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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85848051 / 280쪽 152 x 2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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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와 자녀들이 휴대폰 문자로 나눈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담겨져 나왔다. 도서출판 ㈜컬처플러스가 펴낸 [어머니가 트시다]는 수의사이자 축산전문 공무원인 저자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2015년 5월 7일부터 2017년 6월 11일까지 약 2여 년의 기간 동안 어머니와 주고받은 전화 통화 내용과 10명의 가족들이 휴대폰 문자로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10명의 가족은 저자와 큰누나를 비롯한 칠남매, 두 명의 형수, 저자의 아내를 말한다. 저자는 어머니와 이삼일에 한 번씩은 꼭 연락하는 습관 덕에 형제... 요양원에 모신 어머니와 자녀들이 휴대폰 문자로 나눈 이야기가 한 권의 책으로 담겨져 나왔다. 도서출판 ㈜컬처플러스가 펴낸 [어머니가 트시다]는 수의사이자 축산전문 공무원인 저자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2015년 5월 7일부터 2017년 6월 11일까지 약 2여 년의 기간 동안 어머니와 주고받은 전화 통화 내용과 10명의 가족들이 휴대폰 문자로 나눈 이야기를 담았다. 10명의 가족은 저자와 큰누나를 비롯한 칠남매, 두 명의 형수, 저자의 아내를 말한다. 저자는 어머니와 이삼일에 한 번씩은 꼭 연락하는 습관 덕에 형제에게 어머님 소식을 전해주는 소식통으로 역할 한다. 어느새 저자의 형, 누나도 벌써 환갑을 넘기고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라 칠남매 중 막내인 저자가 연락병 노릇을 자청한 셈이다. 저자는 어머니와 통화한 내용을 휴대폰을 통해 가족들에게 공유하고 가족들은 저자와 어머니에 대해 휴대폰 문자로 이야기한다. 비록 디지털 사회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휴대폰을 통해 의견들을 주고받지만 거기에는 따뜻한 아날로그 사랑이 숨 쉬고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치매’라는 말 대신 ‘트셨다’라는 말을 일부러 만들어 사용한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치매에 걸렸다’라는 표현을 받아들이지 않고 새로운 용어를 만든 이유에 대해 저자는 “아직 정신이 멀쩡할 때가 대부분이고 어쩌다가 혼돈이나 망각 상태가 일어날 뿐인데 무슨 큰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치매에 걸렸다고 단정 지어버리는 것은 이제까지 자식들을 제 몸보다 더 아끼며 키워내느라 고생하신 어머니에 대한 자식 된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한 치매 초기 상태에서는 정상인들과 별다른 차이 없이 사고와 대화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간의 정신에 대해 치매라는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인격 존중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일반인들이 치매 징조가 일어난 때부터 치매가 본격화되기 전까지의 상태를 ‘트시다’라고 명명했다. 즉, ‘치매에 걸렸다’가 아닌 ‘트셨다’라는 개념을 갖고 부모님과 어르신들을 바라보면 자칫 치매라는 판단으로 인해 잃어버릴 수 있는 대화의 시간을 고스란히 되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치매가 본격화되면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기억력 장애이다. 저자는 기억력이 아직까지는 살아있는 ‘트신 상태’인 어머니와 많은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이야깃거리가 없을 때는 소재를 찾기 위해 한참을 고민한다. 저자 역시 공상에 빠지는 것을 좋아라 하는데 흔히 현장에서 이야깃거리를 발견한다. 그러는 사이에 이야기는 가족사를 넘어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축산 공무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저자는 어느 날, 문터기라는 닭을 만나게 된다. 조류독감이라는 광풍이 휘몰아치는 현장에서 살아남은 문터기는 축산 공무원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치다 꽁무니털이 다 빠져버린 닭이다. 죽음의 현장에서 불사조처럼 생존한 이 닭을 저자는 생사의 요령과 기본을 터득해버린 놈이라는 뜻에서 문터기(文攄基)라고 이름 지어 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값비싼 외국 브랜드만 선호할 게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문양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하는 저자는 이러한 문터기의 닭벼슬 모양을 본떠 자신의 문양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또한 그는 이렇게 각자가 각자의 로고를 활용해 명품을 만들면 우리나라의 명인들도 다시금 살아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가하면 저자는 13세기 고려와 몽골간의 전쟁에서 힌트를 얻어 말과 드론을 결합한 ‘날뛰기’라는 경기를 만들어 세계적인 경기로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드론을 아시냐고 일부러 여쭙기도 한다. 어머니는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세숫대야만한 것이 아니냐?”