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구간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 인생론

김천흥 저 | 소명출판 | 2017년 08월

미리보기 북트리

정가
$90.00
판매가
$49.50 (45%↓) 최저가 보상
적립금
$0.99 (2%P)
출고예상일
2026년 10월 08일 수령예상일 안내
북카트 담기 바로구매하기 위시리스트담기

평점 -  ·  리뷰 0

리뷰 쓰기

북셀프

1시간도 길다! 5분만에 OK! 매장에서 직넙 책을 찾아가세요. 500원 추가적립!(선착순 천명/일)

가능매장 : 롯데스타시티점

북셀프로 구매하기 북셀프란?

ISBN : 9791159052040 / 720쪽 162 x 233 (㎜) / 양장본

이 상품에 궁금하신점이 있으세요? 1:1상담문의

추천inside
Adobe Flash Player 가져오기

이 분야의 베스트셀러

아래의 도서와 구매하시면 이 도서들의 적립금을 즉시적용해 드립니다.

  • 16,650
  • 20,700
  • 18,000
  • 22,500

책 소개

출판사 리뷰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舞童,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 인생록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국가무형문화재 김천흥 선생 자서전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인생록(心韶 金千興 先生 舞樂人生錄)』은 마지막 무동(舞童)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예능보유자였던 심소 김천흥(1909~2007)의 90년 무악(舞樂)인생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김천흥 선생은 1923년에 창덕궁에서 벌어진 순종황제의 오순(五旬)경축연에서 15세의 무동(舞童)으로 춤춘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 아악부에서, 광복 이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최고의 예... 조선왕조의 마지막 무동舞童,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 인생록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국가무형문화재 김천흥 선생 자서전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인생록(心韶 金千興 先生 舞樂人生錄)』은 마지막 무동(舞童)이며, 국가무형문화재 종묘일무와 처용무의 예능보유자였던 심소 김천흥(1909~2007)의 90년 무악(舞樂)인생을 기록한 자서전이다. 김천흥 선생은 1923년에 창덕궁에서 벌어진 순종황제의 오순(五旬)경축연에서 15세의 무동(舞童)으로 춤춘 이래 일제강점기에는 이왕직 아악부에서, 광복 이후에는 국립국악원에서 최고의 예인으로 무악활동을 했다. 더불어 1954년에 자신의 무용연구소를 개소하여 [처용랑], [만파식적] 등의 작품을 창작했고, 1980년대에는 국립국악원에서 궁중무의 복원작업을 이루었다. 또한 전공 악기인 해금을 비롯해 양금, 아쟁의 보존을 위한 연주와 교육, 출판 활동도 왕성하게 수행했다. 무엇보다도 순종황제의 어전에서 춤춘 후 2002년까지 궁중무 [춘앵전(春鶯?)]을 춤추므로써 마지막 무동의 역사적 소임을 다하시고 돌아가셨다. 그 과정들을 김천흥 선생이 5부로 구분하여 직접 서술한바, 활동의 전후 과정뿐만이 아니라 에피소드, 개인적 소회를 밝히고 있다. 무동으로 춤추었던 순종오순 경축연에 대해 “어둠의 장막이 내려진 주위로 인정전 처마와 붉은 기둥에 달린 전등에서는 은은한 불빛이 밝혀졌고, 전내(殿內)에서는 야연(野宴)이 베풀어짐과 동시에 국악 연주가 시작되었다. …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살며시 눈을 들어 정면 앞을 보니 맞은편 용상 옥좌(玉座)에는 순종 임금님과 윤황후계서 좌정해 계셨고, … 처음에 나는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손발을 움직이는 것조차 거북스러웠다. 그러나 이내 불안한 마음을 가다듬고, 연습 때 하던 편안한 기분을 살려 춤을 추었다. 십년감수한 기분으로 큰 숨을 한번 쉬고는 물러나와 살피니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라는 생생한 회고는 김천흥 선생의 인간적 면모뿐만이 아니라, 근현대 공연예술의 전모를 이해하는데 자료적 가치가 매우 큰 기록들이다. 10주기 추모, 근현대공연예술사 관점의 평전 수록 『심소 김천흥 선생 무악인생록』은 1995년에 출간했던 『심소김천흥무악칠십년』을 수정보완하여, 22년 전에 발간된 자서전의 시간적 격차를 해소하고, 심소 김천흥 선생님의 10주기를 기리기 위해서 발간되었다. 김천흥 선생이 서술한 5부 자서전에 뒤이어 1993년 이후 10년간의 활동을 전통춤이론가 김영희가 평전 형식으로 6부에 덧붙였다. 또한 근 1세기에 가까운 김천흥 선생의 활동을 근현대공연예술사의 관점에서 570개의 주(註)를 달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김천흥 선생과 관련한 인물들, 각종 공연, 선생이 몸담았던 무용계와 국악계의 여러 단체와 제도 등을 시대적 흐름 속에서 통사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이번에 처음 공개된 사진을 포함해 62컷의 사진들도 지난 세기 국악과 무용의 현장을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공연예술을 살피기 좋다.

