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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노 우리 패션사의 시작

최효안 저 | 마음산책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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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60903395 / 216쪽 135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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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온몸으로 밀고 간 한국 패션사
패션 디자이너 1호 노라노의 인생 다큐


한국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한 패션 디자이너. 모두 맞춤복만 입던 시대에 최초로 기성복을 도입한 디자이너. 육영수·이희호 등 역대 퍼스트레이디 의상을 제작한 디자이너. 1960년대에 미니스커트와 판탈롱 유행을 선도한 디자이너. 미국 백화점에 진출,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의 수출 실적을 올렸던 최초의 디자이너. 이 모든 타이틀을 한 사람이 거머쥐고 있다면 믿길까? 우리나라 최초의 디자이너이자, 최장수 현역으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 ‘노라노’. 그 이름은 어떤 세대에게는 익숙하지만 어떤 세대에게는 다소 생소하다.
『노라노』는 최초이자 전무후무한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인생을 순간순간 톺아보는 다큐 평전으로, 기자 최효안이 10년간 노라노를 관찰하며 취재한 그 결과물이다. 유년부터 노년까지 노라노의 개인사를 담았지만 그 자체로 우리 패션사의 시작이자 핵심이기도 하다. 최초의 패션쇼, 최초의 기성복, 최초의 미국 백화점 진출 등 모든 ‘최초’의 기록을 노라노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사, 현대 한국 문화사의 중요한 장면에는 늘 노라노의 의상이 등장한다. 노라노는 지금도 현역으로 일하고 있지만 그가 만든 옷 일부는 이미 한국현대의상박물관 등에 소장돼 있다. 그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이유다.
마음산책은 ‘우리 여성의 앞걸음’이란 카테고리 아래 앞으로 각계각층 여성의 인생사와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길 예정이다. 한국 최초의 여성 영화감독 박남옥이 직접 인생을 회고하며 쓴 『박남옥』과 한국 최초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평전, 『노라노』가 그 첫걸음이다.


이혼, 유학, 전쟁, 시대에 맞물린 삶
아티스트 노라노에서 사업가 노라노까지


노라노는 1928년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1부 ‘여성, 노라노’에서는 정신대 징집을 피해 결혼했으나 남편의 이름으로 나오는 전쟁 지원금을 며느리와 나누지 않으려던 시댁 때문에 이혼해야 했던 이야기, 집안의 실질적 가정이 되어 생계를 이끈 이야기, 미군 피엑스(PX)에서 일하며 패션에 관심을 두게 된 과정, 배움에 대한 열망, 여성 최초로 미국 유학을 단행해 패션을 배우고 온 이야기 등, 여성으로서 당시의 한계에 직면하나 이를 하나하나 극복해간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다. 유복한 집안의 자제로 태어났지만 가세가 기울어 도맡아야 했던 가장 역할 그리고 이혼 후 받은 멸시, 사람들의 편견은 노라노가 평생토록 패션에 매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제가 열심히 살 수 있었던 원동력 가운데 하나가 ‘분노’라고 생각해요. 제 분노는 이혼하면서 생겨났죠. 남편이 전쟁터 가 있는 동안 단지 전쟁 보상금 때문에 이혼을 강요했던 시댁 사람과 온 세상에 본때를 보이고 싶었어요. 또 이혼녀라고 손가락질하는 주위 사람들에게도요. 독립하는 데 필요한 돈도 없었고, 물론 능력도 없었어요. 무엇인가 해봐야겠다는 불타는 의지뿐이었죠. 이혼을 하면서 권투 선수처럼 도전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분노’ ‘결핍’ 이런 것들이 있어야 뭔가 이루어내는 것 같아요.
-50쪽