며 왜 물어보냐고 반문한다. 그러면 막내아들인 저자는 ‘날뛰기’라는 경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어머니는 아들이 생각하는 날뛰기 경기가 세계적인 경기로 잘 커질 수 있도록 열심히 기도해주겠노라고 응답한다. 이처럼 어머니는 저자의 이야기에 가장 잘 귀기울여주는 최고의 애청자이고 저자는 그런 어머니가 심심하시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이야깃거리를 궁리한다. 이와 같은 이야기꾼 저자 덕분에 독자는 마치 자신의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최근 들어 점점 치매로 고생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노인들에게는 암보다 더 무서운 병이라고 불린다. 누군가는 장수가 행복이 아닌 재앙이라고도 말한다. 치매는 당사자와 가족 모두가 괴로운 병이다. 이제 치매는 개인과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공통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치매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2009년 약 21만 7,000명에서 2013년 약 40만 5,000명으로 4년 만에 87%가 증가했다.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치매인구는 73만 4,000명에 이른다. 2025년에는 무려 100만 명, 2043년에는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더욱이 100세 시대, 고령의 노인이 초 고령의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 시대이다. 젊은 자식도 시간이 지나면 부모가 되고 더 나이가 들면 노인이 된다. 이런 시대에서 저자 역시 자식으로서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시며 사랑과 슬픔이 교차하는 순간을 맞이했었다. 우리속담에 ‘장병(長病)에 효자 없다’는 말이 실감나는 때다. 하지만 저자의 효도법을 알고 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재미난 이야깃거리를 찾고 휴대폰으로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며 어머니의 정신 건강을 챙기는 저자의 모습은 우리에게 치매 초기 대처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이 책 역시 어머니에게 읽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출판하게 됐다. 노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볼 책이다. [책 속으로 추가] 이렇게 해서 책 전반부는 우리 일곱 형제자매들과 며느리 셋 등 열 명이 공유한 메시지들을, 후반부는 우리 아이들의 앨범 속에 사진과 함께 끼워 놓았던 수십 개의 쪽지와 편지 중에서 몇 개를 골라서 엮어 보았다. 표현 내용은 형, 누나들께 수시로 전했던 문자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약간 수정했다. 성경을 읽으시는 것과 함께, 당신 자식들의 이야기를 틈틈이 즐겨 읽으실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쑥스러움을 딛고 용기를 내어 본다. 또, 우리와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하고 애태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써 보았으니, 부족한 글이나마 어머님처럼 너그러이 이해하며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며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큰 나무가 되어준 어머니와 형제자매, 형수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빌며 옆에서 뒷바라지 해준 아내와 딸 명진이, 아들 용준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정성스레 책으로 만들어준 ㈜컬처플러스 강민철 대표와 고혜란 이사, 그리고 이유경 실장, 음소형 주임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7년 초여름 김천에서 평산(平山) 나병승 씀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내용 중에서 “복 많이 받아라!”고 하시기에, 일부러, “어머니가 주시는 거죠?”라고 하니, “하느님이 엄마한테 주시고 엄마가 자식들한테 주제!” 라고 하시네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있다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라네요.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식물도 마찬가지라네요. 동·식물에도 귀가 달렸다면서 절대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식물에게
어머니가 핸드폰을 사용한 뒤로 통화하기가 매우 쉬워졌다. 오랜 세월 습관처럼 이삼일에 한 번씩 전화를 드렸다. 간혹 통화가 길게 늘어질 때도 있었지만 십중팔구는 으레 묻는 안부전화였기 때문에 1분이 조금 안 되거나 조금 넘길 정도였다.
“잘 계셔요?”
“오냐, 잘 있다, 내 새끼. 오늘도 보람의 하루, 즐거움의 하루, 감사의 하루가 되시소”
통화 내용은 천편일률적이었다. 늘 똑같은 물음과 똑같은 대답이 반복되어 단순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음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홀로 된 어머니가 86세가 되던 해 큰형이 어머니를 모시기 시작했다. 큰형은 자식 도리를 다하려했다. 헌데, 어머니는 생각이 좀 다르신 듯 했다.
자식 집에 얹혀 있기에는 때가 좀 이르다고 생각해서인지 아직은 당신이 주도할 수 있는 자신의 세계로 더 돌아가고 싶어 하셨다. 그 세계의 중심엔 시골집이 있었다.
