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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95233489 / 364쪽 150 x 2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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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경복궁 광화문 앞길 세종대로 조선왕조의 수도로 한양이 정해지고 그 머리가 되는 곳에 궁궐이 들어서고 궁궐 문 앞으로 대로가 펼쳐지는 순간 이 길은 온갖 정치적인 변화의 현장이 되었다. 정치 상황이 달라지면 이 길이 영향을 받았다. … 최근에 이 길은 온갖 정치적 욕구나 주장을 펼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종 때 석호라는 사람이 경상도 고령에서 올라와 지방 관리의 비리 사실을 적은 긴 두루마리 종이를 광화문 앞에서 중추원까지 펼쳤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육조대로의 숙명 같은 일은 세종 때도 벌어졌고 지금도 ... 경복궁 광화문 앞길 세종대로 조선왕조의 수도로 한양이 정해지고 그 머리가 되는 곳에 궁궐이 들어서고 궁궐 문 앞으로 대로가 펼쳐지는 순간 이 길은 온갖 정치적인 변화의 현장이 되었다. 정치 상황이 달라지면 이 길이 영향을 받았다. … 최근에 이 길은 온갖 정치적 욕구나 주장을 펼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세종 때 석호라는 사람이 경상도 고령에서 올라와 지방 관리의 비리 사실을 적은 긴 두루마리 종이를 광화문 앞에서 중추원까지 펼쳤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육조대로의 숙명 같은 일은 세종 때도 벌어졌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_339쪽에서 지난 4월 24일 문재인 대선후보는 대통령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고 대통령 관저를 광화문 인근에 마련하겠다는 ‘광화문 대통령 시대’를 천명했다.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이후 서울역사문화벨트조성공약 기획위원회의 일원인 건축가 승효상은 한 신문과 인터뷰에서 “2019년 이후 광화문으로 이전할 새 청와대는 현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와 경복궁 내 일부 시설에 분산 입주할 수 있다고 본다.”고 하면서 경복궁 안에 있는 국립민속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광화문 앞에 있는 정부종합청사를 새로운 청와대 건물로 쓰자고 제안했다. 1995년 국가중심가로 조성 계획 발표, 2009년 광화문광장 조성, 2010년 세종대로로 이름을 바꾼 육조대로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1392년 7월 왕위에 오른 태조 이성계가 한양 천도를 결정한 600년 전부터 정치, 행정, 문화의 집결지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 왔다. 세종대로의 조선시대 명칭인 육조대로는 왕자의 난 이후 송도로 돌아갔다가 다시 한양으로 돌아올 결정을 한 태종 때 형성되었다. 태종은 한양 천도 후 관제 개혁을 하는데 이때 육조가 2품 관청으로 승격된다. 광화문 앞 가로변에 육조관청이 들어서면서 육조대로, 육조가, 광화문 앞길 등으로 불리며 육조대로가 형성되었다. 