그룹 계열사로 재벌 신문이었던 경향신문에 입사했다가, 어느 순간 자의반 타의반 ‘진보정론지’ 기자로 변신했듯, 일간지 기자로 15년여를 살다가 2007년부터 대학생들과 부딪기는, 말하자면 일종의 ‘멘토’의 삶을 살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진 YeSS 대표 역할을 의무방어하는 데 급급할 뿐 멘토링에는 손사래를 친다. 자유주의자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역할놀이가 스승이라고, ‘꼰대’ 취급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름의 의무감에서 청춘 관련 책을 여러 권 썼다. 《청춘은 연대한다-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교육 평등을 꿈꾸며》, 《청춘을 반납한다》, 《내 청춘의 힐링캠프》에 이어 《아프니까 어쩌라고?》가 청춘 관련 네 번째 책이다. 20대와 함께 쓰거나 기획한 다른 책들과 달리 《아프니까 어쩌라고?》는 ‘스승놀이’의 압박감에서 터져 나온 자연스런 소회를 담았다. 그밖에 《착한 경영 따뜻한 돈》, 《한국의 보노보들-자본주의를 위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지식을 거닐며 미래를 통찰하다》, 《10년 후 당신에게》를 썼으며, 《한국전쟁과 미국의 세균전》을 번역했다. 후 세대와 함께할 지속가능한 경제 모델을 고민하는 CSR 전문가로서 최근에는 트위터(@ERISS_Chidragon, 지드래곤 짝퉁 아님)를 통한 소통에 눈을 뜨는 중이다. 

책 속에서

롯데가 재벌로 본격적으로 발돋움한 계기는 1970년 신격호와 박정희의 만남이다. 신격호는 1970년 11월 13일 주일대사 이후락과 함께 도쿄를 떠나 한국에 도착했고, 공항에서 청와대로 직행하여 대통령 박정희를 만났다. 박정희는 신격호에게 반도호텔을 불하해줄 테니 국제적인 호텔을 만들어서 성공시켜 달라고 요청했다. 노구치의 반도호텔은 해방과 함께 국가 소유로 넘겨져 당시 관광공사가 운영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이날이 오늘날 롯데그룹의 출발점이었다. 한국 재벌의 거의 대부분이 정경유착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롯데 같은 전격적이고 화끈한 출발의 일화를 찾기는 힘들다.
1974년 6월, 롯데는 반도호텔 매각 입찰에 단독 응찰하여 낙찰을 받았고, 박정희의 지시로 반도호텔 옆의 국립도서관도 손쉽게 사들였다. 중국음식점 아서원을 비롯한 인근 사유지 매입에도 정부의 도움을 받았다.
신격호는 호텔을 짓는 김에 유통업(백화점)에도 진출했다. 호텔 옆에 짓기로 한 9층짜리 부속건물을 당초 신고와 달리 25층으로 높였고, 용도 또한 준공을 앞두고 투숙객을 위한 쇼핑센터(1~2층)에서 ‘백화점(1~7층)과 임대사무실’로 변경했다. 당시는 ‘도심 인구집중 억제 정책’이 시행 중이어서 대규모 백화점이 시내 한복판에 들어설 수 없었지만 ‘백화점’이 아닌 ‘쇼핑센터’로 명칭을 바꾸는 편법이 동원돼 일을 성사시켰다. 박정희는 궁정동 안가에서 숨지기 불과 몇 시간 전인 1979년 10월 26일 오후에 ‘롯데쇼핑센터’ 건을 재가했다.
다음날 박정희의 피격 사망 보도를 접한 신격호가 ‘하마터면’ 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광경은, 직접 보지 않았지만, 능히 짐작할 수 있다.”
- <백년 호텔을 가진 나라> 중에서

