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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46059924 / 467쪽 / 양장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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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일본 병원의 기원에서부터
현대 의료 시스템이 구축되기까지
한국은 근대적 보건 의료 체계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일본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초기 골격이 일본과 유사했고, 일제강점기를 거쳤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것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일본식 제도를 받아들이는 편이 수월했다. 유사한 틀 위에서 발전해나간 한국과 일본이지만, 두 나라의 보건 의료 체계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냈는가?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병원’이라는 조직은 왜 생겨났는가?
이 책은 일본사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병원에 초점을 맞추어 시기별로 사례를 모아 엮어낸 역사서다. 병원에 관한 기록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 사실의 인과 속에서 의료 종사자가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또 전쟁의 화마 속에서 의학은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등을 두루 짚어본다. 사례와 고증을 통해 일본 병원을 복원해 일본의 보건의료사를 통찰한 이 책은 한국 병원의 시스템을 근원적으로 고찰할 기회와 함께, 시대와 함께하는 의료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할 장을 열어줄 것이다.
출판사 리뷰
미래를 열기 위한 과거의 복원
사례 연구와 고증으로 엮어낸 일본 병원의 역사
저자 후쿠나가 하지메는 병원 경영 전공자로, 이 책을 집필하는 6년 동안 병원사와 관련된 사적 및 유적지 등을 찾아다니고, 참고 도서와 관련 자료를 발굴하기 위해 열정을 쏟았다. 대학에서 병원 경영 수업을 강의하려면 병원의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병원사’의 첫 등장은 일본 의학계에 놀라움을 선사했다.
한 나라의 의료가 나아갈 길을 고민할 때 확실한 좌표를 세우기 위해서는 세계 각국과 자국의 병원을 비교하는 횡단면 분석과, 자국의 병원에 대해 고찰하는 시계열 분석을 빼놓으면 안 된다는 것이 이 책 저자의 주장이다. 그 좌표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일본에 최초로 서양식 병원이 만들어진 것은 1861년으로, 실제적으로 일본 병원의 역사는 150년 정도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일본 병원의 기원은 그보다 더 세월을 거슬러 전설로 존재하는 시카인(四箇院)으로 볼 수 있다.
병원의 기본은 환자를 입원시켜 진료와 치료를 행하는 데 있다. 병원은 그 시기의 정치 체계, 경제 환경, 재정 상태, 사회사상, 인구구성, 질병 구조 등과 같은 사회 기반을 토대로 자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병원은 시대의 의학 수준과 함께 그 당시의 의료 제도와 정책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한 예로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 패전 이전의 시기와 복지 원년 이후의 시기에 사회가 요구하는 병원의 기능은 서로 달랐다. 또한 시기별 의료 환경에 따라 병상 규제도 바뀌었다.
초고령사회를 경험한 일본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는 의료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례 연구와 고증을 통해 각 시기를 이해함으로써 미래를 전망할 수 있어야 하며, 개별 병원의 경영에서도 과거를 통찰하는 장기적인 혜안으로 역사의 흐름을 가늠해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현재 초고령사회에 속해 있다. 고령 사회가 요구하는 병원의 기능과 역할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 될 것이다. 따라서 각 시대와 해당 시대의 의료 정책을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의 병원에 대해서도 논할 수 없다.
이와 더불어 한국 의료사는 일본과 시계열적으로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의료 체제에 많은 영향을 받은 우리나라 역시 초고령사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일본 의료사는 한국 의료사의 미래를 전망할 표본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시대와 함께하는 의료인의 진정한 역할은 무엇인가?
과거의 축적이 투영된 미래 병원을 진단하다
어떤 의료와 병원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진단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기원과 의학의 역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역사의 양지뿐만 아니라 음지에서 얻은 교훈도 거울로 삼아 미래 병원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일본은 고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에게 의료 문화를 배웠는데, 이 책의 본론은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의료 문화를 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1장 ‘일본 병원의 맹아: 불교병원’에서는 나라 시대에서부터 가마쿠라 시대까지 불교병원이 수행한 역할을 살펴본다. 백제가 일본에 불교를 전한 뒤 ‘박제자혜’의 정신에 따라 쇼토쿠 태자는 공적 구제 시설을 병설했으며, 많은 불교 사원은 약사여래를 모시며 요양과 치료를 제공했다.