옛 지도에서는 광화문 앞 일직선으로 표현된 도로 좌우에 육조 관청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실측한 그림이 아니어서 정확한 모습은 알 수 없다고 한다. 1907년에 실측 제작해 그린 〈광화문외제관아실측평면도〉를 보면 북쪽 가운데에 광화문이 긴 월대 뒤에 서 있고 남쪽으로 일직선의 넓은 대로가 있고 대로 좌우에 각 관청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다. 물론 이 도면이 그려질 당시에는 육조의 관청들은 모두 해체되고 통감부의 새로운 기관들이 자리한 모습이다. 1961년에는 공조와 형조가 있던 자리 부근에 시민회관이 들어서고, 1970년에 예조 터에 25층 높이의 정부종합청사가, 1980년에는 세종로 북쪽 끝에 22층의 교보빌딩이 세워졌다. 길의 이름 역시 물리적 변화만큼이나 정치 상황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식민 통치의 상징가로로서 광화문통, 광복 후에는 세종로, 2010년부터 세종대로로로 불리고 있다. 조선시대에 육조대로는 나라 최고의 행사장으로 한양의 유일한 개방 공간이었다. 왕의 능행이나 온천 여행과 같은 왕의 거둥 행렬, 중국 사신 맞이 행사, 무과 시험 모습 등은 한양의 최대 구경거리로 “담처럼 모인 구경꾼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국왕이 사직단이나 종묘에 제사 지내러 갈 때나 왕릉에 절하러 갈 때 국왕이 탄 가마는 육조대로를 지났다. 중국 황제의 칙서를 가지고 사신이 서울을 찾으면 반드시 육조대로를 거쳐 궁으로 들어갔다. 세종은 국왕 출궁이나 사신 영접 절차를 세세하게 규정했다. 거가 출궁 시 가로변은 오색 천으로 치장하는 결채를 했으며 사신이 광화문을 들어올 때는 문 옆에 채붕을 꾸미고 산대놀이를 벌여 먼 길을 찾아온 사신의 노고를 위로했다. _335쪽에서 《서울의 다섯 궁궐과 그 앞길: 유교도시 한양의 행사 공간》은 서울의 다섯 궁궐이 언제 어떤 모양새로 지어지고 궁궐이 들어서면서 궁궐 주변 가로가 어떻게 형성되고, 이들은 한양의 가로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치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핀다. 또한 당시 유일한 개방 공간이었던 궁궐 앞길에서 벌어진 각종 행사들도 함께 살핀다. 조선이 개국한 1392년부터 현재까지 600년 서울 공간의 역사를 궁궐과 그 앞길을 중심으로 들여다본다. 자취가 생생하게 남아 있는 창덕궁 돈화문 앞길 도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없던 길도 생기고 또 있던 길이 사라지기도 하고 물길도 큰 홍수가 지나면서 바뀌기도 하는 것이어서 쉽게 단정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돈화문 앞길에서 보이는 도시계획적인 가로와 물길은 적어도 창덕궁에 돈화문이 세워지고 돈화문에서 동서 간선도로로 가로가 연결되는 시기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_165쪽에서 왕자의 난 이후 왕위에 오른 정종은 송도로 되돌아간다. 정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태조는 다시 한양으로 돌아오는데 정궁인 경복궁이 아닌 이궁으로 창덕궁을 짓고 이곳에 머문다. 창덕궁은 종묘 뒤편의 경사지고 굴곡 있는 대지에 지은 궁궐로 잠시 머무는 기능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지만 조선시대 가장 오랜 시간 사용된 궁궐이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 지어지고 문 앞으로 좌우에 행랑이 늘어선 길이 운종가까지 길이 이어져 궁궐 앞 가로의 면모를 갖추기는 했지만 육조대로 만큼 폭이 넓지 못해 국가의 중요 행사가 있을 때에는 육조대로로 옮겨 행사를 벌이거나 돈화문 앞길에서 행사를 벌이더라도 육조대로 행사만큼 화려하게 벌어지지 못했다. 