시골집은 특별날 것 하나 없지만 그렇다고 단조롭지만은 않았다. 인근 교회를 오가며 목사님 설교 말씀을 듣고 형제자매들을 만날 땐 이월 초하루 가마솥에서 톡톡 튀어 오르는 콩처럼 활력소를 느끼셨던 것 같다. 눈에 익고 발에 익은 마을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지인들과의 소박한 인간관계를 일상생활처럼 그대로 지속하기를 더 원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골 도우미 아줌마와의 끈끈한 관계를 잊지 못해 큰형 집에 있으면서도 몹시도 그리워 하셨다. 어머니는 결국 시골집으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하지만 바라시던 대로 시골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는 전만 같지 않았다. 언제부터인가 외숙모님께서 조심스레 돌리고 돌려서 언질을 주셨다. 어머니의 언행이 예전 같지 않으시고, 도우미 아줌마가 아무리 잘 챙겨주신다 하나 자식만 하겠느냐는 말씀이셨다.
결국 어머님의 개인적 바람도 고려해서 시골집에서 가장 가까운 작은형 댁에 모시기로 했다. 작은형 댁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는 얼마동안 그런대로 편히 생활하고 계시나 싶었다. 그러시더니만 이내 시골집에 대한 관리 욕구를 불쑥불쑥 드러내시곤 했다. 어머니 마음은 시골집 주인이라야 성에 차셨던 모양이다.
시골 교회와의 단절도 중요한 문제였고, 몇 그루 안 되지만 당신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과수원이 어머니의 마음을 시시때때로 시골집으로 이끌었던 모양이다.
당신의 뜻을 오롯이 담을 수 없는 자식 집에서의 생활이 사소한 갈등을 일으키고, 그 갈등이 어머님의 마음속에 조금씩 쌓여갈수록 시골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해져만 갔다.
하지만 어머니의 마음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혼자 시골집에 계시도록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말로 어느 한 쪽을 딱 결정하지 못하는 어머니와 우리 형제들에게 난감함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커다란 벽처럼 조여 왔다.
그러던 중 시골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 곳에 있는 요양원을 알게 되었다. 얼마 뒤 그 곳으로 어머니를 모셨다. 이 과정에서 우여곡절 또한 많았는데 휴대폰으로 자주 연락하는 습관 때문이었는지 나는 언제부터인가 형제들에게 어머님 소식통이 되어 있었다. 형, 누나들도 환갑이 넘거나 일흔을 바라보는 분들이라 아무래도 기동력이 떨어지시기 때문에, 대신 챙겨드리는 마음으로 막내인 내가 연락병 노릇을 자청한 셈이다.
처음엔 한 분 한 분께 따로 소식을 전하다가 어머니의 상황이 심상치 않을 때가 빈번해지다보니 좀 더 편리하게 단체 문자를 통해서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형수님과 누나들이 쌓인 문자들을 보고는 한 권의 책으로 엮어볼 것을 권유하셨다. 처음엔 황당하게 들렸지만 그것을 계기로 지난날 우리가 주고받았던 문자들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내용은 특별할 것 없이 빈약했지만 지나간 일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래도 책을 낸다는 것을 영 쑥스러워 하니, 가족 모두가 자신을 가지라며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모세처럼 120세까지 꼭 채우겠다고 다짐하시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지금 글로 엮어버리면, 사후 회고문처럼 느껴져 나중에 영 마뜩치 않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 때문에 책을 낸다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사이 서서히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서로 공유했던 많은 날들의 이야기를 어머니에게 읽을거리로 만들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점점 커져갔다.
‘그래 시작해보자!
우리들의 이야긴데 글 솜씨가 좀 빠지면 어떠랴.
짠하고, 안타깝고, 애타고, 때로는 뭉클했던 우리들의 지난날을 책으로 엮어 어머님께 드리자. 어머님께서는 자식의 부족함도 채워 가시며, 자식들과의 이야기를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시리라’
이렇게 해서 책 전반부는 우리 일곱 형제자매들과 며느리 셋 등 열 명이 공유한 메시지들을, 후반부는 우리 아이들의 앨범 속에 사진과 함께 끼워 놓았던 수십 개의 쪽지와 편지 중에서 몇 개를 골라서 엮어 보았다.