저자 소개

서울예고 무용과, 국민대 국사학과, 중앙대 대학원 무용학과를 거쳐,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예술철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개화기 이후 근대기생과 근현대 춤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고, 한국춤비평가협회 회원이다. 김영희춤연구소를 운영하며 4회의 검무전(劍舞展) 시리즈를 기획했고, 전통춤이론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한국근현대예술사구술채록연구시리즈 <김천흥>(2004), <양소운>(2005), <이매방>(2006), <문장원>(2006)을 채록했으며, <고창농악 고깔소고춤>(2004), <개화기 대중예술의 꽃, 기생>(2006), <전설의 무희 최승희>(2014, 공저), <한국춤통사>(2014, 공저), <전통춤평론집 춤풍경>(2016) 외 다수의 논저가 있다.
1909년 서울 출생으로, 이왕직 아악부원양성소 제2기생으로 1922년에 입학하여 해금을 전공하고 양금과 아쟁을 겸공했으며, 순종황제 탄신오순 경축공연에 무동(舞童)으로 출연했다. 이왕직아악부의 아악수보, 아악수, 아악수장을 역임했다. 1951년 이후 국립국악원 예술사, 연주원, 자문위원을 거쳐 원로사범으로 재직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김천흥고전무용연구소 소장, 서울시 문화재위원, 사단법인 대악회 이사장, 정농악회 회장, 무형문화재예술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 종묘제례악, 제39호 처용무의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저서에 <한국무용의 기본무보>, <정악양금보>, <정악해금보>, <정재무도홀기 창사보 I, II> 등이 있고, 서울시 문화상, 대한민국예술원상, 한국국악대상, 국민훈장 모란장, 방일영국악상, 금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20세기 한국 전통공연예술에 깊고 따뜻한 족적을 남기시고 2007년에 소천하셨다.

책 속에서


조선악부에서는 행여나 다른 부에 뒤질세라 총력을 다해 공연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특히 총무부에는 당시 흥행계에서 쟁쟁하던 명장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민속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공연종목을 구성하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덕분이었는지 조선악부 공연날 극장 문앞의 광경이 볼만했다. 극장문 앞에서부터 광화문 파출소까지 관객이 장사진을 치고 늘어서 있었던 것이다. 극장 안 역시 대성황을 이룸은 마찬가지였다. p.204

춘원의 삼 남매는 일찍부터 재질 있고 뛰어난 두뇌의 수재들로 소문나 있었는데 특히 정난은 학교시절에 여러 번 월반해 신문에도 게재되며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등 재질이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춤 배우기가 시작되자 이상한 현상이 엿보였다. 정난이 춤을 공부할 제면 항상 방문을 꼭꼭 닫아두고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절대 꺼려하는 것이었다. p.297

우리 공연의 명칭은 마침 그해가 한미 수교 100주년이 되는 해요, 공연시기가 8․15 전후라 타이틀을 <한미 수교 100주년 기념과 8․15 광복절 경축공연>으로 하자고 제의했더니 한인회 측에서도 찬성을 하였다. 10명에 불과한 적은 인원으로 공연을 하면서 억지로 이름만 거창하게 했던 것이 그때는 미처 몰랐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내 배짱이 제법 두둑했던 것 같아 쓴웃음이 떠오른다. p.599

목차

발간하며―김영희
추모사_ 심소 미소는 가섭의 염화미소―한명희
추모사_ 명인 뜨락의 처용랑―최종고
저자 인사말―김천흥
서문―성경린
제1부
그리운 균명학당 시절
무악舞樂의 길로
아악부 연주단 첫 일본 공연
춤과 소리聲樂 사이에서
가곡歌曲과 시조時調를 배우던 시절
첫 아악雅樂 방송과 편종 만들기
이화여전梨花女專의 국악 교육
금강산 여행
제2부
아악부를 떠나다
권번과 요리점으로
광산鑛山 순회공연과 무악계巫樂界의 악사생활
일제 말기의 국악
조선음악협회 활동
광복과 국악원 설립
가설무대의 애환
대한국악원의 발족
제3부
피난지에서의 국립국악원
전쟁 중의 춤 강습
휴전 전후의 국립국악원
국악사양성소 설치
무용연구소 개설
첫 발표회와 대학출강
무용인협회 결성
국악과 설치와 한국가면극연구회
대한민속예술원 발족
제4부
첫 서울시 문화상 수상
재일교포 위문공연과 첫 미국행
하와이 공연
삼천리가무단의 미국 공연
꼭두극 재현
국립국악원의 해외공연
제5부
회갑기념공연 [만파식적萬波息笛]
유럽공연과 대악회 창립
문화사절 해외 나들이
정농악회 창립과 활동
궁중무 재현 발표
무악생활舞樂生活 70년
나의 가족
맺는 말
제6부|무악칠십년 출간 이후 이야기
하와이, 한국 전통공연예술의 또 다른 배양지
자서전 출간과 궁중무용에 대한 연재
정재연구회와 일무보존회 발족
방일영국악상 수상
정농악회 하와이 공연과 탈춤경연대회 심사
국립국악원의 2000년 전후 공연들
무악인생 팔십주년 기념공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구술채록에 남긴 말
마지막 공연 마지막 무동
참고문헌
심소 김천흥 연보
심소 김천흥 가계도
찾아보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