5·16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박정희 군사정부는 애초에는 4·19혁명 직후 시작된 ‘부정축재자 처벌’을 완성지어, 국민적 지지를 얻고자 했다.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던 시절, 국민들이 법 위에 군림하던 자본가들의 탈세와 부정축재에 분노했기 때문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961년 5월 28일 부정축재처리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재호·이정림 등 대자본가 10여 명을 체포·구금했다. 삼성 회장 이병철은 마침 일본에 머물고 있어서 체포를 모면했고 대신 동업자인 부사장 조홍제가 체포되었다. 여러 증언에 의하면 이병철은 쿠데타 주도세력과 사전 협의를 마치고 “전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발표한 뒤, 6월 26일 귀국했다. 서울에 도착한 이병철을 연행한 지프차는 다른 부정축재자들이 구금돼 있던 서대문형무소·마포형무소가 아니라 서울 명동의 한 호텔로 달려갔다. 이병철은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다음 날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이병철은 부정축재자 전원 석방을 요구한다. 경제개발을 위한 투자 협력이 그 대가였다. 이튿날 구금돼 있던 재벌 경제인 12명은 모두 석방되었다.
석방된 부정축재자 12명은 그해 8월 16일 군사정권과 연결 창구 노릇을 맡을 ‘한국경제인협회’를 꾸린다. 초대 회장은 이병철이었다. 부정축재혐의자 12명이 석방을 대가로 조직한 ‘한국경제인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전신이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10월 부정축재처리법을 개정한다.
추징금의 수위를 낮추고, 대규모 공장 건립을 위해 정부가 금융지원에 나서며, 공장이 설립된 뒤에는 정부에 헌납한 지분을 되사갈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부정축재자들은 강력한 처벌 대신 정부의 집중적인 금융지원을 받으며 국가기간산업에 뛰어들 수 있는 독점적 기회를 제공받았다. 정치권력과 경제권력의 밀월관계가 형성된 결정적 순간이다.
- <‘만가’(晩可) : 정경유착과 한국 재벌의 기원> 중에서

1955년 자본금을 기준으로 한 당시 국내 최대기업은 1위 삼양사, 2위 대한석탄공사, 3위 한국산업은행, 4위 락희화학공업사, 5위 금성방직 순이었으며, 대체로 섬유업체가 강세였다. 이 무렵부터 일반 국민들 사이에 ‘재벌’이란 말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삼성, 삼호, 개풍 등이 산하에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며 명실상부한 재벌로 부상한다. 이밖에 럭키, 대한산업, 동양, 현대, 쌍용, 코오롱, 한일합섬, 벽산, 태광, 전방, 한국생사, 방림방적 등이 1950년대를 거치면서 재벌로 비상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마친다.

이 무렵 형성된 재벌들은 초과이윤이 발생하는 부문에 집중적으로 또 무차별적으로 진출하여 한국 특유의 ‘백화점식 경영’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백화점식 경영’ 즉 문어발 경영을 위해서는 단기간에 유망기업을 다수 인수해야 했는데, 당시 상황에서는 정치권과 거래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따라서 경제적 이권과 정치자금을 맞교환하는 불법적인 거래에 능할수록 빨리 성장하였고, 그에 따라 기업 내부에 추악한 비밀이 쌓였고, 비밀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걸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폐쇄적인 가족경영에 매달리게 되었다. 이러한 구조 하에서는 폭리, 밀수, 탈세, 부동산 투기 등 한탕주의를 기업가정신으로 체화하고 문어발 경영을 경영전략의 특징으로 하는 재벌 말고는 정상적이고 건전한 기업이 자리 잡기가 매우 힘들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재벌화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뒷면은 정치적인 독재체제의 지속일 것이다.
1961년의 10대 재벌 목록을 보면, 재벌 형성의 비밀이 한눈에 들어온다. 일단 주력사업이 수입무역인 곳이 10곳 중 8곳이다. 앞서 언급한 상인자본적 성격이 극명하다. 귀속자산, 즉 적산을 취득한 곳은 10곳 중 7곳이다. 원조자금을 받은 곳은 10곳 전부이다. 계열사가 많은 상위권 3개 재벌의 주력사업에는 은행이 포함되었다. 이 모두는 정경유착 없이는 불가능했다.
<재벌의 등장> 중에서

목차

서문 ‘범죄자본주의’ 해체하고 한국 자본주의를 전면 재구성하자 - 004

PART 1 차이 없는 반복
외적 식민지에서 내적 식민지로

1. 백년 호텔을 가진 나라 - 018
2. 한국 자본주의에서 식민지근대화론과 내재적 발전론 - 027
3. 일제에 의한 자본주의 이식 - 032

PART 2 한국형 엔클로우저, 적산
1. 광복과 함께 일어난 최초의 뱅크런 - 040
2. 미군정의 적산 처리 - 044
3. 대한민국 정부의 적산 처리 - 050
4. 화약은 진실하고 정직하다? - 055

PART 3 그라운드 제로 한국전쟁
1. 폭력적 사회 재편과 비자발적인 전면적 리셋 - 068
2. ‘그라운드 제로’의 예외 - 075
3. 노동운동의 불모화 - 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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