표현 내용은 형, 누나들께 수시로 전했던 문자들을 그대로 옮기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약간 수정했다. 성경을 읽으시는 것과 함께, 당신 자식들의 이야기를 틈틈이 즐겨 읽으실 어머님의 모습을 상상하며 쑥스러움을 딛고 용기를 내어 본다.
또, 우리와 비슷한 상황으로 고민하고 애태우시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써 보았으니, 부족한 글이나마 어머님처럼 너그러이 이해하며 읽어 주시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며 생각나는 사람들이 많다. 평생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큰 나무가 되어준 어머니와 형제자매, 형수들에게 건강과 행복을 빌며 옆에서 뒷바라지 해준 아내와 딸 명진이, 아들 용준이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아울러 우리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고 정성스레 책으로 만들어준 ㈜컬처플러스 강민철 대표와 고혜란 이사, 그리고 이유경 실장, 음소형 주임께 심심한 감사의 말을 전한다.
2017년 초여름 김천에서
평산(平山) 나병승 씀
<2016년 9월 22일 목요일> 내용 중에서
“복 많이 받아라!”고 하시기에,
일부러,
“어머니가 주시는 거죠?”라고 하니,
“하느님이 엄마한테 주시고 엄마가 자식들한테 주제!”
라고 하시네요.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10개월을 있다가 세상에 나오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이라네요. 그보다 더 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식물도 마찬가지라네요.
동·식물에도 귀가 달렸다면서
절대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소리를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식물에게 “너는 왜 그리 안 크냐?”
동물에게 “이노무 개새끼, 이노무 소새끼!”라며 함부로 대하면 안 된다고 강조하십니다.
<2017년 1월 14일 토요일> 내용 중에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는 시간은 안개가 빨리 없어져 분 것처럼 너무나도 짧단다. 그리고 수이 알지? 수이…. 죽을 때 입는 옷…. 거기에는 주머니도 없단다. 죽을 때는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응께…. 이 잠깐 사는 세상을 얼마나 올바르게 잘 살아야겄냐이?”
<2017년 2월 3일 금요일> 내용 중에서
현재의 어머니 상태에 대해서 저는 ‘치매’ 또는 위치매(僞癡呆)라는 용어 대신 ‘튼’이라는 형용사를 사용해 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라는 용어 사용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고요. 따라서 언제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의 현재 단계는 ‘치매환자’라는 용어가 적절치 않을 것 같네요.
치매노인이 아니라 ‘튼노인’
치매상태가 아니라 ‘튼상태’
치매환자가 아니라 ‘튼사람(?)’으로 표현하면 어떨런지요?
‘늬 어머니 (마음이) 좀 트신 것 같더라/트셨더라’라든지,
‘우리 어머니 (마음이) 좀 트신 것 같아요/트셨어요’라는 표현이 좋을 것 같아요.
어제 저녁 돌덩어리처럼 단단하고 얼음처럼 차가웠던 귀한 떡 덩어리를 오물오물 입에 넣고 있으니 언젠가 “우리 감처럼 달고 맛있는 감이 없더라!”고 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절절히 이해되네요. 떡이 참말로 고소하고, 또 단단하니까 오래 먹을 수 있어서 든든하고 좋네요. 수확도 별로 없고 맛도 맹숭맹숭한 그 감나무에 온갖 품을 들인다고 어머니한테 투덜거렸던 지난 일들이 몹시 후회되고요. 혼자 계신 어머니가 그걸 드실 때는 허기질 때도 있었을 것이고…,
드실 때마다 아버지 생각을 하실 때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언젠가 간병인 아줌마의 아들 결혼식 때문에 제가 몹시 짜증을 내었지요.
그 분은 왜 어머니 같은 노인 분들에게 청첩장을 주시는지요?
어머니는 왜 혼자 가시면서 길을 잃어버리시는지요?
무슨 축의금을 그리도 많이 주시는지요? 등등….
이런 과거의 여러 일들을 지금 생각해보니 어머니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것들이었습니다.
지금 어머니의 상태를 ‘치매’라고 단정지어 버린다면 너무 가혹한 것 같습니다.
또 상당한 배려가 필요한 분에게 정상 상태의 사람을 대하는 잣대를 대버려도 가혹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곰곰 생각해 보니 ‘트다’라는 표현을 쓰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심정으로는 ‘트이다’라는 표현도 쓰고는 싶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왜냐하면 ‘트이다’는 ‘(생각이) 트이다’에서처럼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러나 ‘트다’는 긍정적인 의미와 부정적인 의미를 동시에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동이) 트다, (사이를, 뭔가를) 트다, (뭔가가) 터지다’는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살이, 피부가) 트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네요.