임진왜란 이후 중요하게 부각된 비변사가 들어선 것을 제외하면 두드러진 관청도 없다. 돈화문 앞길에서 벌어진 눈에 띄는 행사로는 인조 발인 행렬(1649),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고 난에 가담한 박종원을 포함한 반란군을 참수하고 그들의 목을 장대에 꿰어 높이 매단 헌부례(1728), 순조 때 내수사에 속한 내노비와 시노비 문서를 태우는 노비문서 소각(1801), 순조와 순원왕후의 가례 행렬(1802) 등이 있다. 세 대비를 위해 지은 창경궁과 홍화문 앞길 홍화문은 경복궁의 광화문이나 창덕궁 돈화문과 다른 점이 있다. 다른 두 곳의 정문은 문 앞으로 직선대로가 열려 있는데 반해서 홍화문의 경우에는 길이 문 옆으로 나 있다. 모름지기 궁궐의 정문 앞길은 문을 두고 정면 앞으로 가로가 길게 뻗어서 가로 좌우에 관청이 도열하는 모습이 바른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비록 가로 좌우에 관청이 배치되지 못하더라도 가로만은 앞으로 뻗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래야 멀리서도 긴 가로 끝에 우뚝하게 선 궁궐 정문 모습이 위용을 드러낼 수 있다. 홍화문은 지리적으로 그런 여건이 못되었다. _217쪽에서 1980년대 초까지도 동물원이 있고 밤 벚꽃놀이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창경원으로 불리던 창경궁은 성종 때 지어졌다. 성종 재위 당시 세 대비가 궁궐에 거처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생긴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종이 태종을 위해 지은 수강궁 터에 지은 궁궐이다. 창경궁은 창덕궁과 붙어 있어 둘의 영역을 뚜렷이 구분하기는 어렵다. 17세기 이후 창경궁은 주로 왕실에 흉사가 났을 때 빈전이나 혼전으로 사용되었다. 창경궁 흥화문 앞길은 현재 종로4가 교차로에서부터 혜화문이 있던 고갯마루까지 이르는 긴 길이다. 이 길은 문묘와 태조가 창건해 교종의 수찰이 된 흥덕사와 연결된다. 1776년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이 들어서면서 경모궁 앞길, 현재의 대학로가 흥화문 앞길보다 중요한 길이 되었다. 눈에 띄는 흥화문 앞길의 행사로는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사미행사(1749, 1795), 순조의 맏아들 효명세자의 성균관 입학례(1817), 정조, 헌종, 철종의 발인 행렬 등이 있다. 숙
프롤로그 서울 다섯 궁궐과 가로에 담긴 이야기
섬이 되어 버린 궁궐|한양의 다섯 궁궐과 가로|놓칠 수 없는 궁궐 앞의 구경거리|유교도시 한양의 행사|궁궐 앞 가로, 서울을 살피는 또 하나의 키워드
1 경복궁과 육조대로의 탄생
한양 천도와 경복궁 창건
정도 600년 역사의 출발, 한양 천도|개경을 본뜬 궁궐과 종묘, 사직단 건설|창건 당시 경복궁의 공간 구성|유교 이념과 고려 관습이 혼합된 궁궐|임좌병향의 터와 계좌정향의 건물|동서 간선도로의 전통
광화문 건립
한양 성곽 축조와 경복궁 궁성의 건립|약간의 오해|궁성 남문 밖 풍경|황성 없는 궁궐
육조대로 건설
왕자의 난|태종의 한양 환도와 이궁 조성|태종의 관제 개혁|장랑 건설과 육조대로의 탄생
육조대로의 형태
광화문 앞길, 육조대로, 육조가|육조대로의 형태|육조대로변의 관청들
2 세종의 경복궁 전면 수리