2장 ‘남만병원과 고이시카와 양생소’에서는 선교사 알메이다가 세운 일본의 두 번째 병원, 고이시카와 양생소를 살펴본다. 이곳에서 외과 수술과 서양의 약물을 보고 일본인은 큰 충격을 받았다. 진료, 수술에 대한 임상 교육도 이루어졌다. 일본 최초의 서양 의학교가 건설된 것이다.
3장 ‘폼페의 나가사키 양생소’에서는 막부의 초청으로 일본에 온 네덜란드 해군 군의 폼페가 세운 나가사키 양생소에 대해 중점적으로 다룬다. 네덜란드 의사는 일본에 ‘파리 병원 의학’을 전했으며, 이 시기 첨단 서양 의학이자 공중위생 그 자체인 우두 종두가 최초로 성공했다.
4장 ‘에도 시대 말기의 서양 병원’에서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양 병원을 보고 기록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데, 에도 시대 사람들이 ‘병원’이라는 새로운 문명 시설을 어떻게 이해하고 일본으로 받아들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 당시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천연두를 예방할 수 있는 종두를 본격적으로 전파한 병원사의 중요 인물 오가타 고안의 업적에 대해서도 짚어본다. 오가타 고안은 “의사로서의 삶이란 타인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할 것”이라고 강조한 공중위생 분야를 창시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정신을 바탕으로 일본에서 서양 의학이 출발했고 ‘건강(健康)’이라는 단어가 생겨났으니, 이 장은 현재 일본 의료 문화의 건강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5장 ‘메이지유신과 병원 개설’에서는 전쟁으로 생겨난 군진병원, 에이주(위수) 병원, 해군병원의 사례를 볼 수 있다. 이 시기 문명개화의 조류를 타고 우후죽순처럼 많은 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했으며, 보신 전쟁으로 병원은 전후방에서 응급 외과적 처치를 담당했다. 군대의 위생·질병을 다루는 군의를 별도로 양성하기 시작했다.
6장 ‘메이지 시기의 병원’에서는 외국에서 초빙해온 의사에게 병원 운영에 대해 배우거나 구미 시찰, 의학 유학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서양식 병원 설립 과정을 살펴본다.
7장 ‘일본 의료 시스템의 구축’에서는 서양의 병원을 견학한 내용을 살펴본 뒤 ‘의제’ 시행에 따라 국가 의료 시스템의 골격이 어떻게 규정되었는지를 짚어본다. 또한 매독, 콜레라, 결핵 등 시대의 특징적 질병을 중심으로 병원사를 그려본다.
8장 ‘민간병원이 주체인 일본의 일반 의료 제공 체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 일반적인 의료 제공이 민간에 맡겨진 이유와, 의료가 시장경제의 서비스산업으로 이루어졌던 상황을 분석한다.
9장 ‘다이쇼·쇼와 시기(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의 병원’에서는 전쟁 중 병원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또한 전선 확대에 맞춰 병참병원이 증가한 과정, ‘의료 관계자 징용령’에 따른 의사의 징병으로 의사 부족에 시달렸던 현상, 전염병 환자가 25만 명 가깝게 증가했던 사실 등 당시 참혹했던 의료 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
10장 ‘해외의 병원’에서는 일본이 중국, 관둥저우, 만주, 타이완, 조선, 남방, 사할린, 남미, 하와이 등에 세운 병원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으며, 현지에서 어떻게 성장해갔는지를 볼 수 있다.
11장 ‘GHQ의 의료 개혁’에서는 연합국에 의해 일본 병원의 체계가 어떻게 변화되어갔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육해군 병원은 국립병원으로 이관되었으며, ‘의료법’·‘의사법’ 제정, 간호 체제 근대화 등 수많은 개혁이 시행되었다.
12장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병원사와 병원의 전망’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어떤 과정을 따라 의료 확장이 추진되었으며, 노인병원이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병상 구분에 따른 추이를 살펴보고, 미래의 병원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를 전망한다.