1949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노라노는 자택에 의상실을 개업하며 본격적으로 패션 디자이너의 길을 걷는다. 2부 ‘아티스트 노라노’에선 패션 디자이너로 유감 없이 역량을 발휘했던 노라노의 삶이 담겨 있다. 이후 노라노는 1953년 한국전쟁 중에 열린 비공개 패션쇼, 1956년 한국 최초의 패션쇼, 수많은 연극 의상, 영화 의상의 제작, 최은희·엄앵란 등 당대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의상 제작 등 화려한 이력을 쌓아간다. 미스코리아를 양성해 미스유니버스 대회를 준비하는 ‘샤프롱’의 역할까지 도맡고 육영수 등 퍼스트레이디의 의상부터 윤복희의 미니스커트 등의 대중 문화 의상까지 제작하는 등, 노라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남부러울 것이 없는 순간에서도 안주하지 않는 것이 저자가 말하는 노라노의 저력이다. 3부 ‘사업가 노라노’에선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영예로운 기록들을 뒤로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녀는 맞춤복을 만들며 쌓은 통계를 기반으로 한국 여성의 체형을 유형화해 기성복을 만든다. 해외 원단만 수입해선 자국의 패션이 발전할 수 없단 생각에 국산 원단을 개발하는 데 힘을 보탠다. 당시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직업인 패션모델도 직접 양성한다. 파리의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했다가 미국 바이어의 눈에 띄어 뉴욕의 삭스 백화점에 진출한 이후로 메이시 백화점 1층 쇼윈도가 전부 노라노의 옷으로 진열되고 연 1000만 달러 수출을 달성하는 등, 세계를 상대로 한 고공행진은 멈추지 않았다.

제 건달 기질과 관련이 있기도 한 것 같은데, 전 뭐든 재미있겠다 싶으면 시도하는 성격이예요. 겁이 없죠. 저는 항상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챌린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에 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어떤 일을 할 때 ‘앰비션’을 먼저 생각하지 않아요. 다들 야망을 가지라고 하지만, 전 야망을 먼저 생각하는 순간 일을 그르치게 된다고 생각해요. 기회다 생각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그것에 임하는 것, 그게 제 삶의 모토죠.
-197∼198쪽


야망을 품으면 일을 그르친다
아흔 현역 디자이너의 일상


저자 최효안은 노라노의 현재까지 세밀히 담았다. 4부 ‘아흔의 노라노’는 청담동으로 매장을 이전하고 지금도 일하는 노라노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그렸다. 반드시 사수하는 규칙적인 생활, 디자이너로서 터득한 삶의 지혜와 인생철학, 박완서나 전 <한국일보> 기자 故 이무현과의 우정, 지인들이 떠나던 순간들에 느낀 단상 등 ‘아흔’의 노라노만이 풀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저자는 제3자의 시선도 담아낸다. 홍익대 섬유미술패션디자인학과 교수인 간호섭이나 의류학 박사 한수연 등을 인터뷰해 노라노의 디자인이 지니는 의미와 의의를 알려주고, 故 박완서 작가의 딸 호원숙이나 배우 서우림 등을 인터뷰해 노라노란 사람의 인간미를 전해주고 있다.

패션쇼는 디자이너 본인의 패션 철학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패션계의 가장 기본인 동시에 매우 중요한 이벤트죠. 노라노보다 앞서 활동한 분들은 있었지만 한국에서 패션쇼를 처음으로 연 사람은 노라노입니다. 1956년 노라노의 패션쇼는 본인의 첫 쇼인 동시에 우리나라 패션 역사상 최초의 쇼였습니다. ―간호섭(패션 디자이너, 홍대 미술대학 교수) 145쪽

그렇게 잘나갈 때도 선생님은 항상 겸손하셨어요. 그리고 극중 의상을 제작하실 때는 제가 맡은 배역에 대해서 꼼꼼하게 묻고 대본을 꼭 읽어보셨죠. “사람과 연기가 보여야지, 옷이 튀면 안 된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선생님의 의상을 입으면 제가 그 역할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어요. 저에게 선생님은 영원한 스타세요.”
―서우림(배우) 283쪽

노라노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야망을 품으면 일을 그르친다”라고 말한다. 기회가 왔을 때 순수한 마음으로 그것에 임하는 것이 자신의 삶의 모토였다며 성공에 대한 욕망을 버릴 때 좋은 결과가 나왔음을, 자신의 삶을 통해 입증하고 있다.