경복궁으로 돌아온 세종
세종의 즉위|경복궁 이어|의례 정비|문물제도와 건축의 정비
경복궁의 전면 수리
사대문 수리|동궁 건설|상참 의례와 편전의 개조|강녕전의 수리와 교태전 신축
세종조 건축 기술의 성숙
건축의 독자성 모색|기술자의 국가적 관리|외래 신양식의 채택
광화문의 건축적 위용
광화문 문루의 장엄|숭례문과 광화문|광화문의 월대|광화문의 종과 북
3 육조대로에서 벌어진 행사들
광화문에서 치른 의례
계동대나의|취각령|부묘|문종의 부묘를 치른 단종
칙서 맞이하기
빈번한 사신 왕래|칙서를 맞는 절차|광화문을 지나는 사신 행렬
결채와 채붕
가로의 결채|채붕|산대와 잡희
문무 과거 시험과 광화문
육조대로의 무과 시험|과거 시험의 합격자 발표|광화문 육조거리의 체력 시험
담처럼 모인 구경꾼들
여흥과 관광의 공간|백성들의 상소 장소|한양의 유일한 개방 공간
4 창덕궁과 돈화문 앞길
이궁 창덕궁과 돈화문 앞 장랑
향교동 동편의 이궁|창건 당시 창덕궁 규모|돈화문과 장랑 건설|창덕궁의 궁장과 출입문
17세기 이후 창덕궁의 영역 확대
임진왜란 후의 창덕궁 복구|옛 모습으로 재건된 창덕궁|효종의 마수전 건립과 경추문 신설|숙종의 대보단 설치
비좁은 돈화문 앞길
돈화문의 건축 형태|돈화문에서 파자교까지|돈화문 앞길의 관청
소략해진 돈화문 앞 의례
채붕 설치를 중지시킨 광해군|사라지는 결채|인조 국장의 발인 행렬|파자교까지 늘어선 무과 합격자|돈화문 앞에서 치른 헌부례|노비 문서 소각
5 창경궁과 홍화문 앞길
대비를 위한 창경궁 건립
수강궁에서 창경궁으로|창경궁 홍화문의 등장|통상적인 격식과 다른 창경궁의 전각 구성
17세기 이후의 창경궁
광해군의 창경궁 복구|동궁을 포함한 창경궁의 영역|빈전?혼전으로 활용|경모궁 개건
홍화문 앞길
창경궁의 문|홍화문 앞길의 상황
홍화문 앞길의 행사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사미 행사|목을 길게 늘이고 구경하는 왕세자 입학례|홍화문으로 나가는 국왕의 재궁
6 경희궁과 흥화문 앞길
숙종과 영조가 즐겨 찾은 경희궁
광해군의 경희궁 창건|바위와 숲과 샘이 있는 궁궐|숙종과 영조가 즐긴 경희궁|고종연간의 쇠락
경희궁을 둘러싼 문과 가로
궁장과 출입문|단층으로 지은 흥화문|운종가로 이어진 흥화문 앞길
흥화문 앞길의 행사
흥화문 앞에서 백성들을 만나는 영조|태조와 세조의 초상화 흥화문을 오가다|흥화문을 들어가는 종묘의 27신위|흥화문을 나서는 한 많은 혼령들
7 고종연간의 경복궁과 경운궁
경복궁 중건
조대비의 중건 교지|옛 제도를 따르고 신질서를 반영한 중건 경복궁|궁성과 출입문|후원의 확장
광화문과 육조대로
중건 광화문|종친부?의정부?삼군부의 청사 복구|육조대로의 정비|해치
활기 잃은 육조대로
고종의 잦은 어가 행렬|신정왕후의 국장과 부묘|경무대에서 벌어진 과거 시험
고종의 경운궁 건립
경운궁 이어|경운궁|중화전 건립과 경운궁의 재건|경운궁의 서양식 건물
경운궁의 여러 문과 문 앞 행사
인화문 앞의 고종황제|대안문과 대한문|영성문을 나가는 재궁과 어진
8 우리 곁의 궁궐과 가로
일제 강점기 궁궐의 수난
창경궁에 들어선 식물원과 동물원|전시장으로 전락하는 궁궐|일제 강점기 시가지 계획과 궁궐 가로|경복궁에 들어서는 조선총독부 청사
광복 이후 가로의 확장과 변모
100미터 도로로 확장되는 세종로|지속되는 궁궐의 수난|박물관과 궁궐|철근콘크리트조 광화문 탄생
1980년대 이후 궁궐의 복원과 정비
서울대공원으로 가는 동물들, 제 모습 찾는 창경궁|광복 50년과 조선총독부 청사 건물 철거|복원되는 경복궁|되살아난 경희궁 터
다섯 궁궐 앞 가로의 현주소
새롭게 복원되는 광화문|광화문 광장에 돌아온 세종|마지막 희망, 돈화문로
에필로그 기억으로 남는 궁궐과 가로
서울에 남은 유교도시의 기억|격변하는 육조대로의 숙명|왕실의 애환을 품은 돈화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