앞으로의 병원은 고령화 사회와 의료비 부담 면에서 분석한 바대로, 국가 의료 체제 전체의 구조 변화에 따른 기능 특화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역과 지역, 의료와 개호, 재택과 현장의 의료가 연계될 것이며, 병원 경영 등을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화할 것이다. 저자는 저출산, 고령화, 인구 감소, 의료 재정 제약하에서 적절하고 효율적인 의료 제공 체제를 모색하며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닌쇼는 시텐노지에 참배하려 들렸을 때 쇼토쿠 태자의 시카인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 위업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후 각지에 료뵤인과 히덴인을 개설했다고 한다. 시텐노지 건립 이후 약 650년 뒤의 일이다. 닌쇼는 사이다이지에 ‘세료인(常施院)’을 세워 병객(病客)의 간호와 시약을 행하고 시각장애인에게 지팡이를 제공했으며, 히덴인을 수리해 걸인을 수용했다. _ 46쪽, 1장 일본 병원의 맹아
에도 시대에는 약(한방약)으로 치료를 했다. 의사(한방의), 약행상 등을 통해 의료가 보급되었다. 에도 시대에는 자택 요양 중인 환자를 의사가 왕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으며, 병원 등의 의료 시설에 환자를 입원시켜 의사가 진찰하거나 환자가 의사의 집에 가는 외래 진료의 형태는 거의 없었다. 즉 입원도 외래도 없이 왕진만이 의료를 제공하는 형태였다. 예외적으로 시설에서 치료를 행한 ‘주조류 산과(中条流産科)’와 빈곤한 환자를 수용해 간호한, 막부 운영의 시료원 ‘고이시카와 양생소(小石川養生所)’가 있었다. _ 68쪽, 2장 남만병원과 고이시카와 양생소
1861년 일본에서 처음으로 서양 의학으로 진료하는 본격적인 서양식 병원이 나가사키에 개설되었다. 알메이다의 후나이 병원으로부터는 304년 후의 일이며, 『해체신서』 출간으로부터 87년 후, 지볼트가 일본에 오고 나서 38년 후, 페리의 ‘구로후네 내항(黒船来航)’으로부터 8년 후의 일이다. _ 78쪽, 3장 폼페의 나가사키 양생소
고안은 “의사로서의 삶이란 타인을 위한 것이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님을 명심할 것.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지 아니하고 명리를 바라보지 않으며 오직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사람을 구하는 것에 다해야 한다. 병자에 대해서는 오직 병자만 봐야 한다. 귀전빈부(貴賎貧富)를 따지지 말아야 한다”라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_ 98쪽, 4장 에도 시대 말기의 서양 병원
에도 시대 말기 구미를 3회 방문한 후쿠자와 유키치는 1866년에 저서 『서양사정』에서 병원, 구빈원 등의 사회 시설은 문명국의 요건 중 하나라고 썼다. 1865년 후쿠자와는 게이오기주쿠를 설립했다. 당시 대부분의 일본인은 ‘병원’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었다. 병원은 일본 가장 서쪽 끝의 항구, 나가사키에만 있었다. 하지만 문명개화의 조류를 타고 병원은 메이지유신 직후 문자 그대로 우후죽순처럼 설립되기 시작했다. _ 116쪽, 5장 메이지유신과 병원 개설
다른 아시아 각국과 20세기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일본에는 개국 직후부터 지금까지 외국에 말미암은 대규모 병원 시설이 들어오지 않았다. 외국 병원의 형태는 개항지에서 선원을 대상으로 하는 ‘해군병원’이나 선교사에 의한 ‘단체병원’이었다. 외국이 설립·운영한 의학교도 없었다. 일본은 제국주의 시대의 패자로서 외국에 기대지 않고 독자적으로 병원과 병원 시스템을 구축해나갔다. 한편 이런 배타성으로 일본의 병원은 시야가 좁고 국제성이 결여된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이는 다른 아시아 국가와 비교할 때 메이지 시기 이후 일본 병원사에서 볼 수 있는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_ 139쪽, 6장 메이지 시기의 병원
일본은 메이지 시기 초기부터 개업의를 의료 제공 제도의 근간으로 두었다. 개업 면허를 지닌 의사는 전국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진료소를 개설할 수 있었다. 병원 개설은 (1985년 지역의료 계획 도입까지) 허가제였지만, 개업 허가는 비교적 쉽게 얻을 수 있었다. ‘민간 개업의 중심’, ‘자유 개업제’는 일본 의료 제공 체제의 큰 특징이다. 개업의 자유에 따라 개업의는 자기 책임, 자기 이익에 따라 의료를 제공했다. _ 192쪽, 7장 일본 의료 시스템의 구축
