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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은 오늘 밤 소녀 같다

시리즈 : 민음 세계시인선 [49]

D. H. 로렌스 저 | 정종화 역 | 민음사 | 2017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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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37475238 / 180쪽 14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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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출판사 리뷰

『채털리 부인의 연인』의 작가 로렌스가 월트 휘트먼적인 자유시를 통해 분출하는
강렬한 감정과 신비로운 교감의 세계

● “자유시는 정신과 육체가 한꺼번에 솟아나는 것이어야 한다.” ―D. H. 로렌스


D. H. 로렌스는 『보라! 우리는 이렇게 이겨 왔다!』, 『새, 짐승, 꽃』, 『팬지 꽃』 등 여섯 권의 시집에 천 편이 넘는 시를 쓴 시인으로서 에드거 앨런 포를 좋아했고, 1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특히 월트 휘트먼의 영향으로 자유롭고 대담한 형식을 지향했다. “소리나 감각에서 타성에 젖은 진부한 결합이나 판에 박은 조합은 걷어내자. 그저 표현한답시고 일그러지게 전달하는 거짓된 경로와 통로들은 엎어 버리자. 그 완고한 버릇을 깨부수자.”

그리고 거짓된 동정심으로 가득 차
일 마일을 걷는 자는 전 인류의 장례식장으로 가느니.
―「휘트먼에게 주는 대답」에서

마치 일기를 써 내려가듯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자신을 “꼭 쥐고 갖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연인에게는 이렇게 따져 묻는다.

(……)
내가 대답했다. “도구도 기구도 아니고 하느님도 없소!
나를 만지고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마시오.
저속한 짓이오.
족제비가 그 곧고 하얀 목을 쳐들 때
울타리의 족제비를 만지기 전에 두 번 생각하겠지.
당신 손이 그렇게 가볍고 쉽지는 않겠지.
공주처럼 햇볕 따사로운 곳에서 똬리를 튼 채
머리를 어깨에 얹은 채 잠자는 독사도 쉽게 만지지 못하겠지.
독사가 놀라 정교하게 머리를 쳐들었을 때
그 모습이 드물게 아름다워 보여도
또 엄청난 위엄을 갖추고 정교한 몸짓으로 달아난 것이 기적 같아도
당신은 그 독사를 쓰다듬어 주려고 손을 내밀지는 않지.
또 당신은 저 주름지고 슬픈 얼굴을 한 들판의 황소가
일어나면 무서워하지.
황소는 한자리에 박혀 선 돌기둥처럼 생각에 잠겨 슬프지만.
당신을 주저케 하는 것이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거요?
나에게도 이 모든 것이 다 있소.
어째서 당신은 이런 것을 대수롭게 생각하는 거요?”
―「그녀가 또한 말하기를」에서

한편 대학교 은사의 아내였던 여섯 살 연상의 프리다와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했는데, 그녀에게 바치는 애가도 여러 편 있다.

그녀가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 서성거린다.
그녀가 창문 아래 목욕 수건을 깔면
햇볕이 그녀를 비쳐
어깨 위에 하얗게 반짝인다.
그녀 옆구리에는 원숙한
금빛 그림자가 빛난다.
그녀가 스펀지를 주우러 몸을 굽히면 그녀의 출렁이는 젖가슴이
활짝 핀 노란 장미처럼 출렁인다.
‘디종의 영광’ 장미꽃처럼.
―「디종의 노래」에서

● 자연의 생명력에서 인간다움을 찾아 헤매는 시인의 처절한 목소리

D. H. 로렌스는 자신이 직접 시의 화자가 되어 사상을 펼쳐낸다. “세상이 그토록 많은 거짓으로 뒤덮여 있지 않다면, 나는 작가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급격한 산업혁명으로 돈과 명예를 얻은 부르주아들은 또 하나의 계급을 만들며 가식으로 가득 찬 사회를 탄생시켰고, 이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는 예민한 작가는 인위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연이 갖는 본연의 힘을 찾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의 시에는 “저주스러운 인간 교육”에 대한 반발만큼이나 생명력에 대한 종교적인 경외감이 짖게 드러나고 있다.

(……)
나를 가르친 목소리는
그를 죽여야 한다고 속삭인다.
시칠리아에선 까만, 까만 뱀은 해(害)가 없지만 금빛은 독이 있기 때문에.

내 속에서 목소리는 말한다. 네가 만일 사내거든
몽둥이를 들어 지금 그를 쳐서 죽이라고.

그러나 손님처럼 조용히 내 홈통에 와서 물을 마시고는
만족해서 고마운 표정 하나 없이 평화롭게
대지의 이글거리는 창자 속으로 가 버린
그가 몹시도 좋았다고 나는 고백할까?
(……)
맞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미처 구멍 속에 들어가지 않은 꼬리 부분이 갑자기 체통
없이 꿈틀거리며
번개처럼 꿈틀하고는 사라져 버렸다.
까만 구멍, 담 정면의 갈라진 틈 속으로
나는 홀린 듯 그쪽을 지켜보았다. 이 강렬하고 조용한 정오에.