저자 소개

  • 저자 : 최효안
최효안
서울에서 태어났다. 신문사와 방송사에서 17년간 기자로 일했다. 위기에 몰린 공공 의료, 정부 재난관리시스템의 오류, 구멍 난 국가건강검진 실태 등을 심층 취재한 기획 보도로 2012년과 2013년 한국방송학회와 방송기자연합회가 수여하는 ‘이달의 방송기자상’을 세 차례 수상했다. 한국외대와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을 졸업했고, 성균관대 일반대학원 예술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책 속에서



혼담이 오가던 당시 제 나이는 열일곱이었어요. 결혼이란 단지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문화를 가진 양쪽 집안의 만남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할 때죠. 그저 정신대는 싫고, 더 넓은 세상에서 마음껏 공부를 하고 싶다는 꿈이 꺾인 상황이 분하기만 한 어린 소녀였죠. ‘신랑감이 일본에 있다니 난 일본에 갈 수 있겠구나. 일본에 가면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주 단순한 생각으로 결혼을 결심한 거죠.
39쪽

파티에서 만난 미군정청 재정부장의 부인이 한국인 3세였는데, 그분이 “노라노, 드레스가 너무 이쁘다!”라며 어디서 맞춘 건지 물었어요. 제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니 너무나 뛰어난 재능이라며 “디자이너가 되는 공부를 꼭 해보라” 하는 거예요. 그때 ‘디자이너’란 말을 생전 처음 들었어요.
54쪽

입센의 희곡 『인형의 집』에 나오는 주인공 노라와 제 상황이 참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노라가 새로운 인생을 찾아서 집을 나왔듯이, 저 역시 전혀 다른 길을 가고자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향하니까요. 『인형의 집』을 떠올리는 순간, 바로 전 노라가 됐죠. 게다가 제 성이 노씨여서, 앞뒤가 똑같은 음절이 되는 것도 운명이다 싶었죠.
64쪽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갈 때 다들 만류했어요. 왜 잘사는 미국에서 눌러살지, 못사는 한국으로 돌아가나 의아해했죠. 곧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그러나 전 풍요로운 미국에서 나 혼자 잘사는 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83쪽

일반인의 경우에도 사람보다 옷이 먼저 보이면 잘 입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배우는 특히 더하죠. 의상이 먼저 보이면 그건 실패한 거예요. 역할과 연기에 옷이 잘 녹아들면서 배우의 캐릭터를 극대화시키는 역할을 해야죠. 엄앵란 씨는 그런 점에서 자신을 역할에 꼭 맞추어서 변신하는 데 능했어요.
123쪽

70년 패션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게 여기는 일이 국산 원단으로 고급 옷을 만들어 수출한 것, 그리고 디자이너로서 기성복을 최초로 만들었다는 사실이죠. 다수의 사람들이 더 저렴한 가격에 더 멋진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공익적인 일이죠. ‘노라야, 기성복을 도입한 일은 참 칭찬할 만한 일이야.’ 저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예요.
151쪽

노라노는 프랑스 리옹에 있는 견직물 직조 전문가를 어렵게 찾아내 자문을 해서 양장을 만들 수 있는 국산 견직물 원단 생산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출품했다. 옷을 보낸 뒤 숨죽여 기다리던 사흘 만에 낭보가 왔다. 여성복 350벌, 2만 달러 수출 계약이 성사된 것. 대한민국 패션 산업사상 최초로 국산 원단으로 만든 여성복이 수출
된 것이다.
160쪽

특히 뉴욕 최고급 백화점이며 당시 전 세계에서 최대 매장 면적을 지닌 메이시 백화점 1층 쇼윈도를 노라노 옷이 전부 도배하는 일대 사건도 벌어진다. 통상 백화점 1층 쇼윈도는 그 시즌의 매출을 책임질, 가장 전략적인 상품이 걸린다. 당연히 한 디자이너의 옷으로 전부 쇼윈도를 꾸미는 일은 극히 이례적인 일. 그만큼 노라노의 옷이 상품성은 물론 해당 시즌의 트렌드를 잘
감안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171쪽

일단 한국 최초의 디자이너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며 국산 면, 모, 실크 등 국산 원단을 직접 개발했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 있습니다. 외국의 디자이너들 가운데도 자국의 원단을 애용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아요. 자신의 패션의 완성도만 생각하기 바쁘지, 자국의 원단 수준을 올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란 쉽지 않죠. 국산 원단의 수준이 척박했던 50~70년대, 노라노는 단순히 디자이너의 수준을 뛰어넘어 국산 원단 생산가로서의 역할도 해낸 겁니다. 그 덕분에 우리의 면직물과 모직물, 견직물의 수준이 한 단계 오른 것은 물론이고 한국의 패션 수준도 올라갔죠. ―한수연(의류학 박사)
182쪽


목차

들어가며
프롤로그
여성, 노라노
아티스트, 노라노
사업가, 노라노
아흔의 노라노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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