민간병원의 자금은 환자가 지불하는 치료비에 의해 조달되었고, 진료비는 자유가격(실제로는 의사회가 정한 규정 보수 가격)으로 전염병을 제외하고는 전액 자기 부담이었다. 의료는 시장경제의 서비스산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일본은 확대되어가고 있었으나 국민의 생활수준은 결코 풍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서민이 값비싼 의료를 이용하기는 어려웠다. 무의촌·무약촌도 많았고, 농촌에서는 민간요법이나 배치된 4대 약행상(配置売薬)이 갖다놓은 상비약으로 병에 대처했다. _ 215쪽, 8장 민간병원이 주체인 일본의 일반 의료 제공 체제
1944년 미군기가 일본 본토 상공을 날아 공습이 시작되었다. 전쟁 말기였다. 소이탄 공습으로 의료 시설이 피해를 입었고 의료 종사자가 부족해졌으며 의약·의료 재료를 공급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전시하 생활환경의 악화에 의사·의약품 부족이 겹치면서, 급성 전염병이 증가해 1944년에는 이질, 장티푸스 등 특정 전염병 환자가 25만 명 가깝게 증가했다. 공습 등의 부상으로 입원해도 의사도, 의약품도 부족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했다. 또 나병, 정신병, 결핵과 같은 전염병의 격리 시설 등에서는 암거래로 쌀을 사거나 농촌으로 가서 직접 구입도 할 수 없는 까닭에 식량 확보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해 병원은 기능하지 못했고, 질병보다도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입원 환자도 많았다. 참혹했다. _ 264쪽, 9장 다이쇼·쇼와 시기(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의 병원
농업에 대한 부양 인구 압력에 대해 일본 정부는 인구 증가 정책을 견지한 채, 국민을 해외로 유출시켜 식량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따라서 해외로의 이민·이주 추진이 국책이 되었다. 농촌 단위로 ‘개척단’을 결성했고, 개척단을 핵으로 하여 집단이민이 이루어졌다. 주된 이민처는 브라질, 페루, 하와이, 남양 서도, 만주 등의 미개지였다. 이주처에는 일본인을 위한 의원이나 병원이 만들어졌다. 또 많은 의학교도 창설되었다. _ 280쪽, 10장 해외의 병원
의료에 있어서도 GHQ가 철수한 이후 GHQ가 목표로 했던 개혁 노선이 모두 계승되었다고는 단언할 수 없다. 예를 들어 병원 경영관리 지식 취득이나 능력을 개발하는 노력은 사라져 경영·법률·회계 지식이 부족한 의사가 자신의 경영 경험과 직감으로 병원을 운영하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났다. 병동 간호부들의 노동환경 개선은 무시되어 근대적 형태의 간호는 건성으로 이루어졌다. 의사 인턴 제도 역시 원래 목적이었던 졸업 후 연수는 알맹이가 빠졌고, 대학병원은 인턴 연수생을 무급 노동자로 혹사했다. 일본의 의료는 간호사나 인턴 연수생이 병원 파업과 대학 분쟁의 방법으로 병원의 부조리함을 세간에 호소하는 사태에까지 다다랐다. _ 321쪽, 11장 GHQ의 의료 개혁
의료·개호 모두 종래의 시설 중심주의에서 재택 중심주의로 변화해간다. 병원은 지역에 있어서 자기 병원만으로 독립 운영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병원-진료소의 연계와 병원-병원의 연계, 병원-약국의 연계를 주로 하는 의료 연계와 의료와 개호의 연계가 필수 불가결하게 될 것이다. 일본 전체로 보면, 병원 시설 수와 각 병원의 병상 수는 이후 감소하고 수술 건수는 증가하며 평균 재원 일수는 더욱 단축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_ 387쪽, 12장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병원사와 병원의 전망
1장 일본 병원의 맹아: 불교병원
2장 남만병원과 고이시카와 양생소
3장 폼페의 나가사키 양생소
4장 에도 시대 말기의 서양 병원
5장 메이지유신과 병원 개설
6장 메이지 시기의 병원
6장 일본 의료 시스템의 구축
8장 민간병원이 주체인 일본의 일반 의료 제공 체제
9장 다이쇼·쇼와 시기(제2차 세계대전 패전까지)의 병원
10장 해외의 병원
11장 GHQ의 의료 개혁
12장 제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병원사와 병원의 전망









