나는 곧 후회스러웠다
얼마나 무가치하고 야비하고 비열한 짓인가!
나를 경멸하고, 저주스런 인간 교육의 목소리를 멸시하였다.

나는 알바트로스를 생각했다.
그리고 내 뱀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랐다.

내게는 그가 왕처럼 보였기에,
추방당한 왕, 지하에서 왕관을 쓰지 못했으나
곧 다시 왕관을 쓸 왕처럼.

이리하여 나는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생명의 왕과의 기회를,
나는 이제 속죄해야 하느니,
나의 비루한 짓을.
―「뱀」에서

영시 문학사에서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은 주로 죽음 같은 진지한 주제를 다룬 시들이다. 로렌스의 시들은 그 자체로도 세계시인선에 들어갈 만큼 의미 있는 작품들이지만, 그의 철학뿐만 아니라 소설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텍스트가 된다.

(……)
지금은 가을, 과일이 떨어진다.
망각을 향해 먼 여행을 떠날 때.
커다란 이슬방울처럼 사과가 떨어진다.
스스로를 깨는 것은 스스로를 떠나는 것.
지금은 떠나야 할 시간. 자신에게
작별을 고하고, 떨어진 자신으로부터
출구를 찾을 시간.
―「죽음의 배」에서

로렌스는 거친 광부의 아버지와 교양 있는 교사 어머니 사이에서 가난과 불화를 겪으며 자라난 예민한 문학소년이었다.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집착과 그로 인한 아들의 방황과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애정이 특히 자전적 소설 『아들과 연인』에 잘 나타나 있다. 「신부」라는 시는 이 소설의 17장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장의 제목은 ‘해방’이다.

나의 사랑은 오늘 밤 소녀 같다.
그러나 그녀는 늙었다.
베개에 놓인 머리카락은
금빛이 아니고,
섬세한 은빛과 섬뜩한 냉기로
꼬여 있다.

그녀는 젊은 처녀 같다. 눈썹은
부드럽고 아름답다.
뺨이 아주 부드러운데 두 눈을 감아
귀하고 귀여운
잠을 잔다. 조용하고 편안하게.

아니 신부처럼 잠을 잔다.
완전한 것을 꿈꾸며.
내 사랑은 꿈의 형태로, 마침내 누워
그리고 죽은 입이 노래한다.
맑은 저녁의 지빠귀 새 같은 입 모양을 하고.
―「신부」에서

● 한국 시문학의 바탕을 마련한 세계시인선

1970-1980년대에는 시인들뿐만 아니라 한국 독자들도 모더니즘의 세례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때로는 부러움으로, 때로는 경쟁의 대상으로, 때로는 경이에 차서, 우리 독자는 낯선 번역어에도 불구하고 새로움과 언어 실험에 흠뻑 빠져들었다. 이러한 시문학 르네상스에 박차를 가한 것이 바로 세계시인선이다.

민음사는 1966년 창립 이후 한국문학의 힘과 세련된 인문학, 그리고 고전 소설의 깊이를 선보이며 종합출판사로 성장했다. 특히 민음사가 한국 문단에 기여하며 문학 출판사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바로 ‘세계시인선’과 ‘오늘의시인총서’였다. 1973년 12월 이백과 두보의 작품을 실은 『당시선』(고은), 폴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김현),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검은 고양이』(김주연),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과 얼음』(정현종) 네 권으로 시작한 세계시인선은 박맹호 회장이 고 김현 선생에게 건넨 제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가 보는 외국 시인의 시집이라는 게 대부분 일본판을 중역한 것들이라서 제대로 번역이 된 건지 신뢰가 안 가네. 현이(김현)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프랑스나 독일에 다녀온 이들 아닌가. 원본을 함께 실어 놓고 한글 번역을 옆에 나란히 배치하면 신뢰가 높아지지 않을까. 제대로 번역한 시집을 내 볼 생각이 없는가?”

대부분 번역이 일본어 중역이던 시절, 원문과 함께 제대로 된 원전 번역을 시작함으로써 세계시인선은 우리나라 번역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당시 독자와 언론에서는 이런 찬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요, 또 책임 있는 출판사의 책임 있는 일이라 이제는 안심하고 세계시인선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세계시인선은 출판 역사상 가장 오랜 수명을 이어 온 문학 총서의 하나이자 시문학계와 민음사를 대표하는 시리즈가 되었다.

● 지금의 한국 시인들에게 영혼의 양식을 제공한 세계시인선

“탄광촌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할 때 세계시인선을 읽으면서 상상력을 키웠다.” ―최승호 시인
“세계시인선을 읽으며 어른이 됐고, 시인이 됐다.” ―허연 시인
“나에게 세계시인선은 시가 지닌 고유한 넋을 폭넓고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김경주 시인

세계시인선은 문청들이 “상상력의 벽에 막힐 때마다 세계적 수준의 현대성”을 맛볼 수 있게 해 준 영혼의 양식이었다. 특히 지금 한국의 중견 시인들에게 세계시인선 탐독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밑바탕이었다. 문화는 외부의 접촉을 독창적으로 수용할 때 더욱 발전한다. 그렇게 우리 독자들은 우리시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시성들과 조우했고, 그 속에서 건강하고 독창적인 우리 시인들이 자라났다.