어머니의 사고(思考)가 이제야 새로 트인 것은 아니겠지만, 늙기 전하고 비교해서 뭔가는 달라지셨다고, 트셨다고 생각이 됩니다.
예를 들면 옛날에는 누군가가 어머니에게 좀 부당하게 언행을 하더라도 대부분은 속으로만 삭이며 받아들이셨는데, 지금은 과감하게 어떤 때에는 무지막지하게 표현을 하신다는 거죠.
그래서 뭔가 트인 것인지, 아니면 터진 것인지….
설명을 정확하게는 못하겠는데 두 단어가 버무려진 일종의 뭔가 비슷한 상태를 연상하게 된답니다.
그리고 ‘(살이, 피부가) 트다’처럼 어머니 뇌의 해부학적 상태가 연세가 드셨으니 이젠 튼실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어느 정도는 수긍이 되니까요.
현재의 어머니 상태가 치매와는 별개라고 생각되지만 예상되는 코스는 결국은 그곳이겠지요.
그래서 이 단계를 모든 사람들이 최대한 이해하고 배려해 줄 때, 어머니의 삶이 오랫동안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대로 그것을 잘 모르고 대하게 될 때, 당사자의 존재감은 말할 수 없이 초라해질 것 같아요.
당사자의 고통이 최대한 짧도록 우리 모두 잘 이해하고 오지게 버텨보는 것이죠.
<2017년 2월 12일 일요일> 내용 중에서
리트머스 시험지가 특별한 것이 아니네요.
사람 얼굴이 이토록 ‘슬픈 리트머스 페이퍼’일 줄은
오늘 처음 알았습니다.
이곳도 완전한 곳은 아닌가 봐요.
가위와 실과 바늘을 사달라고 해서 마트에 들렀습니다.
그것을 들고 너무 좋아하시네요.
또 문방구 코너가 보이니 볼펜도 챙기자고 하십니다.
형광펜으로만 성경책에 칠하시는 것을 알기에,
볼펜이 왜 필요하냐고 여쭈니,
“늬가 책 쓴 것을 고칠라믄 볼펜도 있어야겄냐 안….
빨간색하고 파란색하고 두 가지를 사라, 다해서 네 개!”
라고 하셔서,
두 개면 되지 않느냐고 말씀드리니,
“잃어버릴 것에 대비해야지”라고 하시네요.
<2017년 3월 11일 토요일> 내용 중에서
새벽잠에서 깨어나 문터기와 함께 꿈꾸던 내용물이 바로 ‘날뛰기’입니다.
몽골의 팽창 역사를 세계인 모두가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항몽 역사는 거의 모를 것입니다.
제가 ‘날뛰기’에서 그려본 경기는 항몽 전쟁을 그대로 묘사하는 것으로서 교훈적이면서도 재미있는 놀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제 생각에 콘텐츠로도 무난할 것 같아요.
저는 이것을 소재로 하여 운영 방식과 내용 그리고 참여 범위를 어머니와 함께 연구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하여 여러 가지 케이스를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베트남과 중국, 몽골 등은 우리와 이런 경기를 펼칠 수 있는 중요한 파트너로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라 이런 이벤트가 국가 이데올로기와 배치된다고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나 ‘날뛰기’ 개념으로 경기를 풀어 놓는다면 이들 나라도 굳이 꺼려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볼거리가 풍부해지는 것은 물론 국가 세금 확보 차원에서도 이것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죠.
<2017년 3월 18일 토요일> 내용 중에서
귀원 길에 어머니께 오늘 즐거우셨냐고 여쭈니까 “여자가 친정가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또 있겠냐?”라고 하십니다. 또 할아버지 이야기도 이 정도로 마무리하면 안 되겠느냐고 여쭈니 “여러번 되풀이 하다 보면 남들이 교만하다고 하겠다. 그만하자”라고 하셨습니다. 정말 그래도 되겠냐고 재차 여쭈니 “늬가 원래 얼사덜사(얼레덜레)한 사람인데 책 쓴다고 얼마나 머리가 무겁겠냐? 그만해라.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은 궁금해 하는 것이 좋지 않겄냐?”라고 하시네요.
우리 어머니 정말로 ‘트신 것’ 맞죠?
프롤로그
이천십오년 오월~십이월
이천십육년 일월~유월
이천십육년 칠월~십이월
이천십칠년 일월~유월
에필로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