하지만 한국 독서 시장이 그렇게 시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시문학 전통이 깊은 한국인의 DNA에 잠재된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이러한 토대에서 자라난 시문학은 또 한 번의 르네상스를 맞이했다. 국내 출판 역사에서 시집이 몇 권씩 한꺼번에 종합베스트셀러 랭킹에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세상을 향해 보다 더 인상적인 메시지를 던져야만 하는 현대인에게 생략과 압축의 미로 강렬한 이미지를 발산하면서도 감동과 깊이까지 숨어 있는 시는 점점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 씨앗을 심어 왔던 세계시인선이 지금까지의 독자 호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리뉴얼을 시작했다.

저자 소개

1885~1930.


시인이자 소설가, 수필가로서 20세기 영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로런스는 1885년 노팅엄셔 주의 탄광촌 이스트우드에서 태어났다. 광부인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다섯 아이들 중 넷째로 태어난 그는 가난과 가정의 불화를 겪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98년 노팅엄 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였으며 회사 서기와 초등학교 교사를 거쳐 1906년 유니버시티 칼리지에 진학하였다. 1912년 어머니를 여읜 뒤 대학 시절 은사의 아내이자 여섯 살 연상의 독일 여인 프리다 위클리를 만나 사랑에 빠져 1914년 결혼했다. 1928년 『채털리 부인의 연인』을 발표하여 외설 시비 문제로 문단에 일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그는 1930년 45세 되던 해 폐결핵으로 요양소에서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로런스의 초기작으로 그의 천재성을 보여 주는 『아들과 연인』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자 그를 당시 최고의 작가로 부각시킨 작품이다. 어머니의 강압적인 사랑으로 인한 아들의 빗나간 인간관계와 작가 특유의 애정관이 반영되어 있는 이 소설은 로렌스 작품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좌절된 욕망을 보여 준다. 관능이 넘치는 생명력을 지닌 남자와 품위와 교양을 갖춘 여자의 결합은 결국 현실에서 조화를 찾지 못하고 파멸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남편에게서 찾을 수 없는 욕망을 자식을 통해 이루기 위해 아들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 붓는 아내,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아들의 사춘기 그리고 청년기의 정신적 갈등과 주변 환경의 깊이 있는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그 밖에 주요 작품으로 『하얀 공작』, 『침입자』, 『무지개』, 『사랑하는 여인들』, 『길 잃은 아가씨』, 『아론의 지팡이』, 『캥거루』, 『숲 속의 소년』, 『날개 돋친 뱀』, 『도망친 수탉』, 『처녀와 집시』 등이 있다. 

역자 소개

  • 역자 : 정종화
서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브리스톨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맨체스터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런던대학교 펠로, 고려대학교 영문학과 교수, 한국 D. H. 로렌스 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 토머스 하디의 『이름 없는 주드』, 『테스』, D. H. 로렌스의 『역사, 위대한 떨림』 등이 있으며, 이문열의 소설 『시인』을 비롯한 다수의 한국 문학을 영어로 번역했다. 외무부장관 표창장, 대한민국 문학상, 대산문학상, 대영제국 훈장(OBE) 등을 받았다

목차

피아노 PIANO
버찌 도둑 CHERRY ROBBERS
집시 GIPSY
신부 THE BRIDE
헤네프 강가에서 BEI HENNEF
첫 아침 FIRST MORNING
디종의 영광 GLOIRE DE DIJON
되찾은 낙원 PARADISE RE-ENTERED
그녀가 또한 말하기를 “SHE SAID AS WELL TO ME”
석류 POMEGRANATE
모기 THE MOSQUITO
뱀 SNAKE
모기는 안다 THE MOSQUITO KNOWS
천만에 로렌스 씨! NO! MR LAWRENCE!
급료 WAGES
인간의 마음 THE HEART OF MAN
현대의 기도 MODERN PRAYER
신의 이름! NAME THE GODS!
휘트먼에게 주는 대답 RETORT TO WHITMAN
예수에게 주는 대답 RETORT TO JESUS
신의 형체 THE BODY OF GOD
바바리아의 용담 꽃 BAVARIAN GENTIANS
죽음의 배 THE SHIP OF DEATH
아몬드 꽃 ALMOND BLOSSOM
캥거루 KANGAROO
부르주아는 얼마나 짐승 같은가 HOW BEASTLY THE BOURGEOIS IS
박쥐 BAT
겨울 이야기 A WINTER’S TALE
가을비 AUTUMN RAIN
젊은 아내 A YOUNG WIFE
결혼식 아침 WEDDING MORN
저녁의 암사슴 A DOE AT EVENING
그림자 SHADOWS
성체축일 FROHNLEICH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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